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와 문자의 세계】
《1799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발견된 로제타석은 애급 신성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되었다. 서기전 3000년에 출현한 애급 신성문자는 서기전 100년 콥트문자의 등장으로 사라졌지만 페니키아문자, 희랍문자 등 후대(後代) 문자의 발전으로 오늘날 널리 쓰이는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지난 4월호에 소개한 최고(最古)의 문자 수메르상형문자는 서기전 3200년경에 출현했다. 이 수메르상형문자를 뒤따라 서기전 3000년 경에 애급신성문자가 나타났으며, 이보다 훨씬 뒤진 서기전 1600년경에 갑골문자가 출현했다. 이들 세 가지 문자는 모두 상형문자지만, 그 내용이 서로 다르다. 우선 문자의 총수효는 수메르상형문자의 경우 6백50자이며, 애급신성문자의 경우 1천4백자, 한자(갑골문자의 후대문자)의 경우 6만5천자이다. 제자(制字)원리는 수메르상 형문자와 한자의 경우 육서(상형象形·지사指事·회의會意·해성諧聲·전주轉注·가차假借)에 의하며, 애급신성문자의 경우 주로 상형과 지사에 의한다. 상형자는 수메르상형문자와 애급신성문자에서 태반을 차지하며 한자에서는 6백자(총수효의 0.9%)에 불과하다. 음독의 측면에서 수메르상형문자 애급신성문자 한자는 표어(表語)문자·음절문자·자모문자·지정기호(또는 부수)로 구분되는데, 표어문자 음절문자 자모문자는 읽히지만 지정기호 부수는 읽히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수메르어와 고대애급어는 다음절 언어이며 한어(漢語)는 단음절 언어이다. 이에 따라 수메르상형문자와 애급신성문자는 표어문자 음절문자 자모문자로 구분되며, 한자는 음절문자이다. 표어문자는 1음절 내지 그 이상의 음절로 구성되는 어휘를, 음절문자는 (자음)-모음-(자음)을, 자모문자는 자음이나 모음을 각각 표기한다. 지정기호는 수메르상형문자에서 소수에 불과하며 애급신성문자에서 다수에 이른다. 한자의 부수는 독체(獨體)부수 47자와 합체(合體)부수 1백67자로 구분되며, 도합 2백14개에 이른다. 독체부수는 변(편扁) 방(旁) 머리(관 冠) 발(각 脚) 엄(수 垂) 받침(착 ) 몸(구 構) 독자(獨字, 부수문자)로 다시 구분되며, 합체부수는 독체부수 1개 이상을 포함하여 구성되는 부수를 일컫는다. 지정기호와 부수는 음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 하지만, 지정기호는 주로 명사의 범주를 지정하며 부수는 품사 전반의 제자에서 자모문자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한다.
