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

복지갈등과 그 해소책

이강기 2015. 11. 1. 13:20
[특집] 복지갈등과 그 해소책


[박덕제 |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Ⅰ. 머리말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그 이전 선거와 다른 뚜렷한 특징 하나가 부각되었다. ‘무상급식’ 등 복지 확대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게 일어났고, 이와 관련된 정책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결과적으로 복지 확대에 조심스런 자세를 보였던 정부·여당은 큰 패배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기류로 볼 때 복지관련 좌우의 시각 차이와 여야 간의 정책 차이는 앞으로도 지속되고 선거 때에 주요 쟁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다수 유권자의 이목을 끌만한 쟁점이 없는 가운데 야당은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 핵심 소재로 복지 확대를 활용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은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 등으로 복지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최근에는 전월세 상한제까지 들고 나왔다. 여당은 이에 맞서서 ‘지속가능한 복지’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복지 관련 쟁점에서 수세에 몰린 형국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선거와 관련하여 복지 쟁점이 좌파와 우파간의 주요 갈등 요인이 되고, 이들과 연계된 정당간의 정책적 대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의 차이나 국가보안법 철폐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민주 대 반민주’의 이전 갈등에서 변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세계사의 흐름과 한국 사회의 최근 상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사의 흐름을 보면, 1989년에 동유럽과 구소련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고 10여년이 지났다. 여전히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북한은 대부분의 국민이 도탄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핵무기 개발과 선군정책을 기초로 소수 권력층의 특권을 폭압적으로 유지하고 있어서 이를 추종하거나 이들과 친선을 강화하자는 운동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사회주의 종주국이 망하고 그 위성국가들이 체제를 전환하여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형식적으로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중국마저 개방정책으로 세계시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사회주의를 주장해봐야 국민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서민 생활의 어려움이다. 2007년 말에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세계적 불황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불황대책에 힘입어 한국은 다른 나라처럼 실업률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고용성장이 정체되어 2009년의 고용율은 2년 전에 비하여 1%포인트 이상 하락하였고, 2008년~2009년에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이 낮아졌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임금의 하락이 한층 심하여, 2009년에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총액은 그 전년에 비하여 7%나 하락하였다. 이러한 국내 경제상황의 악화로 좌파 지식인과 정치권의 복지 확대 요구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이에 동조하는 여론이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복지 관련 갈등의 현황을 알아보고, 복지와 관련된 좌파와 우파의 주장과 그 근거를 비교해 본다. 그리고 좌파가 이상으로 여기는 북유럽 복지대국 현실과 특성 및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 장래에 복지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지식인과 시민운동단체 및 정책 당국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찰해 본다.

 

Ⅱ. 복지와 관련한 갈등의 현황

 

2010년 6월의 지방선거를 전후한 시기부터 한국사회에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봇물처럼 전개되었다. 이 논쟁은 철학적이고 이론적 차원에서 전개되기도 했지만 현실의 정당 활동과 결합하거나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정치운동의 형태를 띠며 전개되기도 했다. 정치적 좌·우파 분류를 복지 관련 주장에 적용하면, 복지를 확대하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보편적 복지’ 주창자는 대체로 좌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이 가도록 ‘선별적 복지’를 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그룹은 대체로 우파로 분류할 수 있다. 양편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들어 보자. 좌파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라는 하나의 자본주의 시기를 마감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시기를 열어야 할 시대적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이 우리시대의 진보적 과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인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즉, 우리네 삶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뒷받침해줄 역동적 복지국가의 보편주의 전략은 적극적 조세 재정전략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우파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복지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스웨덴 등 서구 국가의 모델을 따를 경우 세율의 급격한 인상과 증세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또한 광범위한 무상복지는 근로와 저축의욕을 빼앗고 투자유인을 감소시켜 생산성을 낮추고 경제성장의 정체를 가져온다. 그 피해는 소수 부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세금부담에 대한 이야기는 쏙 뺀 채 혜택만 이야기하는 현재 정치권의 행태는 그래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복지국가는, 이미 많은 다른 나라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복지를 둘러싼 갈등은 선거가 끝난 후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이 공약을 이행하려 하면서 정파나 성향이 다른 단체장들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감의 공약에 따라 올해부터 초등학교 1~4학년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월 10일 전면 무상급식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서명이 시작되었고, 4월 중순에 서명 참여자가 20만 명을 넘은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운동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전의 핵심 좌파그룹은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추종하여 합법주의,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를 ‘합사개’라 하여 비판해왔으나 지금은 선거에서 득표를 하여 상대 당을 이겨야 하므로 모든 좌파 정당은 ‘합사개’를 지향하고 있다. 최근 범야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복지동맹론은 좌파 정당들의 이러한 노선의 변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구체적인 복지 정책들을 매개로 차후의 선거 시에 정치적 연합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동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 목소리로 복지의 확대를 요구하며 우파와 갈등을 첨예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Ⅲ. 복지와 관련한 좌파와 우파의 주장의 특징과 그 근거

