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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부활인가 합종연횡의 서막인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월간중앙
2015.02.17
2차대전 종전
70주년 행사 즈음해 남북한, 주변 4강국 협력 파트너 물색…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도 러시아·중국 주관 기념식 참석 여부 놓고 장고(長考)
돌입
옛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2차대전 최대의 지상전으로 기록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7월 17일 시작해 이듬해
2월 2일까지 지속됐다. 볼가강 하류에 위치한 스탈린그라드는 옛 소련의 산업 중심지이며 캅카스 지역의 유전으로 가는 전략요충지였다. 당시 나치
독일은 전쟁에 필요한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스탈린그라드로 진격시켰다. 반면 소련도 스탈린그라드를 빼앗길 경우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어 총력전에 나섰다.
양측은 한치의 양보 없이 처절한 공방전을 벌였으며, 결국 소련군이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나치 독일군 14만7천여 명이 전사하고 9만1천여 명이 포로가 됐다.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루마니아·헝가리군도 30만여 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소련군은 그보다 많은 47만8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민간인도 4만여 명이나 희생됐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차리치노였는데, 이시오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25년 자신의 성을 따 스탈린그라드(스탈린의 도시)로 바꾸었다. 이 도시는 스탈린 사후 1961년부터 다시 볼고그라드(볼가강 도시)로 불린다.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나치 독일에 유리했던 2차대전의 전세가 전환점을 맞았다고 평가된다.
올해 2차대전 승전 70주년을
맞아 미국·영국·프랑스 등 연합국과 러시아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계획한다. 러시아는 서방의 연합국들보다 2차대전 승전 기념식을 더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다. 러시아가 승전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자국의 엄청난 희생 덕분에 나치 독일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2차대전의 최대 피해국은 소련이다. 인명피해가 군인 880만 명을 포함해 2700만 명이나 된다. 미국(42만 명)과 영국(45만 명)은 물론이고 패전국인 독일(706만 명)보다 많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나치 독일을 패배시켰다는 러시아 국민들의 역사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러시아 국민들이 1812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격퇴시킨 전쟁을 ‘조국전쟁’, 나치 독일을 패배시킨 2차대전을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조국전쟁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유럽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를 제정 러시아가 무찔렀듯이 세계 지배를 꿈꾸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을 소련군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굴복시켰다는 민족적 긍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서방 연합국들은 나치 독일이 패망한 것은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쿠르스크 전투는 소련군이 1943년 7월 서부 쿠르스크에서 병력 130만 명과 전차 3600여 대를 투입해 병력 80만 명과 전차 3천여 대를 동원한 나치 독일군을 대파한 것을 말한다.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가장 먼저 점령한 군대도 소련군이었다. 소련군은 1944년 4월 30일 나치 독일 의사당에 적기를 꽂았다.
2차대전으로 국부 3분의 1 잃은 소련
실제로
2차대전의 주요 전장은 나치 독일군과 소련군이 1941년부터 맞붙은 동부전선이었다. 전체 전선을 통틀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이었다.
나치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패배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서쪽에 제2전선을 만들어달라는 소련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또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것은 동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펼친 소련군이 나치 독일군 전력의 상당부분을 붙잡아둔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소련군이 파시스트 독일의 배를 갈랐다”면서 2차대전에서 소련의 공을 인정했다. 역사학자들도
대부분 2차대전에서 독일을 주로 상대한 것은 소련이라고 보았다. 소련은 인명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전체 국부의 약
3분의 1이 파괴됐다. 1700개 도시와 600만 채의 건물, 3만여 개의 공장과 10만여 개의 농장이 파괴됐다. 종전 후 소련이 연합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적·물질적 희생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연합국에 속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나치 독일과의 항복 조약이 비준된 5월 8일을 전승기념일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반면 옛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의 승전기념일은 5월 9일이다. 두 개의 승전기념일이 생긴 것은 나치 독일이 연합국과 소련을 상대로 각각 따로 항복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프랑스 랭스의 연합국 사령부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는데, 효력 발생 시점은 5월 8일 오후 11시 부터였다.
