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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선생은 미국 비정부기구 디펜스 포럼재단 초청으로 10월 27일부터 11월 5일까지 8일간 한국 망명 후
처음으로 워싱턴을 방문,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당국자들을 비롯해, 미 상하원 의원, 언론계와 학계 및 교민관계자들과 폭넓게 접촉하고 북한
실태와 북한민주화에 대한 소신과 견해를 피력했다. 「시대정신」에서는 황장엽 선생이 귀국한 뒤인 11월 18일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통일정책연구소(황 선생은 이 날짜로 연구소 이사장직을 사임했다.)를 방문해 북한민주화를 위한 전략, 세계민주화 문제,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
그리고 본인의 철학과 청년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 등에 관한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이날의 인터뷰는 한기홍 시대정신 발행인이
질문을 하고 황장엽 선생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고 손광주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배석하였다. 다음은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북한민주화 문제
한기홍(이하 한) : 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신 지
만 6년 6개월만에 미국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번 미국 방문의 의의와 성과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장엽(이하
황) : 미국 방문의 성과와 의의에 대하여 오래 생각해 본 적은 없고, 다만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한번은 갔다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가서 한 번 보기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방문기간이 너무 짧다보니 큰 기대를 걸지 않았고 또 여유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미국에 한 번 갔다왔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지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으로 북한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변화의 기준을
말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 : 물론 변화가 있지요. 변화가 있기는 있는데, 그 변화가 어떠한
변화인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즉, 무엇을 변화의 기준으로 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 변화의 기준은 북한민주화를 놓고 보아야 됩니다. 그러면
북한민주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수령절대주의 독재를 제거하는 것, 이것을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특히
인권유린을 하는 몇 가지 문제들에서 최소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탈북자 문제입니다. 탈북자들을 체포 송환하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없어져야 해요. 탈북자 문제를 취급하는 데서 관대하게 자유로이 허용했다던가, 또 정치범수용소, 소위 통제구역이라고 하는 것을 철폐했다면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변화는 아니고 변하자고 하는 전제조건으로 봐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있다 해도 그것이 바로 김정일
독재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김정일 독재체제가 그냥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인권유린과 관련해서 변한 것이 있어야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은 변화는 김정일 독재체제를 허물어버릴 수 있는 전제조건이 하나 마련되었다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북한의 농촌경리(농업제도)에 변화가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농촌경리에서 협동제가 변하지 않으면 변화라고 말할 수
없어요. 북한이 계속 사회주의 협동경리로 그냥 놔두고 있는데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냐 하는 것입니다. 협동경리를 개인경리로
고쳤다던가, 또는 소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인정했다던가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영세기업의 변화가 있다고 해서
독재체제 자체가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 전에도 이런 건 다 있었습니다. 오히려 장려를 했지요. 그러나 이런 변화는 독재체제를 허무는
데서 꼭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이런 데서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들
합니다. 잘못된 견해입니다.
한 : 만일 북한의 변화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지엽적이고 현상적인 것이라면 그동안 지난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실 수 있겠습니까?
황 : 그런 건 평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똑똑한 기준도 없이
자꾸 변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요. 중요한 것은 왜 변화가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재철폐에 필요한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독재체제 철폐를 기준으로 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선
독재체제를 그냥 두고서라도 인권유린이 철폐되고 인민들의 생활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인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협동경리가
개인경리로 전환되고, 소상인 소기업의 경제활동이 자유로워지고 그 다음 단계에 가서 독재체제를 허물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된 테두리 내에서의 경제개혁은 그 자체로서는 독재체제 붕괴의 요인으로 될 수 없지만 북한을 민주화하려는 견지에서 볼 때에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지금까지와 같이 주민 이동의 자유가 엄격히 통제된 조건에서는 주민들을 민주주의적으로 각성시키고 반체제 운동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어요. 그러나 제한된 경제개혁이라도 실시하면 주민의 약 50%가 경제활동에서 자유를 가지게 되고 시장을 통하여
정보교환과 협조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정일 독재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제한된 경제개혁을 진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김정일 독재체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붕괴시키는 데서 무엇보다 먼저 실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업으로 됩니다. 이러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서 먼저 중점을 두고 진행해야 할 일이 북한통치집단의 범죄적 행위를 국제적으로 제한하는 한편, 북한민주화에 도움이 되도록 대북
원조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것입니다.
