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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들과 국어사전이 우리말 망쳤다 - 소설가 김성동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연구

이강기 2015. 10. 13. 22:16

소설가 김성동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연구①


‘먹물’들과 국어사전이 우리말 망쳤다

 

 
 

 

 

 

 

 

보잘것없는 데다 마무리마저 못한 ‘국수(國手)’의 한 대문이다. 이 중생의 많이 모자라는 소설 명색을 가지고 글머리를 삼은 데는 까닭이 있으니, ‘왜말’이다. 서구열강과 그 도마름인 일제한테 찢겨져 거덜나기 전 우리 조선의 마음을 조선사람들의 말투로 그려보고자 한 소설에 그만 왜말이 들어가고만 것이다.

왜식 한자말. 6년 전이다. 5권째를 써보려고 아랫녘으로 내려가 있을 때다. 어느 잔암(殘庵)에서다. 뒷방에서 이나 잡고 있던 한 노장스님이 두 군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처사님이 백여 년 전 조선사람들이 쓰던 말투로 쓴 소설이라니 말이오만…, 함정은 허방이나 허방다리 또는 구렁텅이구, 작년은 상년이 맞을 거구먼.”

‘함정’과 ‘작년’만이 아니었다. 노장한테 깨우침을 받고난 다음 새 눈으로 다시 한번 짯짯이 훑어보니 ‘남초’를 ‘연초’로 ‘병작농’을 ‘소작농’으로, ‘문장’을 ‘학자’로 ‘궁구’를 ‘공부’로 ‘일통’은 ‘통일’로 잘못 썼는가 하면 ‘미소’ ‘시비’ ‘기분’ ‘생활’ ‘국면’에 지어 ‘타개책’까지 왜말이 들어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런 의심없이 쓰고 있는 말과 글 거의 모두가 왜말이라면 아마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글프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정말이다. 일제 말 수리조합 서기를 했다는 그 노장의 지닐총만이 아니라, 일제 초 이른바 ‘내선일체’의 식민정책에 따라 조선으로 들어가 살 일본인을 위한 교육용 책자를 한번 보자.

 


우리말이 어렵다는 먹물들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식구’라 하고, 우리는 형제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동기’라 하고. 우리는 부부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내외’라 하고, 우리는 주부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안쥔’이라…. 상식은 ‘지각’이고, 친절은 ‘다정’이고, 일생은 ‘평생’이고, 결혼은 ‘혼인’ 또는 ‘길사’이고, 자백은 ‘토설’이고, 현금은 ‘직정’ 또는 ‘뇐돈’이고, 악마는 ‘잡귀’고…” 으악! 하고 소리 지를 만큼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이 소설을 누가 읽기를 원하십니까? ‘만다라’ 하고 ‘국수’로 가니까 우리의 옛날 고유어와 토박이말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번 ‘꿈’은 완전히 순토박이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독자가 한 말이다. 지난 여름 부산에서 하는 ‘독서토론’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독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 한마디로 영어보다 우리말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말이 어렵다고 하는 이들은 이른바 먹물들이고, 먹물이 덜 든 이들은 좋다고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공포의 영어광풍 속에 살아가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은 아주 좋다고 한다. 분명한 뜻은 모르지만 설명이 필요없이 가슴으로 그냥 쑥 들어온다는 것이다. 까닭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정서가 녹아든 말이므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문화이거늘 이제 겨우 백년밖에 더 되었는가.

왜말에 대해 말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다른 독자가 말했다.

“이시와라 요오코라는 일본인입니다. 현재 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의 언어에 상당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나의 문장을 표현하는 것, 너무나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의 토속어를 가끔 들을 때, 아! 역시 진짜 한국인의 정신이다, 그 나라의 진짜 문화와 정신은 그 나라만의 말에 있다. 근 40년간 일본의 압박을 받을 때 많은 한국인 의사, 열사들이 조선어를 지키고자 피를 흘리셨는데 지금 세태에 와서는 한국인만의 토속어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말을 다루는 작가로서 한국인 고유의 언어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에서만 한국인 고유 언어를 쓰고 말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때 한 대답이 ‘왜말사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과의 언약이다. 이제 그 말다짐을 지키려는 것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우리말의 고스락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자리를 통해 밝혔다. 새삼스럽게 덧붙일 말도 없다. 다만 한가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강점과 그것의 영속화를 위한 조선말 말살정책 탓은 이제 그만하자. 일제의 조선말 말살정책은 조선말 자체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조선사람을 종으로 만들자는 것이지 조선말 속에 자기네 말을 적당히 반죽해 넣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말이 뚫고들어와서 안방차지를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원흉은 누구인가. 한마디로 당시의 먹물들이다. 이른바 도일(渡日)유학 1세대들. 그때에 행세깨나 한다는 양반 사대부계급, 곧 지배계급의 자제들과 그들과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던 아전, 곧 중인계급의 자제들이 도일유학 1세대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들을 막대잡이로 한 도일유학파들이 왜말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문학인·국어학자들의 책임

