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문명의 특성과 다양성
김정위
/ 한국외국어대학 부총장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570년경에 아라비아반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隊商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후 그가 속한 사회의 여러 모순을 통감했다. 그 해결책을 찾아 고민하다 40세 때 예언자로 自任하여 救世濟民의 길에 나섰다. 결국 20여 년 간의 각고 끝에 아랍부족을 이슬람교도로 만들면서 반도의 아랍역사상 최초의 국가를 창설했다. 즉 이슬람은 교조 무함마드의 생존시에 이미 아랍족의 통일과 이슬람국가의 창건을 모두 마무리하여 그의 후계자들이 웅비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었다. 이 사실은 600여 년에 걸친 고난과 박해의 그리스도교 창립과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예수는 동족의 호응도 받지 못했고 그의 12제자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비밀리에 선교하다 죽어간 것에 반해 이슬람의 기둥 종족은 처음부터 아랍인이어서 그 구심력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현존하는 종파의 수도 많지 않고 종파간의 교리차도 심하지 않다.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그 기둥 종족이 없었고 12제자마저 뿔뿔이 헤어졌기 때문에 구심력이 약하여 현존 종파의 수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고 또 교리상의 차이도 대단히 크다. 물론 이러한 대조는 일반적이어서 흠집이 있게 마련이다.
이슬람도 그 후 중근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 및 동남아 지역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그 다양성이 그리스도교에 비하여 덜하다는 뜻이지 결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슬람은 다른 중동종교(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보다 그 연륜이 엷지만 그리스도교 유럽이 신대륙을 정복하기 전까지, 즉 구대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는 그 세력이 가장 넓게 뻗어 나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슬람제국의 황금시대(8~10세기)에 형성된 그 특성과 다양성을 논한 후 그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특성:타우히드
--------------------------------------------------------------------------------
이슬람 문명의 특성 또는 본질은 이슬람이고, 이슬람의 특성은 타우히드tawhid라고 무슬림(muslim, 절대신에게 복종하는 사람 즉 회교도)들은 믿고 있다. 타우히드는 아랍어로 하나 또는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즉 아랍어로 알라Allah는 절대 유일신인데 온 우주 만물은 자신에서 나와서 또 자신에게 돌아오므로 결국 자신과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이슬람의 본질을 타우히드라고 한다. 즉 절대신께 복종하고 또 한없이 가까이 접근하는 무슬림의 하나되기 신앙이다. 이것은 주체 구심세력인 무슬림 아랍인들이 또한 非무슬림을 아랍화, 이슬람화 시키는 데 필수적인 교리이다. 간단히 말해서 중동 종교(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내세우는 창조주와 피조물로 대별되는 實在가 하나의 우주체로 되어 있고 또 내부적으로는 피조물이 끊임없이 절대자와 하나가 되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물론 타우히드의 해석에는 이슬람의 각 종파와 신학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그것이 이슬람의 특성 즉 본질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그런데 이슬람의 특성인 타우히드는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으로 나뉠 수 있는데 앞것은 이슬람문명의 기본 원리를 적용하는 방법이고 뒷것은 이 기본 원리 자체를 말한다.
이 기본원리 자체는 바로 이슬람신학의 고유영역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지구상에 사는 목적은 절대유일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인간에게 부여된 임무가 지상에서 절대신의 대리인 역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절대신의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신의 계명을 시행할 책임을 맡고 있다. 이 책임감이 바로 인간성의 바탕, 의미 및 내용으로 본다. 이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보다 우위에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다른 문명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자연주의에 바탕을 둔 인본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사람을 신으로 또는 악령으로 변모시켰다.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인간에게 원죄의 굴레를 씌었고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이 원죄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절대신 자신이 인간의 자식 즉 예수로 태어나 인간의 손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이 원죄에서 벗어나는 시범을 보여 주어 이 궁지를 벗어났다. 이것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렸다고 본다. 힌두교는 인간의 신분을 카스트로 나누어 절대다수를 천민으로 만들었다. 살아서는 이 굴레를 벗어 날 수 없고 죽은 후에야 가능하다.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에 바탕을 둔 나머지 인생을 고생의 바다로 여겨 인간의 실존 자체를 불행 또는 고생길로 본다.
