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이런 日本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이강기 2015. 10. 11. 11:38

원문출처 : [박정훈 칼럼] 이런 日本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05/2015020504435.html

 

박정훈 디지털뉴스본부장

조선일보

입력 : 2015.02.06 03:00

 

 

대지진·IS 참수 悲劇에도 '폐 끼쳐 죄송' '정부에 감사' 말하는 그들의 냉정과 忍耐

열정·에너지 앞서는 한국인공통의 앞에서도 싸우는 分派性으론 이길 수 없다

 

 20년 전 일본 고베(神戶) 대지진을 취재하던 중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받았던 장면이 있다. 지진 한복판, 70대 노부부의 집이 무너져 부인이 밑에 깔렸다. 남편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숨 가쁜 구조 작업이 진행된다. 이윽고 구조대는 부인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현지 로컬 TV 방송은 이런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해준다.

 

오싹 소름이 돋았던 것은 그다음 장면이었다. 시종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백발의 남편이 부인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구조대에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몇번이고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는 것이었다. 노인은 눈물 한 방울 없이 완벽하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있었다. 로봇 같은 그의 모습을 보고 ', 이게 일본이구나' 싶었다. 당시 지진으로 6000여명이 사망했지만 어디서도 오열이나 절규는 없었다. '조용해서 무섭다'는 느낌, 이게 내가 일본의 민 낯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첫 체험이다.

 

테러 집단 IS(이슬람국가)에 두 명의 자국민이 참수당하자 온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그렇지만 일본 사회의 반응은 20년 전 고베 지진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첫 번째 피해자 유카와 하루나의 아버지는 아들의 참수(斬首) 소식을 접하자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두 번째 피해자 고토 겐지의 어머니 역시 카메라 앞에서 "죄송합니다"로 말문을 열었다. 무엇이 죄송하고, 무슨 폐를 끼쳤다는 것일까.

 

참혹한 상황에서도 일본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타고난 민족성이 원래부터 차갑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일본 연구자들은 이걸 '메이와쿠(迷惑)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메이와쿠'란 우리 말로 '민폐(民弊)'쯤으로 번역될 용어다.

 

일본인들의 잠재의식엔 남에게 폐(메이와쿠) 끼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유전자가 뿌리 박혀 있다. 사무라이의 '칼의 위협'이 그렇게 길들였다는 지적도 있고, 교육의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처참한 비극 앞에서도 어김없이 인내의 심리 기제(機制)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IS 참수극을 지켜본 유족들로선 일본 정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인질 두 명이 살해당한 최악의 결과엔 아베 정부의 실책이 컸기 때문이다. 두 피해자가 인질로 잡힌 것은 작년 10월이었고, IS와의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치명적인 악수(惡手)를 두었다. 중동에 가서 "IS와의 전쟁에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IS를 코앞에서 도발한 것이다. 아베 발언 직후 IS는 인질 2명의 참수 계획을 밝혔다. 불필요하게 IS를 자극한 전술적 실패였다.

 

하지만 두 피해자의 가족은 아베 정부를 단 한 번도 탓하지 않았다. 탓하기는커녕 "인질 구출에 애쓴 정부에 감사한다"는 말을 틈날 때마다 반복했다. 유족들이 내놓은 메시지는 철저하게 절제되고 준비된 내용이었다. 마치 말할 내용을 미리 써놓고 연습까지 한 듯했다. 그래서 '작위적(作爲的)'이란 일부 지적도 나오지만 이것이 바로 한 국가의 품격이다.

 

개인에게 '침묵의 인내'를 강요하는 일본식 문화가 구시대적이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무책임한 나라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유족들은 정부가 최선을 다했고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이 국가와 일체가 되는 '()의 가치관'이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2004년 무역업체 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 신문을 장식한 것은 유족이 오열하는 한국발() 외신 사진이었다. 야당과 좌파 단체 등은 이 문제를 대()정부 공격의 소재로 들고 나왔다. 국회에선 여야가 격돌했고, 좌파 진영은 이라크 파병을 문제 삼으며 거리로 나왔다. 몇달 뒤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국가적 비극 앞에서 우리와 일본이 보이는 반응은 극과 극이다. 격정적인 한국과 냉정한 일본, 어느 쪽이 좋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열정과 에너지에 넘치는 한국인의 정서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놀라운 폭발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러나 공통의 적() 앞에서도 서로 싸우고 탓하는 분파성(分派性)은 우리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영원히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여전히 무서운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