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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진정한 국가 改革의 길 - 趙 淳(월간조선 2003년 11월호)

이강기 2015. 10. 23. 10:28

[時論] 진정한 국가 改革의 길

 

월간조선 2003년 11월호
 
● 改革은 實事求是의 긴 과정
● 국민의 의식과 통념을 바꾸는 길고 험난한 길
● 능력과 德性 있는 지도자가 기초 닦고 후계자가 長征해야 성공
● 보수성향 가져야 改革 가능


趙 淳
서울大 명예교수, 명지大 석좌교수, 학술원회원, 민족문화추진회장

改革은 사회의 골격을 고치는 작업

 改革(개혁)이란 무엇인가.
 
  改革이란 사회의 골격을 고치는 작업을 말한다. 기술의 변화, 인구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국제정세의 변화 등 국내외에 일어나는 변화에 따라, 사회는 間斷(간단)없이 변화한다. 최근에 와서는 변화의 속도가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자면, 사람의 생각과 意識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는 사회제도(이하에서는 institution이라 약칭하기로 한다)의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institution의 변화 속도는 느리다. Institution의 변화가 너무 느릴 경우, 그것이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 이때 사회의 구성원들이 institution의 변화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意識的으로 기존의 institution을 「파괴」하고 새로운 틀을 「창조」하는 것을 改革이라고 한다.
 
  Institution에는 成文부분과 不文부분의 두 가지가 있다. Institution에는 법령과 각종 규정 등의 成文부분과 관습이나 사회통념 등의 不文부분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고치기가 비교적 쉬우나, 후자는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 전자가 바뀐다 해도, 후자가 바뀌지 않으면 改革은 완성될 수 없다. 改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통념이 달라지고 행동양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改革의 내용이 국민의 정서에 융합되어야 한다. 따라서 改革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일이 소요된다. 그러므로 改革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長征(장정)이다.
 
  鄧小平의 改革은 1978년 이후 25년이 지난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드골의 改革은 그의 在任 7년 이후에도 그의 후배에 의하여 오랫동안 계승되었다. 대처 女史의 改革은 그의 在任기간 11년이 걸렸다. 한두 개의 입법만 가지고 改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改革은 위로부터의 변화요, 革命은 밑으로부터의 변화다.
 
  Instituion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그 發源이 위에서 시발하여 밑으로 내려퍼지는 경우도 있고, 밑에서 생겨나서 위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전자를 改革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革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革命의 경우에도, 사회의 틀이 항구적으로 바뀌기 위하여는 창조적인 改革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革命은 보통 기존의 틀을 파괴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틀을 창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은 크게 달라진 것같이 보이지만 실지로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革命 이후에도 본질적으로 큰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파괴(Destruction)가 많고 창조(Creation)가 적은 革命이나 改革은 끝내는 실패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틀이 나오지 못하면, 옛날의 틀이 다시 살아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改革정책은 항상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에 부딪친다.
 
  改革이란 항상 기득권의 富나 권력(즉, rent)을 박탈하여, 그것을 다른 계층에게 나누어 주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그렇기 때문에, 改革은 항상 기득권층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친다. 그 저항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改革을 주도하는 리더의 탁월한 식견과 정치 리더십, 그리고 상당한 時運을 필요로 한다.
 
  그 리더십이 리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경우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populist)의 방향으로 치닫는 경우에는 改革으로 인해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의 rent보다도 더 나쁜 rent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改革이 제대로 이루어지자면, 장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修己治人(수기치인)의 덕성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그 지도자를 받드는 강력한 개혁세력이 있어야 한다.
 
  모든 改革에 타당한 「改革의 一般理論」은 없다. 改革은 본질적으로 實事求是의 긴 과정이다.
 
  
  능력과 덕성 갖춘 애국자가 주도해야
 
  Institution은 나라마다 다르고 그것을 고쳐야 할 이유도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改革의 목적과 형태, 그리고 그것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 등은 천차만별이다. 改革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따라서 改革이란, 본질적으로 하나하나가 「독립적」이고 「구체적」이다. 改革의 「일반이론」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성공적인 改革에 공통성이 있다면, 改革을 주도하는 리더가 歷史意識을 가지고 實事求是의 정신으로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 리더는 상당한 이노베이터(innovator)여야 하고, 또 정치적으로 충분한 支持 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전반의 改革이 성공하기 위한 공통적인 조건은 있다.
 