단순히 낯설고 신기해서 부럽기만 하던 왜말(그 속에 앞서가는 문명세계의 문물이 들어있다고 굳게 믿으므로)만 시나브로 물어나른 것이 아니다. 처음에야 물론 쪼가리 왜말이나 물어나르며 흰목젖했겠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조선말을 숫제 왜말로 변역해 버렸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은 왠지 촌스럽고 뒤떨어졌다는 민족비하의식에서 기를 쓰고 서구의 것만 부좇아가는 오늘의 세태를 보더라도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문학인들이었다. 이른바 최초의 신체시라는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바이런의 시를 슬갑도적질한 것인데, 제목부터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 문법이 아니다. 육당(六堂)이 왜말로 문장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최남선을 우두머리로 한 이광수(李光洙) 김동인(金東仁) 염상섭(廉想涉) 현진건(玄鎭健) 전영택(田榮澤) 주요섭(朱耀燮) 나도향(羅稻香) 이상(李箱)은 물론이고,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까지도, 왜말로 문학공부를 하고 습작을 했던 것이다.

뿐인가. 레닌문학상을 받은 이기영(李箕永) 조명희(趙明熙) 김남천(金南天) 이북명(李北鳴)등 1920년대의 카프작가도 왜말법으로 우리말을 더럽히는 데 큰 이바지를 하였다. 하늘 같은 선배들이 이랬으니 그들을 뒤쫓아가는 후배작가들이 선배들의 잘못을 확대재생산하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 말과 글로 민족문화를 지켜내야 하는 문학인들의 맡은 구실이 참으로 크고 두렵다는 생각이다.

국어학자들의 책임 또한 크다. 밑공부를 닦은 데가 일본이었다. 한힌샘 선생을 뺀 거지반의 국어학자들이 죄 동경제국대학이나 경성제국대학에서 일본교수들한테 조선말 문법을 배웠다. 동경제국대학을 나왔으나 갓맑은 우리말 문법을 주장하던 외솔 선생 같은 이를 테 밖으로 밀어내게 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국어학계 역시왜화(倭化)했던 것이다.

우리말이 국적 없는 잡탕밥 꿀꿀이죽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국어사전’ 탓이 기중 으뜸이다. 왜말과 양말은 엄청나게 많은데 토박이 우리말, 사투리라고 낮춰 부르는 지역 고유어와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입말은 가뭄에 콩나기니. 일본사전을 놓고 베끼다시피 한 탓이다. 이러니 일본 한자가 아무런 설명 없이 날것으로 실려있고, 일본식 문법이 판을 쳐 어떤 것이 우리 한자말이고 어떤 것이 일본 한자말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단도리’라는 왜말이 ‘우리말 모음사전’에 실려있는 판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궁구하려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멀리해야 할 책이 ‘국어사전’인 까닭이다.

영사전 또한 큰 골칫거리니. 영어를 일어로 번역한 ‘영일사전’을 다시 왜말투로 번역한 것이 바로 ‘영한사전’인 때문이다. 이런 말이 안되는 사전을 보고 공부해서 영어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 우리말로 쓴 왜말이 되고, 그렇게 쓴 우리말 명색을 다시 영어로 옮기면 영어로 쓴 일본말이 된다. 이른바 먹물들이 쓰는 유식한 글과 작가 명색들이 쓰는 소설 거지반이 죄 번역체 문장이 되는 까닭이 다 여기에 있다. 이 글 또한 그런 점에서 옹글게 벗어나 있지 못할 것이다. 먹물 든 것은 없지만 이 글을 쓰는 중생 또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탓이다.

되곱쳐 말하지만 먹물들 죄가 기중 크다. 어려운 ‘넉자배기’를 자꾸 만들어 씀으로써 자기들의 지배적 기득권을 대를 물려 오로지하려 했던 왕조시대 양반지식인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이 시대 상층 기득권 지배세력의 완강한 선민의식과 그 선민의식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한 친미·친일 사대주의와 언론의 기회주의적 이중성, 그리고 그런 언론과 한통속인 숭미(崇美)사대주의·공일(恭日) 굴종주의적 지식인들의 죄업이 수미산 같다.

