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뉴욕 전시관 내부 모습. 엄청난 인파로 전시회를 원래보다 2개월 늦춘 9월 말까지 연다. (우) 1938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디제너레이트 아트’ 전시회 사진. |
과학·기술·음악·철학 분야에서 보듯 머리로 생각한 뒤 뭔가를 정확하게 형상화시켜 나가는 것이 독일인의 장기이다. 뜨거운 가슴,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그림 분야에서의 활약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림은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의 주무대이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 미술사에서 독일인의 이름이 등장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잘 짜여진 완벽한 음악 같은 영역이 바로 게르만의 전공 분야이다.
노이에 갈레리에가 특별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은 지난해 말부터 뉴스로 전해졌다. 뉴욕에서 게르만 미술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잘 알려져 있듯이 뉴욕은 유대인의 도시다. 정치·경제·문화 대부분의 영역에서 활약하는 주요 인물들이 유대인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지만 원래 뉴욕은 게르만족의 네덜란드가 개척한 도시이다. 당연히 독일이 경제·정치·문화를 석권해 왔다. 2차 세계대전은 뉴욕의 주인을 독일인에서 유대인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나치를 지지한 뉴욕의 독일계 명사들이 쫓겨나가면서 아우슈비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를 장식한 최고의 작품, 바그너의 음악도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한동안 사라진다.
노이에 갈레리에의 특별전시회는 ‘디제너레이트 아트(Degenerate Art)’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 열등한 예술, 타락하고 오염된 3류 저급예술로 해석될 수 있다. 독일 나치정권하에서 3류 저질이란 딱지가 붙은 미술작품들의 전시회이다.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과 예술세계를 망치는 독(毒)과 같은 존재가 ‘디제너레이트 아트’이다. 원래 7월 초에 전시가 끝날 예정이었는데, 3류 예술에 중독(?)된 인파로 인해 9월까지 연장 전시를 하게 됐다고 한다.
노이에 갈레리에는 뉴욕 맨해튼 이스트 86번가 큰길에 인접해 있다. 일요일인데도 전시회 관람객들로 혼잡하다. 30분이나 길가에 서 있다가 현관에 들어서자 대형 보안검사대가 기다리고 있다. 관람객도 많지만 보안검사대에서 시간을 지체하면서 행렬이 길어진 것이다. “테러와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보안검색을 철저히 한다”는 설명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보안요원들이 곳곳에 서 있다. 사진촬영은 원천봉쇄다. 나치도 이미 사라진 상태에서 과연 누가 테러를 할지 물어봤다. “나치 지지자라기보다 유대인에 반대하는 세력이라 보면 된다. 반히틀러=친유대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전시관은 관람객으로 터져나갔다. 지금까지 필자가 다녀본 그 어떤 전시회보다 성황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히틀러와 독일 제3제국 군인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 있다. 1938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디제너레이트 아트 전시회(Entartete Kunst·독일어)에 입장하는 시민들의 행렬도 큰 사진으로 걸려 있다. 열차에서 내려 아우슈비츠 감옥에 들어가는 유대인들 사진도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디제너레이트 아트는 ‘1937년 나치의 모던예술 대학살(The Attack on Modern Art in Nazi Germany, 1937)’이란 부제(副題)를 달고 있다. 1937년부터 독일에서 일어난 히틀러 주도하의 문화운동이다. 노이에 갈레리에 특별전은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타임캡슐형 전시회’라 할 수 있다. 전시관 구도나 모습도 1937년 열린, 나치 선전성(宣傳省) 주도하의 미술 전시관을 본뜨고 있다. 당시전시관의 모습은 독일에 들른 미국 사진작가의 영상비디오로 제작돼 남아 있다. 2분26초짜리 비디오로 전시관 안에 설치돼 나치 치하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를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것은 1933년이다. 사실상 100%에 가까운 지지와 함께 히틀러가 총통에 오르면서 독일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예술이 지상과제로 떠오른다. 게르만의 기상을 왜곡하거나 추하게 표현하는 ‘저급 예술가’들이 추방되기 시작한다. 중국 문화혁명의 기원은 바로 1930년대 독일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열린 초대형 이벤트가 1937년의 ‘위대한 독일 예술 전시회(Great German Art Exhibition)’이다. 전통적 복고형 기법에 기초한 순수예술 전시회이다. 히틀러가 좋아하던 예술가들이 중심이 돼 게르만의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그림과 조각 등을 선보였다. 그러나 전시회는 히틀러조차 실망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순수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미 식상해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복고풍 그림들만이 전시됐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예술세계는 급변한다. 종전의 고전풍 예술은 설 곳을 잃어버린다. ‘모던’이란 이름하에 기존과 전혀 다르거나 아예 반대로 가는 그림과 조각이 일상화된다.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눈과 인식도 달라지고 있던 시기이다.