 

1. 보편적 복지 주장의 논거와 특징

좌파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보편적 복지에 포함된 서비스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요소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상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혜로 베푸는 잔여주의 복지가 아닌, 사회권적 시민권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서의 복지인 보편주의 복지가 제도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좌파의 이러한 복지 확대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혁명을 지향했던 전통적인 좌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점이다.

1) 평등과 연대 가치의 중시와 이상사회에 대한 확신

좌파들은 전통적으로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중시한다. 그들은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사유재산권 행사와 시장 기회의 평등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면서 더 높은 차원의 ‘실질적 자유’와 ‘실질적 평등’의 달성을 추구한다. 예컨대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시행하자는 경기도 교육감의 보편주의 복지는 신속히 초등학교 1~4학년까지, 그리고 중·고등학교까지 확대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먹는 것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며,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에게만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그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낙인을 찍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자유, 평등과 함께 인류사회가 추구해야 할 세 번째 보편적 가치로서 사회적 연대를 제시하며 자본주의적 시장경쟁으로 사라진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보편적 복지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 방편이라고 인식한다. 보편적 복지가 단순히 보편적 확대에 그치지 않고, 국민 생활에서 사적 영역을 축소하면서 사회적 영역을 최대한 확대하고, 단순한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일정 부분 결과의 평등까지를 포함하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북유럽 국가들, 특히 스웨덴이 이상사회란 점을 확신하고 이 같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과거 혁명주의적 좌파들이 구소련이나 북한 사회를 이상으로 여겼던 것을 연상케 한다. 그들에 의하면 모든 사회 혁명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도 연대의 원리가 높은 수준에서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었는데,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그러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원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시장과 개인밖에 없는 자유지상주의적 민주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국가-경제-시민사회 영역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발전한 총체적 사회 구성의 원리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하에서 복지국가는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뿐 아니라, 세계화가 초래하는 삶의 피폐화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다.”

 

2) 시장 기능의 불신과 큰 정부 선호

좌파는 자원배분 기구인 시장과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주체의 경쟁을 비도덕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시장 거래의 기초를 이루는 경제인적 인간성을 버려야 할 탐욕이라고 보고 있다. 그들은 현재 대한민국은 야만적 경쟁지상주의 사회이며, 어릴 때부터 친구를 이기고 무찌르는 법을 터득하게 하고 있고, 지금처럼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는 인간병기를 만들어내는 정글자본주의 사회는 한국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좌파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큰 정부가 좋은 정부라고 보고 있다.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재원의 확보와 많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구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큰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우선 재원의 규모와 관련해서는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GDP 대비 정부 지출이 56%~58%를 유지하는 유럽 복지국가를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GDP에 대비하여 25%밖에 안 되는 조세부담률을 북유럽 국가들의 수준인 50%에 달하도록 지금의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본다.

3) 선별적 복지 주장의 논거와 특징

우파라 해서 복지정책이 불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으로 제공되는 복지가 아니라 필요한 대상에게 필요한 혜택이 돌아가는 복지정책을 써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좌파와 시각이 다르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거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⑴ 자유의 중시