그런데 당시 이 자리에 소련은 참석하지 않았다. 전쟁 말기 연합국이 소련을 고립시키려 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스탈린은 이 항복문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 2차대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나치 독일의 심장부는 베를린이기 때문에 항복문서는 베를린의 소련군 점령사령부에서 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도 스탈린의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빌헬름 카이텔 독일군 총사령관이 5월 8일 오후 10시43분 베를린 근교의 소련군 사령부에서 소련군 총사령관 게오르기 주코프 앞에서 항복문서에 다시 서명했다. 베를린과는 2시간 차이가 나는 모스크바에선 5월 9일 0시43분이었다. 이때 소련 최고회의(의회에 해당)는 승전을 공식 선언했다. 스탈린은 승전 기념 특별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매해 5월 9일을 승전 기념일로 삼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매년 승전일에 기념식을 갖는 등 경축잔치를 벌여왔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올해 승전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식을 벌일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는 10년 단위의 꺾어지는 해에는 외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한다. 지난 2005년 60주년 기념식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5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초청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모두 65개국 정상을 초청했다. 각국 정상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도 포함돼 있다.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보좌관은 “승전 60주년 기념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는 2차대전 당시 모든 반(反)히틀러 연합국은 물론이고 가까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 브릭스(BRICS) 국가를 포함한 크고 영향력 있는 국가 정상이 모두 초청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각국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도 거행할 계획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각종 전차와 대륙간탄도미사일, 헬기를 비롯해 Tu-95M 전략폭격기와 초음속 전투기 Tu-160, Su-35 전투기, Tu-22M3 장거리폭격기 등이 총출동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정부는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통해 소련 붕괴와 함께 실추된 군사력이 복원됐음을 국내외에 과시할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는 승전 60주년 때 2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거창하게 행사를 거행했다. 당시 모스크바 중심가는 전승을 기리는 표어와 포스터, 화환, 대형 광고판과 현수막이 설치됐으며 붉은광장 상공에는 애드벌룬이 띄워졌었다. 러시아 정부는 당시 모스크바 상공의 비구름을 제거하는 작업까지 실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승전 70주년 행사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의 제재에 따른 외교적 고립을 돌파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러시아 정부는 2차대전에서 승리한 것이 소련 덕분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선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신년메시지에서 “2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미국이 히틀러에 맞서 연합해 세계 평화를 지켜냈다”면서 “러시아와 미국의 동반자 관계는 성공적으로 발전돼왔으며, 양국이 세계평화를 확고히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중재 나선 푸틴의 속내
러시아 정부는 이와 함께 승전
70주년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연결 고리로 활용할 계획이다. 카자흐스탄·벨라루시·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은 모두
승전 기념행사를 매년 5월 9일 거행해왔다.
러시아 정부의 거창한 승전 70주년 기념행사 계획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불참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군의 분리독립 운동 배후도 러시아라고 보고 있다.
유럽 각국의 정상도 미국에 동조해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의 참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협상을 위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베의 참석 결정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제재를 요구하는 미국의 의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 등 서방 각국 정상이 승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지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같은 대규모 보이콧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의 주도하에 서방 각국이 지난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 불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 올림픽은 반쪽 대회가 돼버렸다. 이번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승전 70주년 행사에 불참한다면 러시아의 체면은 크게 손상될 게 분명하다. 이럴 경우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화되고 신냉전체제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 위원장의 참석 여부도 주목된다. 김 제1 위원장이 참석한다면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 정부는 김 제1 위원장이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는 지난 1월 28일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20여 개국 정상이 참석을 확인했다”면서 “김 제1위원장도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김 제1 위원장의 승전 기념행사 참석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 러시아는 지난해 4월 북한의 부채 109억6천만 달러(2012년 9월 17일 기준)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약 98억7천만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줬다. 러시아는 또 북한이 무역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핵개발에 대한 유엔의 제재로 외국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숨통을 터준 셈이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선 모스크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서 러시아의 외교력을 과시할 수 있다.
