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명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강정인 / 서강대 정외과 교수
우리 모두에게 서구적인 것이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마저 없는 진부한 현실이다. 수년 전 남한 언론에 비친, 김일성의 죽음에 오열하는 북한 인민의 모습은 촌스럽거나 광신적인 종교집단의 작태로 묘사된 반면, 영국의 왕세자빈이었던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해 ??세기의 장례식??으로 오열하는 서구인의 모습은 전혀 비정상적인 행위로 묘사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에서 한국인을 모델로 만든 인형은 거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실상 ??진실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은 거의 모두 원산지를 서구에 두고 있다.
한국 자동차 회사가 만든 자동차 또한 모두 영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거리의 음식점, 술집, 찻집 등의 이름에도 외래어가 즐비하다. 이제 우리에게 서구적인 것은 친숙하고 전통적인 것은 낯설다. 우리는 서구적인 것에 둘러싸여 살고 있고, 또 서구적인 것은 우리 안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정치세계에도 예외가 아니다. 9년 전 겨울 이라크와 미국 사이에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국내 텔레비전은 거의 아무런 편집이나 정리과정 없이 직접 미국의 케이블 뉴스방송(CNN)을 방영했다. 그리하여 미국군을 ??아군??이라 표현하는 등 마치 ??미국의 소리??의 일방 통행로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고, 일반 국민들은 마치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는 일상생활에만 국한된 현실이 아니라 우리 학계의 지배적인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학계에서 서양 철학은 ??철학??이라는 보편 명사의 지위를 누리고, 전통 철학은 한국 철학 혹은 동양 철학이라는 특수명사가 된 지 오래다. 사정은 정치사상분야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치사상은 ??서양?? 정치사상을, 전통사상은 한국 정치사상 또는 동양 정치사상을 지칭한다. 정치학자 김석근 박사는 ??한국정치학계의 불모성??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의 일단으로 발표된 대다수 논문들이 한국의 정치적 현실과 거리가 먼 서구사회 자체의 필요로 인해 생산된 서구의 이론을 한국 현실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데 급급한 현실을 지적했다(김석근 1996).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제3세계의 지적풍토 전반이 서구중심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독립을 쟁취한 지 상당한 세월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에서는 독창적이거나 독자적인 사상이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볼 때, 서구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 또는 그 극복은 정치적 독립, 산업화(경제발전), 민주화보다 훨씬 더 지난한 과업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글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학계에 군림하고 있는 서구문명의 압도적인 위세를 서구중심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서구중심주의의 개념을 분석하고, 그 폐해를 간략히 지적하고자 한다. 이어서 서구중심주의의 세계사적 전개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기존의 노력들을 소개하고 그 한계를 논할 것이다.
서구중심주의의 개념
먼저 서구중심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참조하면, ??유럽중심주의적europocentric??이라는 형용사는 ??유럽을 그 중심으로 두거나 간주하는; 세계문화 등에서 유럽 또는 유럽인의 최고 우월성을 상정하는??으로 정의되며, 유럽중심주의europocentrism는 ??유럽을 자신의 세계관의 중심에 두는 생각이나 실천??으로 정의된다(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1989, Vol.5, 442). 사전적 정의에 나타난 것처럼, ??서구중심주의??는 ??서구??와 ??중심주의??의 합성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상 서구의 의미는 상당히 복잡하다. ??서구??는 단순히 지도상의 방위를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개념이다. 특히 후자의 측면과 관련하여 홀Stuart Hall은 ??서구=발전된=좋은=바람직한??이라는 어감을 갖고 ??비서구=저발전된=나쁜=바람직하지 않은??이라는 어감을 갖는다고 지적한다(Hall 1992, 276~77).
이러한 사전적 정의 및 기존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논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서구중심주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근대 서구문명―지리적으로 서유럽을 중심으로 출현했지만 그 문화를 이식한 미국, 캐나다 등도 당연히 포함한다―은 인류 역사의 발전단계 중 최고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둘째, 서구문명의 역사발전 경로는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을 포함한 전 인류사에 보편적으로 타당하다. 셋째, 역사발전의 저급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비서구사회는 오직 서구문명을 모방?수용함으로써만 발전할 수 있다(김세연 1995, 16~17). 다시 말해 서구중심주의는 세 개의 명제, 곧 서구우월주의, 보편주의/역사주의, 서구화/근대화로 압축될 수 있다.