제한된 대상에 대한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우파는 시장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기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장 거래의 기초가 되는 이기심은 탐욕과 다르며, 이기심을 폄하하면 인간의 본성과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와 문명의 발전 자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 같은 본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유주의가 만개한 사회에서 경제·사회적 발전과 진보가 크게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는 대표적인 자유주의자인 프리드만의 아래 서술에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는 세련되지 못한 개인주의의 시대이지만…….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의 발꿈치에 짓밟히고 무자비하게 착취당했던 시대가 결코 아니었으며, 방임적인 개인주의가 유행했던 시기로서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만큼 보통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을 이루었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또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미국은 이민과 그들 자녀에 대하여 희망과 약속의 나라로 부각되어, 연간 백만 명이나 되는 이주민들이 1906년, 1907년, 1908년에 걸쳐 계속해서 들어왔다. 1914년까지 인구를 보면 대략 1/3이 외국 태생이거나 외국 태생의 자손들이었다. 이주민들은 무자비한 자본가들의 뒷굽에 밟히려고 미국에 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 자신의 생활을 더욱 악화시키려고 왔었단 말인가?"

 

⑵ 시장에 대한 신뢰와 큰 정부에 대한 불신

 우파는 정부가 강제하는 복지정책은 가능하면 적을수록 좋다고 본다. 빈곤층 지원의 필요성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정책이 원래의 목적과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프리드만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우리는 정부가 부자의 희생으로 얻은 돈을 빈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지출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신화다…….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나이 16세 또는 17세 때에 직장에서 사회보장세를 지불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상류계층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24~26세까지 사회보장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부유한 자는 빈자보다 오래 산다는 것이 인구통계학적 사실이므로 결과적으로 부자는 빈자보다 몇 년 더 사회보장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가난한 하층의 사람들은 부자에게 더 오랜 동안 사회보장의 혜택을 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더 오랜 기간 납세의무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우파는 복지의 제공도 지나친 소득격차 확대나 빈곤문제의 확산 등 시장기구로 해결이 안 되는 영역에 한해야 하며, 그 크기도 가능한 한 적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의 대표적 한국 연구자라 할 최광은, 좌파가 “시장제도가 무질서하고, 불공평하고, 근본적으로 비도덕인 것이라고 보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이런 주장은 틀리거나 근거가 없으며, 시장경제야말로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제도이고, 오늘날 인류가 이 정도로 풍요롭게 사는 것은 시장경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주창하는 좌파의 이념은 관념적으로 훌륭하지만 현실에서는 재앙을 초래하고 있으며, 복지문제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증세도 이와 관련된 시장경제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파는 정부 특히 거대 정부의 일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며 불신한다. 최광은 이와 관련해서 정부의 업무를 처리하는 관료는 정치가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으며, 자기의 돈이 아니라 국민이 납부한 세금을 관리하며, 그 결과 생긴 이익도 자신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자신이 투자한 돈을 관리하여 거기서 생긴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기업가나 소비자만큼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하여 애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아무리 관료들이 똑똑하고 투철한 역사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경제의 장·단기적 작동에서 관료가 시장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지 아무리 훌륭한 관료라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능가하는 위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파는 작은 정부를 선호하므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는 상상하기 힘들며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선별적 복지를 선호한다. 보편적 복지에 의한 결과의 평등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공정하지도 않다고 보며, 정부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의도나 선전하는 것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의 부담을 늘리고 혜택은 중산층이나 부유층에게 돌아가는 역효과를 낸다고 보는 것이다.

 

Ⅳ. 북유럽 복지국가의 특징

복지 관련 갈등을 완화할 방안을 찾는 과정의 하나로 여기서는 좌파가 이상사회라고 보는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을 검토해 본다. 먼저 복지국가의 강점은 무엇인가를 검토하고, 북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이 복지국가를 실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복지국가는 어떠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분석해 본다.

1. 복지국가의 강점

현실에서 보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높은 소득수준과 상대적으로 평등한 분배라는 두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표-1>을 보면 2010년 현재 북유럽 국가들은 1인당 소득이 높아서 2008년 이후 격심한 금융위기를 겪은 아이슬란드를 제외하면 모두 1인당 소득이 4만 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고, 국가별 1인당 소득 순위에서도 15위 이내에 들어있다.

이 나라들이 원래부터 부유했던 것은 아니었고 150여 년 전에는 유럽에서 가장 빈곤하고 낙후된 지역에 속했다. 농업에 불리한 기후조건으로 1865년~1930년 사이에 140만 명의 스웨덴인들이 미국으로 이민해야 할 정도로 빈곤했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 나라들은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무역, 조선, 임업, 광업, 수산업, 목축 등으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였고, 20세기 후반에는 각 국가의 지리적 특성과 산업의 강점을 살려서 석유, 수산물 양식, 에너지 생산, 자동차, 휴대전화 등을 생산하며 계속 부를 축적했다.