러시아 일간지 [프라우다]는 ‘푸틴에겐 남·북한을 어떻게 화해시킬지 계획이 있다’는 제목의 기사(1월 20일자)에서 “미국은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가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푸틴이 평화 중재자가 된다면, 이는 의심할 여지없는 러시아 외교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만약 푸틴의 미션이 성공한다면,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의 초석이 될 거란 점에서 서방에 더블펀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주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아직까지 김 제1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현재로선 김 제1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 롤모델인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러시아를 방문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57년 당시 소련 방문을 시작으로, 중국과 유고슬라비아 등 다양한 국제행사에 활발히 참석한 바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지난해 11월 최용해 노동당 비서가 김 제1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양국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러시아 통해 국제무대 데뷔할 듯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서방 각국 정상이 이번 행사에 대거 불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만큼 김 제1 위원장의
국제무대 데뷔 장소로 러시아가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 제1 위원장으로선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소원해진 중국을
압박할 수 있다. 김 제1 위원장은 또 박근혜 대통령이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경우 남북 정상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 김 제1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한다면 2011년 말 북한의 최고 통치자가 된 이후 첫 외국 나들이가 되고, 중국보다 러시아를 먼저 방문하는 첫 사례가 된다. 김 제1
위원장으로선 폐쇄 국가 지도자에서 벗어나 국제 외교와 남북대화 무대에 당당하게 데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김 제1 위원장은 승전 기념행사
참석 외에 푸틴 대통령과의 양자 정상회담도 가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의 승전기념 행사에 참석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과 서방 각국 정상이 참석을 거부하는 행사에 한국만 참가해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다지고 러시아가 중재하는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이 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압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스크바를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는 어렵다. 미국은 소니 영화사 해킹 이후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또 미국은 비핵화 약속을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외교적 돌파구로 삼을 경우 미국의 전략은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중국, 승전기념일 행사로 일본 궁지로 내몰아
반면에 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 대통령 취임 후 푸틴 대통령이 한 차례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교관례상 박 대통령이 러시아에 갈 차례다. 또 승전 60주년 행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전례가 있다. 남·북·러 3국 협력 사업을 위해선 러시아의 협력을 얻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박 대통령이 김 제1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은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 없이는 성사가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 참석 여부를 놓고 앞으로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올해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외국 정상들을 초청한 가운데 베이징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거행할 계획이다. 2차대전의 추축국 일원이었던 일본은 나치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하다 결국 손을 들었다. 미국에서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 2일을 승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영국에서는 일본 국왕이 국민에게 항복을 공표한 날인 8월 15일을 승전 기념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대일 전승 기념일은 9월 3일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9월 3일을 승전 기념일로 삼는 이유는 일본이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뒤, 효력이 다음날인 9월 3일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를 대표해 시게미스 마모루 외무대신이 도쿄만 요코하마항에 정박해 있던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사인했다. 시게미스는 오른쪽 다리가 없어서 제대로 걷지 못했다. 시게미스는 1932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였을 때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때 투척된 폭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연합국에선 총사령관 자격으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서명했고, 미국·중국·영국·소련·호주·캐나다·프랑스 등 승전국 대표가 차례로 사인했다. 중국은 이에 앞서 일본군으로부터 먼저 항복을 받아냈다. 일본군은 1945년 8월 21일 중국 후난성 즈장현 치리차오에서 당시 국민당 정부군에 항복했다. 이마이 다케오 일본의 중국 파견군 부총참모장과 하시지마 요시오 참모 등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100만여 명의 중국 주둔 병력 배치도를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매년 9월 3일을 승전일로 기념해왔고 지난해에는 법정 국가기념일로 제정까지 했다.