  「改革의 일반이론」은 없지만, 나라의 면모를 고칠 만한 큰 改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古今東西를 막론하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우선 改革을 주도하는 리더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비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지도자의 꿈이다. 우리가 앞으로 지향할 사회의 모습과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道程에 관한 지도자의 큰 그림이다. 그 큰 그림, 그 꿈에서 重點的인 행동목표가 도출된다. 이것을 「戰略」이라고 한다. 그 전략에서 그때그때의 「戰術」이 나온다. 전술이 곧 「정책」이다. 따라서 정책이 잘되자면 타당성 있는 전략이 있어야 하고, 전략이 있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改革 지도자가 좋은 비전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아무나 비전을 가질 수는 없다. 비전을 갖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지도자가 私利私慾을 물리치고 「先憂後樂」하는 덕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 지도자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국가적인 규모의 改革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鄧小平이나 드골 같은 지도자가 중국이나 프랑스의 「再造의 功」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단순히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과 아울러 덕성을 갖춘 애국자였기 때문이었다. 덕성을 갖춘 애국자였기 때문에 비전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전략이 있었고,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전술, 즉 정책이 나올 수 있었다. 
  
  
  보수적 인물이 改革에 성공할 가능성 크다
 
  진정한 保守를 하기 위하여는 改革이 필요하다. 개혁정신 없는 보수주의자는 수구주의자이다. 보수성향 없는 진보주의자는 포퓰리스트이다.
 
  흔히, 改革은 진보주의자가 하고 보수주의자는 改革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큰 오해이다. 改革의 목적은 보통 전통의 좋은 점을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데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 못지않게 개혁적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改革을 추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수성향은 改革의 기준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항상 진보만을 외치는 改革 추진은 기준을 잃기 쉽다.
 
  반면, 항상 改革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수구주의자이다. 우익은 항상 보수주의자들이고 좌익은 항상 개혁주의자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오해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改革의 필요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극좌세력에도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주의자들이 많다. 북한이 一例이다.
 
  우리나라의 Institution의 특징은 무엇인가. 成文, 不文 할 것 없이 그 기초가 약하다. 너무 노후하여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발전하자면 나라의 각 분야에 걸쳐 改革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改革이 어려운 나라도 드물다.
 
  기초가 약하다는 것은 成文의 경우를 보면, 日帝시대의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외국의 것을 무조건 우리에게 移植(이식)한 것도 많아서, 서로 모순되고 우리의 정서나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법률과 규정의 제정이 충분한 연구를 거치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노후한 것이 많다는 것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낡은 것을 끝까지 고집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졸속으로 갈아 치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institution의 整齊性(정제성)과 기초가 약하게 된다. 
  
  
  역대 정권은 항상 改革을 표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국민은 사회의 관습과 전통을 아끼면서 무조건 국수주의로 흐르는 성향을 내비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오래된 전통도 서슴없이 팽개치고 무조건 외국의 것을 모방하는 성향도 강하다. 따라서 사회가 항상 극으로부터 극으로 요동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사회에는 질서와 恒心이 없고, 세대간의 단절이 어떤 나라보다도 심하다.
 
  역대 정부, 특히 문민정부 이래로 모든 정권은 改革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름대로 그것을 추진해 왔다. 「역사 바로 세우기」도 개혁지향적인 구호였고, 「제2의 건국」 역시 그랬다. 모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現 정부는 「참여」를 국정의 철학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것도 改革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대정권이 모두 改革을 지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改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자율적인 改革을 못 하고 있다가, 외국이나 외국기관의 요구에 의해 타율적으로 改革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례가 많다. 1894년의 甲午更張(갑오경장)은 일본의 강요에 의한 改革이었고, 1997년의 IMF 改革도 타율적인 改革이었다. 타율적인 改革에는 많은 코스트(cost)가 뒤따른다. IMF 改革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IMF의 改革은 우리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 부분적으로는 좋은 성과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전반적으로 그리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성공 半 실패 半인데, 날이 갈수록 성공 이야기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IMF 이전의 모든 病弊(병폐)가 되살아나고 있다. IMF 5년은 끝내 無爲(무위)로 끝난 것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의 해답에서 우리는 오늘의 경제현황에 대한 이해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역사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도 비전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대 대통령은 창업자로서 나름대로의 비전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의 비전은 너무나 흐리고 스케일이 작았다. 三選改憲(삼선개헌)을 한 사실이 이것을 말해 준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創業者의 업적이 중요한데, 李承晩 박사는 창업자로서, 후세의 기준이 될 Institution을 만들 역사적인 사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없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것은 그자신의 비극이자 한국역사의 비극이었다. 
  
