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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못할 유승민 '사퇴의 辯', 유승민은 ‘박근혜 이후’를 꿈꿨다

이강기 2015. 10. 13. 21:43

[황호택 칼럼]유승민은 ‘박근혜 이후’를 꿈꿨다

 

황호택 논설주간

 

입력 2015-07-08 03:00:00 수정 2015-07-08 22:12:34

 

 

| 정통보수 TK 본류로 진보세력까지 끌어안으려던 ‘포스트 박근혜’의 꿈
박 대통령의 영향력 간과… ‘배신의 정치’ 일격에 쓰러져
전국구로 뜨는 효과…유승민 정치의 실패 단정 일러


 

황호택 논설주간
 
유승민 원내대표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냈다. 그 시절 경제기획원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유승민이 맡은 프로젝트는 반드시 중간 점검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KDI 연구위원 대부분이 정부의 정책방향에 맞추어 주문생산을 했지만 유 연구위원의 경우 그냥 놓아두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강한 개성을 잘 드러낸 것이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이었다. 그것은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연설이라기보다는 국정철학을 담은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방불케 했다. 그가 정통 보수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국가안보 분야를 빼놓으면 사회경제 분야에서는 진보 컬러가 짙었다.

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면서 “10년 전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진보정권의 대통령을 치켜세우자 새누리당 안에서도 “정의당 연설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유 원내대표는 포스트 박근혜의 큰 꿈을 그렸던 것 같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역사의 고비에서 상처를 받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며 국민 통합을 말했다. TK(대구경북)의 본류로서 진보세력까지 끌어안으려는 시도는 그가 단지 국회의원에 만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약가계부의 실패를 선언하고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라고 지적한 유 원내대표의 연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자존심으로 용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공약집을 다시 읽었다. 134조 원의 공약가계부를 지킬 수 없다. 지난 3년간 세수 부족이 22조2000억 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가 뒤바뀐 듯한 연설이었다. 이 연설 이후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관계는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언론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함을 누누이 지적했지만 논리의 적절성을 떠나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정부의 핵심 공약을 부정한 것은 정치 쿠데타라고 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내대표가 된 이상 자주 만나 법안 통과와 국정 협조를 논의해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이완구 전임 원내대표와는 수시로 통화했지만 유승민과는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박 대통령에겐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내려오는 배신의 트라우마가 있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 보는 보통의 남성들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박 대통령은 동물의 왕국을 좋아한 이유가 “동물은 배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박영선 기자(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박 대통령이 유승민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정치적 승부수였다. 논리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의 발언은 모순 덩어리다. 국회의 시행령 개정 요구가 삼권분립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당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대표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것도 삼권분립 정신의 침해에 해당한다. 더욱이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추진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과 협상하다 국회법 개정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치는 법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박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탈당과 신당 창당으로 이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김무성 대표와 유 원내대표를 향한 압박 성격이 짙다. 현재의 당권 구도로 볼 때 친박들이 공천권이 걸린 당권을 되찾아오기는 어려운 구도지만 새누리당 지지자 중에는 아직도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비박과 유승민을 견제하려는 박 대통령의 승부수는 김 대표도 굴복시키고 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이번에 상처가 너무 크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지역에서 지난 총선의 친박연대 같은 구상이 불거져 나올 수도 있다. 그의 때 이른 자기 정치는 박 대통령의 힘을 간과한 나머지 분수를 잊고 오버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여야를 넘어 ‘전국구’로 뜨는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유승민 정치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가 사퇴하고 나면 공은 이제 박 대통령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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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이해 못할 유승민 '사퇴의 辯'

  • 조선일보

입력 : 2015.07.09 03:00

조의준 정치부 기자 사진
조의준 정치부 기자

 

8일 오후 1시 25분 수많은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굳은 얼굴의 유 원내대표는 직접 쓴 사퇴서를 꺼내 "내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표현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시위대가 "이명박 정권이 독재를 하고 있다"며 수없이 외치던 구호였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둘러싸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워낙 많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런 표현까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는 지난 2005년 라디오 인터뷰에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보면 너무 민주적으로 하다 보니까 저렇게까지 민주적으로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그런 순간도 있었다"고 했었다.

유 원내대표는 또 자신이 사퇴를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대통령이 그만두게 할 수 없다"고 해왔다. 그는 이날도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란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늘 '당 지도부 저격수'의 선봉에 섰었다. 2011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체제는 당시 최고위원이던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무너졌다. 당시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여파의 정치적 책임을 홍 전 대표에게 물은 것이었다. 2012년엔 대선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은 뒤 '친박 2선 후퇴'를 주장하며 사퇴를 발표했고, 그 여파로 당시 최경환 비서실장이 물러났다. 지난 2007년엔 이재오 최고위원을 '당 화합'을 이유로 사퇴시켰던 일도 있었다.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책임질 때는 책임져야 한다'는 건 유 원내대표의 오랜 소신인 셈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사퇴의 변(辯)에서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겠다.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고 했다. 이 표현은 그가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비판하며 중도(中道) 강화를 주장할 때 주로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친박(親朴)계에선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기초한 사람이 유승민 원내대표"라고 말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것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였다. 그는 당시 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 참모였다. 한 정치학 교수는 "당시에 앞장서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만들고 홍보했던 사람이 유승민 원내대표"라며 "유 원내대표가 왜 갑자기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고, 중도 강화를 주장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전날 밤을 새워 작성했다는 사퇴의 변 문구 사이에 읽히는 것은 자성(自省)이 아니라 책임 전가와 비난이었다. 물러나는 입장이더라도 그는 어쨌거나 집권 여당의 정책과 국회 대책을 지휘했던 원내대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당과 여권 전체보다는 '자기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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