한 : 남북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이른바 ‘통일비용’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통일에 대해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 : 그건 간단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통일도 하기 전에 ‘통일비용’을 걱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통일이 중요하지, 통일비용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통일비용부터 걱정하는 것은
사고하는 방식부터 틀렸다고 볼 수 있어요. 통일비용에 대해서 말한다면 비용이 크게 들 것이 없습니다.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왜
그런가. 김정일 체제를 들어내고 개혁과 개방을 실시한 다음에는 우리 한국에서 그냥 줄 수 있는 것을 주면 돼요. 그러면 우선 그쪽(북한)에서
생활이 안정됩니다. 그 다음에 북한에 자원이 들어가고 기술이 들어가고 인재가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 건 부담이 될 것도 없어요. 지금 우리
자본이 중국에 들어가고 베트남에도 들어가고 하는데, 이런 자본을 우리 땅인 북한에 우선 들여보낸단 말이에요. 중요한 것은 우리 한국이 들여보낸
자본과 기술과 인재들을 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뒤에 남북의 분계선은 그냥 둬두고, 북한 주민이 마음대로 남한으로
넘어와 살지는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남북이 왕래를 하는 것입니다. 남북이 서로 허가증을 받고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라고 해도 지금에 비한다면 자유왕래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다음에는 지금 북한에 공짜로 주고 있는 식량을
연 200만 톤 정도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오래 가지 않아요. 북한의 농촌경리만 바꾸면 한 두해 지나면 인차(금방) 해결됩니다.
베트남과 중국이 개인농으로 바꾸고 식량 수출국이 되지 않았어요? 그저, 김정일 독재체계만 허물어지면 자본이 들어가고, 기술이 들어가고, 인재가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한 10년이나 15년 어간에 남한 경제를 따라오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통일비용
걱정하는 사람들, 그런 공연한 걱정부터 하지말고 어떤 방식으로 통일할 것인가를 먼저 걱정해야 해요. 자꾸 독일의 예를 드는데, 우리가 독일의
경우와 같은가? 독일의 실정을 모르면서 자꾸 그래요.
한 : 작년 북한의 신의주 특구 구상의 좌절,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실패, 핵보유 실토, 또 일본인 납치 시인 등 일련의 사태진전은 김정일 정권에게 대단히 불리한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선생님께서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현실적 경로에 대해 누구보다도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계신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세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황 : 그건 간단하게
정리하기가 힘든 일인데……. 앞으로 김정일 독재체제가 허물어지고 그것이 민주주의적인 원칙에서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방향에서 개혁과 개방을 실시하게
되면 기본 문제는 해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독재체제를 그냥 두고 개혁을 하는 것, 그 체제 안에서 개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되면 무엇이 가능한가 하면, 내부를 와해시킬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형성됩니다. 두 번째 단계에 가서는 중국을 떼어내야
합니다. 중국을 떼어 내는 게 힘들지요. 힘들지만 가능하다고 봐요. 중국과 북한의 동맹관계는 김정일 독재집단의 생명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 독재집단과의 동맹관계를 청산하고 국제 민주역량과 긴밀히 협조하게 되면 북한 독재체제는 정치·경제·사상적으로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되어
곧 붕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좀 어렵지만, 하여튼 중국을 떼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중국을 떼어내는 조건에서
중국의 연변지역이나 어떤 지역에 탈북자들의 지역을 만들고, 그것을 기지로 해서 내부조직과 연계를 가지고 북한 내부를 분열시켜야 됩니다.
내부를 분열시키게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군대입니다. 군대 하부단위의 병사들이 일어나면, 그때는 여기저기서 겉잡지 못할 혼란상태가
조성되고 그때 평화유지군이 들어가야 합니다. 평화유지군이 들어가면, 그때는 반항세력들이라는 게 기껏해야 소총으로 반항하는 것들일 겁니다. 그런
혼란 상태에서는 핵무기를 쓸 수 없습니다. 그 정도 반항세력은 평화유지군이 얼마든지 진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력을 진압하고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고 개혁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평화통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실현됩니다. 그 다음은 남북의 격차를 없애는 단계입니다.