중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와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를 공동 개최할 계획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2월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 개최에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2015년 함께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와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70돌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면서 “행사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러시아와 승전 70주년 행사를 함께 하려는 것은 양국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러 양국은 2차 대전의 아시아 및 유럽의 양대 주요 전장이었다”면서 “양국은 상대국의 기념행사에 지도자들이 서로 참석하는 것을 포함해 경축·기념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은 승전 70주년 행사를 과거의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군국주의적 야심을 보이고 있는 일본을 강력하게 견제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은 승전 70주년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속셈은 러시아를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는 것 외에도 미국의 동맹이자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을 고립시키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의도는 일본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토와 과거사 문제를 놓고 러시아를 확실한 우군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일본 겨냥한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
중국 정부의 또 다른 의도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고취시켜 공산당의 독재 체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국내 정치적 측면에서
항일투쟁 역사를 통해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고취하고 이를 통해 권력 독점을 강화해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승전 7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군사 열병식을 벌일 계획이다. 이번 열병식에는 처음으로 외국 정상이 대거 참가하고 각종 첨단 군사장비들을 선보여 중국의 드높아진 군사력과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장소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베이징 톈안먼 광장이 될 것이 유력하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건국을 기념해 국경절인 10월 1일 열병식을 해왔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건국 첫 해인 1949년부터 1959년까지는 매년 열병식을 개최했다. 중국 정부는 1960년 절약한다는 방침에 따라 5년 또는 10년에 한 차례 열병식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1964년 열병식을 마지막으로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열병식이 사라지는 듯했으나 1981년 덩샤오핑이 열병식을 재개하자고 제안하면서 건국 35주년을 맞아 1984년 열병식이 개최됐다. 이어 1999년 건국 5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개최한 데 이어 2009년 60주년 열병식을 개최하며 10년에 한 차례 열병식을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때문에 건국 기념이 아닌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벌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열병식은 무엇보다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이번 열병식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에 대해 갈수록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본에 겁을 줘 두려움에 떨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이어 “중국이 열병식을 통해 센카쿠 열도 국유화, 침략 역사 부인,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등 전후 질서 변경을 추진하는 일본의 도전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 정부가 아베 일본 총리와 김정은 제1 위원장을 초청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중국 언론이 최근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응답자가 아베 총리를 초청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 네티즌은 “아베 총리에게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하고, 과거 자기 나라가 저지른 잘못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면서 아베 총리 초청을 주장했다. 아베 총리가 중국 정부로부터 초청장을 받더라도 기념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은 낮다. 김 제1 위원장도 중국의 초청 대상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 제1 위원장의 참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 제1 위원장이 러시아의 행사에 참석한다면 중국의 행사에도 참석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가고 중국은 가지 않을 경우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의 경우 중국의 초청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과의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러시아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김 제1 위원장이 참석할 경우 남북 정상이 다시 조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도 패전 70주년을 맞아 중국의 공세에 맞서 평화를 앞세우는 외교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자국의 침략 역사가 부각되는 것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와 관련, 아베 총리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오는 4~5월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가 승전 7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에 대한 대응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역사 공세에 맞서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특히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전쟁 시발지인 하와이의 진주만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무튼 올해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 등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승전 70주년 기념 행사는 동북아 역학구도를 뒤흔들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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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한치의 양보 없이 처절한 공방전을 벌였으며, 결국 소련군이 승리했다. 이 전투에서 나치 독일군 14만7천여 명이 전사하고 9만1천여 명이 포로가 됐다.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루마니아·헝가리군도 30만여 명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소련군은 그보다 많은 47만8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민간인도 4만여 명이나 희생됐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차리치노였는데, 이시오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25년 자신의 성을 따 스탈린그라드(스탈린의 도시)로 바꾸었다. 이 도시는 스탈린 사후 1961년부터 다시 볼고그라드(볼가강 도시)로 불린다.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나치 독일에 유리했던 2차대전의 전세가 전환점을 맞았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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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차대전의 최대 피해국은 소련이다. 인명피해가 군인 880만 명을 포함해 2700만 명이나 된다. 미국(42만 명)과 영국(45만 명)은 물론이고 패전국인 독일(706만 명)보다 많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인지 나치 독일을 패배시켰다는 러시아 국민들의 역사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러시아 국민들이 1812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격퇴시킨 전쟁을 ‘조국전쟁’, 나치 독일을 패배시킨 2차대전을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조국전쟁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유럽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를 제정 러시아가 무찔렀듯이 세계 지배를 꿈꾸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을 소련군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굴복시켰다는 민족적 긍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서방 연합국들은 나치 독일이 패망한 것은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 덕분이라고 보고 있다. 쿠르스크 전투는 소련군이 1943년 7월 서부 쿠르스크에서 병력 130만 명과 전차 3600여 대를 투입해 병력 80만 명과 전차 3천여 대를 동원한 나치 독일군을 대파한 것을 말한다.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가장 먼저 점령한 군대도 소련군이었다. 소련군은 1944년 4월 30일 나치 독일 의사당에 적기를 꽂았다.
