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갈등사회, 원인과 해법을 논한다 [편집부] |
토론주제 1. 한국사회 갈등의 역사·사회적 기원 사 회 김세중 연세대 교수,
정치학
한국사회 갈등의 역사적 사회적 기원
김세중: 이번 시대정신의 특집주제는 갈등사회입니다. 갈등은 보편적 현상이고 우리 사회도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갈등이 좀 격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최근에 한두 가지 사항들이 돌출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국책사업과 관련한 지역갈등이 크게 돌출하고 얼마 전부터 무상급식 등 복지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지요. 또 이슬람채권법을 둘러싸고 세속정치와 종교집단 사이의 갈등이 형성됐습니다. 시대정신은 이런 배경에서 지금 언급한 쟁점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한번 점검해보기 위해 선생님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발걸음을 하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세부적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사회 갈등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논의해 보겠습니다. 현재를 심층적으로 보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갈등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특집논문을 준비하시는 이영훈 교수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지요. 이영훈: 김세중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갈등이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고, 또 있어야 정상이기도 한데 한국에서의 갈등은 유난히 심하고 지속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좀 과할지 몰라도, 갈등을 유발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득이 되는 갈등유발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데는 깊은 역사적 인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870~90년대 전라도 영광군의 소송 기록을 보면 한 해에 3천 건 가까운 소송이 있었습니다. 1만 2천 호가 있는 군인데 계산을 해보니까 8-9호당 한 해에 한 건씩 민사소송으로 이어진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 비슷한 ‘소송의 홍수’ 현상은 일제시대에도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여서, 예컨대 한국의 민사소송 건수는 일본에 비해 60배나 된다고 합니다. 갈등이 그렇게 많은 원인 중의 하나는 사회 내부에 갈등을 방지하거나 조정하는 자율적 메커니즘으로서 공동체가 성립해 있지 않고, 그 대신 갈등이 생기면 항상 관료제에 의거해 해결하려는 구조가 성립해 있고, 그 같은 구조 속에서 갈등을 일으켜도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오히려 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 전통사회가 ‘갈등유발형 사회’이며, 그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오늘날에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 복: 제가 1990년대 초에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라는 책을 냈습니다. 각 분야별로 계급갈등, 권력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 다원화 사회에서의 갈등 등 여러 갈등을 나눠서 봤습니다. 산업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서로 경쟁을 해야 하므로 기본적으로 갈등구조인 데 비해 농업사회는 기본적으로 화해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 말씀대로 19세기 말에 오면 특히 호남지방에서 엄청난 갈등이 발생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갈등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호남지역은 특유의 소유양식의 이해에 따른 갈등이 발생합니다. 다른 지역은 대개 자작농이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경상도의 경우는 70% 이상이 자작농인 반면 호남은 70% 이상이 소작농이다 보니 갈등이 많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산업사회는 왜 갈등구조냐 하면 산업사회는 생산방식 자체가 기본적으로 경쟁구조입니다. 산업은 각 부문별로 서로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쟁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경쟁이 치열한 때에는 규칙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규칙을 벗어난 경쟁은 갈등 중에서도 치열한 갈등이 되지요. 또한 산업사회는 기본적으로 다름을 지향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산업과 그에 따른 각기 다른 사회적 주장, 요구, 가치들이 생성됩니다. 그 자체가 갈등구조지요. 반면에 농업사회는 같은 것이 기본입니다. 왜냐하면 농업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산방식은 협동입니다. 봄에 다 같이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계절을 놓치지 않고 김을 매고 수확하려면 협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협동을 하려면 가치관, 주장, 요구, 생활방식도 같아야 하기 때문에 농업사회는 기본적으로 ‘같음’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구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산업사회에 진입한 것은 1960년부터 아닙니까. 그때부터 갈등구조가 되는데, 서구 산업사회가 갈등구조로 들어선 것은 우리보다 150년 더 먼저입니다. 우리도 60년대를 넘어서 산업사회로 서서히 진입하게 되면서 갈등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는데,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분신자살 할 때부터 노골적으로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그러니까, 산업사회에서의 갈등은 정상(定常‧normal)적인 현상이고 병리현상이 아니라는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농업사회에서의 갈등은 병리현상입니다. 우리는 갈등에 대해서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또 갈등을 병리현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요새 병리현상이 나타나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갈등은 일반적인 현상이고 갈등으로 말미암아 그 사회가 훨씬 다양해지고 다이내믹해지고 더 빨리 발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세중: 이 교수님께서 19세기 말의 한 호남지역을 극심한 갈등양상의 예로 실감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송 선생님께서는 갈등은 산업사회의 특유의 현상이고 전통 농촌사회는 협동사회일 수밖에 없다, 전통 호남지역 갈등은 소작농이 다수라는 그 지역 특색을 반영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요지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이영훈: 흔히 박정희 시대 이후의 고도성장으로 한국의 전통사회가 심각하게 해체되고 공동체사회가 이익사회로 전환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보다 우리 전통사회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 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사회의 대표적인 단체는 마을이라 하겠는데, 그 마을이 공동체적 규범을 갖는 단체였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고, 또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19세기 경상도 어느 양반마을의 실태를 세밀하게 연구한 저의 경험에 의하면, 20세기 전반까지 한국 전통사회의 마을을 가리켜 잘 뭉쳐진 공동체라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초 박정희 정부가 새마을 운동을 시작할 때 전국에 3만 5,000여 자연 부락을 대상으로 마을 내부의 리더십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리더십을 결여하고 있는 마을이 50%나 되었고, 건강한 리더십으로 자조계획을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는 마을은 10%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흔히들 한국의 전통사회를 가리켜 공동체사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 좀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세중: 이 교수님은 한국의 전통사회는 공동체적 기반이 약한 사회로 파악하고 계시군요. 정 교수님이 보태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정진홍: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두 교수님의 갈등 개념이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관심을 ‘갈등 없는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하는 것, 그리고 갈등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대로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실은 ‘갈등 없는 사회’란 없습니다. 종교에서는 바로 그렇다고 하는 사실을 문제로 여깁니다. 그래서 대체로 ‘갈등 없는 사회’를 묘사하여 제시하면서 우리의 삶이 그곳으로 귀착하도록 유도를 합니다. 한데 그때 종교가 제시하는 이른바 이상적인 사회란 태초에 있던 그러나 지금은 잃어버린 사회로 그려지던가, 아직 우리가 도달하지 않은, 그런데 틀림없이 도래할 종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이상향(utopia)인 거죠.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회상 속에서는 가능한, 그리고 기대 속에서는 그려지는, 그런 한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갈등 없음’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대를 어떻게 지금 여기에서 현실화하여 ‘갈등 없음’을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로 우리로 하여금 지니도록 하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들은 이러한 계기에서 절대적인 것을 개념화하여 그것을 추구할 가치로 전제합니다. 신성(神聖)이나 초월이나 신비나 궁극적인 깨달음이나 일관하는 순종의 지속을 그렇게 개념화합니다. 결국 그 내용이 어떻든 갈등의 초극은 절대에의 귀속을 실현할 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모든 규범과 온갖 가치를 응집하고 귀일하게 하는 ‘절대’가 단일한 것으로 전제되고 그것이 그렇게 기능하면 괜찮은데 그것이 그렇지 못하고 마치 ‘절대의 산재’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부터 삶의 공동체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갈등의 원인은 의외로 제각기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자기 문화가 자기를 절대화하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절대적인 가치나 규범의 부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각기 자기가 절대적으로 잘난 거지요. 