이와는 달리 이슬람의 인간사상은 사람을 사람으로, 즉 피조물로 봄으로써 신격화도 악마화도 시도하지 않는다. 신의 계율을 지키는 것만이 삶의 미덕과 이상으로 생각하고 인간으로서의 생물적 조건아래 이를 실천하려고 애쓴다. 이것만이 유일한 구제방법으로 본다. 또 이 계율 아래서 인간은 자유롭게 창의력으로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 결과 9~11세기에 찬란한 이슬람문명을 이룩했다. 즉 아라비아반도에서 출발한 아랍 무슬림은 광활한 지역을 정복하여 그 원주민을 아랍화 내지 이슬람화한 것이다. 이 시기에 그 특성이 형성되었다.
가장 현저한 특성은 이슬람문명의 특유한 융화력이다. 아랍인은 정복을 통하여 역사상 최초로 오늘날의 인도와 중국의 서쪽 경계선에서 그리스, 이탈리아 및 프랑스의 변경 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통합하였다. 이 방대한 지역을 한동안은 군사적, 정치적 권력을 통하여, 그후 훨씬 오랜 기간 동안은 아랍어와 신앙을 통하여 한 덩어리로 묶어 놓았다. 그래서 서로 불화 관계에 있었던 두 문명, 즉 지중해문명과 페르시아문명을 융합시켰다. 서로 다른 수많은 인종, 신앙 및 문명이 이슬람 영역 내에 공존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문명이 생성되어 이슬람적인 독특한 옷을 걸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슬람사회의 다양성에서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대적인 관용성이 그 두 번째 특성으로 나타난다. 중세 무슬림은 영역내의 모든 백성에게 자신의 신앙을 강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리스도 교도들이 품고 있는 생각과 똑같이 무슬림도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때가 오면 지옥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무슬림은 여러 신앙 가운데서 지배적인 신앙으로 군림하는 데 만족한 것 같다. 그래서 무슬림은 우위의 표시로서 非이슬람교도에게 일정한 사회적 및 법적인 차별정책을 시행하였고 또 그들이 신분에 벗어난 행동을 하면 유효 적절한 수단으로 그들의 신분을 일깨워 주었다. 일반적으로는 非이슬람 교도들의 종교적, 경제적 및 지적 활동의 자유를 그들 자신의 임의에 맡겨서 무슬림의 문명 창조에 눈부신 공헌을 할 수 있는 참여기회를 누리게 하였다.
다른 모든 문명과 마찬가지로 중세이슬람은 자신의 우월성을 先驗的으로 확신하여 자부하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사명은 마지막이라는 이슬람의 예언관 때문에 무슬림은 유대 교도나 그리스도 교도를 오래 되어 완전치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기들만이 완전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슬람의 형성기에 살았던 무슬림 제1세대는 광범한 지역을 정복했다. 이 성공은 그들이 유일신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유일한 공동체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다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무슬림들은 비록 현명한 異敎徒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가치 있는 인생관의 표준은 이슬람 율법이라 믿었다. 그것은 유일신의 직접적인 계시에 의하여 법률화되었고 또 그것을 따름으로써 거둔 정복의 성공은 계시의 진실성을 확인하였다. 때문에 무슬림의 믿음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러한 장점과 더불어 단점도 있다. 이슬람 공동체는 수직적으로는 신자와 절대신, 즉 백성과 통치자를 밀접히 결속하나 수평적으로는 구성원 사이를 느슨하게 얽어매어 놓은 정도이다. 즉 각각 분리된 原子體의 집합체로 보았다. 