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南北關係

박헌영 애인,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이강기 2015. 10. 19. 11:16
입력 : 2015.03.21 03:04
  •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

    南 "좌익", 北 "박헌영 애인"

  • 처형 후 아들마저 체코서 자살… 어디도 속하지 못
  • 한 비극적 삶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책 사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지음|돌베개|484쪽|2만원


처음엔 야릇하고 매혹적인 상상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중반 공개된 북한의 박헌영 공판 기록에 '현앨리스'라는 여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북한은 6·25전쟁 후인 1955년 박헌영을 '미제(美帝)의 간첩'이란 명목으로 처형하면서 현앨리스가 박헌영의 첫 애인이었으며 미국과 박헌영을 연결한 스파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현대사 전공인 정병준(50)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현앨리스는 1946년 미군정 군속으로 서울에서 민간인 편지 등을 검열하는 민간통신검열단에서 일을 하다가 '공산주의자와 결탁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추방됐다"면서 "남에서는 공산주의자, 북에서는 미국 스파이라는 상반된 주장 속에 있는 이 여자의 삶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몽양 여운형 평전' '우남 이승만 연구' '한국전쟁' '독도 1947' 같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다룬 묵직한 저작을 잇달아 낸 중견 사학자다.

◇"박헌영과 애인 관계? 가능성 낮아"

현앨리스는 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의 맏딸로 1903년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인 1907년 한국에 돌아와 이화고녀를 졸업하고 3·1운동 직후 망명한 아버지 현순을 따라 상하이로 떠났다. 박헌영과 만남은 이 무렵 시작됐다. 정 교수는 "박헌영과 현앨리스가 애인 관계였을 가능성은 낮다"고 추정했다. 박헌영과 현앨리스가 함께 상하이에 있었던 기간은 1921년 8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짧은 기간이었다. 박헌영은 현앨리스와 만나기 전인 1921년 봄 주세죽과 결혼했다. 현앨리스는 1922년 일본 유학생 출신 정준과 결혼했다. 1927년 이혼했지만 아들 웰링턴 정을 하와이에서 낳았다.

“현앨리스는 비극의 현대사를 투영하는 경계인”이라고 정병준 교수는 말했다
“현앨리스는 비극의 현대사를 투영하는 경계인”이라고 정병준 교수는 말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두 사람은 광복 후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현앨리스는 미군 군속으로 귀국해 박헌영을 만났다. 23년 만의 재회였다. 현앨리스는 이때 주한미군 내 공산주의자들과 박헌영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가 한국에서 추방된다. 이후 삶은 비극적이다. 미국에서도 남한에서도 용납되지 못한 현앨리스는 1949년 체코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1956년 '미국이 고용한 간첩'으로 몰려 박헌영과 함께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현앨리스는 좌익, 북한 스파이, 미국 스파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정체성을 강요당했다"고 했다.

미국·체코 문서 4년에 걸쳐 추적

1928년 현앨리스가 아들 웰링턴 정을 안고 있는 모습
1928년 현앨리스가 아들 웰링턴 정을 안고 있는 모습. /돌베개 제공

 

정 교수는 현앨리스의 삶을 추적하면서 기존에 잘못 알려진 사실도 밝혀냈다. 박헌영이 1929년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재학 시절 베트남의 호찌민 등 각국 혁명가들과 함께 찍은 것으로 알려진 사진이다. 책은 이 사진의 잘못된 사실을 고증하면서 시작한다. 정 교수는 현앨리스의 동생 현피터 회고록과 현순 목사 관련 기록 등을 확인한 후 이 사진은 1921년 무렵 중국 한인 유학생 모임인 화동한국학생연합회 학생들이 함께 찍은 것임을 밝혀냈다.

정 교수는 역사에 짧은 기록으로 남은 현앨리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4년여에 걸쳐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체코 비밀경찰국 문서보관소 등을 찾아 꼼꼼히 자료를 조사하고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체코 문서를 통해 현앨리스의 아들 웰링턴 정의 비극적인 삶도 알게 됐다. 체코 비밀경찰국 문서보관소 등에는 웰링턴 정의 모든 행적을 면밀히 기록한 수천장의 자료가 있었다. 정 교수는 "흥분했다"고 했다. 체코 문서에 따르면 웰링턴 정은 체코에서 외과의사가 됐다. 그러나 1956년 이후 북한으로부터는 국가 반역죄로 처형된 어머니의 아들로, 미국으로부터는 공산주의자와 연계된 인물이 되어 체코 당국의 요시찰 인물이 됐다. 이후 체코 비밀경찰국의 감시를 받다가 196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교수는 "현앨리스는 분단과 냉전이라는 한국 현대사를 거치면서 어디에도 깃들 수 없었던 경계인으로 비극의 현대사를 투영하는 인물"이라며 "그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 박헌영의 첫 애인이라거나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설명하는 방식은 한 사람의 삶을 잘못 소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1929년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때로 잘못 알려진 사진. 아래 가운데가 박헌영, 둘째 줄 오른쪽이 주세죽, 그 옆이 현앨리스다. 정 교수는 1921년 사진으로 고증했다
1929년 모스크바 국제레닌학교 때로 잘못 알려진 사진. 아래 가운데가 박헌영, 둘째 줄 오른쪽이 주세죽, 그 옆이 현앨리스다. 정 교수는 1921년 사진으로 고증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