그 단계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 자본과 기술과 인재가 더 잘 들어가게 해야 하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여기 민주주의 역량들이 가서
봐주고 해야 될 것이 많아요. 남북의 격차를 없애는 제도를 세워야 될 시기에 가서는 여기 우리 민주주의 역량들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어쨌든 중국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중국에 이익을 줘야 합니다. 위협도 하고 압박도 가해야 하지만 또 이익도 줘야 돼요. 그런 경우에는
민주주의 원칙에서 외부의 간섭 없이 우리의 민족통일을 빨리 실현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남북이 연방제를 실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한 : 북한민주화의 원론적 주체는 북한 인민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수령절대주의로 세뇌되어온 북한
인민들이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 데 들고 일어서는 것은 어려움이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북한민주화의 실질적 주력은 누가 되겠습니까? 또
북한에 변화 상황이 도래한다면 누가 또는 어떤 세력이 실질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 : 그래서 그런 세력을
지금부터 만들어야 됩니다.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동시에, 우리가 당장 능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조직인 우리 탈북자들의 조직이 있고, 또 남한의
민주주의 역량이 있고 해외동포 조직도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를 세우고 해나갈 때는, 북한사람들이 물론 양적으로도 많고 그 사람들을 주체적으로
내세워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한국이 북한민주화의 기지이고 하니까 한국에 나와 있는 탈북자 조직과 한국의 진보적 조직을 합해서 작용을 하는
것을 1차적인 과업으로 내세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 : 8월에 6자 회담이 있었고 12월 중에도 다시 6자 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미국 일각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 체제를 보장해 줄 수도 있다’는 이른바 체제보장 의견이 있고
선생님께서는 이번 방미 기간에 이에 대해 비판적인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황 : 그건 이래요. 민주주의 원칙은 주권재민입니다. 민주주의적인 원칙을 져버리고 큰 나라들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체제를
보장해준다고 흥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핵무기 계획을 취소하게 되면 독재체제 유지를 보장해준다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건
민주주의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독재를 반대하는 투쟁도 북한의 인민이 해야 되는 일이고, 그걸 우리가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 옳습니다. 특히 남한은 같은 민족이고 동포로서 북한민주화의 주체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핵을 포기하면 체제보장을 해준다고 할 때는 무슨 권리를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외교적인 전술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놓고 가령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외교는 상대를 속이기도 하고 전술도 쓰고
그때그때 일정한 양보도 하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반드시 ‘미국의 정책이 옳지 않다’하는 결론을 내리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그런 흥정이 옳지 않습니다.
한 : 그리고 제2차 6자 회담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전망을 해주십시오. 또 6자 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변화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황 : 지금 중국이 중재 역할을 나선다고
그래요. 중국이 북한의 동맹국인데 어떻게 중재 역할을 하겠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은 평화적으로 북한을 핵무장 시키자는 거요. 내가 추측컨대
지금 북한은 필요한 수준 이상의 핵무기를 다 제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중국은 북한에 가서 ‘이제 핵을 덜
만들면 어떻겠는가. 지금 너희에게 중요한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경제원조가 아닌가. 미국으로부터,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하고 권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미국에 대해서는 ‘우리 중국이 북한에게 핵을 만들지 못하도록 설복했다. 그래서 북한에게 핵을
