입력 : 2014.02.15 11:51 | 수정 : 2014.02.15 16:35
-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등 혐한 시위대가 지난해 9월 도쿄에서 "한국인은 나가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준용 조선일보 기자
나는 1970년대부터 한국과 사귀어왔다. 1971년 여름, 관광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한국 생활은 어학 유학, 특파원 생활을 포함해서 30년이 넘었다. 올해 기자 생활은 50년이 되기 때문에 그 반 이상을 한국에서 지내온 셈이다.
그러한 한국과의 인연 속에서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 붐에는 놀랐다. 일본인 사이에서 역사상 처음 한국에 대한 긍정적 관심이 고조되고 친근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혁명적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친한(親韓)적 변화를 보면서 충격을 느끼는 일이 있었다. 상징적으로 소개하면 몇 년 전 일본에 있는 한국요리체인점에서 육회 식중독 사건이 있었다. 그 뉴스를 NHK위성방송에서 보고 놀랐다. 육회에 대해서 아무 설명 없이 ‘육회를 먹고 중독이 됐다’라고 한 것이다. 일본 시청자들은 ‘생소고기를 쓴 한국 요리인 육회’라고 안 해도 다 안다는 것이다. 비빔밥이라면 몰라도 육회까지 한국말 이름으로 일본 사회에 정착했다니.
그런데 그러한 친한·한류 붐이 일어났던 일본에서 이번에는 반한(反韓)·혐한(嫌韓) 붐이 일어나고 있다. 석간신문이나 주간지, 월간지, 단행본을 중심으로 한국을 때리는 반한 기사가 넘치고 있다. 네티즌 세계는 더 그렇다. 잡지는 반한 특집을 실으면 반드시 잘 팔린다. 그만큼 반한 기사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연말연초에 다섯 번이나 일본에 다녀왔다. 강연, 세미나, TV 출연 때문이었는데 한국을 싫어하는 반한 감정에 놀랐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 언론인’ ‘망언제조기’ 등으로 조롱당하고 있지만 일본에 가서 한국인, 한국 사회의 실상, 대일 감정 등을 소개하면 ‘한국에 대해 너무 유화적이다’ ‘한국 비판이 미흡하다’ ‘친한파가 되어버렸다’ ‘구로다 기자는 한국의 대일 공작원이 아닌가’ 등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
TV에 생방송 출연을 했을 때는 시청자로부터 “한국은 일본에 다 반대만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여기저기서 일본 비난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게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과는 국교를 단절해야 하지 않겠느냐. 구로다 기자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까지 나왔다.
집사람에 의하면, 한류 팬이라는 이웃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한국은 왜 외국에 나가서 일본을 비난하는가. 너무하는 것 아니냐. 서울에 있는 남편한테 우리들의 불만을 전달해 달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한다.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일본 사람들의 반한 감정은 처음에는 한국의 집요한 반일 현상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식의 ‘한국 때리기’가 유행이다. ‘한국은 매춘대국이자 강간천국’이라든가 ‘불량식품이 넘치는 나라’ ‘화장실에 가서 손을 안 씻는 남자가 많다’ ‘과외지옥으로 아이들의 자살 급증’ ‘삼성도 위험하다’ 등 나쁜 점만 꼬집은 책이 속속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예부터 ‘일본의 실패는 한국의 기쁨’이었다. 그것이 이제 ‘한국의 실패는 일본의 기쁨’이 된 것 같다. 나는 그러한 풍경을 유머스럽게 ‘일본의 한국화’라고 하는데, 이러한 일본 언론의 저질화는 보기에 안 좋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를 포함한 ‘일본에 지면 안 된다’라는 민족적 활기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면에 ‘일본을 배우자’라는 생각도 있다. 연말 철도파업 때 한국 언론들은 일본의 철도 민영화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무언가 있으면 반드시 ‘일본은 어떻게 했나’라고 일본을 참고로 한다.
일본의 존재감은 부품이나 소재, 기계, 금융 같은 경제뿐만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일본요리를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이고, 수입 맥주도 아사히가 넘버원이다. 하루키는 항상 베스트셀러다. 문화부터 사고방식, 가치관에 있어서도 일본의 영향은 여전하다.
한국인의 대일 감정은 예부터 그러한 이중성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낮에는 반일, 밤에는 친일”이라며 비아냥거린다. 한국에 사는 일본 사람들은 “신문이나 TV에서 반일 뉴스를 안 보면 한국 생활은 아주 즐겁다”라고 말한다. 언론이나 정치, 외교의 반일은 돌출적이지만 일반 국민은 조용하고 일본에 대해 친근감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에서 강연할 때 한국 사회의 다양한 면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최근에는 이것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반일 현상은 ‘이제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라고 한다. 그에 대해서 “한국은 이웃 나라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구로다 망언이다!” 라고 욕을 먹는다.
일본에서의 반한 붐은 네티즌들의 영향이 크다. 반한 시위도 ‘넷우익’들이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한국의 인터넷 문제다. 실은 근래에 와서 한국의 모든 미디어가 인터넷 정보를 일본을 위해 일본어로 열심히 보내고 있다. 일본 인터넷 시장에서 일본어 뉴스로 경쟁하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정보가 주된 내용이 된다. 결과적으로 반일 정보가 가장 주목을 받게 된다. 주간지 기자들은 내가 모르는 반일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작년에 서울에서 “일제시대는 좋았다”라고 한 노인이 술에 취한 30대에게 얻어맞아 죽었다는 사건에 대해서 문의전화가 왔다. 물어보니 일본에서 한국발 인터넷 정보로 알았다고 한다. 술에 취한 사람이 노인을 상대로 살인까지 갔다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을 텐데, 한국 넷 정보는 이것을 반일 사건으로 일본으로 보낸 것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한국의 반일 감정은 그만큼 심하다’라고 흥분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 언론들의 ‘반일 비즈니스’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여론을 많이 자극해 반한 붐으로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반한 붐은 한국 언론에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반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 생활을 경험하고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또 하네’라고 생각해서 ‘면역’을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 일본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으로 유입해 오는 반일 정보를 접하는 일본 사람들은 “한국은 일 년 내내 반일이다” “한국은 항상 일본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 “매일매일 일본에 대한 비난, 욕설이 나돌고 있다”라고 경악하며 화낸다.