또한 소득분배가 불평등한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2000년대 말에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각각 0.25, 스웨덴과 핀란드가 각각 0.26, 아이슬란드가 0.28로서 모두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낮다. 이는 이 나라들의 소득불평등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북유럽 국가의 특수성과 복지국가의 효율성

 

일본 동북지방의 지진과 쓰나미 이후에 일본인들이 보여준 높은 질서 의식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자제심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오랜 기간 지진과 태풍을 겪으며 형성된 일본인의 민족적 체질이라 할 수 있다. 북유럽 국가의 주민들도 그들의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유산에서 오는 민족적 특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이 지역 복지제도의 도입·정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 주요 사회지표 상의 특징

스웨덴은 봉건제도나 농노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중세에도 자유농민들이 인구의 주축을 이루었다. 스웨덴에서 노동과 사회생활은 조직과 집단에 의해 지배받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유로운 시간에는 조직이나 집단 활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대체로 체제 순응적이며 문화 활동에 있어서 타협과 협동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성은 북극에 가까운 위치 탓에 춥고 긴 겨울밤을 이웃과 함께 보내면서 체질화 된 사회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성으로 인해서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높다. OECD가 발표한 사회지표 자료를 요약한 <표-3>을 보면 북유럽 국가의 시민들은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서 사회적 신뢰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이 표에서 보듯이 한국은 이들 나라나 OECD 평균에 비하여 낮은 신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격심한 금융위기를 겪은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사법부, 행정부, 의회 등의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도 다른 OECD 국가에 비하여 높다. 또한 북유럽 국가들은 부패수준이 낮아서 2009년도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부패 인지지수의 순위에서 이들 나라가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표-3>에서도 부패지수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프레이저연구소(Fraser Institute)가 발표한 재산권 보호지수를 보면 핀란드는 OECD 국가 중 재산권 보호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로 나타났고, 덴마크는 보호수준이 OECD 국가 중 2위로 나타났다. 법집행이 잘되는지 그리고 경찰과 법원의 질은 좋은지를 반영하는 세계은행의 법치지수를 보면 OECD 국가 중 노르웨이가 1위, 덴마크가 2위 스웨덴이 5위, 핀란드가 6위로 높다.

부패지수가 낮고, 재산권이 충실히 보장되고, 법집행이 공정하고 불편부당하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람들의 사회적 신뢰수준이 높아지고,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지수도 상승할 것이다. 한국은 이들 지표에서 OECD 평균에 비하여 타인에 대한 신뢰가 낮고,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으며, 부패지수는 높다. 그리고 재산권 보호지수와 법치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각각 19위, 24위로 역시 낮은 수준에 속한다.

2) 높은 신뢰와 복지제도의 효율성

사회적 신뢰지수가 높고 부패가 낮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사람들의 삶의 만족을 증가시키지만 복지의 확충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동료 시민에 대한 신뢰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고 정부의 투명성이 높을수록 자격이 안 됨에도 복지혜택을 받거나 복지예산을 사적 이익을 위해 유용하는 공무원이 없다고 믿게 되고, 그 결과 고도의 복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높은 세금부담에 대한 불만도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복지에 따른 부작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덴마크의 지방정부는 일을 하는데도 실업자라고 속여 실업연금을 받는 등 부정하게 복지혜택을 보는 시민을 색출하기 위해 이웃을 고발요원으로 활용하는 상호감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 중 가장 인구가 많은 스웨덴의 인구가 9백만 명이며, 다른 나라는 그 절반에 불과하여 주민 간 상호감시가 용이하다.

이러한 신뢰수준과 투명성은 여기서 논의하는 복지정책의 효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노령자 지원, 의료, 교육 등의 복지서비스에 대한 주민의 만족도는 GDP에 대한 복지예산 비중이 높아진다고 높아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신뢰지수,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지수와 투명성이 높은 나라일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는 복지비 부담도 높지만 정책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드러난다.

