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韓.日 關係

전쟁반대? 일단 승리하면 태도 바꾼 역대 日王들

이강기 2015. 10. 11. 11:42
원문출처 : [뉴스로 책 읽기]전쟁반대? 일단 승리하면 태도 바꾼 역대 日王들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5/2015022502303.html
입력 : 2015.02.25 14:36 | 수정 : 2015.02.25 15:04

 

오늘 55세 생일을 맞은 일본 나루히토 왕세자가 기자 회견을 열고 "일본은 겸허히 과거를 되돌아 봐야 한다"고 강조 했습니다.

“겸허하게 과거를 되돌아 보고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비참했던 과거와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해야 합니다.(…)과거의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나루히토 일 왕세자)

앞서 아버지 아키히토 일왕도 올해 신년사에서 "만주 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워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TV조선 ‘뉴스쇼 판’(2월23일)


아베 정권이 들어서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왕과 왕세자가 이런 말을 했다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베 총리는 마이 웨이를 외칩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며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더니 엇그제는 한 술 더 떠서 유엔 결의 없이도 자위대를 파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쪽에선 뺨 때리고 다른 쪽에선 얼러대는 형국입니다. 일 왕실와 정부 중 어느 가락이 일본의 혼네(本音·본심)인지 헷갈립니다. 그런데 왕은 말리고 정부는 폭주하는 이런 구도,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발언 1

“이번 전쟁은 대신들의 전쟁이지 나의 전쟁이 아니다.”

퀴즈 한 번 내겠습니다. 이 말은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황제 광서제와 일왕 메이지 덴노(天皇)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한 말입니다. 누가 했을까요?
메이지 일왕은 당초 아시아의 맹주인 청(凊)과의 전쟁을 몹시 꺼렸습니다. 대신들과 군부가 “이세신궁에 칙사를 보내 선왕에게 개전을 보고하시라”고 주청하자 “원래 내 뜻으로 일으킨 전쟁이 아닌데 내가 감히 무어라고 신명께 말씀을 올리겠는가”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메이지가 승전 소식이 들려오자 표변했습니다. 일본군이 조선 풍도 앞바다에서 벌인 해전에서 승리하고 이어 조선 반도 성환에서 지상군이 맡붙어 또 이겼다는 소식을 듣더니 크게 기뻐하며 싸울 때 힘내라고 군가(軍歌)를 지어 하사했습니다. 이른바 어제(御製) 군가 ‘성환의 역(役)’입니다.

‘우리의 용맹한 병사/ 피아의 시체를 넘고 넘어/ 용감하게 용감하게 전진한다/ 이곳은 아산(牙山)의 본영/…/ 우리 군대가 날카롭게 쏘아대는 포격/…/ 고통없이 포루 쟁취하여/ 세번 개선가 부르리/…’

소설가 송우혜의 장편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에는 신하가 입수한 ‘성환의 역’ 가사를 손에 들고 한탄하는 조선 왕 고종의 내면이 이렇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른바 어제(御製)라 해서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이 기껏 이정도 수준인 것이 정말 가소로왔다. 그러나 눈에는 그토록 가소로운데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전혀 달랐다. 읽어보면 볼수록 더욱 마음이 아리고 쓰렸다. 성환과 아산, 아아, 그것은 내가 다스리는 내 나라 내 땅의 이름이 아닌가’(157쪽)


	송우혜 소설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송우혜 소설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발언 2

“미국과의 전쟁은 무모한 전쟁이다. 황실의 조상들께 매우 죄송하다.”

2차대전 당시 일왕 히로히토가 한 말입니다. 지난해 9월 일본 궁내청이 발간한 ‘쇼와(昭和)천황실록’에 실렸습니다. 이 실록, 1만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히로히토가 져야 할 전쟁 책임은 철저히 외면한 반쪽짜리 전기여서 세계 역사학자들의 빈축을 샀습니다.

실록 발간 당시 영국 신문 가디언이 내놓은 날선 논평이 눈길을 끕니다. 가디언은 히로히토에 대해 앞선 중일전쟁에도 진주만 공습때처럼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막상 승전 소식이 전해지자 태도가 돌변한 인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학살이 자행된 난징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히로히토가 보인 반응에 대해 신문은 이렇게 썼습니다. ‘히로히토는 “황군(皇軍)이 난징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용기에 나는 매우 흡족하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메이지와 손자 히로히토는 이처럼 같은 방식으로 전쟁에 대처했습니다. 참으로 기회주의적인 처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의 전기인 '쇼와천황실록'
히로히토 일왕의 전기인 '쇼와천황실록'


#발언 3

“일본이 가진 문제는 공통적으로 자기 책임의 회피에 있다고 본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난해 11월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하루키는 2차세계대전 패전이란 역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종전 후에 결국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다. 잘못한 것은 군벌(軍閥)일뿐, 일왕도 이용당했고 국민도 모두 속아서 지독한 일을 만났다는 식이었다”고 꼬집었습니다.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책임을 회피하는 게 일본식 역사대응이라는 거지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그때 일본이 기적적으로 미국을 눌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회피할 책임이 없어진 ‘군벌의 잘못’은 ‘승리의 전공(戰功)’으로 둔갑해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승전국 일본’의 왕세자 나루히토는 55세 생일맞이 기자회견에서 지금처럼 전쟁을 배격하고 평화의 가치를 역설했을까.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키히토-나루히토의 부전자전(父傳子傳) 과거사 반성은, 평상복과 군복을 양손에 들고서 전장의 소식을 기다리던 메이지-히로히토와는 다른 것이기를 바랍니다. 기회주의자에게는 친구도 이웃도 생기지 않으니까요. 그건 사람 사이든 나라 사이든 똑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