애급신성문자의 상형자 지사자는 각각 선상적(線狀的)인 그림과 기호이다. 이들 그림과 기호는 대단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외울 수 없을 정도로 번다했다. 그 때문에 고대 애급에는 문자쓰기를 전담하는 서사(書士)계급이 있었다. 교육열이 대단히 높았던 한 아버지는 서사학교에서 수학중인 아들에게 병역 부역이 면제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서 공부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써서 남겼다. 신성문자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만 읽을 수 있었으며, 서사직은 당연히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잘 나가는」 직업이었다. 신성문자는 서기전 100년까지 2천9백년 동안 문자의 기능을 담당했다. 신성문자의 상형자는 예를 들면 독수리 메추리 올빼미 사자 뱀 등의 형태를 그린 것이며 지사자는 지시대상의 특성을 축약한 것이다. 이들 양자의 표어문자와 음절문자는 자음만 표기한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모음의 음가는 서기전 100년 희랍문자를 받아들인 콥트어(애급어의 최종 후대어)의 모음에서 재구되며 그렇지 못한 경우 /e/로 읽힌다. 고대애급어의 문장에서 동물이나 사람의 얼굴(상형자)은 일제히 오른쪽이나 왼쪽을 향하여 배열된다. 이들 얼굴이 문장의 시작을 바라보며 문장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뒷걸음치며 진행된다. 신성문자는 종서나 횡서로 쓸 수 있으며, 이는 각각 좌향우서(左向右書)와 우향좌서(右向左書)로 구분된다. 신성문자의 필법은 좌향우종서 좌향우횡서 우향좌종서 우향좌횡서 4종에 이른다. 이에 비하여 히브리문자 아랍문자는 좌향우횡서, 현대의 문자 대부분은 우향좌횡서, 한자는 좌향우종서, 몽골문자와 만주문자는 우향좌종서 등으로 한정된다. 이에 덧붙여 우경(牛耕)필법은 횡서이며, 와익(蝸匿)필법은 내향우선서(內向右旋書)이다. 우경필법으로 기록되는 대표적인 문자는 에트루리아문자(Etruscan, 서기전 600년) 이다. 예를 들면 첫째 행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음 행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서되는데, 이는 마치 소가 밭을 가는 모습과 같다. 와익필법의 유일한 문자는 파이스토스 원반(原盤)문자(서기전 1600년;그림-1)다. 문장의 첫머리는 원반 가장자리에서 안쪽을 향하여 시계바늘 방향으로 선회하는데, 이는 마치 달팽이가 그 집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과 비슷하다. 또한 상형자의 얼굴은 출발점을 바라본다. 파이스토스 원반문자는 마치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문자학에서 오랫동 안 해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1988년 피셔(S.R. Fischer)가 음절문자로 해독했으며, 그 언어가 미노스(Minoan) 희랍어로 밝혀짐에 따라 희랍어사의 상한이 2백년 올라갔다. 원반문자는 선상문자-B의 해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선상문자-B는 건축가 벤트리스(Michael Ventris, 1922~1956년)가 1952년에 해독했으며, 그 언어는 서기전 1400년의 뮈케나이(Mycenaean) 희랍어로 밝혀졌다. 선상문자-B의 해독은 아직 해독되지 못한 선상문자-A(서기전 2000년)와 이미 해독되어 있던 애급신성문자 양자에서 거둔 결실 이었다. 벤트리스가 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바람에 후속연구는 애석하게도 더 진척되지 못하였다. 또한 선상문자-A는 서기전 700년의 키프로스(Cyprian) 음절문자로 전승되 었는데, 선상문자-A/-B 파이스토스원반문자 키프로스문자는 그림-2에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자형이 비슷하다. 이들 문자는 모두 그 모형을 애급신성문자에 두었기 때문 이다. 이들 신성문자의 후대문자는 신성문자의 음절적인 측면을 받아들인 문자였다.
