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소용돌이의 사회'
/정원영
2004년 12월, 국제신문
5·16쿠데타 전후의 격동기에 주한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사회의 특징을 '소용돌이'에 비유했다. 너나 없이 중앙을 향해 달려들고 빨려드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같다는 것이다. 중앙이 무엇인가. 물리적 공간이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자원이 집중된 서울이다. 추상적으로는 청와대로 상징되는 정치권력일 것이다. 헨더슨이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라는 책에서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1968년이다. 하지만 36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진단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먼저 서울 집중현상이다. 헨더슨은 "서울은 단순히 한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고 했다.'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은 그에 의해 붙여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서울 초집중현상은 헨더슨이 한국에 머물렀던 60년대와는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소용돌이에 빨려들면 헤어나올 재간이 없다. 그렇듯이 서울집중 또한 제어장치는 없이 가속페달만 밟은 결과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역회전 엔진에 시동을 걸었지만 관성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력의 생리나 행태는 어떤가. 모든 권한은 오직 한 곳, 절대 권력자 한 사람에게 집중됐던 그 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권위주의 청산'이 고창되고 '책임장관'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제왕적 대통령은 가고 '작은 대통령'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는 권력체계에 본질적이고 확연한 변화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근만 해도 옛날을 떠 올리게 한 사례가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인사비리 의혹 수사나 통합거래소 이사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설'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아니라고 하면 더 할 말은 없겠으나 큰 일이 터질 때마다 배후에 누가 있니 아니니 하는 논란이 빚어지는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한 가지만 더 들어보자. 노 대통령은 5당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4대 쟁점법안처리는 국회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액면대로라면 국회의 권능과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 문제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박물관 발언' 한마디로 특정법안에 대한 여당의 추진방향이 달라지는 것을 본 '학습효과'가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아직도 국정의 제 분야가 청와대로 수렴되는 소용돌이 행태가 잔존한다는 얘기다.
헨더슨은 "소용돌이 이론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중앙으로만 쏠리는 '소용돌이 사회'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안 들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쉬운 것부터 먼저 해야 한다.
서울집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집중된 기능의 분산뿐 아니라 중앙이 장악하고 있는 권한의 분배도 절실하다. 분산의 경우엔 행정수도 무산에 따라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하고, 대안이 확정되더라도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분권은 다르다. 중앙에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중앙에서 제 밥그릇 생각만 버리면 된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지난달 국무총리와 시도지사들의 간담회 자리에서 "지방분권은 행정수도 후속대책과는 상관없이 강력하게 추진했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분권이라는 말은 요란했지만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아닌가 싶다.
노 대통령의 유럽순방 기간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정부의 개혁이 보수 기득권층으로부터 권력 재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 실례로 '수도이전과 신문개혁, 일류대학의 학생선발권 제한' 등을 들었다. 비판적인 시각을 깐 보도지만 큰 틀로 보면 바로 소용돌이 사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다만 하나의 전제를 붙이자. 미적거리는 지방분권에서 보듯 남의 권한만 재분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한도 과감하게 내놓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논설위원 garde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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