그러다보니 갈등에서 기대하는 것은 자기확산 이외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종교사를 보면 이것이 확연합니다. 우리의 종교사는 무속신앙에서부터 시작해서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근세 이후에는 이른바 민족종교들이 제각기 자기 소리를 내면서 상호 배타적인 태도를 진리란 이름으로 치장하면서 서로 끊임없이 티격태격하고 있습니다. 절대가 산재해 있는 문화인 셈입니다. 우리의 의식 기반을 조성한다고도 일컬어지는 종교문화가 이러한 모습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종교사의 현실이 우리의 갈등사회를 부추기는 데 상당한 몫을 했다고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김세중: 전통사회의 갈등의 배경을 ‘절대의 산재’라는 한국 다종교 사회적 특징에서 찾을 수이다고 진단하셨는데, 일반 사회과학적 언어와는 다른 조금 색다른 범주를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이영훈: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갈등의 빈도나 심도는 더 커진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조정하거나 억제하는 사회의 역량은 방금 정 교수님이 종교학적 맥락에서 말씀하신 대로 성(聖)의 세계나 권위의 존재 여부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하겠는데,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자율적인 공동체의 존재 여부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세중: 박 교수님께서는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박능후: 저도 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만,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결국 한정된 자원을 나눠 가지려고 할 때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즉 바라는 욕구가 있는데,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제한적일 때 그에 대해 경합을 하면서 갈등이 생긴다고 봅니다. 그러한 욕구는 물질적인 욕구와 정신적인 욕구로 나눌 수 있겠고, 보다 흔하게는 정치권력이나 세속의 제한된 자리를 두고 파벌로 나눠 싸우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를 단순화하면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려는 데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면 갈등의 구체적 모습은 바뀌겠지만, 인간의 욕구가 상당히 무제한적이라고 봤을 때 갈등의 존재는 본원적인 것입니다. 다만 얼마만큼 사람들이 욕구를 많이, 그리고 깊이 느끼느냐 하는 그 정도와 또 어떤 분야에서 욕구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갈등의 양태와 심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또 그것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기제가 사회에 있다면 보다 완화될 수 있는 여지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제한된 자원과 상대적으로 큰 인간의 욕구를 봤을 때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상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세중: 무한 욕구와 한정된 자원이라는 어떻게 보면 인간사회의 존재론적 한계를 지적하셨습니다만, 이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례를 들 수 있는지요? 송 복: 인간사회에서 자원은 유한하고 인간 욕망은 무한대니까 갈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본래 우리나라에는 갈등이란 말이 없었어요.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썼던 말에 ‘싸움한다’, ‘쟁투를 벌인다’, ‘소송한다’ 이런 정도가 오늘날 말하는 갈등의 한 범주에 들어갑니다. 갈등을 영어로 ‘conflict’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회학적 용어입니다. 본래 struggle, fight, competition 등이 싸움과 관련된 것인데, struggle, fight 하면 감정이 격하게 개입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회학자들이 conflict라는 말을 썼는데, 이 용어 자체가 감정적 중화의 성격을 갖거든요. 한자로 보면 이 갈등은 칡 갈(葛), 넝쿨 등(藤) 혹은 등나무 등(藤)으로 칡넝쿨을 의미합니다. 칡은 본능적으로 서로 얽혀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이 싸움을 한다고 해서 갈등이라고 했겠죠.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학자들이 갈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70년대 이후입니다. 처음 conflict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학생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우리가 70년 넘게 썼던 용어 중에 통합(integration)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갈등이 나오면 반드시 통합이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두 용어를 모를 정도로 우리는 갈등사회로부터 멀어져 있었고, 그런 면에서 산업화로부터도 멀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산업화를 하게 되면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갈등구조로 들어가서 반드시 싸움이 벌어집니다. 특히 우리와 같이 후진사회에서 산업화를 하게 되면 ‘산업화 3격차’라는 것이 꼭 벌어집니다. 영국, 미국, 일본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산업화가 진행되면 격차가 벌어지긴 해도 급격하게 벌어지진 않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짧은 시일에 경험한 독일의 경우처럼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달성하려고 하면 먼저 우선순위(priority)를 매겨야 합니다. 어느 분야를 먼저 개발할 것인가 하는 우선순위 때문에 제일 먼저 벌어지는 격차가 농업과 공업 간의 산업 격차입니다. 공업이 발달하니까 공업과 농업 간의 격차가 벌어져서,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간의 소득 자체가 엄청나게 벌어져서 갈등의 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 다음 계급 격차가 벌어집니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블루칼라 노동자 간의 소득 격차가 굉장히 벌어지면서 계급 격차가 벌어집니다. 그 다음 어느 지역에 투자를 해야 더 빨리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느냐 하는 것 때문에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벌어지는 동시에, 도시 간, 농촌 간의 지역 격차가 굉장히 벌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산업화로 인한 3격차가 벌어지니까 갈등의 구조와 토대가 어쩔 수 없이 형성되게 되죠. 특히 우리의 경우 짧은 기간 동안의 압축 성장으로 인한 지역 격차를 분석해 보면 산업화가 되면서 사람들이 지역이동을 합니다. 본래 경상도 인구와 전라도 인구를 보면 해방될 때는 두 지역 인구가 비슷했어요. 그런데 70년대 넘어 80년대에 가면 전라도 인구가 경상도 인구의 1/3 수준밖에 안 될 만큼 줄어듭니다. 전라도 인구가 다른 데로 이동한 겁니다. 그렇게 인구인동이 급격했는데, 이것이 이영훈 교수가 말하는 공동체 파괴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인구이동이 가장 극심한 나라가 미국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일 년에 전체 인구의 16%가 이동을 합니다. 우리는 최고로 전체 인구의 25%가 이동을 했고, 지금도 20%의 인구가 이동을 합니다. 미국이 2억 5천만 인구에 4천만이 이동을 하고, 우리는 5천만 인구에 1천만이 이동을 한다고 하면, 1㎢당 우리가 움직이는 인구의 속도는 미국의 25배입니다. 우리의 인구이동이 이렇게 급격합니다. 일본은 우리 인구이동의 1/4밖에 안 됩니다. 그럼에도 일본에 가면 “그렇게 서둘러 어디로 가는가”라는 글귀가 각지에 있어요. 대만의 경우는 인구이동이 우리에 비해 1/3입니다. 그런데 인구이동을 하다 보니까 결국은 공동체가 파괴돼버리는 거예요. 공동체라는 것은 한 지역에 오래 정착해야 형성되는 건데, 이동이 빈번하다 보니 한국사회는 어느 지역을 가나 이방인 사회라는 겁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깨지면 왜 큰 문제가 되냐 하면 낯선 사람들이 만나니까 싸움이 벌어질 뿐만 아니라 범죄율이 증가하게 돼요.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상호감시거든요. 같은 사람들을 늘 만나다 보니까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 정도로 그 사람을 잘 알게 되고, 잘 알면 서로 감시를 할 수 있거든요. 나에 대한 최고 감시자는 내 아내이고 자식 아닙니까. 공동체가 되면 내 최고 감시자는 내 이웃이고, 친구들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동을 하니까 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되고, 그러다보니 그 지역에는 서로 모르는 불특정 다수만 살게 되는 거죠. 불특정 다수가 살면 조금만 잘못돼도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되는데, 그래서 2000년 현재 우리의 고소‧고발 수만 보면 인구 비례로 일본의 120배입니다. 일본은 일찍이 산업화가 되어 공동체가 성립됐거든요. 김세중: 우리 사회 산업화의 급진성 그리고 갈등 유발과 관련된 그 현상의 함의를 생생한 자료를 가지고 제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까 이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전통사회가 상당히 갈등적인 면이 강한 사회였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 있으신가요. 이영훈: 조선시대의 경상도에 단성현이란 고을이 있었습니다. 진주 옆에 있는 조그만 고을입니다. 그 고을의 18-19세기 호적이 전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성균관대학교에서 그것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보급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자료를 가지고 법물야면이란 곳에 사는 주민들이 얼마나 오래 그곳에서 사는가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대략 400호 되는 면인데요, 조사결과 18세기는 농가의 평균 존속기간이 40년, 19세기가 되면 20년 정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400호 가운데 18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가계를 죽 이어오는 집안은 10여 호에 불과했는데, 대개 양반마을의 종가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농가의 경우 18세기에는 적어도 2세대가 지나면 한 번, 19세기는 자기 당대에 한 번, 다른 지방으로 이사함이 보통이었던 것이죠. 흔히들 한국의 전통사회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합니다만, 의외로 인간들의 지역 간 이동은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에도(江戶) 시대의 일본 농촌사회의 경우 어느 촌락에 속한 농민은 대대로 그 촌락에 붙박이 함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다른 촌락으로 옮기는 일은 아주 하층민에 한하는 예외적인 일이었지요. 그렇게 인간들이 오랫동안 붙박이 하니까 강한 공동체사회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 전통사회는, 중국도 마찬가지였다고 보입니다만, 인구의 지역 간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였습니다. 송 복: 어디서 어디까지 움직이는지가 이동의 기준인데, 미국에서는 카운티(county)를 넘어서면 이동이라고 하고, 우리는 동(洞)을 넘어서면 이동이라고 합니다. 