유럽 대륙국가와 영미계 국가들은 이 점에서 북유럽 국가와 다르다. 전자는 복지 부담은 높지만 정부의 투명성이 낮고 국민의 신뢰수준이 낮아서 복지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이들 나라의 국민은 정부의 낮은 투명성으로 인한 불만이 있지만 자신들도 복지혜택의 부정수급이나 부담을 위한 세금의 회피 등으로 대응한다. 반면 영미계 국가는 신뢰수준과 투명성이 낮지만 복지를 위한 부담도 낮아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상만을 좇아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에 맞지 않게 복지국가를 만들려다가 국가부도를 맞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예로 작년 5월에 유럽연합과 IMF로부터 1,1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아서 국가부도를 모면한 그리스를 들 수 있다. 그리스는 일부 직종의 경우 55세(여성은 50세)에도 전액 노령 연금을 지불하는 등 무절제하게 복지를 확대했다가 국가채무가 GDP의 137%에 달할 정도로 커지고 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여 나라가 부도 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3) 복지국가의 약점

복지제도 운영에 유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북유럽 국가도 높은 복지가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를 여기서는 근로의욕, 기업활동과 지하경제, 낮은 질의 공공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1) 근로의욕 저하

스웨덴에서는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질병으로 쉴 때에는 상실한 수입의 90%를 세금으로 보상해 준다. 그러다 보니 보험의 적용을 받는 스웨덴 근로자의 연간 질병휴가 일수의 중위수는 1955년에 12일에서 1988년에는 25일, 2002년에 32일에 달하고 있다. 보통의 근무일에 스웨덴 공장에서 종업원의 10% 정도가 질병으로 쉬고 있는데, 이처럼 많은 근로자가 질병을 이유로 쉬면서 보험료를 청구하므로 이를 위해 지급하는 비용은 2002년에 정부 예산의 10%가 넘는 120억 달러에 이른다.

스웨덴 근로자의 4.5%가 1년에 평균 1주일 이상의 질병휴가를 가지는 데 유럽연합 지역의 근로자들은 평균 1.9%만이 1주일 이상 질병휴가를 가진다. 유럽인들의 평균에 비하여 결코 건강상태가 나쁘지 않으며, 평균수명도 유럽에서 가장 긴 스웨덴 사람들의 질병 휴가가 이처럼 긴 것은 그곳의 후한 질병수당 때문이다. 이처럼 높은 복지는 과도한 재정 부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근로 의욕을 줄인다.

(2) 기업 활동 위축과 지하경제 성장

북유럽에서는 새로운 기업의 창업이 부진하고 창업한 기업도 성장이 늦은데, 그 주된 이유는 높은 세금부담과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사회보험료 부담 때문이다. 그 결과 2006년 현재 스웨덴 50대 기업 중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1970년 이전에 설립된 것일 정도로 신설 기업의 성장이 드물고 노쇠한 기업이 대부분이다. 가구회사인 IKEA 등의 일부 기업은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피하기 위하여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기도 했다. 창업이 부진하고 기업 활동이 활성화 안 되니 고용은 공공부문에서만 증가하여 공공부문이 전체 고용의 30% 정도를 담당하며, 사기업 부분에서는 1950년대 이후 고용이 정체 상태이다.

또한 공식부문에서 기업 활동이 부진하면서 세금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도되는 지하경제 부문이 커지고 있다. 1990년대 후반기의 경우 스웨덴의 지하경제는 농업, 임업, 컨설팅, 청소 등 10% 미만의 낮은 수준을 차지하는 부문도 있지만 미용업 35%, 자동차 정비 26%, 택시영업 19%, 레스토랑 16%, 화물운송 16%, 건설업 10% 등 10%를 넘는 부문도 상당수 있다.

(3) 공공부문의 낮은 생산성과 이용자의 불만

공공부문의 비중이 커진 반면 이들의 생산성은 낮다. 스웨덴 공공부문의 생산성은 미국의 약 절반에 불과하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각종 공공기관의 지출에 비하여 거기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만족도는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웨덴은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려고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고 서비스는 민간이 제공하는 것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자유구매권(voucher)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그 결과 스웨덴 경제위기 직후인 2005년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부문에 의해서 서비스가 공급되고 있는데, 특수진료(medical consultations), 취학 전 아동보호, 고등학교 교육, 가정 내 보육서비스 등에서 민간이 제공하는 비중은 각각 29%, 17%, 13%, 12%의 비율로 높다.