취소하도록 했다’는 식으로 나갈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부시 정권은 ‘이번에도 또 우리가 압력을 가한 결과 중국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했고, 김정일은 핵을 포기했다’는 식으로 타협하고 선거에서 표를 얻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개되는
조건에서는 북한이 남한을 계속 조여들어 가면서 남한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말로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위협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기(남한)도 친북화 될 수 있습니다. 또 만약 일본과 한국이 다 중국에 쏠리게 되고, 일본과 한국이 미국과는 멀어지게 되면 중국에
결정적인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이 회담이라는 게 외교적 전술과 관련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이렇게 저렇게 말을 보태서 말려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지금 한국의 정치가들이 자꾸 친북 쪽으로 나가는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느냐. 김정일이 계속
무력을 가지고 위협하는 데 있어요. 대남 공작도 성과가 있지만 기본은 무력으로 위협을 하는데 있습니다. 김정일이 무력으로 위협하는 데로부터
남한의 새 세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갈망하게 되고 전쟁을 무서워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내놓고 무서워한다고 하면 창피한 일이니까
‘우리가 더 강하다. 강하기 때문에 북을 도와주면서 변화시키자’고 하면서 변명을 하지만, 사실은 무서워서 자꾸 굴복해 들어가는 겁니다. 일본도
그래요. 일본도 무력위협이 무서우니까 (총리가)김정일을 찾아가고 그래요. 이렇게 되니까 정치인들이 그런 흐름에 자꾸 편승하여 선거에서 표를 더
얻으려고 하고, 또 정권을 잡은 다음에는 그게 더욱 반작용해서 더욱 빨리 친북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부 단순한
사람들은 ‘시간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김정일 독재체제는 어차피 멸망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오로지 우리에게만
유리한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 단결하고 한-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해서 북한으로부터 중국을 떼어내면 몰라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지금처럼 북한, 중국과 계속 타협해 나가면 앞으로 얼마든지 북한 주도로 통일될 수 있어요. 왜 그런가? 중국의 위협이 계속
장성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위력도 장성합니다. 그런 조건에서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위력은 약화됩니다. 그러면 지금은 북한이 빌어먹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부유해지고 힘이 세지면 경제원조도 더 해줍니다. 이렇게 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동맹이 강해지고, 일본과 한국이 더 중국에
의존하게 되는 조건에서 중국이 어딜 내세우겠어요? 북한을 내세워서 남한을 통일시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결코 우리에게만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 민주화 문제
한 : 선생님께서는 9.11 테러 이후
저술하신 『세계민주화와 인류의 마지막 전쟁』(시대정신 출간)에서 반테러 전쟁을 반독재 전쟁으로 확대하여 세계를 민주화하는 데서 중요한 출로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선 이라크 전쟁의 의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 : 미국이
2001년 9.11 반테러 전쟁을 제기한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국경에 관계없이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테러라는 것이 본질에 있어서는 독재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었고 또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독재의 본질적 특징은 독점과 폭력이 결합된 데 있고 그 뿌리는 이기주의입니다. 독재자들은 사회공동의 이익, 인류공동의
이익을 독점하고 자기의 독점적 지위를 비인간적 수단인 폭력에 의거하여 유지하게 됩니다. 9.11 테러가 발생하니까 그것을 문명간의 충돌이다,
종교간의 충돌이다 하면서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현상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교마다 교리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사리사욕을 초월한 절대적인 신성한 존재의 의도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데 공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탈을 쓴
독재집단은 종교교리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기주의적 독재를 위하여 종교적 신앙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민주화를 추진시킬 주체는 평화와 민주주의,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하는 세계 인민들이며 투쟁대상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집단입니다.