1938년의 디제너레이트 아트 전시회는 나치가 기획한 이벤트가 실패하면서 등장한 대안에 해당한다. 위대한 독일예술 전시회에 대한 관심도가 저조하자 숭고한 독일 예술을 훼손하는 엉터리 사이비 예술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를 통한 학습인 셈이다. 독일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던 ‘반문명’ ‘반전통’에 기초한 다다이즘(Dadaism)은 주된 공격 타깃이 된다. 표현주의(expressionism)·상징주의(Symbolism)·야수주의(Fauvism)·큐비즘(Cubism)·초현실주의(Surrealism)·사회주의적 현실주의(Social Realism) 등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피어나기 시작한 혁명적 예술사조들이 추하고 퇴폐적인 저질 작품으로 매도된다. 뮌헨에서 문을 연 디제너레이트 아트전은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얼굴이 도깨비처럼 묘사된 데 대한 반발로 저질 예술가에 대한 비난과 원성이 독일 예술계 전체에 퍼져나간다. 뮌헨에 이어 독일 주요 도시를 순회한 뒤 오스트리아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전시회에 등장한 사악한 예술가는 전부 112명이다. 이들이 제작한 400여 작품들은 영혼을 더럽히는 악의 유혹으로 각인된다.
112명의 예술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이다. 독일 표현주의의 아버지이자 나치로부터 탄압을 받은 대표적인 화가이다. 전후(戰後) 뉴욕으로 건너가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추앙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각도에서 내려다본 왜곡된 공간과 구도로 표현한다. 베크만의 수의(囚衣)를 입은 자화상 유화는 이번 뉴욕 전시회에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이다. 검은줄과 붉은색 바탕의 수의를 입은 베크만은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악의 화신으로 낙인찍힌 지 1년 뒤인 1938년 스위스 망명 때 그린 작품이다. 왼손에 든 작은 튜바(Tuba)가 인상적이다. ‘자화상’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튜바를 든 사형수’라 부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사형시간을 알리는 나팔수가 바로 사형수 자신이란 식의 해석이 그림 속에 드리워져 있다.
베크만과 더불어 1930년대 말 퇴폐적 예술가의 대명사로 불린 인물은 에른스트 루드비히 킬크너(Ernst Ludwig Kirchner)이다.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1920년대부터 독일 예술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디 브뤼케(Die Brcke)’의 창립멤버 중 한 명이다. ‘다리’라는 의미의 브뤼케는 독일 예술을 전위적·근대적 차원으로 해석하는 문화집단이자 운동이다. 킬크너는 예술세계에서 쫓겨난 뒤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1938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전시관 내에는 킬크너가 표현주의 기법으로 그린 4명의 브뤼케 멤버의 얼굴 모습이 걸려 있다. 모두 불행한 생을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킬크너와 베크만의 그림 위에 걸린 빈 액자이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덩그러니 벽에 걸린 액자가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몰수된 악의 화신들의 작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베크만, 킬크너를 비롯한 모던 화가들의 작품은 1930년대 말 파울 괴벨스의 나치 선정성에 의해 전부 몰수된다. 아무런 보상 없이 합법적으로 세상에서 사라진다. 지난해 11월 뮌헨에서 이들의 1500여 미술 작품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한 예술품 거래상의 아들 집에서 비밀리에 보관되어온 그림들로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도 다수 발견됐다. 현재 조사 중이지만 발견된 그림의 대부분이 국가의 이름으로 몰수된 반(反)게르만풍의 예술작품일 것이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유대인 가운데 ‘게르만의 정신을 더럽히는 화가’로 활동한 인물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12명의 ‘저질 예술가’ 가운데 불과 4명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가 주도한 퇴폐예술 추방운동은 독일 거주 유대인들의 기반을 흔드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예술품 거래상들은 당시 독일 내에서 활동하는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재력과 지력(知力)을 과시한 집단이다. 21세기 들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지만 세계 미술거래의 대부분은 유대인의 손과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퇴폐적 그림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거래상 소유의 그림들이 나치정권으로 손쉽게 넘겨진다. 저질 예술가 추방에 이은 예술작품 몰수는 유대인 스스로가 독일 내 재산을 포기하고 떠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독일에 거주하던 유대인 기득권층을 합법적으로 쫓아내는 방법으로 국가적 차원의 몰수가 창안된 것이다.