낮은 질의 공공서비스 문제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잘 볼 수 있다. ‘무상의료’ 제도를 택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1966년 이래로 매년 외국으로 떠나는 의사의 수가 의과대학 연 졸업생의 1/3 정도나 된다. 환자 역시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부 병원은 낡았고, 건강염려증인 사람까지 병원을 자주 가므로 진료실은 포화상태이며, 의료진이 부족하여 편도선 수술과 같은 간단한 수술을 받으려 해도 평균 22주를 기다려야 하며, 심각하지만 연기할 수 있는 수술은 대기 기간이 더 긴 경우가 보통이다.

서비스의 질이 낮을 뿐만 아니라 무료서비스는 국민의 선택권을 배제한다는 문제점을 가진다. 독일에서 2007년 이후 학생들에게 소액의 등록금을 받는 대학이 증가하고 있지만 2006년까지는 정부가 대학 교육비까지 부담하는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이 때, 원하는 청소년을 모두 대학에 보낼 수는 없는데, 청소년이 대학에 갈 것인가의 여부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 진학할 중학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인문계중학으로 진학하면 대학에 진학할 인문계고교(Gymnasium)로 진학하고, 실업계중학에 진학하면 대체로 실업계고교로 가게 된다.

정부는 공짜로 교육을 시키므로 누구에게 무슨 교육을 시킬 것인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데, 정부를 대신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이 진학할 중학을 결정한다. 이 때 순수한 점수(주로 수리와 언어과목)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고소득의 전문직 가정 출신 자녀는 소득이 낮은 노동자가정 출신의 자녀보다 점수가 낮아도 인문계로 추천되는 경향이 있어서 점수가 같을 경우 전자가 후자보다 인문계로 갈 가능성은 2.63배나 높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고 여겼던 ‘무상교육'이 능력이 뛰어난 가난한 집 자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Ⅴ. 복지 관련 갈등의 완화를 위한 제언

 