신성문자는 서기전 2800년에 약화체(略畵體, Hieratic)로 변경되었으며, 약화체는 다시 서기전 400년에 초서체(草書體, Demotic)로 변형되었다. 신성문자와 초서체는 희랍문자를 모방한 콥트문자(Coptic)가 나타나자 서기전 100년에 함께 사라졌으며, 약화체는 이보다 먼저 서기전 200년에 사용이 중지됐다. 당대의 애급어인 콥트어는 31자에 불과한 콥트문자 덕분에 간편하게 기록될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성문자 약화체 초서체의 음가는 깡그리 잊혀지게 되었다. 서기 1799년 알렉산드리아에서 로제타석(Rosetta Stone)이 발견되어 1800년대 초 샹폴리옹(J.F. Champollion)과 영(Thomas Young)이 이를 해독해낼 때까지 신성문자는 막연히 신성한 기호로만 알려졌다. 신성문자란 명칭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약화체와 초서체 역시 알 수 없는 어떤 부호로 여겼다. 따라서 고대애급의 문자문명은 망각의 늪에 잠들어 있었으며, 인류문명사의 윗부분은 미지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로제타석의 명문(銘文)은 동일한 내용을 서기전 205∼182년에 신성문자 약화체 희랍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신성문자는 위에, 약화체는 가운데에, 희랍문자는 밑에 위치하며, 신성문자 약화체는 좌향우횡서로, 희랍문자는 우향좌횡서로 씌어 있다. 희랍문자는 어휘가 구분되지 않은 채 대문자로만 기록되었으며, 신성문자 약화체 역시 어휘가 구분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신성문자의 왕명(王名)은 「카르투쉬(cartouche)」 속에 들어 있었다. 카르투쉬는 왕명이나 신명(神名)을 기록한 타원형 윤곽이다. 카르투쉬 속의 왕명은 희랍문자에 의지해 해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으며, 이에는 콥트어의 지식이 필수적인 것이었다. 상단의 여러 행이 떨어져 나간 신성문자의 명문에서 위로부터 여섯째 행 좌단의 어휘는 왕명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그림-3)였으며, 이는 고대애급어의 「프톨미스(PTOLMIS)」로 확인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림-3의 신성문자 일곱 가지는 모두 자모문자였다. 왕명 「프톨레마이오스」는 신성문자의 자모문자를 해독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며, 마침내 신성문자 약화체 초서체의 해독을 가능하게 했다. 수메르설형문자 역시 오랫동 안 장식문양으로 치부되었으나 바빌로니아어 엘람어 고대페르시아어 3종으로 기록된 「베히스툰 기록(Behistun Record)」 등의 설형문자 덕분에 1832~1851년에 그로텐펜트 힝크스 롤린슨 등 여러 학자의 노고에 의하여 해독되었다. 그 실마리는 고대페르시아어로 기록된 왕명 「다르트우스」(Darθvus, Darius;)와 「끄샤야르샤」(Xsayarsa, Xerxes)였다. 그 덕분에 수메르문자 계통의 설형문자·상형문자 일체가 해독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미해독문자는 2개 이상의 언어로 이루어진 기록으로 해독될 수 있지만, 1개 문자와 1 개 언어로 씌인 명문은 해독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성문자와 페르시아설형문자의 해독으로 말미암아 역사시대의 상한점은 서기전 3200년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수메르설형문자는 후대문자도 남기지 못하고 서기 100년에 이르러 문자의 기능을 상실한 데 비해 한자는 갑골문자 이래 오늘날까지 진보하고 있는 문자다. 한편 애급약화체 는 서기전 1700년에 원(原)셈음절문자(Proto-Semitic)로 차용되었으며, 이는 다시 서기전 1600년에 원(原)페니키아음절문자(Proto-Phoenician)로 전승되었다. 원페니키아 음절문자는 서기전 1000년에 페니키아음절문자와 희랍자모문자로 다시 차용되었다. 페니키아음절문자는 서기전 900년에 고히브리자모문자(Old Hebraic) 아람자모문자 (Aramaic) 남아랍음절문자(South Arabic)로 파급되었으며, 희랍자모문자는 서기전 600년에 이탈리아 알파벳으로 일컬어지는 에트루리아(Etruscan) 라전(Latin) 팔리스카 (Faliscan) 오스카(Oscan) 움브리아(Umbrian) 등의 자모문자로 변형되었다. 따라서 서기전 1600년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아(歐亞)대륙의 음절문자 자모문자 일체는 그 연원을 애급신성문자 약화체에 두고 성립되었다. 페니키아문자는 서기전 400년 카르타고문자(Punic)로 전승되었으며, 고히브리문자는 서기전 597~581년 유태인의 바빌로니아 유수(幽囚)로 말미암아 사용이 중단됐지만, 서기 500년 사마리아문자(Samaritan)로 차용되었다. 