행정구역상 같은 동 내에서 이사하는 경우는 이동으로 파악하지 않아요. 동을 넘어가야 이동이라고 보는데, 옛날 제가 살던 지역에서도 종가를 두고 얼마나 멀리 이사를 가냐 하면 대개 군(郡) 내였거든요. 제가 말한 이동은 동 혹은 면 단위를 벗어난 이동을 말합니다. 이영훈: 저도 면(面)을 벗어난 이동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송 교수님 말씀대로 6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고도산업화에 따라 굉장히 이동성이 강해졌고, 그에 따라 본격적으로 갈등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다만 정도는 약하지만, 이전부터 그러한 경향은 역사적으로 있어 왔다는 점을 조금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김세중: 크게 보면 이 교수님께서도 송 교수님이 제시하신 잦은 이동과 낯선 대면의 증가라는 일종의 사회학적 개념으로 전통사회의 갈등을 설명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통사회의 갈등유발요인으로 이런 것 외에 혹시 독특한 한국의 정치구조나 소유구조 또는 생활양식 등을 지적할 수는 없는지요. 이영훈: 다른 무엇보다 경제적 요인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인구가 자주 이동한 것도 흉년을 당하여 먹을 것을 찾아 처가라든가 친척을 찾아간 것이죠. 조선시대에 농업은 ‘3년에 소한(小旱), 7년에 대한(大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생산성이 낮고 불안정했습니다. 처음에 전라도 영광군의 소송사건에 대해 소개했습니다만, 소농 내용을 보면 아무래도 채무관계나 소작관계 등 경제적인 것이 많습니다. 김세중: 정 교수님이 종교 상황과 관련해서 조금 더 말씀해 주시죠. 정진홍: 아까 송 교수님께서 우리말에 갈등이란 용어가 없었다고 하셨는데, 근대 이후 서양적인 개념의 쟁투(爭鬪, conflict)는 아니어도 공동체의 위기를 느낄 정도의 불안한 공동체적 갈등이 드러나는 상황을 역천(逆天)이라 불렀던 것이 갈등의 극(極)을 일컫는 언어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해답은 갈등의 상호 주체들 너나 할 것 없이 순천(順天)을 해야 하는 일이고요. 현대적인 감성으로 바꾸어 이를 개념화한다면 근본을 망각하거나 간과했다든지,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든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이를 넘어 마침내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순천을 이루는 상황이 바로 대동(大同)입니다. 그러므로 ‘갈등 없음’은 모두 획일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동은 화(化)가 아니라 화(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은 부동(不同)을 전제합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인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의 전통에서 보면 근대화라든지 산업화라든지 하는 시대적인 양상과 이어져 생기는 갈등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서 비롯하는 불가피한 갈등에 대한 정연한 서술과 현철(賢哲)한 대처를 나름대로 의미 있게 모색하고 또 실현하고자 애써왔던 것 같습니다. 송 복: 과거에는 쟁투, 쟁송 등의 용어를 사용했고 불화(不和) 개념을 제일 많이 사용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싸움을 나누어 군자(君子)의 경우는 “같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룬다”하여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고, 소인(小人)의 경우는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데 불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전통사회도 인간사회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와장창 부수는 격한 싸움이 없기야 했겠습니까만 매우 드물었습니다. 요즘은 갈등의 빈도수와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정진홍: 그런데 옛날에도 격한 표현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천지개벽(天地開闢)이 그렇습니다. 어떤 시골 노인께서 제가 어렸을 때 이 말을 풀이하시면서 “하늘과 땅이 맷돌 짝처럼 서로 붙어 세상과 사람을 싹싹 비벼버리는 것”이라고 하셔서 섬뜩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세중: 아까 역천을 언급하셨는데, 그것이 혹시 일상생활의 맥락에서도 사용되었는지요? 정진홍: 일반적으로 왕조를 바꾸는 것을 얘기하는데, 그 개념이 꼭 왕조의 교체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고 최악의 경우 또는 갈등이 극한 상황을 이야기하죠. 송 복: 역천자(逆天者), 순천자(順天者)로 나누는데, 사회의 규범을 따라가면서 순리에 맞는 행동을 하면 순천자이고,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역천자라고 하죠. 김세중: 정리가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송 교수님께서는 특히 근래 우리 사회의 갈등야기 요인으로 산업화를 매우 강조하셨고, 이 교수님도 그것에 기본적으로 견해를 같이 하시면서도 우리의 경우 전통사회도 상당한 갈등요인이 축적되어온 사회라는 것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정 교수님은 좀 차원을 바꿔서 ‘절대의 산재’라는 종교상황을 갈등의 배경으로 제시하셨고, 박 교수님은 자원의 한계를 강조하셨습니다. 정진홍: 사람들은 각기 자기주장을 할 수도 있고, 그 주장이 가장 옳다고 하는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조차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되살필 수 있는 그보다 더 높은 절대적인 어떤 것을 향해 늘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절대적인 것의 부재란 그런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치적 전제의 정당성이나 그것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지 못한 절대에의 신념, 비판 앞에 자신을 열어놓지 못하는 절대에의 헌신이 소멸하면서 그야말로 박제된 절대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갈등을 충동하고 있어 오늘 우리가 갈등을 염려해야 할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 것입니다. 결국 내 ‘절대’가 평가받아야 할 그러한 ‘절대의 준거’의 상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제각기 자기를 절대화하면서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갈등을 더 유발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영훈: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의 전형적인 예를 발견합니다. 4개강 사업은 토목공학이나 자연생태학과 관련된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데, 그 방면에 조예가 없는 분들이 나서서 끝까지 자기주장을 하는 모습들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정진홍: 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듯 그렇게 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장의 절대성은 그러한데 그 주장이 그렇게 절대적인 것으로 등장하기까지의 사정은 무척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토목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역적인 문제, 정파적인 문제, 경제적인 이득 등 온갖 것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순수하게 토목적인 문제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주장의 양태는 그야말로 절대적입니다. 이영훈: KTX 공사 때 천성산에 터널이 뚫리면 도롱뇽이 멸종된다고 해서 한 여자 스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같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누구든 자기주장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분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자기주장을 할 특별한 지적 권위나 직업적 경험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도롱뇽이 죽지 않는다고, 권위 있는 정부위원회까지 그런 판정을 내렸음에도 전 국민이 주시하는 앞에서 목숨 걸고 단식을 강행해서 결과적으로 몇 조 원의 공사비 손해를 끼쳤다고 하지 않아요. 저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신념으로까지 발전시켜 비타협적 투쟁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비타협적 주장이 난무하는 것은 권위 있는 신뢰할 만한 판정 내지 조정체계(referee system)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초월적인 가치나 성의 권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까지 큰 소리로 주장을 펼친 다음, 틀렸음이 증명되어도 추궁을 당하지 않거나 심지어 책임감도 안 느끼는 풍토가 조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진홍: 심각한 것은 자기 절대성의 합리화를 의도적으로 강화하고자 할 때 등장하는 이른바 ‘상징 조작’의 현실성입니다. 자기 절대성을 주장하는 주체들은 흔히 그 주장을 무수한 해석 가능성 앞에다 들어냅니다. 그것이 ‘상징 조작’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주장은 무수한 의미를 가지고 확산됩니다. 마침내 그 주장의 절대성은 어떤 경우에도 현실 적합성을 가진다고 사람들에 의해 판단되면서 누구에게나 진리로 수용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입니다. 주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장은 지금 여기에서의 구체성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때 무수하게 해석되던 의미들은 모두 무산되고 오직 하나의 의미만이 현실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때로 그것은 뜻밖에도 본래의 주장과 상관없이 그 주장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절대적 주장을 하던 주체는 자신이 제시한 상징이 갖는 무수한 해석의 그늘로 얼마든지 자기를 숨길 수 있습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면책의 둥지 안에 들어가면 되는 거죠. 우리가 겪는 많은 정치적 행위가 대체로 이렇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그 비용을 바른 정치나 좋은 환경을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때로는 너무 과불이 되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소박하게 말한다면 모든 신념은 지성이나 합리성을 동반하지 않을 때 맹목적인 고집과 다르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광신이죠.
지역갈등의 양상
김세중: 정 교수님께서 우리 사회의 자기 절대화의 전통에 내포된 깊은 함정을 웅변적으로 들려주셨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한국사회 갈등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만, 이제 각론으로 들어가 지역갈등을 살펴볼까 합니다. 지역갈등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고, 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최근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갈등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대개 일종의 ‘표 쏠림 현상’이 지역갈등 현상의 주를 이루었지요. 송 선생님께서 먼저 시작해 보실까요.