2차대전으로 국부 3분의 1 잃은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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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에 속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나치 독일과의 항복 조약이 비준된 5월 8일을 전승기념일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반면 옛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의 승전기념일은 5월 9일이다. 두 개의 승전기념일이 생긴 것은 나치 독일이 연합국과 소련을 상대로 각각 따로 항복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은 1945년 5월 7일 프랑스 랭스의 연합국 사령부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는데, 효력 발생 시점은 5월 8일 오후 11시 부터였다.
그런데 당시 이 자리에 소련은 참석하지 않았다. 전쟁 말기 연합국이 소련을 고립시키려 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스탈린은 이 항복문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연합군이 아닌 소련군이 2차대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나치 독일의 심장부는 베를린이기 때문에 항복문서는 베를린의 소련군 점령사령부에서 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도 스탈린의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빌헬름 카이텔 독일군 총사령관이 5월 8일 오후 10시43분 베를린 근교의 소련군 사령부에서 소련군 총사령관 게오르기 주코프 앞에서 항복문서에 다시 서명했다. 베를린과는 2시간 차이가 나는 모스크바에선 5월 9일 0시43분이었다. 이때 소련 최고회의(의회에 해당)는 승전을 공식 선언했다. 스탈린은 승전 기념 특별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매해 5월 9일을 승전 기념일로 삼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매년 승전일에 기념식을 갖는 등 경축잔치를 벌여왔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올해 승전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식을 벌일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는 10년 단위의 꺾어지는 해에는 외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한다. 지난 2005년 60주년 기념식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5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초청 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모두 65개국 정상을 초청했다. 각국 정상 중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도 포함돼 있다.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보좌관은 “승전 60주년 기념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는 2차대전 당시 모든 반(反)히틀러 연합국은 물론이고 가까운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 브릭스(BRICS) 국가를 포함한 크고 영향력 있는 국가 정상이 모두 초청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각국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도 거행할 계획이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각종 전차와 대륙간탄도미사일, 헬기를 비롯해 Tu-95M 전략폭격기와 초음속 전투기 Tu-160, Su-35 전투기, Tu-22M3 장거리폭격기 등이 총출동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정부는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통해 소련 붕괴와 함께 실추된 군사력이 복원됐음을 국내외에 과시할 계획이다. 러시아 정부는 승전 60주년 때 2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거창하게 행사를 거행했다. 당시 모스크바 중심가는 전승을 기리는 표어와 포스터, 화환, 대형 광고판과 현수막이 설치됐으며 붉은광장 상공에는 애드벌룬이 띄워졌었다. 러시아 정부는 당시 모스크바 상공의 비구름을 제거하는 작업까지 실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승전 70주년 행사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의 제재에 따른 외교적 고립을 돌파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러시아 정부는 2차대전에서 승리한 것이 소련 덕분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선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신년메시지에서 “2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미국이 히틀러에 맞서 연합해 세계 평화를 지켜냈다”면서 “러시아와 미국의 동반자 관계는 성공적으로 발전돼왔으며, 양국이 세계평화를 확고히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중재 나선 푸틴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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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의 거창한 승전 70주년 기념행사 계획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불참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군의 분리독립 운동 배후도 러시아라고 보고 있다.