화두(話頭)를 타파해서 몰록 깨달음을 이루듯이 갑자기 왜말을 다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의 언어생활 자체가 되었으므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무슨 특별조치법이라도 만들어 어느 날부터 왜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되면 아마도 사회체제 자체가 무너져버릴 것이다. 다만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부끄럽고 부끄러워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낯을 들 수 없는 왜말이 무엇인지, 그 말을 우리는 무어라고 썼던 것이며 써볼 수 있는 것인지, 우선 발기라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쓸데없는 곡해를 피하기 위하여 배암의 발을 덧붙이니, 이 글에서 ‘왜말’이라고 하는 것은 굳이 일본을 낮춰 보자는 감상적 민족주의가 아니다. 일제시대에 산 이들은 그렇게 불렀다. 일본이 자랑하는 대백과사전에도 ‘한(漢)나라에서는 일본을 왜라 한다’고 돼있고, ‘와꼬오’가 ‘왜구(倭寇)’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이른바 야마도(大和)정신이라고 할 때의 ‘화(和)’가 곧 ‘왜(倭)’인 것이다. ‘역사교과서 왜곡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왜구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군국주의 세력에게 주는 경책의 뜻도 담겨 있다.

 

가감(加減) 더덜. 더덜이. 더하고, 빼기. 더하기빼기.

가감승제(加減乘除) 더덜곱난. 덧셈뺄셈곱셈나눗셈.

가건물(假建物) 까대기. <궂은 날에도 그 안에서 일할 수 있게 임시로 지은 집을 까대기, 건물을 덮어서 지은 헛집을 ‘상옥(上屋)’이라고 한다. 모두 일이 끝나면 뜯어낸다(이훈종, ‘민족생활어사전’)>.

임시로 지은 집은 가게가 맞다는 의견도 있다. <가게의 원말은 그냥 우리말 ‘가가’다. ‘假家’를 가게의 뜻으로 쓴다면 거꾸로 ‘가게’가 ‘가게’의 원말이라고 한 것은 순전히 사전장이들의 횡포다. 만일에 ‘假家’를 가게의 뜻으로도 쓴다면 거꾸로 ‘가게’가 ‘假家’의 원말인 것이다. 가게는 먼저 ‘가게’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말이고, ‘假家’는 나중에 가가를 적기 위하여 끌어다 쓴 것이니 ‘可家’ ‘袈家’들처럼 아무렇게 쳐도 상관없다.

‘가개’가 쓰이다가 ‘가가’로 바뀌고, 또 ‘가게’로 바뀌었을 때에 ‘가가’나 ‘가게’를 한자로 적으려고 그것을 취음하여 ‘假家’를 끌어다 쓴 것이다. 그러나 ‘假家’는 ‘가게’라는 뜻보다는 임시로 지은 집 이라는 본뜻대로 쓰이는 것을 20세기에 들어서 <조선어사전>(1938)에 ‘가게’의 뜻으로 쓰인다고 한 것이다. (정재도, ‘국어사전바로잡기’)>

▲가(假)는 ‘거짓’을 나타내는 한자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를 어떤 말 앞에 붙여서 그 말의 내용이 임시로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가건물’ ‘가계약’ ‘가사용’ ‘가매장’ ‘가접수’ 따위가 보기다. 가(假)자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용법이 아니므로, ‘가’ 대신 ‘임시’를 붙여 써야 한다. ‘임시건물’ ‘임시계약’ ‘임시사용’ ‘임시매장’ ‘임시접수’ 따위로 쓰자는 것이다. (한국교열기자회, 1996)

가격(價格) 값. 값어치. 금. 금새.

▲언론이 즐겨 쓰는 말 중에는 진짜 일본 유행어도 있다. ‘○○파괴’가 바로 그것이다. 이 표현은 일본에서 ‘기존의 방식이나 수준을 크게 벗어났다’는 뜻으로 쓰기 시작해 유행어가 되자 우리 언론이 받아들여 쓴 것이다. ‘파괴’라는 표현이 지닌 감성적 호소력은 잘 알겠지만 본래의 뜻이 ‘부수거나 무너뜨림’이니만큼 아무데나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파괴’라는 말을 붙이지 않은 데가 없다. “不況 극복 가격파괴 확산”(1997년 7월19일, 중앙일간지), “대우自 ‘상식파괴’ 美서 성공할까”(1997년 8월4일, 중앙일간지) 등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예 성(性)까지 파괴했다는 표현도 눈에 뜨인다. 이렇게 모든 것을 부수고 나면 무엇이 남게 될지 궁금하다.