송 복: 지역갈등 외에도 계급갈등이 아주 중요합니다. 산업화 3격차가 벌어지면 앞서 말한 대로 계급갈등, 지역갈등, 산업갈등이 발생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계급의 이동성도 상당히 빈번했습니다. 조선조시대에는 계급이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성되어 있었거든요. 양반이 5% 정도, 중인도 2%가 채 안 되고, 나머지 90% 이상 중 천민이 40% 이상을 차지했고, 상민이라는 일반 백성은 50%뿐이었습니다. 그럼 천민은 누구였나 하면 칠반천역(七般賤役)이라 해서 노비, 백정, 광대, 무당, 기생, 가죽신 만드는 갖바치, 승려 등이었는데, 1950년대까지 이들을 차별하는 전통이 남아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정육점 주인이 노인인데도 고기를 사러 가서 주변에 사람이 있나 없나 보고, 만약 사람이 없으면 “고기 한 근 주세요” 하고, 사람이 있으면 “주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방 후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른들이 백정에게 존대한다고 꾸지람을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우리 사회가 계급사회였는데, 지금은 천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없어졌고 모두 신분이 상승했거든요. 지난 30년 동안을 보면 상층이 밑으로 내려오고, 중층과 하층이 위로 올라간 계급이동이 우리처럼 빠른 사회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와 크게 구분되는 것은 상층(high class)은 있는데, 상류사회(high society)가 없다는 것입니다. 서구 상류사회의 개념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리고 중층, 중류사회가 있고, 하층은 있는데, 천민사회는 없습니다. 천민사회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미국, 유럽, 일본에도 있고, 인도에도 프라이어 소사이어티라는 유명한 천민사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전 국민이 양반화 되었거든요. 자기 집 족보 따져서 양반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산업사회에 의해서 전 국민이 완전히 평등한 사회가 되었고, 국민 개개인이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독립개체가 되었어요. 그 독립된 개체가 전통사회의 공동체보다도 훨씬 더 힘이 세고, 요구와 주장, 신념과 자기 사상이 더 강합니다. 이것이 남북관계와 겹쳐 신념이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철학자 니체가 한 제일 중요한 말이, “지식인의 임무는 우상을 깨는 것이다”인데, 우리 지식인들도 그렇고, 종교의 성직자들 모두 자기의 신념을 우상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우상을 깨려면 더 많은 싸움을 벌여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70-80년대만 하더라도 말씀하신 우상화는 지금보다 훨씬 약했는데, 9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두 각자가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더 크게 소리 내서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진홍: 아까 말씀하신 대로라면 지역갈등이 훨씬 줄었어야 하는데 왜 색깔은 더 강해지죠? 송 복: 70-80년대 지역갈등과 현재의 지역갈등은 성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70-80년대 지역갈등은 지역적 정치갈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중에 정치적으로 누구를 지지하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요즘의 지역갈등은 이러한 정치적 ‘표 쏠림 현상’에 이념과 지역이기주의가 결합되었어요. 현재 모든 지역이 자기이익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60년대에는 지역싸움이라 할 것도 없고, 70-80년대 싸움에 비해 지금의 싸움이라는 것은 정치싸움, 이념싸움, 이익싸움의 3중이 겹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김세중: 송 교수님께서 60년대 이후 지역갈등이 쟁점을 바꾸어가며 전개되는 양상을 명쾌하게 정리하셨는데, 관련해서 박 교수님도 한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박능후: 지역갈등에 대해서는 일상적으로 많이 듣고,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으로 올수록 지역갈등이 정치적 갈등과 결부되어 정치적 색깔을 띠게 된 것 같습니다. 특정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한 정파가 선거에서 이기면 거의 독점적으로 정치권력과 세속적 자리를 자파의 이익에 부합되게 배분하는 사례가 다수 있었고, 그에 따라 지역갈등이 구체적 이익쟁취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역갈등이 점차 구체적 이익을 둘러싸고 싸우는 이익갈등의 양상으로 변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진홍: 제가 또 저 나름의 엉뚱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어느 종교든 자기 나름의 독특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유교는 혈연이 공동체의 구성원리가 되어있고(가족), 불교는 수행자 중심의 수련(修鍊)공동체(승가)가 그 기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아우르는 생활공동체(교회나 성당)가 그 본래 모습이고요. 그런데 우리에게 가장 뿌리 깊은 종교문화라고 할 수 있을 무속신앙의 공동체는 묘한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그 짙기가 다릅니다만 하나는 굿판이 벌어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제장(祭場)공동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정한 영역을 정하고 그 안에서 그 영역을 관장하는 무당을 옹립하여 굿의 연희를 부탁하는 것으로 조직화된 지역 중심의 공동체 곧 제역(祭域)공동체가 있습니다. 제장공동체에서는 무당이 굿하는 자리에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먹고, 같이 춤을 춤춥니다. 정서적 고양이 지극하고 그래서 이루어지는 공감도 탄탄합니다. 하지만 굿만 끝나면 그 공동체는 이미 공동체가 아닙니다. 응집력도 없고 지속성도 없습니다. 다만 그때 거기뿐입니다. 제역공동체에서는 사람들이 연초에 이미 무당에게 일정한 봉헌을 합니다. 그리고 일이 있으면 그 무당에게 찾아갑니다. 무당들은 그렇게 정해진 자기 권역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경계 안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합니다. 사람들은 그 힘에 의존하여 해답을 모색하고 또 누립니다. 저는 우리의 이른바 지역갈등을 이러한 구조에서 이해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정치적인 지역갈등이 그렇습니다. 상당기간 동안 우리의 정치는 재역공동체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우리의 정치판을 보면 정치인들이 한동안 완전히 무당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제역공동체를 관할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 지역에서의 무당 역할을 온전히 해내면서 그곳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자기를 들어냈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라는 것 역시 제장공동체의 정서적 표출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전부 무당이라고 보고 싶고, 또 그래야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웃음) 전통적인 무당처럼 제역공동체를 나누어 관할하면서 사실은 지역갈등을 이용하고 조작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풍토가 우리의 종교문화가 보여주는 정치현실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퇴색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만, 그래도 저는 제역공동체가 지닌 정치의식과 제장공동체에서의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불식되기 전까지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힘들다고 봅니다. 이런 시각에서 지역갈등도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영훈: 역사적인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국가가 성립된 지 6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국민적 통합이랄까 그에 상응하는 국민의식, 서구적인 개념으로 표현하면 시민의식이 한국 정치의 규범으로 성숙해 있지 않다고 봅니다. 그 대신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제장공동체 내지 제역공동체에 준하는 저급한 집단감정이나 표출방식이 한국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역감정이 그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감정은 저 멀리 1,500년 전 부족국가 시절의 대립이 남긴 유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속이 정치를 지배하던 부족국가 수준의 대립과 통합이 현대 한국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좀 엉뚱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사처럼 단일 인종에 의한 고립된 역사일 경우, 특히 지배 권력이 초장기간 연속적이었던 국가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조선시대만 해도 지역감정은 심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왕조실록을 보면 전황을 논하는 국왕과 대신들의 회의에서 호남의 민심이 자꾸 물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위정자들은 호남은 반역의 가능성이 있는 지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편견은 고려시대로까지 올라갑니다.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말하기를 금강 이남의 사람들은 지세로 보아 반역하기 쉬우니 조정에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려 말기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일입니다.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공민왕이 금강을 건너려 하자 신하들이 “구 백제의 땅이니 위험합니다”라고 해서 방향을 안동으로 돌리지요 조선 후기 17-19세기에도 호남 차별에 관한 문헌은 수많이 남아 있습니다. 전라도 흥덕 출신의 진사 황윤석이 서울에서 벼슬살이할 때 서울사람들이 호남을 얼마나 차별하는지,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싶어서, 자신의 쓰린 체험을 일기에다 적었습니다. 20세기 전반 식민지 시기에는 일제라는 초월적인 외래 권력이 지배했습니다. 이후 해방, 분단, 건국, 전쟁이라는 격동의 정치사에서는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이념 대립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그렇게 초월적인 권력이나 이념이 지배했던 기간에는 지역갈등은 억눌려 있었습니다. 50년대만 해도 호남 출신이 영남에서, 영남 출신이 호남에서 국회의원에 몇 차례 당선되곤 했는데, 그것은 그 시대의 한국을 통합한 정치이념이 초월적인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이후 그런 이념의 시대가 지나가고, 각 지역이 경쟁적으로 자기 출신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또 그 과정에서 영남인이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권력을 독점하게 되자,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지역감정이 표출되면서 한국인을 분열시키기 시작했다고 하겠습니다. 아까 정 교수님께서 종교사회학이랄까 종교정치학의 맥락에서 말씀하신 제장공동체 내지 제역공동체의 정치의식이나 통합원리와 관련하여 좀 더 부연해서 말씀드리자면, 10세기 이래 역대의 왕조와 지배계층은 제장공동체를 대신할 만한 보다 이성적이면서 초월적인 성의 권위나 형이상학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그다지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조선성리학만 하더라도 왕조의 지배를 받는 신민이나 백성 전체를 출신 지역이나 신분의 차별을 넘어 보다 큰 집단으로 통합할 수 있는 정치철학의 원리를 찾아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출신 신분은 물론 출신 지역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지역감정이 한국인들의 정치의식 가운데 깊숙이 자리 잡고 계승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김세중: 지역갈등을 강한 전통적 귀속의식 혹은 복속의식 위에 서있는 제장 혹은 제역공동체에 비유하여 설명하신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미 호남지역에 대한 지역감정이 일반적이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송 복: 1980년대 중반에 전남대 심리학과에서 지역 간 호오도(好惡度) 조사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 지역 간의 갈등을 소상히 밝혀주는 것인데,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 ‘어느 지역 사람과 친구를 하겠느냐, 어느 지역 사람과 동업하겠느냐, 어느 지역 사람하고 혼인하겠느냐’하는 세 가지를 조사했습니다. 