  
 改革은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세스
 
  창업이 잘되지 못했으니 守成을 할 것이 없게 됐다. 朴正熙 장군도 스케일이 작았다. 그는 경제발전에는 공을 세웠으나, 維新정권의 수립으로 그 공을 망치고 말았다. 그 후의 대통령들은 모두 改革을 표방했으나, 玲瓏(영롱)한 비전이 있는 인물은 없었다. 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전략도 없었고, 전략이 없었기 때문에 정책에도 일관성, 합리성이 부족했다.
 
  역대 정권은 改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그 成文적인 부분만으로 보고, 몇 개의 입법만 하면, 改革이 완성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改革이란 하나의 이벤트(event) 가 아니다. 그것은 과정(process)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어서 국민의 통념과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 긴, 그리고 험한 과정이기 때문에 改革은 하나의 長征이라는 얘기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改革에 실패한 것은 경제개혁보다 정치개혁을 먼저 했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 인식에도 一理는 있지만, 좀더 기본적으로는 그가 改革이란 게 사회의 有機的인 프로세스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는 70년에 거쳐 구축된 소련 사회의 틀을, 불과 몇 달 동안에 날짜를 정해 놓고 기계적으로 改革을 추진하다가 실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이후, 改革 일정을 정해 놓고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다가 어떤 예상한 날짜가 오자, 『이제 IMF를 졸업했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改革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반영한다.
 
  역대 정권의 改革 주체가 너무 약했고, 정권의 5년 임기도 너무 짧다. 改革을 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비전이 없었고 힘마저 약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야당에 무슨 좋은 비전이 있어서 국정의 파트너로서 도움이 된 것도 없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당과 그들이 펼치는 정치를 가지고 제대로 된 개혁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것으로 나는 본다.
 
  나는 한나라당 명예총재 시절에 어떤 일간지에 『우리나라 정치의 틀은 모든 대통령을 실패로 이끌고, 모든 정당을 실패로 이끌고, 모든 정치인을 실패로 이끌면서, 국민을 괴롭히는 틀』이라고 쓴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한 것이 정치의 改革이다. 改革의 대상이 돼야 할 정치가 改革을 주도해야 하니 그 결과는 不問可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600년 동안 改革다운 改革을 한 적이 없다. 16세기 후반의 李栗谷이나 18세기의 實學派들은 좋은 비전이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정치세력이 없었다. 17세기에는 貢納(공납)을 개선하기 위한 大同法이 오랜 세월을 거쳐 도입되었으나, 그것은 큰 改革이라고 할 수는 없다. 1884년의 開化派의 쿠데타인 甲申政變(갑신정변)은 改革을 지향했으나, 그 비전 자체가 좋지 않았다. 1894년의 甲午更張은 옳은 改革이 아니었다.
 
  광복 후의 이야기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나라를 쇄신할 만한 改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낙관할 수 없다.
 
  改革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일은 무엇인가. 너무 거창한 改革 목표를 세우지 말라. 훌륭한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있고, 그 비전을 추진할 전략이 있고, 유능한 참모들이 정책을 개발하고, 이 모든 것이 굳건한 정치세력의 지지를 받는 상황이라면, 사회전반에 걸친 改革을 추진해도 좋다. 아니,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너무 큰 改革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改革보다도 사회의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단편적으로나마 할 수 있는 일거리가 많이 있을 것이다. 눈높이를 낮추고, 실행 가능한 것을 골라서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부분적인 성과가 합쳐지면 큰 성과가 된다.
 