서구중심주의는 궁극적으로 비서구인들로 하여금 서구문명의 우월성 및 보편성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서구의 문화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비서구인들은 서구의 세계관, 가치, 제도 및 관행을 보편적이고 우월한 것으로 인식하여 동화주의적 사고를 갖게 되고, 서구를 중심에 놓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비하와 자기부정의 의식을 갖게 된다. 그들은 서구문명을 유일한 보편적 대안으로 생각함에 따라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게 되고, 그 결과 독자적인 세계관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는 서구의 ??선진적?? 학문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문제의식마저도 우선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내면화하여 자기 사회에 대한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게 되고, 또 서구의 세련된 이론에 동화시켜 자국의 현실을 해석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서구중심주의의 연원과 세계사적 전개과정
서구중심주의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유럽은 신대륙의 발견에 힘입어 비유럽 문명에 대한 정치?경제적 우월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서구중심주의는 정치?경제적으로는 유럽의 자본주의적 산업화, 자유주의 혁명, 문화적으로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등에 수반하여 생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구중심주의는 제국주의/식민주의, 기독교, 문명, 진보, 인종주의 등과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상호 의존적으로 전개되었다.
현대 유럽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유럽Europa??이라는 단어는 본래 그리스 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중세에 유럽이라는 관념은 최초로 기독교 세계라는 관념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되었다. 곧 유럽인의 정체성은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방어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1492년 신대륙의 발견 이후 비유럽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정체성은 ??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축에서 새로운 양극성인 ??문명 대 자연??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조형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문명과 진보를 상징하는 반면, 신세계를 포함한 비유럽 세계는 비문명화된 자연의 야만성을 의미했다(Delanty 1995, 45, 65).
특히 17~8세기에 본격적으로 대두한 계몽주의의 ??문명??과 ??진보?? 개념은 서구중심주의에 핵심적 개념을 제공하였다. 서구와 신대륙의 비교를 통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문명과 사회발전을 이룩하는 데 오직 하나의 길이 있으며 모든 사회를 동일한 척도에 따라 초기 단계와 발전 단계 또는 저급한 단계와 고급의 단계로 서열화하거나 위치 지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출현하게 된 ??사회에 대한 과학??은 모든 사회를 단일한 발전 경로에 따라 단계별로 자기매김하고―아메리카 미개인은 가장 저급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서구는 문명적 발전의 정점에 서 있게 된다―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Hall 1992, 312). 이와 더불어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서구문명의 시조로 설정하고 서구문명을 그리스 문화의 계승자로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기원을 유럽인(아리안족)에 두고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오리엔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신화를 발명하기 시작했다(Bernal 1987).
문명이란 말은 18세기 후반에 프랑스 계몽철학자들에 의해 이성의 진보를 지칭하는 말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문명은 사회적?도덕적?지적 진보를 의미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 문명은 서구문명에 국한된 용어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문명은 질서와 도덕성을 표상하는 반면, 아프리카는 혼돈, 암흑 및 헤아릴 수 없는 신비를 표상했다. 문명의 개념이 일반적 척도가 되어 모든 사회는 ??문명화된civilized??, ??야만의barbarous??, ??미개의savage?? 사회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발전된 유럽사회에 대한 학문인 사회학과 대비된) 인류학(미개 민족을 연구하는 과학)과 오리엔탈리즘(이국적인 동양에 대한 과학)은 서구가 비유럽문명에 대한 지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수단이 되었다. 또한 서구의 헤게모니는 세계를 그 자신의 이미지로 구축할 수 있는 능력으로 표출되었다. 따라서 유럽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다른 대륙보다 훨씬 크게 그리는 메카토르Mercator식 지도작성법이 등장하였다.