이북, 경상도, 경기‧서울,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등 6개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다른 지역은 점수가 비슷한데 유독 전라도만 점수가 낮았습니다. 지역이동이 심할 경우에 호오도 조사에서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제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조선조시대에, 특히 호남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제가 1950년에 상경했을 때만 해도 서울사람들이 호남사람들을 차별했는데, 그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경상도사람들은 주로 자작농이다 보니 과거시험 보러 상경하면서 자기 돈을 가지고 옵니다. 반면 호남사람들은 소작농이 많다 보니 보릿고개가 되면 소작인들이 돼서 서울로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경상도사람들은 서울에 올라와 돈을 내고, 호남은 소작인들이 올라와서 서울의 식구가 됩니다. 근대의 인구이동은 노동력이 되지만 옛날에는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식구라면 먹는 인구가 되니까 서울사람들이 먹을 것을 시골의 소작인들이 먹으니까 자연히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특히 전라도에서 서울로 오려면 공주를 통해서 올라오거나 배를 통해 인천으로 들어오거나 해서 이동이 아주 쉬웠습니다. 공주가 큰 도시의 하나가 된 것은 호남 인구이동의 요지이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다가 선조 때 ‘정여립의 난’으로 인해 “전라도 사람들은 난을 일으킨 사람들이다”라고 해서 서인의 수장격인 송강 정철(松江 鄭澈)을 위시해 호남사람들을 이 난으로 더욱 차별하고 핍박했습니다. 거기에 조선조 재정의 반을 호남이 부담하고 나머지 7도가 반을 부담했는데 그 수탈이 오죽했겠어요. 호남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조선조는 우리 왕조가 아니라고 할 만큼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1925년에 우리나라에 공산당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는데, 일본 경찰이 공산당원을 검거했을 때 공산당원들이 제일 많았던 곳이 호남이었고, 다음이 경상도였습니다. 검거된 549명의 공산당원들 중 전라도와 경상도 출신이 전체의 70%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6‧25 때 경상도의 공산당원은 전부 처형됐지만 전라도의 공산당원은 상당수 그대로 남아 빨치산이 됐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김대중 씨가 햇볕정책을 편 이유가 전 이해가 가요. 거기에 전두환 정부 때 5‧18을 거치며 사회주의자들과 민주화세력이 완전히 합쳐져 누가 사회주의자고 누가 민주화세력인지 모를 정도로 되어 버린 것이죠. 그러니까 전교조가 빨치산 위령제를 하는 행태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 봅니다. 김세중: 지역갈등의 배경에 대해서 여러 중요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독자들께도 매우 큰 참조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제 조금 각도를 틀어서 71년 선거부터 본격화된 표가 쏠리는 현상 그리고 이익을 둘러싼 갈등 양상으로 지역갈등이 변화돼 가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표 쏠리기는 제역공동체를 장악한 정치무당의 조작과도 관련된다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정진홍: ‘표 쏠림 현상’은 직접적인 제역공동체적 정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역공동체적인 카리스마가 여러 역사적 경험들을 이용해서 호소했을 때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도 지속될 현상이라 여겨져 좀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송 교수님께서 아주 적절하게 지적을 해주셨다고 보는데, 지역에 따른 문화적 특성의 차이는 불가피한 것이고, 상호 문화적 차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싹트고 있다는 사실은 지역갈등의 극복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익배분을 빙자한 정치작용도 순수하게 정치적인 주장만이 아니면 상당히 발전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득이란 것은 삶의 현장에서는 대단히 합리적인 구조에서 말미암는다고 판단되는 현상입니다. 또 카리스마가 이득을 이용한 지역감정을 통해 정치적인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도 점차 한계에 부딪히리라 봅니다. 이제는 바야흐로 지역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디딤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름이 조화를 이룬다는 의식도 높아지고 있고요. 한 마디로 무당이 굿하는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나든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좀 더 문화적인 보완관계와 합리적인 구조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의식이 발전되어 나가면 괜찮을 거라 봅니다. 제역공동체에서의 큰 무당들에 대한 기억은 점차 역사의 범주에서 신화의 범주로 옮겨가리라 생각합니다. 지속적으로 되뇌어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기능을 하는 일은 점차 줄어들 거라고 보는 것입니다. 때로 신화 속에서 그 역사적 카리스마를 불러내고 싶은 희구를 가질, 이른바 위기가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그것이 아름다운 회상으로 끝날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역사에서 신화의 범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특정한 정치세력을, 신화화하는 데 이르는, 전제정치의 정당화 메커니즘이기도 하죠. 김세중: 신화적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것은 현실적 적실성을 상실한다는 말씀인가요. 정진홍: 그런 것이죠. 이영훈: 보통 다른 나라에서 지역갈등이라는 것은 지역의 문화, 인종 또는 언어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신문에서 선진국 벨기에도 인종 문제 때문에 지역갈등의 홍역을 앓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무척 동질적인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지역갈등이 이렇게 심한 것은 아까 송 교수님이나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한국사 독자의 뿌리 깊은 배경이 있기 때문인데,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건전한 국민적 의식이나 시민적 교양이 집중적으로 교육되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거나 결여되었던 우리 역사의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위에 이른바 민주화시대에 들어서서 지역감정은 더 이상 숨길 것 없는 한국정치의 조작 및 동원의 수단으로 노골화한 위에 지역 출신의 정치가나 시민단체의 기득권으로까지 고착해 버렸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광주에 들를 일이 있어 망월동 국립묘지에 참배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국립묘지 곳곳의 조형물이나 전시관이 드러내고 있는 역사인식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컨대 ‘역사공간’이란 전시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제시된 지난 4백 년간 한국사의 기본 흐름은 임진왜란 의병운동(1592), 동학농민전쟁(1894), 3ㆍ1운동(1919), 광주학생운동(1927), 4ㆍ19혁명(1960), 5ㆍ18민주항쟁(1980), 6ㆍ10항쟁(1987)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은 아예 한 마디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친일‧반민족세력이 세운 반공파시즘체제에 불과하며, 제대로 된 나라가 건설되는 것은 1960년 4ㆍ19 이후라는 것이죠. 다른 데도 아닌 국립묘지에서 건국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이른바 민족‧민중사관이 갖가지 상징과 조형으로 역사에 대한 권위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망월동 국립묘지는 호남의 지역감정과 지역정치에 바탕을 둔 호남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지역감정을 기득권으로까지 변질시킨 역사적 기억의 분열과 갈등이 앞으로 후대의 한국인들에게 어떠한 비용과 희생을 요구할지 참으로 큰 걱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진홍: 역사학이 실증적인 연구를 한다 해도 결국은 해석의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해석은 지금 여기의 미래가 준거가 되어야 하지요. 또 다르게 본다면 결국 역사는 해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역사관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그것이 우리 전체를 분할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지 우리 전체가 하나의 단위로 조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역사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러한 역사해석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 공동체 전체를 단위로 했을 때 긍정적인 미래의 지평을 열어놓는지 아니면 또 다른 부정적인 현실을 배태하지는 않는지 하는 점을 얼마나 먼 시야로 그러한 역사 기술주체들이 살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송 복: 그 점을 현대사와 이어보면, 현대정치는 정당정치이고 정당을 떠나서는 정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당정치가 되면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지역정당이라는 것이 만들어집니다. 옛날 미국도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 남부는 민주당, 북부는 공화당이 잡았죠. 독일도 비스마르크가 처음 등장한 지역이 엘베 강 동쪽의 베를린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부독일과 뮌헨의 남부독일로 상당히 갈라집니다. 그리고 일본만 보더라도 에도시대에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갈라지고, 특히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는 야마구찌(山口)의 죠슈(長州)번을 중심으로 한 지역정치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정당정치를 하다 보니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정당이 출현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정당이 제대로 작용하기 어려우니까 어느 지역이든지 배경으로 해서 정당이 와해되지 않도록 만들어졌고, 70년대를 넘어서면서 지역 중심의 정당이 만들어졌지요. 저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봅니다. 어차피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정당정치를 해야 하는데,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두 가지거든요. 하나는 자원배분, 즉 이익배분입니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자원배분을 해서 어느 지역에 어떻게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갈등을 국회라는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또 정치입니다. 사실 70년대의 박정희와 김대중의 갈등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초보적인 지역갈등이고, 80년대 5‧18이 일어나면서부터는 호남을 중심으로 이념적 갈등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 다음 2000년대 들어서면 이익갈등으로 변화되는 거예요. 그 이전에는 우리가 산업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어느 지역에 어느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국가적인 관점에서 추진됐는데, 90년대 중반을 넘어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각 지역별로 어느 지역에 보다 많은 이익을 배분하느냐에 대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실 우리 한국의 갈등에 이념이라는 요소만 빼고 이익적인 측면만 들어간다면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이익을 둘러싸고 싸우면 반드시 해결의 여지가 있지만, 유학자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서로 이념을 가지고 싸움을 벌이면 전부 죽을 때까지 싸워도 끝이 안 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념에다 이익, 거기에 포퓰리즘까지 결합되어서 지역갈등을 논하는데, 이렇게 심각한 삼중적인 결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가 숙제입니다.