유수에서 풀려난 유태인은 아람문자를 가지고 왔다. 이후 서기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유태인의 구어는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였지만, 그들의 문어는 아람문자로 기록된 히브리어였다. 아람문자의 대표적인 후대문자는 히브리문자(서기전 600년) 범자(梵字, 서기전 400년) 아랍문자(서기 500년)이며 남아랍문자는 에티오피아문자(서기 300년)로 전승되었다. 희랍문자는 아나톨리아문자(Anatolian, 서기전 700년) 콥트문자(Coptic, 서기전 100년) 고트문자(Got hic, 서기전 400년) 글라골리문자(Glagolitic, 서기 800년)로 차용되었으며, 라전문자는 서기 900년 이래 서구의 대다수 언어를 위한 문자로 사용되고 있다. 이들 후대문자 가운데 현생(現生)문자는 희랍문자 라전문자 히브리문자 범자 아랍문자와, 글라골리문자를 계승한 키릴문자이다. 이들 현생문자는 페니키아문자계와 희랍문자계로 대별되는데, 히브리문자 범자 아랍문자는 페니키아문자계에 속하며 희랍문자 라전문자 슬라브문자는 희랍문자계에 속한다. 한편 훈민정음이 창제냐 모방이냐는 논란은 오래 된 것이다. 「자방고전(字倣古篆:문자는 옛 전서를 모방하였다)」이 그것인데, 조철수 박사의 최근 연구(신동아 5월호)에 의하면 「고전(古篆)」은 12세기 송나라에 와 있던 유태인의 히브리문자(자음)와 마소라 부호(모음)를 모방한 「가림다(加臨多)정음」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위작으로 폄훼되어 온 가림다정음은 그 실체를 인정받은 셈이며, 고대화자(古代和字)로 주장된 대마도의 아히류(阿比留)문자는 가림다정음의 모방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가림다정음- 아히류문자-훈민정음-한글은 페니키아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애급신성문자와 약화체는 기나긴 모방 차용 전승 답습 변경 변형의 역정을 거쳐 우리의 한글에까지 그 맥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수메르문자는 과거의 문자이며, 한자는 과거와 현재의 문자다. 애급문자는 과거의 문자로 명운을 마쳤지만 여러 후대문자를 통하여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현재의 문자이다. 이는 여러 차례 변태(變態)를 거쳐 찬란한 날개로 비상하는 곤충에 견줄 수 있다. 표어문자 음절문자 자모문자 지정기호로 갈리던 애급문자는 오늘날 자모문자로 정리되었다. 1천4백자에 달하던 그 수효는 30자 미만으로 줄었으며, 번잡한 그 자형은 기호의 단계로 축약되었다. 축약된 소수의 문자기호로 인간언어 전반을 기록할 수 있는 자모문자는 인간지성의 지표(指標)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애급문자는 기호적인 간략화와 수적인 축소화에 의하여 자모문자로 꽃을 피웠다. 반면에, 한자는 간체(簡體)를 지향하더라도 수적으로 증가일로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문자기록의 방도는 페니키아계 희랍계의 표음문자와 한자의 표의문자로 양극화되어 있다. 호머(Homer, 서기전 8세기)의 일리아드(Illiad) 오디세이(Odyssey)와 르그웨다(Rgveda)와 파니니(Panini, 서기전 4세기)의 팔장(八章·Astadhyayi) 등은 암송되어 오다가 후대에 희랍문자 범자로 기록되었다. 이는 일리아드 오디세이 르그웨다가 길지만 서사시 운문이며 팔장이 4천3백이 넘는 문법규칙이지만 짤막한 경구(警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자기록 이전의 문헌은 시 운문 경구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 한 그 원형을 후대에 전할 수 없었다. 이들 작품의 언어는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경우 서기전 8세기의 호메로스(Homeric)희랍어로, 르그웨다의 경우 서기전 15세기의 웨다(Vedic)범어로, 팔장의 경우 서기전 4세기의 고전범어로 각각 인정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문자는 실로 인간의 기억능력을 무한대로 향상시킨 큰 공이 있으며, 그 수훈은 단연 애급신성문자와 약화체이다. 신동아 1997년 5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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