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유대인 천국’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ihseo@chosun.com) 주간조선 2006년 3월 ‘뮌헨’의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 등…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6곳 설립 |
2월 9일 국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은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때 발생한 실화를 소재로 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로 구성된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잠입해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았고 대치 과정에서 선수들을 사살했다. 영화는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이스라엘에서 비밀리에 결성된 팀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아랍인을 제거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는 복수 과정을 보여주지만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싸움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즉 테러리즘에 맞선 테러의 종착역이 적어도 ‘평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 감독 스필버그가 7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쉰들러 리스트’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만들려고 했다지만, 관객은 주인공 애브너(에릭 바나)에게 감정이입을 해 이스라엘인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비애를 대리 경험하게 된다. 스필버그 감독은 ‘뮌헨’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세계적인 아젠다로 재확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당연히 스필버그를 비롯한 유대인이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부인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에는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있기에 배우 말론 브랜도가 1979년 잡지 인터뷰에 이어 1996년 유대인 사회자가 진행하는 CNN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서 “할리우드 영화계를 유대인이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을까? 명단을 살펴보면 정말 ‘아니, 이 배우가? 이 감독이?’라며 놀랄 정도로 많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유대인 배우로는 톰 크루즈(‘우주전쟁’ ‘미션 임파서블’), 해리슨 포드(‘인디아나 존스’ ‘도망자’), 커크 더글러스(‘OK목장의 결투’)와 마이클 더글러스(‘원초적 본능’ ‘월 스트리트’) 부자, 더스틴 호프먼(‘빠삐용’ ‘레인맨’), 아담 샌들러(‘웨딩 싱어’), 벤 스틸러(‘미트 페어런츠’), 데보라 윙어(‘사관과 신사’), 베트 미들러(‘스텔라’), 골디 혼(‘죽어야 사는 여자’), 위노나 라이더(‘가위손’), 내털리 포트만(‘스타워즈’) 등이 있다. ‘사관과 신사’에서 열연한 데보라 윙어는 1971년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일했고 여군에 입대해서 몇 개월간 복무하기도 했다.
감독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E.T.’ ‘죠스’), 우디 앨런(‘애니 홀’ ‘맨해튼’), 올리버 스톤(‘JFK’ ‘닉슨’), 스탠리 쿠브릭(‘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로만 폴란스키(‘피아니스트’), 배리 레빈슨(‘레인맨’), 시드니 폴락(‘아웃 오브 아프리카’), 밀로스 포먼(‘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마이크 니콜스(‘졸업’), 엘리야 카잔(‘에덴의 동쪽’), 아서 펜(‘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로버트 와이즈(‘사운드 오브 뮤직’), 윌리엄 와일러(‘벤허’), 빌리 와일더(‘사브리나’), 마이클 커티즈(‘카사블랑카’), 리처드 도너(‘수퍼맨’), 브라이언 싱어(‘유주얼 서스펙트’) 등이 있다. 거장 스탠리 쿠브릭의 미완성 유작이자 톰 크루즈가 주연한 ‘아이즈 와이드 셧’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완성했던 데에는 ‘유대인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일찍부터 할리우드에 스며든 유대인 뿌리는 20세기 초 할리우드에 세워진 메이저 영화사 7곳 중 6곳이 유대인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불을 붙인 사람은 1912년 유니버설 영화사를 설립한 유대인 칼 래믈이다. 독일의 시골 라우파임에서 태어난 그는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20년간 시카고, 보스턴 등에서 의류장사를 하다가 1909년 영화사업에 손을 댔다. 그가 세운 유니버설 영화사는 모피상 출신 유대인 마르쿠스 로웨를 동업자로 삼아 세력을 확장했고 유대인 감독 세실 비 데밀을 기용해 ‘십계’ ‘삼손과 데릴라’ 등과 같은 대작을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 1914년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 아돌프 주커는 제리 라스키와 함께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세웠다. 역시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 윌리엄 폭스는 세탁소를 경영하다가 1935년 20세기 폭스 영화사를 세웠다. 또 러시아계 유대인 루이 메이어는 사무엘 골드윈과 함께 1922년 MGM영화사를 설립했다. MGM은 당대 최고의 유대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주연 영화를 연속 흥행시켜 할리우드 최대 영화사로 자리 잡았다.
폴란드계 유대인 해리 워너는 볼티모어에서 소형 극장업을 하다가 동생 잭 워너와 함께 1925년 워너 영화사를 세웠다. 또 유대인 해리 콘은 1924년 형제와 함께 CBS영화사를 설립했는데 나중에 콜럼비아 영화사로 개칭됐다.
유일하게 유대인이 세우지 않은 디즈니(1923년 월트 디즈니 설립)도 지금은 유대인 마이클 아이스너에 이어 로버트 아이거가 운영하고 있다.
1994년 아이스너에 의해 월트 디즈니 영화사의 2인자가 됐지만 사장으로 승격되지 않았던 유대인 제프리 카첸버그는 디즈니를 떠날 결심을 했다. 실의에 빠진 카첸버그를 위로한 사람은 바로 유대인 친구 스필버그였다. 두 사람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함께 구상했다. 이들은 세 번째 공동출자 경영자로서 스필버그의 유대인 친구인 데이비드 게펜을 영입했다. 1995년 12월 감독은 스필버그, 애니메이션은 카첸버그, 음악은 게펜이 담당하는 ‘드림웍스SKG’가 탄생했다. SKG는 세 사람의 이름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제럴드 레빈은 미디어·오락 기업의 CEO 중에서 자신이 가장 유명한 유대인임을 스스로 밝힌 인물이다. 레빈은 1993년 1월 타임워너 CEO를 거쳐 2000년 1월부터 미디어 오락 산업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AOL 타임워너 CEO를 맡았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판에는 왜 이토록 유대인이 많은가? 먼저 돈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풍부한 상상력과 탄탄한 자본력을 가진 유대인에게 돈을 벌기 위해 좋은 산업임이 틀림없다. 이들은 강한 협동심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배우, 작곡가, 배급자, 극장주로서 ‘종합 예술’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감독 등의 60% 이상이 유대인이다. 오죽 했으면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캐린 존슨을 유대인식으로 바꿨겠는가.
또 유대인은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뮌헨’처럼 영화를 통해 ‘홀로코스트’ ‘테러’ 등으로 점철된 자신들의 억울한 역사를 세계에 알리려고 했다. 워너가 독일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독일에서의 4년’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다이 하드’에서 유대인 브루스 윌리스가 동독인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며 ‘인디아나 존스’에서 유대인 해리슨 포드가 나치와 대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촬영기와 영사기를 발명한 사람은 분명 유대인이 아니었다. 1903년 워너 형제는 에디슨의 중고 영사기를 1000달러에 사서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1909년 에디슨의 제너럴 영화사는 워너 형제를 고소했다. 이때 워너 형제는 동부와 달리 상대적으로 법이 정비되지 않은 서부의 LA로 와서 영화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리 포레스트, 데오도르 케이스 등 두 명의 기독교인이 발명한 유성영화 기계를 훔쳐서 알 존슨이 주연한 ‘재즈 싱어’라는 최초의 유성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할리우드 밖에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유대인은 무궁무진하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유대인으로는 아인슈타인, 마르크스, 프로이트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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