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대중
前 대통령은 지난 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내가 박 대통령이 생존해 있을 때부터 하던
얘기가, 박 대통령이 6·25의 폐허에서 실의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공로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경제건설을 위해 자유가 나중에 간다고 한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J의 말을 들으면
그가 이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실은 박대통령 시절부터 그가 해오던 얘기, 즉
'先민주발전 後경제발전' 혹은 '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라는 낡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얘기가 옳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을 누가 마다할까?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역사상 그런 사례를 하나라도 대 보라는 것이다. 역사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병행발전한 사례는 전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는 오히려 시민혁명에 앞서 산업혁명이 있었으며, 일정한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연후에 정치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라, DJ인 것이다.
2.
애덤 쉐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몽기는 1950년에서
1990년 사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조사했다 (1985년 달러화 기준).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미만인 국가들의 정권 평균수명은 8년으로 나타났다. 1500달러에서 3000달러 사이는 18년 정도 지속되었고, 6000달러 이상의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탄력적으로 나타났다. 1인당 6000달러 이상을 버는 국가에서 민주 정권이 붕괴될 확률은 1/500이었다. 일단 부유해지면
민주주의는 불멸하는 것이다. 대략 9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있는 32개의 민주정권들의 지속연수는 총 736년이다. 단 한 곳도 붕괴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69개 빈국 중 56%인 39개 민주 정부는 실패하고 말았다.<파리드 자카리아, '자유의
미래'>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1인당 3000달러에서 6000달러의 소득 수준에서
민주주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성공하리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역설한다. 그는 "다수의 국가들이 1945년 이후 대략 1인당 GDP
6000달러를 전후한 시점에 안전한 자유민주주의가 되었다"면서 지난 30년 사이에 권위주의 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에 성공한
스페인,그리스와 포르투갈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을 바츨라프
하벨, 넬슨 만델라, 레흐 바웬사 등과 함께 '자유의 역사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러나
자카리아는 "그들의 승리가 왜 가능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혹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1인당 소득이 아니라 '도덕의지'라며, 위 관심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사람은 YS나 DJ,혹은 그 추종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해 자카리아는 신랄하게 따지고 든다. " 우간다와 벨로루시, 그리고 이집트는 결의에 찬 도덕적 명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의 운동가들도 1960,1970,1980년대에 모두 실패했다.
실제로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 前 대통령 역시 그 당시 대부분 기간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 왜 그가 1970년대에는 실패했으며,
1990년대에는 성공했는가? 그가 1990년이 되자 갑자기 '도덕 의지'를 갖게 되었는가?>
자카리아는 독재정권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붕괴되지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무엇이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대답은 국가의 富"라고 말한다.
자카리아는 그 이유로 첫째, 국가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분파(사기업과
광범위한 부르주아지)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획득하도록 하고, 둘째, 이 분파들과의 협상에서 국가는 덜 폭압적이고 덜 변덕스러워지며,
규칙 지향적으로 사회의 요구(최소한 사회 엘리트 집단의 요구)에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 과정에 자유화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3.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12 총선에서 신한민주당이 약진하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야당과
국민들의 도전이 격화되기 시작하던 1985년 한국의 1인당 GDP는 2229달러였다. 1987년 6월 사태의 결과 만들어진 직선제 헌법에 따라
선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향해 가던 1990년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5886달러였다. 그리고 YS정권이 들어서고,
'문민'민주주의가 정착된 1995년 한국의 1인당 GDP는 1만823달러였다 (1995년 가격 기준).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정국이 불안할 때마다 군부 쿠데타설이 나돌았고,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집단을 꼽으라면 '군부'가 상위권에 자리했었지만, 1990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아무도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이나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자카리아가 "1인당 3000달러에서
6000달러의 소득 수준에서 민주주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성공하리라는 결론이 나온다","대략 1인당 GDP 6000달러를 전후한 시점에 안전한
자유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말한 것은 한국의 경우에도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4.
혹자는 영국,미국 등 구미
선진국들의 경우를 先민주화,혹은 '정치와 경제의 병행발전'의 史例로 제시한다.
하지만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이나 미국의
민주주의 하에서 소수 엘리트만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졌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권이 대중에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이며, 모든 성인남녀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였다. 반면에 구미 여러나라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된 것은
18세기말~19세기말이었다. 구미 선진국들에서도 산업화,경제발전이 민주화,정치발전에 앞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영국에서 일반 국민 전체가 선거권을 갖게 된 1928년 영국의 1인당 GDP는 1990년 미국 달러 기준으로 5115달러였다고
한다.
G.일리는 "흔히 영국의 경험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조화로운 동시성'은 구체적인 역사지식에 반대되는 도그마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이러한 비판은 DJ를 비롯해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는 소위 민주화운동가들, 진보주주의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김일영 교수(성균관대) 교수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일어난 권위주의적 경제발전은 영국을 '선구적 예'로 하는 일반적
경험에서 보아 크게 일탈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존하지도 않았던 영국 모델을 근거로 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병행론을 가지고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는 일도 이제는 그쳐야 한다"고.
5.
마지막으로 DJ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일 뿐 아니라,그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일관되지도 못한 것이다.
그는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온갖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김일성-김정일 부자세습독재정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유보없는 자유'를 주장하고,
미얀마와 동티모르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알뜰하게 챙기면서도, UN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에는 반대표를 던지면서까지 김정일의
폭정을 비호했다. 그가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결국 '그때 그때 달라요'식 자유와 민주주의였던가? 그런 그가 박정희 정권 시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보했던 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
DJ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만나게 되면 민족 전체의
운명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일관성을 가지려면 그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나는 그동안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향해서는
수없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했으면서도, 김일성-김정일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여생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김정일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민족 전체의 자유, 아니 우선 북한 주민의 자유에 대해
얘기하겠다"라고...(조갑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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