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秘話
수년 전 캐이블 텔레비전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명화 '닥터 지바고'가 만들어진 내막을 소개한 프로를 보았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영국사람이다.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제3의 사나이, 인도로 가는 길 등 大作을 찍었다.
닥터
지바고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에 만들어졌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 영화에는 이념을 담지 말고 사랑과 인간을
담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를 쓴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라나크는 소련 공산당의 압력에 의해,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로 뽑히고도 상을
받지 못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시인이다. 이 시인역을 맡은 오마 샤리프는 데이비드 린 감독으로부터 이런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연기할 생각을 하지 말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오마 샤리프는 울고 웃고 하는 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표정이 거의 없거나 극도로 절제한다. 이런 무연기를 부탁한 것이다. 오마 샤리프는 중간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린 감독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린 감독은 말했다.
"정말 나를 못믿겠단 말인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결국 당신만을 기억할 거야."
닥터 지바고를 보고나면 남는 인상은 역시 오마 샤리프의 눈동자 연기이다. 그는 말 없이 눈으로
연기한다. 우수에 찬 눈동자, 라라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깃든 눈동자,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스며 있는 눈동자, 비밀경찰의 감시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끼면서 라라와의 마지막 나날들을 절박하게 보내는 초조한 눈동자, 그런 것들이 殘影으로 남는다. 연기가 지나치면 관객들은 싫증이 난다.
연기가 적당하면 관객들은 만족한다. 연기가 절제되어 좀 모자란 것 같으면 그 아쉬움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닥터 지바고에는
대평원과 눈덮인 雪原이 나온다. 어디서 찍었을까? 핀란드? 캐나다? 놀랍게도 스페인이다. 마드리드 북부 지방에 모스크바 시내를 본뜬 세트장을
지어놓고 찍었다고 한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평균 해발 고도가 가장 높다. 평균 600미터이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곳도 있다. 황량한
대륙의 기분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마드리드 근교에서 러시아 혁명 장면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 붉은 혁명을 일으킨 군중들이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주제가인 '인터네셔널'을 합창했다. 엑스트라로 동원된 스페인 사람들은 이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페인 내전 때 좌익 공화파쪽에 섰던 사람들이나 2세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난데 없이 불순한 노래가 울려나오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들은 이웃마을에선 "프랑코가 죽은 모양이다"고 좋아했다고도 한다.
이 영화에는 오마 샤리프 처족이 탄
기차가 시베리아로 달리는데 한 어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달려와 겨우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어머니가 기차를 타기 직전에
차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다음 기차안에 탄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올라간다. 실제 촬영에서 이 어머니는 기차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크게 다쳤다고 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그 장면을 그대로 영화에 쓴 것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오로지 영화밖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공과 조연들의 옷 색깔도 린 감독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기차 기관차의 색깔을 붉게 칠한
것도 혁명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으며 전선에서 간호부 라라가 떠나고 홀로 남은 유리(오마 샤리프)의 뒷모습, 그 옆에 놓여 있던 해바라기의 잎사귀가
하나 둘 떨어지는 장면은 유리의 마음속에서 터지는 울음을 상징하였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는 혹평도 많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은 해에 개봉되었다. 오스카상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더 많이 받았다. 닥터 지바고의 주제가 '라라의 테마'는
러시아 전통 현악기의 가슴을 쥐어 뜯는 듯한 애절한 멜로디로 유명하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로스 엔젤레스 지역의 러시아
음악인들과 교향악단의 협주로 녹음된 곡인데 작곡가는 프랑스 사람이다.
영화 닥터 지바고가 오랫동안 남는 명화로 굳혀진 것은
그 속에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 가족애, 悲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의 급류 속에 휩쓸린 인간들이 무엇을 붙잡고 그 난세를 견디어내는가,
그러기 위해선, 즉 혁명의 피바람속에서 인간으로 버티어나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 그런 물음을 던져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오늘도 살아 있는 영화가 된 것이다.
소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에서 출판이 허용된 것은
1988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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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캐나다? 놀랍게도 스페인이다. 마드리드 북부 지방에 모스크바 시내를 본뜬 세트장을 지어놓고 찍었다. |
趙甲濟 |
[ 2007-11-17, 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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