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성동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연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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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데다 마무리마저 못한 ‘국수(國手)’의 한 대문이다. 이 중생의 많이 모자라는 소설 명색을 가지고
글머리를 삼은 데는 까닭이 있으니, ‘왜말’이다. 서구열강과 그 도마름인 일제한테 찢겨져 거덜나기 전 우리 조선의 마음을 조선사람들의 말투로
그려보고자 한 소설에 그만 왜말이 들어가고만 것이다. 왜식 한자말. 6년 전이다. 5권째를 써보려고 아랫녘으로 내려가 있을 때다. 어느 잔암(殘庵)에서다. 뒷방에서 이나 잡고 있던 한 노장스님이 두 군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처사님이 백여 년 전 조선사람들이 쓰던 말투로 쓴 소설이라니 말이오만…, 함정은 허방이나 허방다리 또는 구렁텅이구, 작년은 상년이 맞을 거구먼.” ‘함정’과 ‘작년’만이 아니었다. 노장한테 깨우침을 받고난 다음 새 눈으로 다시 한번 짯짯이 훑어보니 ‘남초’를 ‘연초’로 ‘병작농’을 ‘소작농’으로, ‘문장’을 ‘학자’로 ‘궁구’를 ‘공부’로 ‘일통’은 ‘통일’로 잘못 썼는가 하면 ‘미소’ ‘시비’ ‘기분’ ‘생활’ ‘국면’에 지어 ‘타개책’까지 왜말이 들어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런 의심없이 쓰고 있는 말과 글 거의 모두가 왜말이라면 아마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서글프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것은 정말이다. 일제 말 수리조합 서기를 했다는 그 노장의 지닐총만이 아니라, 일제 초 이른바 ‘내선일체’의 식민정책에 따라 조선으로 들어가 살 일본인을 위한 교육용 책자를 한번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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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 어렵다는 먹물들 | ||
“우리는 가족이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식구’라 하고, 우리는 형제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동기’라
하고. 우리는 부부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내외’라 하고, 우리는 주부라고 하는데 조선인은 ‘안쥔’이라…. 상식은 ‘지각’이고, 친절은
‘다정’이고, 일생은 ‘평생’이고, 결혼은 ‘혼인’ 또는 ‘길사’이고, 자백은 ‘토설’이고, 현금은 ‘직정’ 또는 ‘뇐돈’이고, 악마는
‘잡귀’고…” 으악! 하고 소리 지를 만큼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이 한도 없고 끝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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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국어학자들의 책임 | ||
단순히 낯설고 신기해서 부럽기만 하던 왜말(그 속에 앞서가는 문명세계의 문물이 들어있다고 굳게
믿으므로)만 시나브로 물어나른 것이 아니다. 처음에야 물론 쪼가리 왜말이나 물어나르며 흰목젖했겠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조선말을 숫제 왜말로
변역해 버렸던 것이다. 우리 고유의 것은 왠지 촌스럽고 뒤떨어졌다는 민족비하의식에서 기를 쓰고 서구의 것만 부좇아가는 오늘의 세태를 보더라도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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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감(加減) 더덜. 더덜이. 더하고, 빼기.
더하기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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