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南北關係

北 ‘미사일 연구사’가 밝힌 북한군 미사일 개발 전모 - 신동아

이강기 2015. 10. 19. 11:21

[신동아]“잠수함 美 본토 접근해 핵 공격 남조선 타격은 ‘주체포’로 충분”

 

송홍근 기자

 

 

입력 2015-02-07 21:05:00 수정 2015-02-07 23:55:06

 

北 ‘미사일 연구사’가 밝힌 북한군 미사일 개발 전모

● 망명한 러시아 과학자들이 北 ICBM 개발 주역
● 미군 요격 피하는 多탄두미사일 실전 배치
● 잠수함탑재탄도미사일(SLBM) 역량 확충 주력
● ‘고난의 행군’ 직후 南 지원금이 北 군수산업 되살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지난해 6월 16일 북한군 잠수함에 탑승해 “적 함선 등허리를 분질러라”라고 지시했다.
나는 북한과 옛 공산권 국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북한에서 미사일 분야에 종사했다. 북한 노동당에서 일하다 최근 한국으로 탈북했다. 북한에 가족이 남아 있기에 신상과 북한에서의 직위, 탈북 시기는 밝힐 수 없다. 한국 시민이 북한 미사일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 글을 쓴다.

북한은 40년 전부터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옛 소련제 미사일을 가져다 해체해 모방하는 게 주된 연구·개발이었다. 연구사들이 엄청난 노력을 투입했으나 성과가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북한이 2012년 12월 12일 발사한 은하 3호.
‘미사일의 요람’ 제2과학원


1985년 10월 25일 김정일이 북한군 총참모장이던 오극렬을 데리고 제2자연과학원 전시관을 찾아 4시간 동안 현 실태를 요해하면서 “연구사들의 수준이 중학교 졸업 수준밖에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과학자들에게 최고의 연구사업·생활환경을 보장해주겠으니 국방과학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켜보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우리는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현 시대의 전쟁은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의 북한식 표현) 때와는 다르다. 전자전에 맞게 연구사업을 강화하면서 미사일 개발과 해안포를 비롯한 주체포의 자행화 및 장거리화에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에서는 주체포를 장사정포라고 하는데, 이 말을 서울에 와서 처음 들었다. 북한에서는 주체포 혹은 정사정포라고 한다.

제2자연과학원은 군사과학만 연구하는 곳이다. 일반 과학은 국가과학원이 관장한다. 김정일이 방문한 10월 25일은 제2자연과학원에서 창립기념일보다 더 큰 명절이다. 제2자연과학원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날’로 기념한다.

제2자연과학원은 국방위원회 직속이다. 국방위원회, 중앙당 군사위원회의 직접 지시를 받으며 당 지도는 조직지도부 15과가 맡는다. 제2자연과학원 원장은 군사칭호가 ‘대장’으로 인민무력부 1부부장, 제2경제위원회의 1부위원장을 겸임한다. 제2경제위원회는 군수제품의 계획·생산·분배 및 대외 무역을 관장하는 곳이다.

원장이 대장 계급장을 달고 인민무력부와 제2경제위원회 직위를 동시에 갖는 이유는 군과 제2경제위원회의 협조가 필요할 때 명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들의 군 계급도 상대하는 군 지휘관보다 높다.

제2자연과학원의 운영 자금은 국가 예산에서 지출하는 연구비, 제2경제위원회 산하 창광회사가 해외에 무기를 수출해 번 돈의 일부, 제2자연과학원 산하 제2연합무역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 자금, 외국에 연구사를 파견해 합동연구를 진행하거나 설계도면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 등이 활용된다. 현재도 이란, 나이지리아, 시리아 등에 북한 연구사들이 파견돼 무기를 개발한다.

제2자연과학원은 50개 넘는 분야별 연구소를 보유했다. 이곳에서 1만5000명 넘는 연구사가 일한다. 실험조수, 노동자를 포함하면 4만 명가량이 과학촌을 형성한다. 건설기업소와 농장, 목장 등 후방보장 시설도 갖고 있다.

현재 제2자연과학원 원장은 최춘식이다. 2012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1주기 중앙추모대회 때 주석단 김정은 옆자리에 앉은 인물이다. 추모대회 5일 전(12월 12일)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것을 치하하고자 자리를 그렇게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러 과학자에 극진한 대우

김정일은 1985년 10월 25일 108㎜ 주체포를 살펴보면서 구경을 확대하는 동시에 서울을 직사(直射)로 쏠 수준으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제2자연과학원이 가장 주된 사업으로 밀고 나갈 것은 각종 미사일 개발이라고 과업을 내놓았다.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때 로켓을 연구하는 제2자연과학원 산하 166연구소가 확장·개편됐다. 제2자연과학원 소속 연구소는 숫자로 호칭이 정해졌다. 185연구소는 전자공학, 144연구소는 금속공학, 122연구소는 기계화, 120연구소는 전기공학을 연구한다. 정밀기계를 연구하는 130연구소가 제2자연과학원의 모체다. 130연구소는 원래 국가과학원 수학연구소였는데, 정밀기계연구소로 역할이 바뀌면서 국방과학 연구를 맡았다. 이 연구소가 확장된 게 제2자연과학원이다.