일본 사람들은 ‘반일 무죄’ 같은 한국 사회의 범법 만연에 놀란다. 예를 들면 외국 공관에 대한 국제법 위반이고 허가도 없는 위안부 기념상을 일본 대사관 앞에 불법 설치하고, 그 앞에서 매주 반일 집회 데모가 방치되어 있는 풍경에는 혀를 찬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달러를 넘으면 조용해진다는 견해도 있다. 여유가 생기면 반일 감정도 후퇴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은 가난했던 1960~1970년대보다 훨씬 잘살게 됐는데 오히려 반일은 심해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이번에는 민족적 자존심을 만족시키려고 할 것이다.
반일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1945년 8월 15일의 한국 광복에 관한 역사에 대한 ‘한’이다. 일본 사람으로서는 말하기에 미안하지만 한국이 일제 지배에서 벗어날 때 일본과 싸워서 이기고 자기 손으로 일제를 쫓아냈더라면 지금까지 계속해온 반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과 당당하게 독립전쟁을 벌여 싸워서 이김으로써 일제를 타도했더라면, 민족적 울분도 남지 않고 반일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베트남이라든가 인도네시아·인도 같은 나라들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과 싸워서 자기 힘으로 광복, 독립을 해냈기 때문에 가난하더라도 사과, 반성, 보상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반일 감정 해소는 결국 일본과 한번 전쟁을 해서 이기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동해 문제든 더군다나 스포츠 같은 것은 한국인에게는 대일 가상전쟁의 무대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독도 문제에 흥분하고 열을 올리는 것은 그렇다. ‘일본이 독도를 다시 빼앗으러 온다’라는 자기암시로 일본과의 군사적 싸움까지 연상시키는 언행이 두드러진다.
최근의 반일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국제화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일본 여론의 불만이 확대되고 반한의 큰 배경이 되어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일 캠페인이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만, 비판도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고자질 외교’ 때문이다. 아베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야당인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도 박근혜 외교에 대해서 ‘여학생 같은 고자질 외교’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다. 반일의 국제화 배경에는 해외에서 벌어지는 반일 퍼포먼스가 본국에서 ‘애국자의 증명’으로 언론이 치켜세우는 것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작년에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아일랜드에 유학 중인 한국 유학생이 현지 대학에서 런치 타임에 팔고 있는 ‘스시 도시락’ 포장지에 인쇄된 ‘rising sun(욱일)’ 마크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 해서 업자에게 항의했다는 이야기가 ‘애국 미담’으로 화제가 됐다. 이런 풍경은 하나의 반일 병리 현상이 아닌가 싶다.
한국 언론들이 해외에서 전개되는 반일 활동을 과잉보도 하는 것 같다. 외국에 가서 다른 나라를 비난·매도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는 매너 상실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부부싸움도, 노사분규도 당사자끼리 해결 못하고 주변이나 제3자에게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까지 국제화시키면 곤란하다. 일본 사람들의 정서로는 가장 거부감이 드는 풍경이다.
지난주 국제무대에서 일본 여론을 놀라게 한 일이 또 있었다. 유엔에서 역사 문제에 관해 중국과 한국·북한 대표가 똑같은 자세로 일본을 비난·매도했다. 유엔이라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 중국, 북한이 반일 공동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국가이고 북한은 왕조 같은 세습독재국가다. 정치적 자유나 인권 존중은 없는 나라다. 그런 나라들과 손을 잡고 일본을 비난하는 한국을 일본 여론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지난 1월 말에 나는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전략문제에 관한 민간 싱크탱크의 연례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그 주제는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내세워 의견 일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작년에 중국과 베트남을 방문했지만 그 두 나라와는 과거 전쟁에 관한 역사인식은 전혀 일치가 안 되어 있다.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같은 식민지 피해국과 지배국에 관한 사과, 반성, 보상 문제의 다른 양상은 아까 언급했다.
일본 여론은 한국이 역사인식 일치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나라라고 보고 있다. 그만큼 부자 강국이 된 한국이 현실과는 거리가 먼 과거 역사에 계속 집착하고 반일 운동에 몰두하는 것에 일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역사인식을 너무 고집하면 외교는 잘 안 된다는 것은 국제적 상식이다.
일본의 반한 네티즌 사이에서는 “한국은 짜증난다. 떨어져 살고 싶다”라는 ‘이한론(離韓論)’이 넘치고 있다. 일본의 TV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길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상대방이다. 이번 기회에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플러스 마이너스를 포함해 어떤 가치가 있는 상대인지 생각하면 어떨까. 그 결과에 따라 대처하면 좋다.”
최근에 어떤 한국의 신문 사설에 ‘용일론(用日論)’이란 말이 나와 있었다. 국익 차원에서 일본을 이용하고 활용하면 된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너무 원칙을 내세우는 강경대립 외교가 아닌 실용 외교를 하자는 것이다. 이 기사를 염두에 두면서 나는 도쿄에서 있었던 세미나 때 “우리도 ‘용한론(用韓論)’으로 해 나가자”고 했다. 일본 여론에 혐한·반한 감정이 아닌 한국의 가치를 따지면서 한국을 잘 이용, 활용하는 냉철한 실용주의 외교를 하자는 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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