유럽의 해외 팽창과 함께 유럽인들은 문명과 진보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문명의 이름―??문명화의 사명??―으로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세기 말 영국 시인인 키플링Kipling은 제국주의의 정점에서 ??백인의 책무White Man??s Burden??를 찬양했다. 그의 시는 유럽은 세계문명의 이상이고 그 역사적 사명은 세계를 문명화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처럼 서구의 팽창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인종주의와 기독교 역시 중대한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유럽 ??문명??은 또한 19세기 이후 유럽이 조형한 국제질서의 보편적인 기준이 되었다. 서구 열강은 자신들의 문명 기준에 따라 비서구 국가들에게 문명화된 국가들의 평등한 상호관계를 규율하는 국제법의 적용을 거부하고 불평등조약을 강요했다. 그러나 이처럼 비서구 국가들을 차별하는 척도로 작용해 온 서구중심적 문명기준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언과 함께 종식되었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서구인들은 그들이 내세운 문명 기준을 준수하는 데 참담하게 실패함으로써 자기 모순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 후 독립을 획득한 아시아?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완강히 저항하게 됨에 따라 서구는 더 이상 서구중심적 문명 기준을 국제사회의 구성원 자격으로 내세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사회를 규율해 온 ??서구중심적?? 문명기준이 단지 공식적으로 퇴장했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식민주의가 종식된 이후에 주로 미국학계에서 공식화되어 비서구국가들에 널리 유포된 경제발전, 정치발전 및 근대화 이론 등은 서구중심주의를 그 핵심적 전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와 대안들
근대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무장한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서구문명에 직면하여(또는 서구문명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비서구사회는 여러 가지 이론적?실천적 노력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론적으로 명쾌하고 실천적으로 간명한 대안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필자는 이러한 시도를 분석의 편의상 세 유형의 담론 전략, 즉 同化的동화적, 逆轉的역전적, 그리고 對案的대안적 담론으로 구분하여 제시하면서 각각의 한계를 검토하고자 한다.
(1) 同化的 談論
동화적 담론의 가장 흔한 방식은 지배적인 담론―예를 들어 서구중심주의―의 (이상화된) 보편적인 주장과 현실의 불완전한(모순된) 실천간의 괴리를 지적하고 그 보편적인 주장의 온전한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중심주의적 담론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선성―이상과 현실간의 불일치―을 폭로함으로써 표면적인 보편성의 (명실상부한)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동화적 담론은 그 지배적인 담론의 보편성과 정당성을 믿으면서―또는 믿는 척하면서―이론과 실천간의 괴리를 유감스러운 남용 또는 예외적인 오용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동화적 담론은 서구중심주의적 담론의 모순성을 공격하고 그 체계의 주어진 틀 내에서 괄목할 만한 개혁을 도입하는 데 성공하는 정도에 따라, 그 서구중심주의적 담론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보편적 주장을 실천하도록 강제하고 그 결과 그 담론을 더욱 보편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서구중심주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19세기 서구 열강이 국제관계에 그 적용을 강요한 ??문명?? 개념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서구 국가들은 자신들의 ??문명?? 기준을 적용하여 예를 들어 메이지 일본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했는데, 일본은 조약의 불평등성에 항의하는 한편, 자국의 전통적인 문명 기준을 양보하고 대내외적인 노력을 통해 서구의 문명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노력함으로써 국제법상 대등한 평등한 지위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동화적 전략은 제한된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매우 효율적이지만, 다른 한편 서구중심주의를 내면화하여 거기에 동화?통합되는 성향을 가진다. 동화적 담론은 서구중심주의의 지평을 넘어서는 또는 그것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주장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非서구사회의 민족주의운동 역시 서구중심적 담론에 호소함으로써 독립과 국제법상의 평등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독립 후 국제질서에서 서구국가와 신생독립국들간에 실질적인 평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동화적 담론이 얻을 수 있었던 개혁의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동화적 담론은 그것이 비판하는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한다. 지배적 담론을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더욱 보편적이고 풍성하게 만듦으로써 그 정당성을 제고시키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2) 逆轉的 談論
다음으로 서구의 他者에 대한 서구중심적인 (억압적/패권적) 담론에 대항/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담론으로 그 타자가 자신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역전적 담론reverse discourse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서구중심주의의 전형적인 산물인 ??오리엔탈리즘??(서구 이외 지역의 언어와 역사 및 문화 등에 관한 서구인들의 지식체계)에 대처하기 위해 주로 아랍인들이 1970~80년대에 전개한 逆오리엔탈리즘reverse Orientalism 또는 서양주의Occidentalism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비서구인들 역시 역사적으로 서구보다 우월하고 강력한 문명을 꽃피운 적이 있으며, 이에 따른 문화적 긍지를 느껴 왔고, 또 자문화중심주의에 근거하여 서구인(서구 문명)에 대한 그들 나름의 부정적 고정관념, 이질성 및 편견을 갖고 있다. 逆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는 처음에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서구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7세기로 돌아가 진정한 이슬람적 또는 아랍적 가치의 부활을 주장하는 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태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Sivan 1985,141). 비슷하게 아프리카 출신의 사상가인 상고르Le!opold Senghor, 세자르Aime! Ce!saire 등이 백인 식민주의자들의 야만성에 반대하고 아프리카의 진정한 他者性과 인본주의에 근거하여 제시한 네그리튜드ne!gritude의 관념과 운동 역시 토착주의적이면서 아프리카 중심적인 역전적 담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Nederveen Pieterse and Parekh 1995, 7).
