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일본 우익보다 한국 독자들이 더 무섭다”

이강기 2015. 10. 3. 14:38

“일본 우익보다 한국 독자들이 더 무섭다”

반쪽 여론만 전달하는 주일 한국 특파원들의 직무 태만


유재순 JP뉴스 대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주간조선 [2293호] 2014.02.10
 
최근 이삼일이 멀다하고 일본 관련 뉴스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뉴스 내용이 정해져 있다. 일본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우익 정치인들의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문제 등등. 국내 일간지에서 파견한 도쿄 특파원들의 보도 경향을 보면 일본에는 이 같은 우익 성향 정치인들만 사는 것 같다.
   
   물론 이 같은 국내 언론의 보도 내용은 어디까지나 팩트를 중심으로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렸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쪽으로 편향됐다는 것을 지적할 뿐이다. 문제는 언론의 기능이라는 것이 이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쏠림현상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정답은 ‘전혀 아니다’라는 것이다.
   
   작년 연말 일본 기자들과 송년회를 했다. 그 자리에는 한국 특파원 출신의 아사히신문, 교도통신, 아사히TV 등 소위 친한파라고 일컬어지는 한국 전문 기자들이 모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본 기자들의 한국 성토는 이어졌다.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2~3개월에 한 번씩 한국 여행을 다녀오는 아사히신문 기자가 술이 거나해지자 속내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일본 언론이나 한국 언론 모두 다 죽었어. 왜 ‘팩트’에만 치중하고 ‘진실’은 보도하지 않는 거야. 양국 언론 모두가 너무 선정적으로만 보도한다고. 양국 정치인들의 극단적인 발언들만 ‘망언’으로 포장해서 보도하다 보니 이런 극한 상황까지 오는 거야. 우리 아사히신문? 우리도 마찬가지야. 옛날의 아사히가 아니라고. 양국 언론 모두 제대로 된 정론지가 없어. 대체 앞으로 어떡하자는 거야. 아베 수상도 제정신이 아니고 박근혜 대통령도 결코 일국의 지도자답지 않게 언행이 가볍고. 일본에 불만이 있으면 일본에다 직접 대고 말하면 될 것을 왜 외국에서까지 가서 남의 말을 하나.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젠 너무너무 실망해서 앞으로 더 이상은 사적인 한국 방문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나머지 기자들의 얘기도 이와 비슷했다.
   
   최근 소위 친한파 일본인들을 만나면 작금의 한·일 관계에 대해 하소연하거나 아니면 한국 특파원 출신 기자들처럼 양국 관계가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과거에는 어떤 문제로 한·일 양국이 대립하면 대개 이들은 우익 성향의 정치인들 몇 명이 역사인식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비교적 한국 입장에서 말을 하곤 했다. 실제로 일본 기자들은 기사나 칼럼 형태로, 한·일 관계 역사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는 일본인들의 이해를 도모했고, 친한파 외교관들은 어떻게 하면 양국이 사이좋게 관계를 이어갈까 서로 정보 교환은 물론 민간교류에 가장 먼저 앞장서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같은 친한파 일본인들이 거의 없다. 만나면 온통 한국 성토뿐이다. 이러다가는 친한파나 지한파 일본인이 씨가 마를 판이다.
   
   이 같은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만든 것은 한·일 양국의 언론 탓이 가장 크다. 앞의 아사히신문 기자가 말했듯이 양국 언론은 눈에 보이는 팩트만 좇아 선정적으로 보도하기에만 바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은 애써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그 결정체가 바로 현재의 한·일 관계 모습이다.
   