독재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민주화하려면 반드시 세계에서 독재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세계를 민주화하기
위한 투쟁은 본질상 독재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이 됩니다. 이번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본질상 세계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세력과 종교의
탈을 쓰고 이기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려는 독재정권과의 투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대테러 전쟁은 반독재 투쟁으로, 또 세계를 민주화하는
투쟁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한 : 최근 이라크 전후 처리를 둘러싸고 후세인 축출 이후의 이라크 재건문제에 대한 미국의
계획 미비나 미숙함이 일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황 : 이번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부족한가? 9.11 정신, 즉 반테러 정신을 가지고 일관되게 대의명분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앞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처음부터 민주주의적인 원칙을 계속 강조하면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전쟁의 대의명분을 세웠어야 했습니다. 세계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견지에서 후세인 독재정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상전부터 전개해야 합니다. 예컨대 ‘사상전 사령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이것의
역할을 강화해가면서 이라크를 민주화하는 방향에서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평화유지군도 무장한 군대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모아 그저 연합군을
조직할 것이 아니라 먼저 사상군을 조직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 세 가지입니다. 정신적인 힘, 물질적 힘, 사회협조의 힘, 이 세
가지입니다. 먼저 적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적의 정신부터 공격해야 합니다. 즉 적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 시켜야 합니다. 적의 인권유린 행위들을
공격해야 돼요.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적의 인권유린 행위를 먼저 공격해야 합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는가, 못 가졌는가를 가지고 자꾸 따지게 되면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독점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오게 돼요. 작은 나라는 대량살상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작은 나라가 자기를 지키려면 오히려 더 무장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권을 옹호하는 경찰은 무장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자는 무장해제 시켜야 된다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원칙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먼저 후세인 정권이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집단이라는 사실을 각성시켜 전쟁의 대의명분을
충분히 세우고, 그것을 계속 강조해나가야 되겠는데, 미국 사람들이 힘만 앞세우는 것이 부족한 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힘을 가지고 있어도
대의명분 사업, 상대를 정신적으로 무장해제 시키는 사업이 약할 때는 계속 후과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이 아주 좋은 일을 해
놓고서도 전후 처리에서 말썽을 일으키게 되고, 또 각성되지 않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전후 처리 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비난하고 있어요. 사상전을
앞세우고 이라크를 민주화하는 데다 화력을 집중해야 되겠는데, 계속 총만 가지고서 치안유지를 하자고 하니까 독재의 뿌리가 남아서 자꾸 돋아나는
것입니다.
한 : 이라크 전전과 전후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만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이 UN 중심의 역할 확대 등을
주장하면서 미국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오며 변화된 시대에 UN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없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 : 독재의 뿌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동맹군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적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소홀히 하다보니까 열강들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자꾸
자라나게 되는 것이지요. 프랑스라든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자꾸 견제하는 방향에서 작용을 하면서 세계 여론에 의거하여 자기 이권들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엔이 세계의 일반적인 모든 나라들의 상부구조이다 보니까 유엔도 다른 나라들과 영합하게 되고, 또 유엔이 자체로 실질적인 힘이
없습니다. 앞으로 세계를 사상적으로 민주화하는 조건에서 유엔이 힘을 발휘하고 또 미국이 그런 방향으로 유엔을 이끌고 나가는 식으로
변화하면 좋지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간단하게 결론짓기는 어렵습니다.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봅니다.
한 :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세계화, 세계민주화, 인류 공동체로 진전하는 데서 견지해야 할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황 : 그 문제는 세계의 정치를 민주화하는 문제, 경제를 민주화하는 문제, 사상문화를 민주화하는 문제가
포괄적으로 걸려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현 시기 전세계적 범위에서 민주주의와 독재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선차적인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를 개선하고 완성하는 데서 이 시대 진보의 출로를 찾아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냉전의 종식과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로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가 종국적으로 승리한 것처럼 생각하면서 깊이 반성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소련의 사회주의 독재에 대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승리로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투쟁이 끝난 것이 아니며 소련식 사회주의가 붕괴되었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투쟁대상인 독재 자체의 뿌리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독재의 뿌리는 사회공동의 이익을 독점하려는 이기주의와 결부되어 있고, 이러한 이기주의가 정치적 폭력과 결부될 때
조직화된 폭력으로서의 독재정권이 출현하게 됩니다. 현 김정일 체제와 이라크 전쟁으로 붕괴된 후세인 정권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외에도
독재자의 이기주의와 폭력이 결부된 독재체제는 전세계적 범위에서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도전할 수 있는 독재의 뿌리는