‘파괴’의 원조는 영어 ‘demolition’이다. 미국에서 대형 할인매장이 생겨나면서 ‘Price de-molition’을 구호로 내걸기 시작했고, 이 가격파괴란 말이 곧 일본에 상륙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한술 더 떠서 ‘파괴’란 말을 여기저기에 갖다붙이기 시작했고 그것을 우리가 배워 유행어처럼 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무명씨)

가계(家計) 집안살림. 살림살이. 살림.

가계(家系) 집안내림. 내림. 집안의 내력을 죽 적어둔 것을 ‘가승(家乘)’이라고 한다.

가계부(家計簿) 살림장부.

가계비(家計費) 살림씀씀이. 집안씀씀이. 살림옴니암니. 씀씀이(비용은 왜말임)를 가리키는 우리말이 ‘비발’이니 ‘살림비발’또는 ‘집안비발’로 써도 좋을 듯.

가고(籠子·魚籠) 바구니. 다래끼. ‘가고에 담아주세요’ ‘장보러 나온 사람이 가고도 없이 나왔네’같은 말들을 많이 썼음.

가곡(歌曲) 노래. 소리.

가공(加工) 손질. 만들기.

가공(架空) 꾸밈. 거짓. 공중매기.

가공(可恐) 두려움. 무섬. 놀람. 겁남.

가공삭도(架空索道) 소리개찻길.

가공인물(架空人物) 거짓사람. 지어낸 사람. 뜬사람. 허깨비.

가교(架橋) 다리놓기.

가교(假橋) 임시다리. 한때다리.

가구(家具) 살림. 살림살이. 세간. 세간붙이.

가금(假金) 개금.

가급금(加給金) 웃돈.

가급적(可及的) 되도록. 될수록. 모쪼록. 아무쪼록. 될 수 있는 대로.

가내(家內) 집안. 집안사람. 살붙이. 집속. 집구석.

가네고데 흙손. 쇠흙손.

가다(かた:型) 골. 틀. 거푸집. 본. 판. 망나니, 깡패를 가리키기도 함. 이는 깡패가 힘을 믿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데서 ‘角(かた)’라고 표기하고 속되게 ‘어깨’라고 사용하고 있으나 일본어의 ‘角’에는 실제로 그런 뜻이 없다고 함.

가다마리 덩어리.

가다마에(片前) 홑자락. 홑여밈. 홑자락옷. 홑여밈옷. 홑자락양복. ‘가다마이’라 한다. 중고등학생들까지 제대로 갖춰진 정장 윗도리를 가리켜 ‘마이’라고 하는 것을 들을 때면 깜짝깜짝 놀라다 못해 다만 기가 막힐 뿐이다.

가다밥(型~) 틀밥. 찍은밥. 주먹밥. 교도소에서 일매지게 기계로 찍어주는 밥을 ‘가다밥’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다와꾸 틀. 거푸집.

가담(加擔)하다 들다. 들어가다. 편들다. 함께하다. 어울리다.

가도(角) 모서리. 모퉁이. 길모퉁이.

가도집 모퉁이집. 길모퉁이집.

가도(街道) 길. 길거리. 한길. 큰길. 거리.

거리(距離) 이 말도 왜말이니 ‘비오는 거리에 서서’는 ‘비오는 한길에 서서’가 우리말이고 ‘네거리의 순이’는 ‘네갈랫길의 순이’가 우리말임.

가도(假道) 임시길. 임진왜란 때 왜군의 조선침공 명분이 ‘가도입명(假道入明)’이었다. 명(明)을 치러가기 위하여 조선의 길을 빌린다는, 이 말이 안되는 말 속에는 당제국의 후예인 명제국을 쳐 백강(白江)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역사적 복수의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가동(可動) 움직임.

가동(稼動)하다 돌리다.

가두(街頭) 길바닥. 길거리.

가두투쟁(街頭鬪爭) 난장싸움.

가두판매(街頭販賣) 난장팔기

가라(納) 무늬. 바탕.

가령(假令) 일테면. 이를테면. 설사. 설혹. 설령.

가로(街路) 길. 길거리. 거리.

가로등(街路燈) 길등. 거리등. 거리등불.
(신동아 200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