동아시아에서도 예를 들어 西勢東漸期서세동점기에 조선의 유학자들 역시 자신들의 문명기준에 따라 서양인들을 人倫을 모르는 無父無君의 야만인으로 간주한 바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 일부 일본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서구의 상대적 침체와 대비된 일본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고무되어, 서구에 대한 일본의 우월성을 주장한 ??일본인론?? 역시 역전적 담론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최근 싱가포르, 중국, 한국 등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 담론이나 ??유교적 가치?? 논쟁 역시 일종의 역전적 담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전적 담론은 제3세계인들을 위해 근대 이후 서구가 특권적으로 독점해 온 보편적/중심적 지위를 박탈하고 그들의 중심적 지위를 복원시켜 준다는 점에서, 곧 그들에게 해방감과 존엄성을 되찾아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게다가 그러한 시도는 세계의 중심을 다양화함으로써 세계를 훨씬 더 다중심적이고 다원적으로 만들 것이며, 그러한 상황은 단일중심적인 서구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상황에 비해 커다란 진전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3세기 동안의 세계사를 특징지어 온 서구와 비서구간의 불평등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관계가 역전되지 않는 한, 단지 공허하고 무력한 위안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만약 뒷받침된다고 하더라도, 서구중심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이 담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곧 지식과 권력의 결탁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불과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게다가 역전적 담론은 전통의 이름으로 근대적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 세력이나 민주화 등에 반대하는 권위주의 세력에 의해 종종 악용되는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3) 對案的 談論
상술한 두 담론 이외에도 다양한 전략이 시도되고 있지만, 필자는 그러한 전략의 하나로 최근 시도되는 서구중심주의적 역사서술의 해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우선 서구중심주의를 그 구성요소인 ??서구??와 ??중심주의??로 분해하여 각각을 문제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서구에 대한 반대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는 종종 역전적 담론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또 다른 중심주의의 폐단을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 중심주의는 그 중심을 신비화하여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하는 성향이 있다.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이 그렇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그렇다. 마찬가지로 서구중심주의 역시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신비화하여 그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또한 중심주의에서 중심은 스스로를 보편적인 잣대로 타자를 비교하고 평가함으로써 그 타자를 주변화하고 소외시킨다. 따라서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해체주의적 성향을 띠게 된다. 서구중심주의에서 ??중심주의??의 해체는 ??보편적이고 우월적 지위??를 누려 온 서구적 사유의 탈중심화, 탈식민화, 유럽(서구)화를 의미할 것이다(Robert Young 1990, 18).