박능후: 지역갈등에 대한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지역갈등의 대상을 은연중에 호남권인 전라도 지역과 나머지 지역 간의 갈등으로 보고 계신 것 같은데, 다른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같은 경상도나 전라도 혹은 강원도 안에서도 지역갈등은 있습니다. 4‧27 재․보궐 선거에서 보듯이 강원도 도지사를 선출하는데, 도지사 후보로 영동지방 출신의 인사가 잘 나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동․영서 간 지역갈등이 있고, 영서지역인 춘천 등에 인구가 많기 때문에 영동지방 출신의 후보자는 불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춘천지역 출신 두 후보가 맞붙었죠. 후보를 공천하는 각 정당 입장에서 볼 때 영동지역 인사를 후보로 내세우면 당선이 힘들다는 것을 아니까 그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상남도에서도 함안과 의령이 합쳐져 한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는, 함안군 출신의 후보가 의령군 출신의 후보를 대부분 이기는데, 함안군의 인구가 조금 더 많거든요. 호남지역도 보면 여러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듯이 호남지방이 상대적으로 이념과 결부되어 다른 지역과는 상당히 다른 갈등을 겪고 있고, 그 지역의 역사관도 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지난번 새만금사업 때도 전남, 전북 간의 갈등을 낳은 것을 보면 지역갈등이 반드시 그러한 측면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것이 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다보니까, 그 표를 모으는 가장 쉬운 방법이 정서적인 것에 호소할 수 있는 지역귀속감이에요. 사실 어느 지역이나 할 것 없이 지역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도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도 과거에 두 행정구역을 합친 지역은, 반드시 국회의원 등을 선출할 때 어느 지역 출신이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세중: 특정지역에서 상이한 역사상이 강조된다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군요. 그러나 지역주의가 다른 나라에도 상수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씀에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국책사업을 둘러싼 격심한 지역갈등은 관련 행정학자의 말을 들으니 그것이 국가정책 집행의 틀 또는 제도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국책사업은 원칙적으로 100% 중앙정부 예산으로 건설과 운영을 맡는 체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손해를 봐도 중앙정부가 메우는 그런 메커니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방정부는 결사적으로 사업을 따오기만 하면 잃을 것은 없고 얻을 것만 있게 되는 형국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갈등은 재정문제 같은 것을 지방정부도 책임을 나누어서 지는 식의 제도적 보강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는 쟁점이라는 것입니다. 송 복: 아까 박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각 지역 내 갈등은 있지만, 그것이 국가적 이슈나 커다란 사회 문제로까지는 나가지를 않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적인 이슈나 사회분열로 나아가는 경우를 보면, 호남 대 비호남의 대결로 인해, 아까 말한 이념 등의 여러 요인이 결합되어 야기되기 때문에 대표적인 지역갈등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현재 각 지역 간에 서로 이득을 보기 위해서 쟁투를 벌이는 것은 우리 국토 자체가 불균형 상태이기 때문이거든요. 수도권이 거의 50%를 차지할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이 전부 지방을 먹여 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각 지방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라는 것이 최저 20%에서 40%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중앙정부가 돈을 지방정부에 나눠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있으니까 각 지역에서는 어떻게 하면 중앙정부에서 재정을 많이 확보하느냐가 중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차기 선거의 당선이 걸려있는 각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얼마만큼 중앙에서 활동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구조적으로 지역갈등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영훈: 제 주변의 경제학자들 가운데는 이미 그렇게 중앙집권이 구조로 확립되어 있고, 또 지방자치를 확대하면 지방정치의 논리에 따라 지방간에 불필요한 중복 투자가 발생하거나 투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차라리 중앙집권을 개선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지 미국의 한 주보다 작은 나라에서 과연 지방분권이 해답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한국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였고, 그에 따른 비용이나 폐단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지방분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세의 상당 부분은 지방세로 돌려져야 하며, 그래도 발생하는 지역재정의 격차는 중앙재정이 자동적으로 일정 부분을 보전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후에 지역개발은 지방정치가 책임을 지고, 중앙정부가 그를 심사, 지원, 감독하는 체제가 성립해야 중앙재정의 분배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모든 권한과 재정을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대선 때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먼 후보자들이 지역개발의 공약을 내 건다면, 지난번의 수도 이전 공약이나 신공항 건설 공약이 그러했습니다만, 국민을 분열시키는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겠죠. 저는 가능하다면 앞으로 두 세대에 걸쳐 지역감정을 완전 해소할 목적으로 영남이니 호남이니 하는 지역 명칭이 공적 영역에 결코 등장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할 뿐 아니라, 전라도니 경상도니 하는 도의 이름조차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도명은 제가 알기론 고려시대 현종 연간인가에 성립했는데, 무엇 때문에 천 년 이상 된 오랜 지명을, 그것도 지역감정이 더덕더덕 붙은 낡은 지명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지역 명칭은 정 교수님이 지적하신 제장공동체 내지 제역공동체의 존속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보다 고차의 국민적 통합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파격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군사, 외교, 통상, 교육이념 등과 같은, 한국인의 정치적 통합과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능력을 훼손해서는 큰일 날 것입니다. 그 점을 전제하고서 하는 말입니다.