그것은 주변여건이나 각 개인의 마음이 기계적으로 연합된 우연한 묶음이지 결코 개체가 상호작용하여 결합된 조직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생각은 무슬림의 생활에도 영향을 주어 각 개인은 사회공동체를 각 부분이 상호 작용 반작용하는 전체조직으로서보다 오히려 분리된 여러 다른 단체 즉 각 종교, 각 민족, 각 계층의 연합체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는 구역, 조합, 씨족 및 가문의 혼합체여서 개인은 이 小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강하지만 전체의 유기적인 조직체의 구성분자로서 이에 대한 소속감과 충성심이 결핍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의식 구조는 당시의 생산력이 토지에 국한되어 있고 중동의 각 민족이 부족적 조직체 속에서 살아온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이러한 성향은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의 양상은 그대로 지식에 대한 일반 학자나 문인의 태도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학자들이 다듬어 놓은 각 종파, 신학파 및 종단은 그들 각자가 찾은 것을 통합된 전체 속에 모아서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여러 가지 다른 길이 아니라, 제각기 혼자만의 칸막이 방에 일정한 지식의 조각 조각을 모아서 나열하는 것이 배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랍 문학도 거족적인 서사시나 극본이 결여되어 있고 관찰과 성격 묘사는 그 하나하나가 분리되어 섬세하고 생생하지만 단편적이다. 따라서 작자와 독자는 주관적인 聯想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이끄는 설계도는 드물다. 아랍 음악도 音階적이고 음율적이어서 환상과 변화무쌍을 잘 표현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조화미가 부족한 것 같다. 아랍 예술도 그 구성이나 전체적인 투시화법에 의하여 뛰어남이 결정되기보다 오히려 그 섬세함과 구석구석의 완벽함을 더 중시하였다. 사학자나 傳記학자도 여러 역사적 사건의 연관성과 구조 분석에서 출발하지 않고 각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기술만을 위주로 하였다.
이러한 사회 구조와 문화 생활이 몇 세기간 지속되자 병폐가 생겼다. 결국 개인의 비인격성을 조장하여 집단주의collectivism적인 면모를 띠게 되었다. 이슬람 형성기에 발달했던 아랍인의 개인주의적 태도는 오직 베드윈 가운데서만 그대로 남아 있고 문명의 중심지인 도시에서는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방관적인 태도로 바뀌어갔다. 심지어 저서도 저자의 독자적이며 개성적인 창조물로 보지 않았다. 저자 자신의 개성은 옛날에 살았던 권위자의 명성이나 수많은 傳承者의 대열 속에 숨겨 놓고 오직 전승을 위한 수단으로 저서를 만드는 것이므로 그것은 하나의 연결점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주의적인 방법은 이슬람 사상과 제도적 기구의 구석구석마다 나타나고 있다. 무슬림이 가지고 있는 ??완전한 인간??은 무함마드이고 ??완전한 국가??는 그가 세운 신자공동체, 즉 움마ummah라는 것이 그들의 이상적 관념이다. 모두가 이론상으로는 이상적 모형을 모방함으로써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적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개인적 잠재력을 발전시켜 새로운 이상을 창조하기가 힘들었다.
신학상의 교리를 확립했다는 것은 곧 자유로운 사색정신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는 곧 결정론이며 권위주의적이어서 ??이슬람 율법과 계시??를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 신학은 유일신을 원초적인 動因으로서보다 오히려 萬事와 만물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철두철미 만들어 내는 著作者로 보기 때문에 다른 여러 부차적 동인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 관계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사색에 바탕을 둔 철학과 자연과학의 연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였으며 그 결과 사료편찬도 침체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자유로운 여러 활동을 추구하는 산업시대가 정체적인 봉건주의의 대두와 함께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과 일치하는 것이다. 합리주의적 사고 방식은 사라지고 이슬람의 새로운 각본, 즉 완고한 교리가 확립되어 19세기에 서유럽 문명이 동방으로 진출할 때까지 중근동 세계를 지배하여 온 것이다. 이 이슬람 율법과 문명은 이슬람 사회의 전통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위협하였던 것이다.