또한 김정일은 “제2자연과학원의 비밀 보장을 위해 평양시 룡성구역 과학원 지구에 있는 모든 다른 기관을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조선중앙TV 방송탑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했다.

북한은 1988년 소련제 ‘지상 대 지상’ 스커드 미사일을 개조해 중거리미사일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 지상 대 지상 미사일을 한국에서는 ‘지대지 미사일’이라고 한다. 김정일은 당시 “우리의 국방과학 전사들이 큰일을 했다”고 치하하면서 “이제는 역량이 고등전문학교 수준에 올랐다”고 말했다. 또한 “전쟁 준비를 적극 다그치기 위한 미사일 연구 개발 사업을 더욱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 실험수, 노동자 등 전 직원에게 자신이 즐겨 입는 살구색 점퍼를 선물하면서 같은 옷을 함께 입자고 했다. 연구사들을 두고 ‘나의 가장 큰 믿음’이라고도 했다.

북한에서는 사거리 500㎞ 미만을 단거리, 500~2000㎞를 중거리, 2000㎞ 이상을 장거리미사일이라고 한다. 장거리미사일을 다(多)계단으로 엮은 게 한국식 표현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북한 다계단미사일의 산파는 소련 붕괴 후 북한에 망명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러시아 과학자들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소멸하면서 20여 명의 러시아 군사과학자가 북한으로 망명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들로, 당시 북한만이 사회주의를 지켰기에 망명한 것이다. 발동기(엔진), 동체, 연료, 송수신, 탄두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망라해 두뇌진을 이뤘다.

북한이 다계단미사일을 완성한 데는 이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러시아인 덕분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동 광복거리에 자리 잡은 아파트를 제공하고 옛 소련 시절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미국 달러로 제공했다. 이들은 166(로켓공학)·628(로켓엔진)연구소 연구사로 일하면서 북한 당국의 우대를 받았다. 다단계미사일 동체는 물론이고 비행거리 확장, 요격미사일 회피 후 타격 능력을 갖추는 데도 이들의 기여가 컸다. 북한 미사일 개발의 일등공신인 것이다.


다목적, 다탄두미사일

2000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 그때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1990년대 초 망명한 과학자들을 러시아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본인들이 원하면 보내주겠다”고 답했다는데,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그만큼 극진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 김정일이 강조한 것은 다계단미사일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또한 요격미사일에 맞지 않고 목표를 타격하는 다탄두 탑재 미사일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광명성1호의 시험발사는 원래 1997년에 이뤄질 계획이었다. 한국에서 대포동1호라고 부르는 미사일이 광명성1호다.

한국의 국방, 안보 관련 기관원들과 토의하면서 당혹스러운 게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다. 미사일 실물 사진을 보고 나서야 대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북한에는 ‘대포동’ ‘노동’ ‘무수단’이라는 미사일이 없다. 북한에 살 때 한 강연회에서 “미제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가 개발한 신형 미사일에 겁을 먹고 노동당에서 만들었다고 ‘노동 1호’라고 부른다면서 웃긴다”고 한 적도 있다. 함경남도 화대군의 로켓 시험발사장은 무수단리가 아니라 무수‘탄’리에 있다.
앞서 말한 대로 1997년 장거리미사일(광명성1호)을 발사할 예정이었으나 북한 외교부에서 “유엔을 비롯한 외국의 식량 및 물질 지원을 받는데, 발사를 진행하면 지원이 끊길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제기해 보류됐다.

1998년 7월 김정일은 “우리 인민에게 승리의 신심을 주고 적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7월 중순 제2자연과학원 회의실에서 각 연구소 연구사, 실험수, 노동자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첫 장거리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기 위한 결사대를 조직했다. 결사대 2000여 명은 곧바로 시험발사 준비에 돌입했다.
화대군 무수탄리 시험발사장으로 가는 모든 수송 장비는 비밀 보장을 위해 문화예술부 차량번호를 달고 나가 영화 촬영하는 것으로 보이도록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미사일은 일본 본토를 가로질러 북태평양상에 떨어졌다. 북한의 신문, 방송이 “우리의 기술과 자재로 발사한 첫 인공위성이 자기의 궤도를 따라 돌면서 전 세계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송출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물정을 모르는 일부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 노동자는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인데, 왜 저렇게 보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의문을 품었다.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평양 인민문화궁전 회의실(6000석 규모)에서 중앙당 비서이던 전병호 한성룡, 내각 총리이던 연형묵이 참가한 가운데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제2자연과학원과 소속 연구사, 실험수, 노동자, 인민무력부에 김정일의 감사가 전달됐다. 또한 김정일 명의의 표창장과 명함시계(김정일 이름이 새겨진 스위스산 고급 시계), 노력영웅칭호, 훈장, 학위 및 학직을 수여했다.