유럽 각국의 정상도 미국에 동조해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의 참석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협상을 위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베의 참석 결정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제재를 요구하는 미국의 의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 등 서방 각국 정상이 승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지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같은 대규모 보이콧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의 주도하에 서방 각국이 지난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 불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 올림픽은 반쪽 대회가 돼버렸다. 이번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승전 70주년 행사에 불참한다면 러시아의 체면은 크게 손상될 게 분명하다. 이럴 경우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화되고 신냉전체제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 위원장의 참석 여부도 주목된다. 김 제1 위원장이 참석한다면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 정부는 김 제1 위원장이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는 지난 1월 28일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20여 개국 정상이 참석을 확인했다”면서 “김 제1위원장도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김 제1 위원장의 승전 기념행사 참석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다. 러시아는 지난해 4월 북한의 부채 109억6천만 달러(2012년 9월 17일 기준)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약 98억7천만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줬다. 러시아는 또 북한이 무역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핵개발에 대한 유엔의 제재로 외국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숨통을 터준 셈이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에선 모스크바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서 러시아의 외교력을 과시할 수 있다.
러시아 일간지 [프라우다]는 ‘푸틴에겐 남·북한을 어떻게 화해시킬지 계획이 있다’는 제목의 기사(1월 20일자)에서 “미국은 북한에 새로운 제재를 가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푸틴이 평화 중재자가 된다면, 이는 의심할 여지없는 러시아 외교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만약 푸틴의 미션이 성공한다면,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한반도 통일의 초석이 될 거란 점에서 서방에 더블펀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주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아직까지 김 제1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현재로선 김 제1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 롤모델인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러시아를 방문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1957년 당시 소련 방문을 시작으로, 중국과 유고슬라비아 등 다양한 국제행사에 활발히 참석한 바 있다. 러시아와 북한은 지난해 11월 최용해 노동당 비서가 김 제1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양국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러시아 통해 국제무대 데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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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러시아의 승전기념 행사에 참석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과 서방 각국 정상이 참석을 거부하는 행사에 한국만 참가해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다지고 러시아가 중재하는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이 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압박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모스크바를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는 어렵다. 미국은 소니 영화사 해킹 이후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또 미국은 비핵화 약속을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외교적 돌파구로 삼을 경우 미국의 전략은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중국, 승전기념일 행사로 일본 궁지로 내몰아
반면에 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 대통령 취임 후 푸틴 대통령이 한 차례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외교관례상 박 대통령이 러시아에 갈 차례다. 또 승전 60주년 행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석했던 전례가 있다. 남·북·러 3국 협력 사업을 위해선 러시아의 협력을 얻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박 대통령이 김 제1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은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 없이는 성사가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 참석 여부를 놓고 앞으로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올해 항일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외국 정상들을 초청한 가운데 베이징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거행할 계획이다. 2차대전의 추축국 일원이었던 일본은 나치 독일이 항복한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하다 결국 손을 들었다. 미국에서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1945년 9월 2일을 승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영국에서는 일본 국왕이 국민에게 항복을 공표한 날인 8월 15일을 승전 기념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대일 전승 기념일은 9월 3일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9월 3일을 승전 기념일로 삼는 이유는 일본이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뒤, 효력이 다음날인 9월 3일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를 대표해 시게미스 마모루 외무대신이 도쿄만 요코하마항에 정박해 있던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사인했다. 시게미스는 오른쪽 다리가 없어서 제대로 걷지 못했다. 시게미스는 1932년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였을 때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때 투척된 폭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연합국에선 총사령관 자격으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서명했고, 미국·중국·영국·소련·호주·캐나다·프랑스 등 승전국 대표가 차례로 사인했다. 중국은 이에 앞서 일본군으로부터 먼저 항복을 받아냈다. 일본군은 1945년 8월 21일 중국 후난성 즈장현 치리차오에서 당시 국민당 정부군에 항복했다. 이마이 다케오 일본의 중국 파견군 부총참모장과 하시지마 요시오 참모 등이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100만여 명의 중국 주둔 병력 배치도를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매년 9월 3일을 승전일로 기념해왔고 지난해에는 법정 국가기념일로 제정까지 했다.