그러나 분석적 차원에서 서구중심주의의 ??중심??인 서구(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과 중심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을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 연구에서 두 작업을 명쾌하게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 중심주의가 이미 서구 문명의 과거와 현재 및 그 잠재력을 해석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쳐 서구 문명의 장점, 기여 및 잠재력을 과장하거나 신비화해왔기 때문이다. 곧 서구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서술은 중심주의에 의해 신비화/정초되어 있고, 또한 중심주의를 강화/보강한다. 따라서 서구 문명을 내재적 또는 외재적 기준에 따라 비판적으로 인식?평가하고자 하는 노력은 서구문명에 대한 과장된 이해를 불식시키고 동시에 중심주의를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곧 서구 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이 서구 문명에 대한 탈신비화된 이해를 수반한다면, 서구에 대한 비판이 직접 중심주의의 해체로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서구 문명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이고, 또 서구 문명의 실상을 파헤치는 것이 서구 ??중심주의??를 잠식하는 이중적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실제 작업에서 중심의 해체와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따라서 非서구사회는 서구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전략의 하나로 서구 문명에 대한 서구 스스로의 기술과 서구중심적 세계사 기술을 비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곧 서구중심주의적인 역사기술의 사실 부합성 및 해석 타당성을 좀더 엄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서구 문명의 우월성과 여타 문명의 열등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구중심적 세계사 기술은 다분히 ??초역사적으로 우월한 서구?? 문명의 모습을 부각하고 있으며, 그 원인에 대한 정교하고 세련된 解釋學的 발명을 통해 서구 문명을 특권화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 문명의 아리안족 기원설, 그리스 문명을 근대 서구 문명의 선조로 자리매김하고 근대 서구 문명을 그리스 문명의 상속자로 규정하는 태도, 근대 자본주의 생성에 있어서 근대 유럽의 내재적 속성―봉건제, 프로테스탄트 윤리, 산업혁명―을 과장하거나 특권화하는 한편 외부적 요인을 무시하는 서술 등을 역사적으로 좀더 치밀하게 검토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대안적 해석을 제시하여 서구중심적 세계사 기술의 잘못된 점을 파헤침으로써 ??세계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는 근대 서구의 세계지배를 서구문명의 특정한 역사적 성취 덕분으로 제시하는 이론이 담고 있는 기본적 가정에 대해 비판적 재음미를 요청한다. 월러스틴은 그러한 이론에 담긴 가정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이를 엄격하게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1) 근대 서구 문명의 성취에 대한 통상적인 역사서술이 과연 정확한가, 2) 이 시기에 일어난 것의 문화적 선행변수라고 추정된 것이 과연 타당한가, 3) 서구의 새로운 성취가 과연 긍정적인가?
월러스틴은 최근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한 수정주의적 역사서술이 점차 축적되어 가고 있으며, 어느 시점에 이르면 체계적인 대항이론이 정립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월러스틴 1997, 391~3). 또한 서구중심적 세계관이 서구와 비서구에 관해 자의적이고 인위적으로 발명한 이항대립―예를 들어 발명성/모방성, 합리성/비합리성, 마음/몸, 진보/정체, 과학/마술, 정상/비정상 등―의 恣意性, 사실 부합성, 초역사적 고정관념 등을 심문하여 이를 비판적으로 지양하고, 이를 재생산하고 있는 문화적 구조를 해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Blaut 1993, 17).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이 세 가지 형태의 전략을 繼起的으로 또는 同時的으로 시도해 왔다. 그러나 앞의 두 전략은 부분적으로 해방의 계기를 부여하지만, 그 해방을 완성하지는 못한다. 다른 한편 세 번째 전략은 그 열망에 있어 완결된 해방을 추구하지만 그 이론적 성과는 아직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현명한 접근법은 완전한 대안을 찾을 때까지 서구와 조우하는 상황, 서구중심적 이론의 성격 및 삶의 영역에 따라 세 전략을 적절히 병용하면서 세 번째 전략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결론
필자는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그 극복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다른 한편 한국과 같은 非서구사회가 근대화 과정에서 적어도 일정 측면 또는 일정 시기에 서구중심주의에 몰입하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불가피했으며 또 그것이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해 온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해도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서구화의 결과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 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곧 서구적인 것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것으로 동화되었다―는 점, 서구중심주의가 다차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서구문명이 인류가 역사적으로 성취한 문명 중 가장 보편적이고 유연한 문명이기 때문에 그 극복이 서구문명의 전면적인 부정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극복의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실천가능한 전략을 제안함에 있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서구중심주의에의 무비판적 몰입은 궁극적으로 자기 문명의 소외, 자기 주체의 소외로 귀결되기 때문에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시각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들을 전개하였다.
21세기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과거와 달리 비서구사회가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는 데 좀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경제적 활력을 되찾고,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유럽 연합과 미국간의 일체감에 균열이 생긴다면, 21세기의 세계는 지난 20세기보다 좀더 다중심적으로 형성될 것이다. 세계질서의 다중심성이 회복되면 서구중심주의의 위세는 그만큼 약화될 것이며, 복수 문명 및 강대국들간의 경쟁과 균열은 과거보다 좀더 자유로운 공간을 비서구권 문명 및 국가들에게 허용할 것이다. 사실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에서 중화문명과 이슬람문명의 부상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서구문명의 전일적 지배와 서구중심주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서구사회는, 앞에서 논의된 것처럼, 문화적으로는 (보다 나은 전략이 구상될 때까지) 동화적/역전적/대안적 담론전략을 적절히 병용하는 한편, 정치?경제적으로는 서구와 비서구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관계를 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에머지 200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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