김정일은 감사문에서 “국방과학자들이 대학 졸업 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히면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장거리미사일을 세계적 수준에 맞게 연구·개발하고, 현대전에 맞는 무장 장비를 하루빨리 연구·개발해 인민군대의 전투력 강화와 전쟁 준비에 이바지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미사일 발사시험을 할 때 한국과 일본에서 요격해버린다고 하는데, 다탄두 연구에 박차를 가해 적이 요격을 시도할 경우 탄두가 분리돼 하나는 원 목표를 타격하고 분리된 다른 탄두는 요격미사일 기지를 타격하는 다목적 미사일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조선의 기상 만방에 과시”

북한은 현재 다탄두미사일을 그 나름대로 완성해 실전에 배치했다. 분리된 탄두가 적의 요격미사일을 유도하고, 요격미사일 발사 지점과 원래의 타격 목표를 동시에 공격하는 능력을 일정 수준 갖춘 것이다.

북한은 이후 한국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부르는 미사일의 개발 연구에 총력을 집중했다. 2006년 7월 4일 한국에서 대포동2호라고 부르는 미사일을 시험발사했으나 단 분리에 실패했다. 그해 10월 17일 제2자연과학원 산하 연구소들이 확장 공사에 나섰으며 관제센터를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동 과학촌 기지 안에 새로 건설했다. 제2자연과학원에서 위성을 연구하는 곳을 ‘10월17일위성연구소’라고 칭하는 까닭이다.

2009년 4월 5일 무수탄리에서 광명성2호라고 명명한 장거리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김정일, 김정은은 이날 10월17일위성연구소 관제센터에 직접 찾아와 발사 과정을 영상으로 지켜봤다. 김정일은 “국방과학자들이 대단한 성과를 이룩해 조선의 기상을 만방에 과시했다”면서 “오늘 기분이 좋아 과학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10월17일위성연구소 부소장이 “장군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해 가보로 간직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김정일은 “오늘 예감이 발사에 실패할 것 같아 사진사를 안 데려왔는데 과학자들의 요구이니 사진사를 부르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은 1시간가량 연구소 안팎을 둘러보면서 연구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사진사가 도착한 후 제2자연과학원 근무자들과 사진을 함께 찍었다. 김정일은 청년장군(김정은)도 같이 사진을 찍으라고 말했다. 연구사 대부분이 평양국방대학 졸업생이라는 얘기를 들은 김정일은 중앙당 간부들에게 “국방대학 졸업생은 나라의 귀중한 보배이니 잘 잘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시험발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훈장, 영웅칭호 및 준박사, 박사학위, 학직을 수여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동의 과학촌 기지가 더욱 확장됐다. 북한 당국은 룡궁동에 과학자 사택을 지어줬다. 룡성구역은 평양의 주변구역이지만 제2자연과학원에서 일하는 이들은 중심구역 대우를 받으면서 후방사업(자기의 초소에서 맡은 일을 잘 수행하도록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문제를 잘 보살펴주고 생활상 편의를 돌보아주는 일)도 제대로 공급받았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공개한 함경남도 신포 잠수함 건조 기지. 북한에서는 ‘봉대보이라’라고 한다.
북한 탄도미사일의 시초는 소련에서 지상 대 공중(한국식 표현으로는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1970년대 소련의 지상 대 공중(지대공) ‘드비나’ 미사일을 들여온 북한군 반항공사령부는 북한 하늘을 정탐하는 미국의 SR고속도고공정찰기(SR71)를 격추하겠다고 김일성에게 보고해 허락을 받았다. 공군사령부는 소련제 미그-21로 정찰기를 격추하겠다고 보고했다. 김일성이 두 곳 다 허락했는데 ‘자기의 미사일을 가지고 자기의 비행기를 격추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로 인해 김일성이 공군사령부와 반항공사령부를 합동하라고 지시해 반항공사령부가 공군사령부 산하에 소속됐다. 현재 북한의 지상 대 공중 미사일은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들의 연구 결과가 반영돼 레이더에 비행기가 포착됐을 때 전투기 암호가 북한군 것으로 드러나면 발사 단추를 눌러도 미사일이 발사되지 않게 돼 있다.


미그-21 격추 사건

지상 대 공중 미사일의 호칭은 100-1로 시작한다. 지상 대 지상(지대지) 단거리미사일은 500-1로 시작한다. 중거리 및 장거리미사일은 900-1로 시작하며 짝수가 아니고 홀수로만 나간다. 북한이 2012년 12월 발사해 은하3호를 지구 궤도에 올린 미사일의 호칭은 900-9다.