   현재 한국인 입장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지난 수십여 년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교류를 해온 친한파 일본인들의 등돌림이다. 그런데도 국내 도쿄 특파원들은 이들의 하소연 따위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이들이 등을 돌린 이유가 분명히 일정 부분 우리에게 있는데도 언론 매체 그 어디에서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차피 아베 정부나 우익 성향의 정치인들은 한국에 대한 망언을 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므로 으레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면 된다. 하지만 친한파 인사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된 지적을 한다. 진짜 우리가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외교상으로도 아주 긴요하고 적확한 상황을 꼭 꼬집어 얘기해 준다. 그런데 그러면 무엇하나. 이 같은 문제들이 국내 언론에는 전혀 보도가 되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 지난주 만난 복수의 한국 특파원은 이렇게 얘기한다. “정말 한·일 관계가 심각합니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 쪽의 말이 맞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과정에서 나온 일본 국왕 사죄 요구 발언은 때와 장소가 그러니 만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만 상징적으로 보여주면 충분했습니다. 결국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지요. 또한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까지 가서 일본을 비판한 것은 제3자가 봐도 결코 어른스럽지 못한 모양새였습니다. 외교라는 것은 때로는 립서비스도 하면서 국익을 위해 최대한 ‘밀당’도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트릭은 없고 무조건 외국 정상회담에서 비판부터 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국을 몽니 부리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파원들은 그럼에도 정작 기사로는 이 같은 얘기를 쓰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만약 있는 그대로 썼다가는 당장 독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파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기사를 쓰면 아무리 옳은 내용이라도 ‘매국’이라는 카테고리에 갇혀 호된 매도를 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우익이 무서운 게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 본사 데스크에서도 ‘선정적’ 기사만 원한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 독자들은 일부 특파원들의 망언 일변도의 소식만 접하게 돼, 일본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정적인 일부 일본인만 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악순환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반복 패턴이 훗날 얼마만큼 많은 인적·물적 국익 손실로 이어지는지, 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현재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바로 대한민국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12월 중순에 일본 외무성 OB들을 상대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 외국에서 대사 혹은 일본문화원장 등 해외 공기관장을 지낸 외교관 출신들이었다. 그중에는 한국 대사, 한국 주재 일본문화원장을 지낸 이도 몇 명 있었다. ‘한국인이 본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강연이었는데, 강연이 끝난 후 2부 리셉션에서 정말이지 말 그대로 식은땀을 줄줄 흘렀다. 그들은 아주 작정을 한 듯 식사도 생략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나에게 항의성 질문을 쏟아냈다. 마음속으로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직선적이었어?” 하고 스스로 놀랄 정도로 그들은 한국 정상들의 행보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져 물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요점은 대략 이러한 것이었다.
   
   “독도 방문? 실질적으로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서 한국 땅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외교상으로는 우리도 국민의 눈과 입장이 있으니 영유권 주장을 하지만, 일본이 전쟁을 해서 독도를 뺏어오지 않는 한 영원히 한국 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국 땅을 밟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천황 폐하는 건드리나. 천황 폐하는 일본에서도 터부가 되고 있는 특별 성역이다. 일본인이 지켜주고 싶어하는 특별 성역에 대한 정서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콱 찔렀기 때문에 반감이 그만큼 큰 것이다. 때문에 전에는 동료들이나 지인들을 사적으로 만나면 한국 입장에 대해 내가 먼저 앞장서서 대변해 주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내가 한국에 대해 화가 나고 싫어진다.”
   
   “1965년 한·일 국교를 수립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에 솔직히 우리 일본에서는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지금은 실망을 넘어서 혐한이 되려고 한다. 왜 외국에 나가 정상회담을 하면서 의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본 욕을 하나. 한국 내에서 일본에 대해 그 어떤 비판을 해도 그것은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해외순방에서 외국 정상들과 회담을 하면서 굳이 일본을 거론하며 비난을 하는 것은 외교 관례나 외교 정서로 보더라도 보기 좋은 페어플레이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우리 같은 친한파 외교관들의 입지와 발언력이 바닥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유재순
   
   1981년 신동아 논픽션 부문 수상. 일본 호세이대학교 국제문화학부 객원연구원. 1987~1994 토요신문 일본 특파원. 현 JP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