주로 집단이기주의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국가를 기본 단위로 하여 인간생활이 진행되고 있으며 계급적 차별과 민족적 차별이 남아있기 때문에
국가본위적 이기주의, 민족본위적 이기주의, 계급과 계층본위주의적 이기주의 등 각종 집단이기주의가 인류공동의 이익을 옹호하는 민주주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사업을 주도하여 온 대국도 국가적 이익을 위주로 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로부터 독재를 반대하고 세계를 민주화하는 사업에 응당한 주목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정치지도자들은 마치 완전한 승리자가 투항자들에게
관대함을 베푸는 기분으로 독재세력까지 포용하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반독재 민주주의 동맹을 약화시키고 국제독재세력의 급속한 장성을 허용하는 과오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국제독재세력의 적극적인 지지와 직접적인 개입으로 테러가 성행하게 되고 마침내 세계 민주주의의 아성인 미국의
심장부에까지 사상 최대의 테러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는 평화롭고 물질적인 향락에 도취되어 반독재 투쟁에 무관심한 세계 인민들에 대한
역사적인 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아직 평화주의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재와 테러를 반대하고 투쟁하는
사람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들과 평화적으로 타협할 것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평화상을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류가 하나로
통일되기 위해서는 현 시기 민주주의가 전세계적 범위에서 먼저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 뒤에야 인류 공동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는 인류 앞에 독재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고 세계를 민주화하는 역사적 과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사회 갈등과 이념의 혼란
한 : 최근 한국 사회는 여러 가지 이념갈등이 심각하고 특히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란이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 : 한국
사회에서 왜 그런 논란이 일어나는가. 세계적 범위에서도 독재와 민주주의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나라를 볼 때 북한의 독재와 남한의
민주주의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북한의 독재세력이 국내세력과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이 문제도 종국적으로 해결하려면 김정일 독재체제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이라크 파병 문제라든가 이런 문제들은 사실은 논의할 여지도 없는 문제요. 응당 파병하는 게 세계사적인
견지에서 봐서도 옳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견지에서 봐서도 옳습니다. 그건 논의할 여지도 없는 문제인데, 자꾸 논의되고 있는 것이 이념이 분열됐기
때문입니다. 그 분열의 근본원인은 북한의 독재와 남한의 민주주의가 대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 한국 사회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미주의가 대단히 고조되어 있고 이것이 사회발전에 미치는 해악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반미주의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 :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주의자들 자체를 어떻게 바꿔보자는 것보다는, 내
의견은 건전한 층을 단결시켜서 그들을 견제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볼 때 한국은 계속 친북적인 방향으로 동요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을
설득하여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은 공연히 힘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세력과 일본의 민주주의 세력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서 중국을 북한 독재정권으로부터 떼어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선 국제적인 환경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이고, 또 우리
내부에서는 아직 민주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옳은 세력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기초로 조직화 의식화해서 친북 세력에 대항하는 세력을 만들면서 점차
친북 세력들을 민주주의 세력으로 바꾸는 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제 그 한총련 등을 직접 대상으로 해서 개조한다고 하는 것은 노력만 많이 들고
효과가 적을 것 같아요. 친북 세력에게 물들지 않은 건전한 청년학생들을 우리가 빨리 단결시키고 그들을 이론적으로 무장시켜서 그 조직을 확대해야
합니다.
한 :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 전도 현상이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의 처참한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고 핵 개발 등으로 평화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김정일 정권에는 우호적인 사람들이 이른바 진보세력으로 불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의미를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황 : 나는 북한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 기본 생각입니다.
그런 문제는 결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가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데로부터 사회주의를
자꾸 진보적으로 보고 자본주의를 지지하게 되면 보수주의적이다, 자꾸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자본주의가 더 진보적인
역할을 해야 되겠고 또 그걸 지지해야 합니다. 사회주의는 진보가 아니라 퇴보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결함이 있는 것만은 또 사실이고……, 즉
개인중심의 민주주의가 가진 제한성을 극복하고 집단중심의 민주주의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민주주의를 개선 완성하는 데서 현 시대의 출로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보예요. 그런데 민주주의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그런 사람들이 자꾸 친북 반미세력으로 나가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우리 한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건전하게 개혁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걸 염두에
두면서 『세계민주화와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지요. 인간중심의 사상을 철학적인 기초로 해서 민주주의를 정립하는데 기본 중점을
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정립하면 이런 문제들은 간단한 문제라고 봅니다. 철학과 청년학생에 대한 당부
한 : 12월 9일에 선생님의 책 인간중심철학과 관련한 연작의 개정판 출판기념회가 있습니다. 인간중심철학에 대해 한두 마디
말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인간중심철학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씀해 주신다면 어떻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개정판에서 특히 중심을 두신 내용은 무엇입니까?