정진홍: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언어로 얘기한다면, 제역공동체를 관장하는 그런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는 더 이상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이제는 그런 방향으로 회구(懷古)하는 관점도 서서히 퇴색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늘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점점 다름을 다름 자체로 꽤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경상도에서 생각하는 전라도 음식에 대한 찬사, 말하자면 ‘그 다채롭고, 다양한 맛과 전통은 우리의 것과 아주 다르다. 우리 경상도 음식의 전통과 품위도 대단하지만 우리는 낫고 못함이 아니라 그 다름을 그저 즐기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이런 생각들 말이죠. 상호 문화적 보상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제게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이 점을 어떻게든 잘 살려서 지역감정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지방자치제가 상당히 소모적이라 할지라도 저는 역시 그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리당략을 위해 국가정책을 남발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 송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포퓰리즘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포퓰리즘은 결국 자기기만으로 귀착하지요. 그 비극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그들을 위해 비극이고요. 송 복: 생활적인 문화의 다양성은 잘 받아들입니다만 안 받아 들이는 부분도 굉장히 많이 있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첨예한 남북관계의 대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큰 정부를 유지했고, 산업화 추진 때문에도 큰 정부가 되어야 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작은 정부로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을 해서 공무원 수와 기구 수를 좀 줄였지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커져버리고, 또 이명박 정부 때도 정부가 나서야 된다고 해서 큰 정부가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면 작은 정부가 될 수 없어요. 작은 정부가 안 되는 한 각 지역은 중앙정부가 먹여 살릴 수밖에 없고, 중앙정부가 먹여 살려야 하니까 각 지역끼리 이익싸움이 더 크게 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진홍: 작은 정부 여부는 제가 잘 모르는 문제라서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데 저는 문화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념적인 차원에서도 지역적인 갈등이 상당해 해소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박한 낙관적 태도이겠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이념이라는 것,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이념이 정말 있는지 확인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염려가 덜 됩니다. 저는 모두들 낭만주의자라고 보고 싶은데, 더 소박하게 말씀드리면 너도 나도 이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한 결처럼 극단주의자(extremist)라는 사실이 이를 실증합니다. 그래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이디얼리즘은 언제나 리얼리즘에 비해 현실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 형편이 볼셰비키 혁명의 전야는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는 한에서요. 송 복: 다른 나라와 우리와의 차이는 다른 나라의 경우는 극단주의자가 5~10% 정도밖에 안 되는데, 우리의 경우는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사건을 볼 때 남북관계에 있어서 극단주의자의 기본이 30%라는 것입니다. 그 30%는 이념적으로 절대 움직이지 않아요. 김세중: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재정구조의 해소, 나아가 도(道) 명칭 자체의 변경, 작은 정부 등 다양한 방안들을 제안하셨습니다. 제도 개선이 만능은 될 수 없지만 중요한 방책의 하나인 것만큼은 틀림없으니 이 안들은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상대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열린 태도의 증가를 지역갈등 해소의 긍정적 징후로 해석하신 것도 흥미롭습니다.
복지와 계층갈등
김세중: 다음으로 복지와 관련된 갈등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 사회도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어 당연히 복지 논의가 활발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특별히 이 주제를 내건 것은, 특히 내년 선거를 앞두고 복지논쟁이 가열되어 정책논쟁이 아니라 정치논쟁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미 그런 조짐이 완연히 나타나고 있지요. 박 교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해주시죠. 박능후: 작년 12월부터 모 잠재적 대권후보가 복지문제를 화두로 내걸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또 작년 지자체선거 때 무상급식 이슈가 제기되면서 복지문제가 크게 부상을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예를 보면 대략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정도로 진입해 갈 때 복지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또 의료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납니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진행되니까 실질적으로 복지 수요를 느끼는 집단이 많아지는 것이죠. 전체 인구집단을 보면 아동과 장애인들의 복지 수요가 큰데, 전통적으로 이들은 선거에 자기주장을 온전히 투입할 수 있는 세력이 못됩니다. 물론 요즘 장애인들이 단합하여 상당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요. 그런데 노령인구가 많아지면, 이들은 가장 투표율이 높고, 정치지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경로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복지 요구를 반영하려는 정치가의 반응도 많아집니다. 최근에 정치인들이 복지에 대한 화두를 많이 내세우는 이유가 그런 큰 정치적 세력의 움직임을 읽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복지문제가 대두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문제되었던 무상급식 같은 것은, 이 부분을 전공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 볼 때 전공자들이 빠져있는 정치가들 사이의 논쟁입니다. 제가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무상복지라는 것의 핵심내용을 보면 두 가지 개념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대상에 대한 보편성, 즉 보편적 복지라는 측면이고요. 다른 하나는 재원 부담과 관련된 측면으로 일반 조세에서 부담하는 제도운용에 소요되는 비용을 무상이라고 이름 붙인 점입니다. 즉 ‘무상급식’은 대상의 보편성과 비용의 조세부담이라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치권의 논쟁은 각자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한쪽 측면만 강조합니다. 학교급식과 관련된 상반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쪽 다 반반씩 옳은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은 학생의 신분을 가진 자에게 지급되는 급식이니까,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학교급식 제공에 소요되는 비용을 수익적 부담금에서 처리할 것이냐 아니면 조세에서 부담할 것이냐는 비용부담의 문제로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대상의 보편성 여부와 비용의 수익자 부담 여부는 반드시 하나로 결부될 필요가 없습니다. 자원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 가정형편이 나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교급식비를 부담시키자는 주장도 올바른 이야기입니다. 다만 학교급식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므로 가정형편이 좋은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부담시키자는 주장은 논리가 맞지 않은 것이지요. 만약 처음부터 전문가가 개입하여 학교급식에 관련되어 있는 두 측면(대상의 보편성과 비용부담의 주체성)을 분리해서 논의했다면 훨씬 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 학생들에게 급식비용을 부담시키되 행정 처리를 담임선생님이나 학교당국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나, 우리나라의 동사무소 같은 데서 담당하고 있는데, 학부모의 가정형편에 따라 비용을 차등적으로 징수합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물론 담임선생님도 자기 반에서 누가 돈을 온전히 내고 먹고, 누가 할인된 가격으로 먹는지 전혀 모르게 되어 학생들은 급식시간에 평온하게 식사만 합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학교에 와서 점심시간이면 그냥 밥을 먹는 것이죠. 단지 경제력이 있는 학부모는 교육청에 돈을 더 낼 뿐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양쪽의 주장을 모두 수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이 급식비를 내지 못해 받는 심리적 상처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부담능력이 있는 학부모들에게는 일정 비용을 부담시켜 자원배분의 효율을 기할 수 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 개진 여지는 없고 그냥 정치적으로 맞붙어서 무상복지와 보편적 복지라는 명제를 두고 싸웠거든요.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 복지를 확대해 갈 때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전에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들은 그런 것 보다는 복지를 내세우면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또는 자기를 내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다 보니까, 본질과 어긋나게 가고 있다는 우려가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향후 복지 논쟁을 할 때도 지나치게 자기 과시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정밀한 제도설계를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한다면 복지를 확대하면서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저의 말씀을 요약하면 복지에 대해서는 그게 표가 되어 나오기 때문에, 향후 정치인들이 많이 내세울 것 같다. 그러나 갈등을 최소화 시키면서 우리 사회 수준에 맞는 복지를 확보해 나가려면 보다 기술적이고 앞서간 나라의 경험과 지혜를 빌릴 수 있는 그런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송 복: 박 교수님이 말한 무상급식 정도의 복지 논쟁은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하고, 그것은 큰 사회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국내 이슈로 됐지만 박 교수님의 말대로 개선한다면 큰 문제될 것도 없고, 또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지라는 것이 너무 빨리 왔습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 발전에서 본다면, 50년 먼저 우리나라는 중산층 복지가 되었어요. 즉 중산층이 복지를 요구하는 상태에 올라와 버렸어요. 보통 국가가 발전하는 방향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먼저 국가가 만들어지는 국가 형성, 그 다음은 국민 형성, 그 다음에 산업화가 되어서 근대국가가 되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 민주주의가 달성되고, 다섯째 단계로 가는 것이 복지국가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도 복지국가로 갈 때가 됐어요. 이미 2만 달러 시대에 들어갔고, 자유민주주의도 꽃피웠습니다. 그러니까 복지국가단계로 들어갔는데, 단 복지국가로 들어가도 중산층이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앞으로 20년 이상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50년을 먼저, 우리 단계로 보면 20년 먼저 중산층이 복지를 요구하는 단계에 들어간 거예요. 복지는 저층이 요구해야 하고, 중산층은 세금을 내서 저층에 복지를 부여해야 할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들이 ‘나도 복지를 달라’ 이렇게 되면서 싸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정치인인데, 정치인은 아까 말한 대로 자원을 배분하고, 갈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갈등의 요인이 되어 버렸어요. 특히 복지문제에 들어와서는 정치인만큼 갈등의 한 가운데에 들어선 집단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능후: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국가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보셨는데, 하나의 단계가 끝나야 그 다음 단계로 갈 수도 있지만, 몇 가지가 혼합되어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형성을 하던 지난 1961년부터 복지제도가 도입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우리가 안게 된 단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단점이란 중산층 중심으로 복지제도가 짜인 문제입니다. 5‧16을 전후한 1961년, 1962년도 그 양 해에 각종 복지제도가 외형적으로 입법화되었지만 그중에서 공무원 연금제도와 군인연금제도만이 제대로 시행되었고, 이후 사립학교 교직원연금제도가 도입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을 위한 연금제도인 국민연금제도는 뒤늦게 1988년부터 도입되었습니다. 