다양성
비록 이슬람이 다른 세계적 종교와 비교해 볼 때 동질적 요소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그 다양성이 적다고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연구가들의 임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그 모양새를 분석하는 데 있다. 즉 이슬람문명이라는 틀 속에 들어 있지만 종파, 인종과 언어, 지역과 역사 등의 차이에서 그 모양새의 다양한 측면이 보인다. 예를 들면 종파상으로는 순니파, 시아파를 비롯한 군소 분파가 있고, 인종과 언어상으로는 아랍인, 투르크인, 이란인, 말레이인 등이 있다. 또한 무슬림의 지역적 분포도를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 글에서는 이 다양한 측면을 하나씩 분석해보자는 데 있지 않고 단지 현재의 생김새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한정한다. 즉 이슬람이라는 거창한 건물을 몇 가지 측면에서 층별로 또는 방별로 나누어 보자는 것이다.
첫째 종파적 관점에서 보면 전세계 무슬림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순니파가 거의 이슬람을 대표하고 있으나 이 파도 4개의 법학파로 나뉘어져 있다. 그 다음에 시아파는 열두 이맘파를 비롯하여 이스마일파, 누시이리파, 알라위파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슬람 율법은 천지만물을 관장하고 또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데 아주 제격이라고 무슬림들은 믿지만 또한 특정한 신학파나 종파에 소속한다는 사실은 이슬람 공동체의 문화적 동질성에 흠집을 내고 있음이 확실하다. 더구나 동일한 인종이 동일한 종파와 동일한 거주지역에서 생활하면 그 결집력이 매우 강하여 다른 무슬림과 구분된다. 그 좋은 예가 이란인인데 그 대부분이 인종적으로는 페르시아인이며 종파적으로는 시아이슬람에 속한다.
둘째로 신앙생활의 관행에서도 이슬람의 다양성이 엿보인다. 특히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sufi들은 이슬람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각각 독특한 종단tariqah을 형성하여 독특한 신앙적 관행을 준수하였다. 그 결과 동일한 종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동질성이 더욱 진하게 되어 다른 일반 무슬림과 구분되었다. 예를 들면 오스만 터키의 마울라위Mawlawi와 박타쉬Baktashi 종단이나 서부 아프리카의 카디리야Qadiriyyah와 티잔니야Tijaniyyah 종단들은 각각 이 지역의 전통적 이슬람공동체의 일반생활에 특이한 정신적 문화적 색깔과 향기를 품게 함으로써 그 추종자들의 동질성 향상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셋째로 인종적 언어적 요소가 이슬람문명의 변이형을 생성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다. 사실 이슬람연구가들은 이슬람문화를 인종이나 언어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물론 이 요인이 필수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사상적 역사적 및 지역적 요소가 결합되어야 이 변화가 달성되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이란의 이슬람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현대 이슬람의 새로운 변이형이 나타났다. 그것은 단순히 이란인과 페르시아어 사용자에 의해 이 혁명이 수행되었지만 호메이니의 창조적 시아이슬람 사상과 더불어 그 역사적 지역적 여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넷째로 공동의 역사적 여건도 이슬람 문명의 다양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어떤 특정지역의 주민이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도 공동운명체라는 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집트인과 시리아인은 다 같은 아랍인이고 또 순니 무슬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산은 공유하지 않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이집트는 아랍세계에서 특유한 위상을 향유하고 있다. 이란의 아제르바이잔 사람들(현재 1,500만 추정)은 터키어 계통의 아제리어를 모어로 하고 있어서 페르시아인(현재 3,500만 추정)과는 언어가 다르지만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역사와 그 영웅들을 공유하고 있고 또 시아파여서 인접한 터키공화국과 결합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 란국민이 되어 더불어 살고 있다. 반면에 인도의 일부 종족(벵갈리와 신디)은 비록 페르시아어를 수세기 동안 사용하고 있었지만 공동의 역사가 결핍되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인도, 파키스탄 또는 방글라데시로 흡수되었다.