북한이 2012년 12월 12일 발사한 ‘은하 3호’ 잔해. 해군이 같은 해 12월 23일 변산반도 서쪽 150km 바다 속에서 찾아냈다.
북한 미사일의 본체에는 글자 ‘ㅈ’을 새기는데, 이는 ‘조선’을 줄여 표현한 것이다. 오래전에는 ‘MADE IN DPRK’라고 표기했는데,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란이 북한에서 수입한 미사일로 이라크를 타격했다. 이라크가 보복으로 북한 유조선을 침몰시켰는데, 그 후부터 무장 장비의 표기를 ‘ㅈ’으로 바꿨다.

북한 미사일 개발의 핵심은 러시아산의 모델을 기초로 삼아 비행거리를 늘리고 타격시간을 단축하며 탄두장약의 능력을 높이고 요격 회피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분야별로 능력을 업그레이드해 북한산으로 새롭게 바꾸는 게 목표라고 하겠다. 북한 미사일 개발의 최종적 목표는 지구의 끌어당기는 힘(만유인력)을 탈출했다가 다시 지구로 진입해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북한에서는 사거리 500㎞까지를 단거리, 2000㎞까지를 중거리, 그 이상을 장거리로 구분한다. 신형 미사일 연구 개발 원칙은 단거리를 기본으로 확충해놓고 장거리 다계단미사일로 미국이나 미국 편에 속해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려는 나라를 직접 타격할 수단을 갖추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전쟁 역사에서 본토가 공격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워싱턴, 뉴욕 등을 직접 타격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본토 타격이 가능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거나 전쟁 시 증원을 막을 수 있다고 여긴다. 한반도의 타격 목표는 주체포(한국식 표현 장사정포)와 단거리미사일로 초토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국군은 순식간에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거리미사일은 일본과 주일 미군기지, 일본에서 한국으로 병력이나 물자를 싣고 오는 배를 공격하는 게 임무다.


SLBM으로 美 타격 노려

요컨대 북한은 미국 본토 타격 능력 여부가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으로 여긴다. 한국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하는 다계단미사일이 핵탄두를 싣고 미국을 타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북한이 아직 핵탄두 소형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사실이 그렇다고 본다. 소형화, 정밀화가 힘들다.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소형화에 성공하더라도 목표를 타격하기 전 요격당할 확률이 높다.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상징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다. 그래서 북한이 최근 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수중 대 지상’ 미사일이다. 한국에서는 잠수함탑재탄도미사일(SLBM)이라고 한다. 잠수함으로 미국 본토 근처에 접근해 핵탄두를 실은 수중 대 지상 미사일을 발사해 미군이 요격하기 전 목표를 타격하는 게 현재 북한 미사일 연구 개발의 최대 목표다.

잠수함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 본토까지 가려면 핵 추진 기관이 필요하다. 북한은 아직 이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수중 대 지상 탄도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하려면 잠수함이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며 3000마력 이상이어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연어급, 상어급 등의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한국처럼 1000t급. 2000t급이 아니라 1000마력, 2000마력 식으로 표기한다. 한국의 1000t급이 북한의 1000마력과 같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함경남도 신포시 ‘봉대보이라’에서 4000마력 잠수함을 건조하는데, 완성됐는지는 내가 탈북한 탓에 알 수 없다. 만약 잠수함 건조를 완료했다면 태평양을 건너지 못할 뿐 미사일 탑재는 가능하다. ‘봉대보이라’는 잠수함 건조 기지를 가리키는 은어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을 진수했다는 서구의 일부 보도 등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껏 자체 기술로 잠수함을 건조한 적이 없다. 소련이 해체된 후 고철값만 주고 오래된 잠수함을 사와 수리, 개조해 사용하는 것이다.

북한은 잠수함을 이용해 동해, 서해에 진출한 미국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을 공격할 능력을 갖춘 지 오래다. 잠수함은 천안함 폭침처럼 어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요컨대 북한이 현재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잠수함탑재탄도미사일 능력과 각종 미사일에 핵무기를 소형화해 장착하는 것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북한 군수산업은 붕괴 직전이었다. 군수 공장이 다 죽었더랬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지원받은 돈으로 살아났다. 한국이 돕지 않았으면 북한이 그때 붕괴하지 않았을까 싶다.

 
구술·김준익 전 북한 노동당 간부
정리·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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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준익’은 신원 보호를 위해 사용한 가명이다. ‘신동아’는 3차례에 걸친 필자 인터뷰와 그가 작성한 문서 내용을 정리한 후 그의 감수를 받아 이 기사를 작성했다.

<이 기사는 신동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