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우리말 70% 한자어… 한글과 '뗄 수 없는 관계' 인정해야

이강기 2015. 10. 13. 21:59
우리말 70% 한자어… 한글과 '뗄 수 없는 관계' 인정해야

 

 

 

‘1967년 당시 대통령 앞에서 열렬하게 한글전용을 주장했다. 우리말의 70%를 차지한다는 한자어를 그대로 두고 한자만을 없앤 모순과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주장한 한글전용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전용
교육을 결심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알려진 ‘문학사상’ 임홍빈(81) 회장이 1990년대 중반 고백한 내용이다. 최근 한글전용론자가 쓴 수필에도 한자가 등장했다. 더 이상 한자 사용에 눈을 감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제 한자와 한문교육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할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합의를 이룰 때라는 지적이다.

◆한글과 한자의 보완관계 인정해야

어문학자들은 한글과 한자를 상호 대립적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서로 보완적인 관계임을 인정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글전용 주장자들은 필수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국한혼용 주장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국한혼용 주장자들은 누구나 다 잘 아는 한자어의 경우 한자로 쓸 필요가 없다는 한글전용 주장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한자와 한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자 중에서도 한자만을 고집하는 이는 없다. 한글로 쓸 수 있는 건 최대한 쓰고,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고칠 수 있으면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교과서에 나오던 구근(球根)식물을 알뿌리식물로, 방안지(方眼紙)를 모눈종이로, 타제(打製)석기를 깐 석기로, 마제석부(磨製石斧)를 간 돌도끼로 바꾼 건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반면에 한자어도
국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무리하게 순우리말로 바꿨다가 언중에게 외면당한 사례도 있다. ‘나란히꼴’(평형사변형), ‘오른쪽염통방’(우심실), ‘넘보라살’(자외선) 같은 순우리말 용어가 대표적이다. 2007년 의학용어를 무리하게 순우리말로 고쳤다가 지난 1월 다시 한자어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 ‘타버린 상태’, ‘눈알’, ‘고름집’, ‘어깨빗장뼈’, ‘손입발병’ 등이 각각 ‘탈진’, ‘안구’, ‘농창’, ‘쇄골’, ‘수족구병’으로 원래 이름을 찾았다.

송민
국민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대신할 수 있거나 쉽고 정겨운 순우리말 표현으로 고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며 “그러나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는 말과 바꿔서 개념을 파악할 수 없는 단어는 한자로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자교육 시기 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자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토대 위에서 공교육에서 한자·한문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지금은 중·
고교에서 상용한자 1800자를 중심으로 한자·한문교육을 선택적으로 하고 있으나 집중이수과목 대상이다 보니 내실있는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고교의 교육도 한자 중심에서 한문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 어문학자도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정규 과정에 편성돼 있지 않다. 그러나 초등학생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한자 학습지
공부를 시키는 학부모가 많다. 초등학생에 대한 한자교육을 공교육 영역으로 가져올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병용할지, 혼용할지 등을 놓고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한때 ‘한자 망국론’까지 제기된 일본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단계적으로 약 2000자의 한자를 가르치며, 우리보다 철저하게 순우리말 순화운동을 벌인 북한도 1967년 교육용 한자 3000자를 지정하고 우리의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한자교육을 하고 있다.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이사장 진태하)는 지난 4월부터 초등학교 한자교육과 교과서 국한혼용 등을 정부에 촉구하기 위해 ‘10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