  경제를 위한 정책의 기본은 경기회복이 아니라 국제경쟁력의 강화에 두어야 한다
 
  현재, 경제는 IMF 때 이상으로 어렵다는 소리가 있다. 불황 타개를 위해 경기부양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국제경쟁력의 강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경제를 다른 부문과는 별도로 떼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 경쟁력도 강화되어야 하고, 행정의 경쟁력도 강화되어야 하고, 교육·문화 언론·의료·경찰·외교·사법부 등 국민생활의 모든 부문의 경쟁력이 총체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아! 이 모든 분야에서 innovation이 너무나 적다. 나라의 각 부문에서 경쟁력이 다 처지고 있는 판에 경제에서만 경쟁력이 앞서라고 한다면 이것은 무리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危急存亡의 비상시국
 
  동북아 중심 국가, 동북아시아의 허브, 소득 2만 달러 등의 목표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아날로그 시대를 연상케 하는 진부한 목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제부터의 시대는 허브(hub), 스포크(spoke)의 시대가 아니라, 중심도 없고, 변경도 없는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심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차츰 기술이나 지식이 변두리로 내려오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동북아의 물류센터, 금융센터 등의 구상에도 현실성이 얼마나 있을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개인이나, 단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 방향이다. 광범위하게 창조와 파괴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경쟁 시스템을 창출해야 한다. 그 대신, 너무 미국 제도만을 모방해서도 물론 안 된다. 미국 제도에는 우리에 잘 안 맞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와 국민은 이 시점이 危急存亡(위급존망)의 非常時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비상한 각오를 하고, 국민도 정부에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우리 경제의 현황, 성장능력, 문제점 등에 대해, 면밀한 분석 검토를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문제가 IMF 때 이상으로 어렵게 됐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의 노동시장은 그때 이상으로 경직돼 있다. 모든 사람이 제몫 늘리기의 히스테리에 걸려 있다. 우리의 기업계에는 아직도 잠재 부실기업이 여전히 너무 많다.
 
  대기업의 회계 투명성은 PwC 라는 회계법인의 조사에 의하면 조사대상 36개국 중 꼴찌라 한다. 또 투자 성향이 낮은 이유에는 노사관계에도 있지만 기술수준의 진보가 느린 데에도 그 원인의 일단이 있다. 우리의 금융은 아직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기업대출은 적고 개인대출에만 치중함으로써 신용불량자가 330만 명이 넘고 있다. 
  
  
  어려울수록 원칙, 정도, 겸손, 인내 필요
 
  이번에 81만 명의 신용 불량자를 「구제」한다고 하니, 이상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이다.
 
  우리 국민의 투기 심리는 여전히 강하며, 어려운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에는 개선이 없다. 국민정신은 해이돼 있고, 사회에는 기강이 없다.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 미약하다. 그런데도 국론은 산산조각이 나있고, 정치권은 당쟁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IMF 이전으로 돌아가서, 기본적인 시각에서 나라의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사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의존할 곳은 원칙이요, 정도이며, 겸손이요, 인내일 것이다. 어려운 사정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밝히고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한다. 국민도 정부가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정부는 정부의 현상인식의 타당성을 誠意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알려줘야 한다. 정부가 내건 슬로건이나 공약 중 비현실적인 것은 과감하게 접어두고, 實事求是의 정신으로 與時俱進(여시구진)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대기업의 노조가 파업을 상습적으로 하고, 임금상승이 생산성의 증가를 웃도는 상태가 지속되는 한, 경제는 견딜 수 없다. 이것을 근로자와 국민에게 참을성을 가지고 설명해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 기업도 정부만 탓하지 말고 좀더 분발해야 한다. Innovation이 너무나 적다.
 
  우리가 좋든 싫든, 중국은 우리의 최대의 경제 파트너가 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우리의 발전전략의 중심이 돼야 할 것이다. 일본조차도 그렇게 느끼는 識者(식자)가 많다.
 
  중국은 우리의 경쟁국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높은 성장률을 성취할 것이다. 중국이 발전하면 우리에게 得(득)이 될 것인가, 失(실)이 될 것인가. 得이 되고 失이 되고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중국을 단순히 경쟁상대로만 생각하면, 우리의 희망은 없어질 것이다. 중국과 우리가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양국 간의 분업체제를 개발하면, 우리의 활로가 열릴 것이다. ●
월간조선 200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