중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와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를 공동 개최할 계획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2월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 개최에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과 2015년 함께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와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70돌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면서 “행사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러시아와 승전 70주년 행사를 함께 하려는 것은 양국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러 양국은 2차 대전의 아시아 및 유럽의 양대 주요 전장이었다”면서 “양국은 상대국의 기념행사에 지도자들이 서로 참석하는 것을 포함해 경축·기념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은 승전 70주년 행사를 과거의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군국주의적 야심을 보이고 있는 일본을 강력하게 견제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은 승전 70주년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속셈은 러시아를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는 것 외에도 미국의 동맹이자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을 고립시키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의도는 일본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토와 과거사 문제를 놓고 러시아를 확실한 우군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일본 겨냥한 중국의 대규모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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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 정부는 승전 7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군사 열병식을 벌일 계획이다. 이번 열병식에는 처음으로 외국 정상이 대거 참가하고 각종 첨단 군사장비들을 선보여 중국의 드높아진 군사력과 위상을 대내외에 알리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장소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베이징 톈안먼 광장이 될 것이 유력하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건국을 기념해 국경절인 10월 1일 열병식을 해왔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건국 첫 해인 1949년부터 1959년까지는 매년 열병식을 개최했다. 중국 정부는 1960년 절약한다는 방침에 따라 5년 또는 10년에 한 차례 열병식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1964년 열병식을 마지막으로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열병식이 사라지는 듯했으나 1981년 덩샤오핑이 열병식을 재개하자고 제안하면서 건국 35주년을 맞아 1984년 열병식이 개최됐다. 이어 1999년 건국 5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개최한 데 이어 2009년 60주년 열병식을 개최하며 10년에 한 차례 열병식을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때문에 건국 기념이 아닌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열병식을 벌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열병식은 무엇보다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이번 열병식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에 대해 갈수록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본에 겁을 줘 두려움에 떨게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이어 “중국이 열병식을 통해 센카쿠 열도 국유화, 침략 역사 부인,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등 전후 질서 변경을 추진하는 일본의 도전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 정부가 아베 일본 총리와 김정은 제1 위원장을 초청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중국 언론이 최근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80%가 넘는 응답자가 아베 총리를 초청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한 네티즌은 “아베 총리에게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하고, 과거 자기 나라가 저지른 잘못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면서 아베 총리 초청을 주장했다. 아베 총리가 중국 정부로부터 초청장을 받더라도 기념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은 낮다. 김 제1 위원장도 중국의 초청 대상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 제1 위원장의 참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 제1 위원장이 러시아의 행사에 참석한다면 중국의 행사에도 참석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는 가고 중국은 가지 않을 경우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의 경우 중국의 초청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과의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러시아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김 제1 위원장이 참석할 경우 남북 정상이 다시 조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도 패전 70주년을 맞아 중국의 공세에 맞서 평화를 앞세우는 외교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자국의 침략 역사가 부각되는 것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이와 관련, 아베 총리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오는 4~5월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가 승전 7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에 대한 대응 카드라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역사 공세에 맞서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아베 총리는 특히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전쟁 시발지인 하와이의 진주만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무튼 올해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 등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승전 70주년 기념 행사는 동북아 역학구도를 뒤흔들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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