끝으로 인구의 정기적 이동과 지리적 특성도 이슬람문명의 변이형 생성에 일정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수세기 동안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에 교류가 빈번했던 지역은 공통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리적 특징이 두드러진 지역 즉 섬과 같은 곳은 이러한 변이형 생성에 이바지했다. 서부 이란이나 북부시리아의 산악지역에 산재한 무슬림의 군소 종파 공동체는 물론 사하라사막의 북쪽이나 페르시아만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들은 이러한 특성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해준다. 이 특성과 다른 요인들이 다함께 때로는 제각기 작용하여 이슬람문명의 여러 복잡 다양한 문화적 유형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상의 다섯 가지 요인이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작용하여 만들어 낸 구체적인 이슬람 문명의 유형을 학자에 따라서 두 가지 또는 다섯 가지로 크게 분류하고 있다. 토인비 같은 이는 아랍과 이란의 양극체제로 대별하나 대부분의 다른 학자들은 다섯 개 즉 아랍, 이란, 투르크, 말레이 및 검은 아프리카로 나눈다. 아랍세계는 인종적이라기보다 아랍어 상용자의 거주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수단의 아랍인은 인종적으로는 흑인에 가까운 반면 시리아의 아랍인은 코카서스Caucasus인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아랍인은 그 인종적 기원은 제쳐두고 자신을 아랍인으로 자처하고 있다. 그 중에는 상당수의 그리스도교인도 있다. 이집트 총 인구의 9% 정도가 콥트교도인데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이다. 즉 아랍세계는 이라크에서 서부 아프리카의 모로코와 모리타니아에 이르는 광활한 영역인데 이슬람의 융화력으로 그 대다수 거주민의 아랍화와 이슬람화가 이루어진 지역이다. 아직도 동화되지 않은 소수파는 잔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인을 비롯하여 각국 아랍인의 특수사정 때문에 통일 아랍국가 형성은 아직 요원하다.
이란 세계는 언어와 인종의 관점에서 볼 때 인도-이란어족에 속하고 또 동시에 이란적 이슬람문화가 지배적인 지역이다. 즉 이란고원을 중심으로 동북쪽으로 중앙아시아, 서남쪽으로 이라크에 이르는 지역이다. 구체적으로는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및 파키스탄과 코카서스 지역의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종파적으로 보면 이란만이 열두 이맘시아국가이고 나머지는 순니파 다수국가이다. 그 변두리에는 쿠르드족, 발루치Baluchi족 및 파탄Pathan족 등이 살고 있다. 물론 각각 독자적 특성이 있지만 이란 이슬람적 문화가 지배적인 면이 문학과 예술에서 잘 나타나 있다. 특히 파키스탄은 우루두Urdu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문화에는 이란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어 있다. 또 이란세계는 고원과 산악이 많은 탓인지 인종, 언어 및 종파의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소수파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아랍세계와는 달리 非이슬람계 종파는 드문 것이 특징이다.
투르크 세계를 양극체제로 나누면 이란세계에 포함된다. 그 거주민은 대체로 언어적으로나 인종적으로는 투르크인적 요소가 많고 문화적으로는 이란 이슬람적 요인이 압도적인 편이나 둘 다 혼재되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아시아의 대부분, 코카서스의 일부 및 오늘날의 터키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은 수직으로는 투르크족이 다수이나 문화적으로는 이란 이슬람적이다. 하지만 다른 소수 종족도 많이 살고 있어서 매우 색깔이 다채롭지만 조화를 이루어 공동의 문화를 건설했다. 특히 잘랄 알 딘 루미(Jalal al-Din Rumi, 1273 사망)와 같은 유명한 수피시인은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오늘날 터키의 콘야지역에 이주해 살면서 작품을 모두 페르시아어로 집필했다. 그 때문에 오늘날 터키와 이란은 서로 자기 나라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다. 역사적으로는 투르크족이 이란식 이슬람문화를 중국과 인도 등으로 전파시킨 공헌이 크다.
말레이 세계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및 남부 필리핀의 민다나오섬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나 인종적으로 보면 이슬람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동질적이다. 또 이 지역은 12세기경부터 이란과 인도에서 온 무슬림 상인들의 선교활동에 의하여 평화적으로 힌두교와 불교에서 이슬람화되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여성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던가 북을 쳐서 예배시간을 알리는 등 非이슬람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인구의 40% 이상이 중국계와 인도계란 점이 90% 이상의 인구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와 대조된다. 즉 말레이세계는 非이슬람적 문화와 병존하고 있고 또 중국계가 경제적으로는 우위에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열세에 있기 때문에 인종적 충돌이 잦은 편이다.