황 : 인간중심철학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히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철학사상이고, 인류가 영원히 번영하고 발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사상이론입니다. 내가
저쪽(북한)에 있을 때 60년대 말에 인간에 충실한 인본주의자로서 인간중심의 사상을 체계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는 나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다
밝힐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고, 여기에 와서 차분히 시간을 갖고 나의 사상을 정리하여 <시대정신>에서 책으로 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인간중심철학의 원리와 이론체계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새로 나온 책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한 번만 읽기보다는 될수록 여러 번
읽는 것이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철학, 문학, 역사학을 비롯해서 위대한 인류의 정신적 유산들이 많은데,
우리가 그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습니다.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많은 책을 죄다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중요한 책을 잘 선정하여 여러 번
읽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그것을 죄다 읽고 ‘셰익스피어를 다 알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중요한 작품 두어가지를 선정하여
여러 번 읽는 것이 더 깊이 있게 셰익스피어의 진수를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그간에 변화된 나의 생각들을 명확하게 밝히고
기존의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기존의 변증법에서 추가된 부분이 있고, 민주주의론이 더 보충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사적 의의와 더불어 민주주의 발전의 과제와 방향을 인간중심철학의 견지에서 더 자세히 서술되었습니다. 또 개정판 작업을 진행하는 데서
통일정책연구소의 젊은 학자들의 참신한 견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한 : 선생님께서
겪으신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 간단히 평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황 : 이번에 미국에 가서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치는 인민을 위한 것이고, 정치가는 인민에게 어떤
이익을 주었는가 하는 객관적인 결과를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의 업적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교하면
김일성은 사람을 굶겨 죽이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김정일은 사람을 굶겨 죽이지 않았나? 북한 땅을 죄다 감옥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는 자기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상을 봐야 합니다. 그 사상이 인민에게 충실한 사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봐야
합니다. 김일성의 사상에 대해 말하면 노동계급의 집단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그나마 노동계급의 이익이라고 하면서 독재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수령절대주의자입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의 사상은 절대주의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수령 개인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절대적인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데서 김정일은 반인민적입니다. 평가의 기준이라면 인민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이걸 기준으로 해서 봐야 할
것입니다.
한 : 선생님의 방미를 앞두고 한총련 학생들이 선생님의 방미를 반대하고 또 선생님께 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의
행동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 선생님께서는 청년학생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젊은이들에게 당부의
차원에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 : 청년학생들은 우선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한 애국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것을 ‘애국적 민주주의 사상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 시대가 국가단위로 하는 시대로부터 세계화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는데, 지금은 세계주의로만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건 사실 자기 기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가 애국주의와 결부되어야 되겠고,
애국주의는 민주주의에 기초해야 됩니다. 그래야 세계 이익과 국가 이익을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가 이익과 세계의 이익을
일치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애국주의적 입장에 서면서도 민주주의적인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 방향에서 그저 애국주의라고 하면
청년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아요. 세계화가 되어야지 어째서 그런가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결부시켜서 애국주의 정신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한 : 12월 초에 「시대정신」이 복간됩니다. 복간을 계기로 「시대정신」에 바라는 바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황 : 우리가 오염된 사람들과 논쟁을 하거나 틀린 사상을 개조하는 데 주력하지 말고, 옳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조직화해야 합니다. 현재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게 되면 옳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요. 자본주의가 아직 진보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옳은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기초로 해서 그 힘을 조직화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이 세 가지라고
했지 않습니까. 정신적 힘, 물질적 힘, 사회적 협조의 힘입니다. 민주주의 사상으로 통일시키고 조직화해야 합니다. 조직화한다는 게 사회적인
협조의 힘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물질적인 힘입니다. 구체적으로 재정문제를 잘 풀어야 합니다. 재정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민주주의적인 사상으로 통일시키고, 국내외적으로 조직을 강화해야 하고 물질적인 기초를 튼튼히 쌓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하나하나 장시간에 걸쳐서 토론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시대정신」이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노력할 것을 당부합니다.
한 : 장시간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상세히 답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대담 및 정리 : 한기홍(발행인 겸
편집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