2010년의 지방선거 이후 한국사회에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한층 첨예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복지 관련 갈등을 완화할 방안은 무엇인가? 간단하고 쉬운 길을 찾기는 어려운데, 이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복지국가의 현실과 그 장단점을 국민에게 광범하게 알려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국가 모델은 문화적 전통이 비슷한 다른 유럽 국가도 채택하지 않은 노르딕 국가들의 특수한 모형이다. 그리고 이는 지상에 건설한 천국과 같은 이상 사회가 아니며, 평등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는 높은 수준으로 실현했지만 이를 위하여 자유와 경제적 효율이 저하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을 국민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점은 스웨덴의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복지제도 수술에서 잘 드러난다. 스웨덴은 복지의 부작용 등으로 1990년대 초 혹독한 금융위기를 겪은 후부터 복지 제도를 크게 손질하여 최소한만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의료 복지 혜택을 줄여서 연간 800SEK(약 11만2천원)의 상한에 달할 때까지 진료 시마다 약 150SEK(약 2만1천원)의 진료비를 받으며, 민영 기업도 의료 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최근엔 영리 법인에 의한 학교의 설립과 운영도 허용했다. 그리고 예전에 도입됐던 부유세와 상속세를 2007년 모두 폐지했다. 이런 세금이 부자와 기업인들을 해외로 몰아내는 역효과를 낳았으며, 그리고 부유세를 집행하려면 부자들의 자산 목록을 일일이 다 갖고 있어야 하고, 어떤 자산에 어떤 세금을 매길지를 파악할 행정력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바람직한 복지의 수준과 형태의 결정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자 경제적 효율과 형평과 관련한 학술적 과제이기도 하므로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정치 영역을 뒤로 미루고 학술적 검토를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발전 방향과 그 과정에 대한 밑그림을 대체적으로 구상하는 학술적 논의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논의에서는 현재 한국이 가진 산업구조상의 비교우위를 살리고 발전시킬 방안,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에 대응할 방안, 여행이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서 다수의 동포가 살고 있는 중국과의 인접함으로 인한 대규모 외국 인력의 유입 가능성과 그 대응방안 등 장래의 과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논의에서 시장과 정부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설정하고, 복지대국이 겪은 문제점과 한국에서 이를 회피할 방안이 있는가를 검토하며, 그 바탕 위에서 한국에 맞는 복지의 수준과 방법을 학술적으로 설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덧붙여, 연구자로 행세하면서 정치권과 연계하여 ‘복지 운동’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특히 좌파 연구자들 중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이념상의 다원주의를 수용한다고 하면서도, ‘문제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에 따라 사실에 관한 연구를 복지 확대의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는 인사도 더러 있다. 이는 특정 종파의 전도사가 종교학자인 체하는 것과 같은데, 이들에 의해서는 진실을 알 수 없으며 관련자들의 갈등만 키울 뿐이다. 연구자로서 객관적인 연구에 몰두해야 할 사람들의 이러한 탈선을 막으려면 한국 학계 스스로가 사회의 대립적 쟁점에 휘말리지 말고 거기서 한 발 물러나 진실을 구명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며 연구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켜야 한다. 그리고 대학 교원의 관리와 평가가 보다 엄정하게 진행되어 그렇지 않은 연구자가 학계에서 도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갈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가 개선되고 정치인이 성숙해져서 현실성 있는 정책 개발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한다. 유럽 선진국의 예로 판단하면 적어도 복지 관련 정책과 관련한 좌우 정파 간의 갈등을 줄이는 데는 의원내각제가 유리할 수 있다. 2006년에 집권한 스웨덴의 중도 우파 정부는 과거 좌파가 도입한 과도한 복지를 일하는 복지(workfare)로 전환하면서 실업자 재교육 등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씀으로써 복지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2010년에 다시 집권한 독일 기민당도 소득세와 법인세를 줄인다고 공약하면서도,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보호는 견지하고 여성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좌파의 복지정책을 수용하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의 제시로 기민당과 사민당의 정책 차이가 크지 않자 전통적으로 사민당을 지지해온 독일 최대 노조인 금속노조는 2010년 선거에서는 사민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등 계층 간 갈등이 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공화당의 티파티(Tea Party) 운동에서 보듯이 대통령중심제 하에서는 정치적 극단주의가 득세하기 쉽다. 장기적 폐단을 고려하지 않고 지방공항의 설립이나 행정수도 건설 등의 장밋빛 공약이 선거 때마다 남발하고, 복지와 관련해서도 우선 선거에 이기고 보자고 생각하여 ‘아니면 말고’식의 공약이 난무하는 한국의 상황도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나타나는 극단주의의 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치적 갈등을 줄이는 방안으로서 의원내각제도 검토해 볼 과제라 하겠다.

넷째,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한국은 사회보장 관련 지출을 나타내는 예산 대비 사회지출의 비중이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낮다. 국민연금 도입이 얼마 되지 않아 수급자가 아직 적고, 노인인구의 비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낮아서 노령인구 관련 지출이 적다. 그리고 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편입되어 있어서 국방비가 낮은 유럽 국가들보다 GDP 대비 우리나라의 국방비 비율이 2배 정도나 높다. 이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사정이 여기에는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낮다는 사실 자체가 좌파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고 서민과 중산층의 동조를 강화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서민의 어려움을 들기 위해서도 사화안전망은 확충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립학교교직원연금)의 가입자는 전체 근로자의 60%에 머물고 있으며, 산업재해보상보험의 가입률도 60% 수준으로 낮다. 고용보험의 가입률도 40% 수준으로 낮은데, 특히 소규모 사업체, 저임금 근로자, 임시 또는 일용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상당수가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처럼 사회보험의 가입률이 낮은 것은 근로자 가운데서 임시근로와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인데,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폴란드와 스페인 다음으로 그 비율이 높다.

대기업의 정규직은 단체교섭에서 일자리 세습을 요구할 정도로 근로조건이 좋고 고용이 안정되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근로자와 임시·일용직은 고용불안에 낮은 임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2010년에 월평균임금 100만원 만 근로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16%에 이르며 임시·일용직이 이들의 80%를 차지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한국의 시장소득 및 가처분소득 기준의 지니계수는 1990년대 초에 최저 수준에 달한 후 꾸준히 상승하여 소득분배 상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빈곤층의 비중은 증가하고 중산층의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은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한 서민생활의 개선은 정치·사회적 안정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복지 관련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시대정신, 2011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