검은 아프리카 세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생존시에 이미 이슬람과 접촉한 에디오피아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 근대에 들어와서 접촉한 곳이 있을 정도로 그 차이가 심하다. 하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부족공동체와 접촉하면서 이슬람은 여러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변종을 산출했다. 따라서 인종적으로는 흑인, 종파적으로는 순니라는 사실 외에 공통점이 거의 없다.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 탄자니아 및 우간다에는 아랍상인들의 출입이 많아서 이 지역의 언어인 스와힐리(Swahili, 아랍어로 해안이라는 뜻)에는 약 30% 이상의 어휘가 아랍어에서 들어왔다. 반면에 서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비교적 아랍, 이슬람의 영향력을 늦게 받았다. 대체로 16세기경에 서아프리카 인구의 다수가 이슬람화 되었다. 특히 세네갈에는 모로코의 수피 종단이 19세기에 들어와 번성할 정도였다.
이슬람문명의 미래
역사적 안목에서 이슬람문명의 장단점과 다양성에서 볼 때 이슬람세계는 중세의 암흑기라는 점에서 이제 막 깨어난 상태다. 이 상태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점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가까운 장래에 무슬림들은 과학기술의 후진성에서 탈피할 수 없다는 논점이다. 물론 무슬림들도 초창기에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구심점으로 하여 자발적으로 대변혁을 일으켜 대약진을 한 것은 높이 평가 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외부의 충격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슬람 세계는 지난 300년 간 서유럽문명의 침략을 받아 왔다. 그 결과 사회내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나 아직 대중적 자각도가 자발적 대중운동으로 발전할 정도로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그 결과 세계의 선진공업국과 경쟁할 정도의 과학 기술 향상에 공헌하지 못하고 있고 또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마저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슬람은 절대신 알라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어서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무슬림은 믿는다. 따라서 이슬람의 개혁이란 이론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1400년 간에 걸친 이슬람 역사의 과정에서 불순물이 이슬람에 많이 배어들었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곧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다. 20세기 중에 풍미했던 이 운동은 정치적으로는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예를 들면 1979년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출현이 바로 이 운동의 소산물이다. 하지만 지난 20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경제적 도약을 이루어서 후진성을 탈피할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체제를 지향하는 다른 이슬람국가도 비슷한 형편이다. 이 점은 한자문명권과는 매우 다르다. 이 문명권의 일본, 한국, 중국의 대중은 서유럽문명을 이슬람세계보다 늦게 받았으나 지도자나 대중의 자각도가 높아 이를 상대적으로 잘 소화했다. 그 결과 서유럽과 북미의 선진국과 세계시장에서 공산품 판매경쟁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슬람세계의 어느 나라도 그 규모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와 같은 대국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아랍권이 통일되면 맘모스 국가로 발전할 수 있으나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와 영토의 규모가 커야 앞으로의 국제정치무대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 있음은 자명하다.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과 같은 중대형 급의 이슬람국가(예 : 이란, 터키, 이집트, 인도네시아)는 몇몇 있으나 다른 군소 이슬람국가처럼 급속한 인구증가와 사회불만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비하여 격동의 파고는 심하지 않고 정권은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서서히 내실에 치중할 것이지만 그 발전의 속도는 다른 문명권에 비하여 느릴 것이다. (에머지 2000년 8월호)
'政治, 外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의 문명적 갈등과 기원(3) - 유교 문명권의 정치思想 (0) | 2015.11.01 |
---|---|
정치의 문명적 갈등과 기원(4) - 서구문명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0) | 2015.11.01 |
Summer of discontent (0) | 2015.11.01 |
Stalled in Seoul: How protests have humbled South Korea’s ‘Bulldozer’ (0) | 2015.11.01 |
South Korea’s One-Term Trap (0) | 2015.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