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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대통령의 詩人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1963년 10월27일)

이강기 2015. 10. 13. 21:57
케네디 대통령의 詩人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1963년 10월27일)

“비단 힘 때문만이 아니라 그 文明 때문에
 全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바라봅니다”

정영목   

 [연설의 배경] 존 F. 케네디가 1961년 1월20일 하얀 눈이 덮인 워싱턴에서 미국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저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백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새 대통령을 위하여 시를 낭송했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63년 1월 그 시인은 타계했고, 그 해 10월27일 케네디 대통령은 애머스트(Amherst)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프로스트 추모 연설을 한다. 그 후 채 한 달이 못 되어 케네디 자신도 암살범의 희생자가 되어 타계한다. 이 연설은 정치가가 예술의 가치를 강조한 기념비적 연설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연설문의 일부는 워싱턴에 있는 케네디 센터(예술공연장)에 새겨져 있다. 프로스트는 뉴 잉글랜드의 평범한 생활을 소재로 시를 쓴 미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애머스트대학에 오랫동안 재직했기 때문에 이 대학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 것이다. 연설 맨 끝에 “나는 … 한 미국의 미래를 내다봅니다(I look forward to an America… )”라는 말로 시작되는 문장이 계속되는 것은 19세기 미국 시인 로버트 그린 잉거솔의 시에 많이 나오는 “나는 … 한 세계를 바라본다(I see a world… )”는 구절을 모방한 것인 듯하다.
 
 로버트 프로스트를 추모하는 오늘은 詩人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정치가들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우리 시대 미국의 화강암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고의 예술가였으며, 최고의 미국인이었습니다.
 한 나라는 그 나라가 배출하는 인물만이 아니라, 그 나라가 기리는 인물, 기억하는 인물을 보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영웅들은 보통 큰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대학과 이 나라는 우리의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에,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우리의 통찰력에,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기여한 한 사람을 기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로버트 프로스트를 기리는 것은 우리 국력의 가장 깊은 원천을 기리는 것이 됩니다. 국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지만, 눈에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한 나라가 위대해지려면 권력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기여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합니다.
 그 문제 제기가 私心 없는 태도에서 나온 것일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리가 권력을 이용하느냐 아니면 권력이 우리를 이용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국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력을 계도하며 통제하는 정신도 국력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예리한 현실 직관력을 통하여 사회의 진부하고 위선적인 태도들을 파헤쳤습니다. 그는 인간의 비극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기만과 손쉬운 위안에 굳건하게 저항했습니다. “나는 밤을 아는 사람이었다.”로버트 프로스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대낮만이 아니라 한밤중도 알았기 때문에, 인간 정신의 승리만이 아니라 시련도 이해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의 바탕에는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詩와 권력을 결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권력을 그 자체로부터 구제하는 수단이 詩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갈 때 詩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 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詩는 인간 존재의 풍요와 다양성을 일깨워 줍니다. 권력이 부패할 때 詩는 그것을 정화시켜 줍니다.
 예술은 우리 판단의 시금석이 되는 기본적인 진실들을 확립합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현실관에 아무리 충실해도, 결국 그는 개인 생활을 방해하는 사회와 개인 생활에 쓸데없이 간섭하는 국가에 대항하여 개인의 정신과 감성을 옹호하는 마지막 투사가 됩니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는 고독한 인물입니다. 프로스트 말대로, 예술가는 ‘세상과 사랑 싸움’을 합니다. 예술가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추구하다 보면 시대의 조류를 거스를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기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생존시에 존경을 받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가 드러낸 어두운 진실들을 무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예술가의 충실성은 우리 삶의 바탕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이 우리 사회에 가장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정한 예술가의 동력인 예민한 감수성과 정의에 대한 관심을 통해 우리나라가 잠재적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자리를 온전히 인정해주는 것보다 우리나라와 우리 문명의 미래에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예술이 우리 문화의 뿌리에 영양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사회는 예술가가 자신의 비전이 이끄는 대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예술이 선전의 한 형태가 아니라 진리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매클리쉬가 시인들에 대해 말했듯이 “詩를 호화찬란하게 쓰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자유 사회에서 예술은 무기가 아니며, 논쟁과 이데올로기의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영혼의 지배자가 아닙니다.
 다른 사회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 사회에서는 작가, 작곡가, 화가의 가장 큰 의무는 결과에 관계없이 끝까지 자신에게 진실한 것입니다.
 예술가는 진실에 대한 자신의 비전에 충실함으로써 나라에 가장 큰 봉사를 합니다. 예술의 임무를 경멸하는 나라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에 나오는 고용된 사람의 운명을 맞이합니다. ‘자랑스럽게 회고할 것도 없고,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볼 수도 없는 운명’ 말입니다.
 나는 미국의 위대한 미래를 내다봅니다. 군사력이 도덕적 억제력을, 富가 지혜를, 그리고 권력이 국가의 목적의식을 동반하는 미래를 나는 기대합니다.
 나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 아름다운 환경을 보호하는 미국,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저택들과 광장과 공원을 보존하는 미국,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균형잡힌 아름다운 도시들을 건설하는 미국을 기대합니다.
 나는 기업이나 정치적 업적에 보답을 하듯이 예술적 업적에도 보답을 하는 미국을 기대합니다.
 예술의 수준을 꾸준히 높여가고, 국민 모두를 위하여 문화적 기회를 꾸준히 확대하는 미국을 기대합니다.
 비단 힘 때문만이 아니라 그 문명 때문에 全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미국을 기대합니다.
 민주주의와 다양성뿐만 아니라 개인적 우수성도 안전하게 보장하는 세계를 기대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인간의 개조 기획들에 대해서는 종종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런 희망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불확실한 시기에 그가 이렇게 노래한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고 이래의 인간성을 돌아다보면…
 단 1퍼센트의 몇 분의 1이라도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이 조금은 더 많으리…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 지구를 이렇게 힘차게 차지하고 있지는 못했으리라.
 
 프로스트의 생애와 작품 때문에, 이 대학의 역사와 업적 때문에, 우리는 이 지구를 더 힘차게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번역·해설 정영목 번역가·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