필자가 노이에 갈레리에에 들른 가장 큰 이유는 ‘저질 열등예술’에 있지 않다. 3류 열등의 반대편에 서 있는 소위 ‘1등 고급예술’의 실체를 직접 보자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히틀러가 자신의 거실 한가운데 걸어뒀다는 그림이다. 뮌헨 예술아카데미 출신으로 나치정권하에서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은 아돌프 지그럴(Adolf Ziegler)이 그린 ‘네 개의 요소(The Four Elements)’가 주인공이다. 네 명의 여성이 누드로 등장해 앉아 있는 그림으로 불, 땅, 물, 그리고 공기가 은유적으로 표현된 유화이다. 지그럴의 그림이 들어선 전시관은 다른 곳에 비해 덜 복잡하게 느껴졌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350㎝ 세로 170㎝로 전부 세 개의 그림으로 나눠져 있다. 왼쪽이 불, 중간이 땅과 물, 오른쪽이 공기의 여인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인류 문화와 문명의 원천이자 생존기반을 묘사한 유화(油畵)이다. 누드화라고 하지만 부끄럽거나 ‘색(色)’을 느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교회 한복판에 걸린 성화(聖畵)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진지한 분위기가 그림 전체에 드리워져 있다.
청년기의 히틀러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비엔나 예술아카데미에 응모했지만 떨어진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벨기에와 프랑스 전선에 배치된 뒤에도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가끔씩 해외토픽을 통해 등장하는 경매 속의 히틀러 그림을 보면 아마추어를 넘어선 수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적으로 볼 때 히틀러의 거실에 걸린 지그럴의 누드화(畵)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계로 연결해 주는 명화로 와닿는다. 1등 고급예술이라 단정은 못해도 상위 어디쯤에 놓일 만한 그림처럼 느껴진다.
예술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해석된 예술을 반드시 정치적으로 ‘실천’할 필요는 없다. 해석과 실천은 선택의 문제일 뿐 당위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판단은 개개인에게 있을 뿐 그 누구도 독점, 독선할 수 없다. 베크만의 모던예술을 3류라 규정하고 차별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히틀러가 좋아했던 그림이라고 해서 악의 상징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아돌프 지그럴은 나치정권하에서 게르만 예술세계를 총지휘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같은 정치적 배경이 그가 남긴 예술세계를 단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일부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광수·최남선처럼 친일 행적으로 비판을 받는 인물이라 해도 그들이 남긴 문학세계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얘기는 성경 속에 그치는 교훈이 아니다. 예술·문학세계에도 통하는 인류의 영원한 진리이다.
히틀러가 살아 돌아와 현대미술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악으로 규정한 3류 퇴폐 예술작품들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주류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사실 표현주의의 베크만과 킬크너의 작품도 21세기 전위작가들이 본다면 ‘고리타분한 옛날 옛적’의 추억 정도로 받아들여질 듯하다. 예술세계에서 ‘Should’, 즉 당위는 있을 수 없다. 예술 그 자체가 이미 ‘Should’를 배제한 ‘무(無)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규정한 악의 화신이 악이 아니듯, 반(反)히틀러라는 이름으로 미화되는 선의 화신도 선을 독점할 수 없다. 뉴욕 노이에 갈레리에의 전시회는 그 같은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켜 주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