건강보험도 1977년 500인 이상 기업, 소위 조직 근로자들 중에서도 임금이 상대적으로 고소득인 임금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점차 그 대상을 확대해 왔습니다. 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는 사회복지제도의 중심적 제도이고, 재정 투입도 가장 많이 이뤄지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생활이 안정된 대기업 근로자,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군인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고, 생활이 어려운 임시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에게는 도움을 뒤늦게 주거나 아예 주지 않고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형태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과세 전 소득의 불평등이 과세 후 소득에서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과세 전에는 소득 불평등도가 높지만 과세를 하고, 복지제도를 거치고 나면 소득 불평등도가 대폭 완화되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올해 같은 경우 중앙정부 예산 중 86조 원 정도가 복지와 노동 부문에 사용됩니다. 이 액수 자체도 많은 것은 아니지만 사용 내역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 중 2/3 정도가 중산층에게 지급됩니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부조예산은 7조 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회서비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범위를 넓게 잡아도 빈곤층을 위한 복지․노동예산은 10조 원 남짓합니다. 복지예산이 크지 않은데, 이마저 대부분 중산층에게 지급되고 있으므로 복지제도를 통한 재분배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김세중: 우리 복지의 기원이나 현황에 대해 어떻게 보면 아픈 측면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현재에도 정치권 논쟁은 저소득층 지원제도인 공공부조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한 느낌인데요. 초점이 잘못 맞춰져 있는 것 아닌가요? 박능후: 그렇습니다. 이영훈: 예를 들어서 무상급식이라든가 무상의료라든가 하는 것들은 영세민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나 소득재분배를 위한 복지정책과 좀 거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국민의 관심이 큰 복지문제일수록 여야가 입장의 차이를 떠나 비정치적으로, 과학적으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그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국가재정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여러 국가에 비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의료보험제도의 경우, 제도가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비정치적으로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부터는 영세민을 위한 기초생활비가 지원되기 시작했는데, 그 부분이 앞으로 더 확충되는 가운데 복지정책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이런 문제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 한국의 복지정책이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접근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우려를 갖게 됩니다. 예컨대 무상급식만 해도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 소득재분배의 기능을 갖는지, 여러 가지로 경합하는 복지 및 교육 재원 가운데 어떤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엄밀한 검토가 결여된 채 지방선거의 호재로 부각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 대선에서는 야권이 집권 전략의 일환으로 복지정책을 대대적으로 들고 나온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러면 여권도 무관심할 수 없겠죠. 그런 식으로 복지문제가 정치화해버리면, 그에 대한 구조적인 저항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 정치나 사회에서 앞으로 상당한 정도로 자원 분배의 왜곡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불이 이미 지펴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김세중: 현재 야당에서는 3무 무상, 즉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여당에서는 맞불작전이랄까요 70% 복지를 내걸고 있는데, 일종의 선거전략적 구호 내지 슬로건적인 대결을 하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박 교수님께서 우리의 복지정책이 지금까지 중산층 위주로 운영되었다고 지적하셨는데 더 하실 말씀은 없는지요? 박능후: 실제 지금 돈 들어가는 상황을 보면 가장 극빈층이라고 하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소위 절대빈곤층은 확실히 보장받고 있습니다. 154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3.4%입니다. 그 계층은 2000년도에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만들어지고 난 뒤 보호되고 있는데, 현재 문제는 이 사람들에게 너무 과도하게 보장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서 들어가는 급여 외에도 한 50가지 정도의 추가적인 각종 보조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 사람들이 거기서 안 나오려고 해요. 자기가 일할 능력이 있어, 돈을 좀 더 벌어서 거기서 벗어나면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보장받는 급여뿐만 아니라 나머지 급여까지 모두 없어지니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앞서 말씀드린 공무원, 대기업 조직 근로자들 중에서도 좀 생활이 안정된 계층, 이 사람들에게도 국고가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복지부분에서 문제되는 층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벗어나 있는 이른바 차상위 계층 사람들인데, 생활수준이 대략 월 소득이 10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인구 규모는 대략 400만 명 정도 됩니다. 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장치가 없어요. 소위 사각지대에 놓인 층이죠. 이 사람들은 각종 사회보험에서 제외되고 있고, 공공부조 대상에서도 제외되고 있어 이들의 불만이 상당히 높습니다. 김세중: 그 부분에 무슨 타당한 접근법은 없나요? 박능후: 넓게 잡는 사람은 그 사람들의 범위를 5백만 명까지 잡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4백만 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복지학자들마다 조금씩 개념은 다르지만, 다수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에게 교육, 의료, 생계, 주거 등 여섯 가지 급여가 모두 주어지는데, 차상위 계층에 대해서는 이 중에서 특별히 필요한 복지욕구에 한하여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집이 없고, 아주 궁핍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주거만 지원해 주는 것입니다. 또 만약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다면 의료에 대해서만 지원을 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통합급여방식인데, 이를 개별급여방식으로 전환하여 차상위 계층에게도 필요한 지원을 해주자는 것입니다. 그랬을 경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바로 눈에 보이니까 국가에서 좀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상위 계층 지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지원 조치는 안 취하고 미비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진홍: 이 부분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복지의 문제가 온전히 계층적인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말씀하셨지만 사회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까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직면하게 되고, 그러자니 그것을 위해 준비한 것도 없는 상태에서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계층적인 사항이 중요한 요인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 자리에서만 복지를 접근하면 아예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삶의 스타일의 변화, 그것을 초래한 사회구조의 변화, 이에 따른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의식의 변화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지요. 잘못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더 긴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송 복: 그러니까 무상이라는 것이 전 국민 무상이라는 뜻인가요? 박능후: 지금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의료도 완전무상은 아닙니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본인부담금을 없애고 완전무료로 진료를 받게 하자는 주장을 펼치는 경우도 있지만 야당이 주장하는 무상의료는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주는 진료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는 뜻입니다. 병원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항목 중 현재 65% 정도가 보험제도에 의해 보상되는데, 이를 80%까지 올리겠다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병원에 가서 진료 받는 항목이 100가지가 있다고 하면 그중 65가지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부담해 주고 있는데 이것을 80가지로 늘리겠다는 것이죠. 송 복: 왜 무상이라는 말을 쓰나요? 박능후: 일종의 정치적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정진홍: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복지는 구휼(救恤)이 아니지요. 못 입고 못 먹고 치료를 못 받고 하는 것을 도와주자는 것만은 아니지요. 젊은 부부들이 애를 키울 수 있도록 보육시설을 마련한다든지 노인 요양원을 만들어야 하겠다든지 누구에게나 의료를 보장해줘야 하겠다든지, 학생들에게 점심급식을 해야 하겠다든지 하는 것은 구휼이 아니라 달라진 사회구조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을 실현하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복지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저는 늘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할 전문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시를 읊듯이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데 비해 삶의 질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할 사람들은 이래라 저래라 산문을 쓰면서 자꾸 스스로 비전문성의 덫에 얽매이는 역설이죠. 그래서 그런지 저는 복지정책 자체의 완결성 여부보다 복지정책의 실현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복지를 주장하는 주체도 모호하고, 복지를 실천하는 주체도 그렇습니다. 복지를 맡으면 가장 도덕적이게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복지와 무관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결국 책임 주체가 없는 거죠. 국민들도 복지사회를 위해서는 불가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주체의식이 없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복지라는 언어처럼 자기 정당화의 수사(修辭)로 효율적인 어휘가 또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언제 어떻게 이 수준을 넘어설 수 있을까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이영훈: 민주주의가 지불해야 할 불가피한 비용인 것 같습니다. 이미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그런 포퓰리즘으로 큰 정치판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수도 이전 문제로 덕을 좀 봤다고 노무현 대통령도 말했고, 또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무상급식 문제가 핫이슈가 되어 선거의 판세를 좌우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서도 이 문제를 선점하려는 대선주자들 간의 포퓰리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 같은데, 그만큼 자원배분이 왜곡될 위험성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 국민이 포퓰리즘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국민의식이나 교양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진홍: 그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김세중: 제가 어디서 보니 지금 세수의 27%를 상위 0.5%가 감당하고 있더군요. 앞으로 현재 논의되는 복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아마 상위 10%에게까지는 무거운 증세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것이 잘못되면 전 국민을 ‘1 대 9’의 대결구도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돈인데,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재원조달의 문제에 접근해야 할지가 걱정입니다. 이미 월급쟁이들은 세금이 높다고 아우성이지 않습니까? 박능후: 지금 당면한 과제는 어떤 정치가들이, 어떤 구호를 들고 나오든 바로 우리가 그 자리에서 물어봐야 하는 것은 ‘어떻게 재원을 마련 할 것이냐? 그것을 반드시 밝히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가들은 먼저 장밋빛 전망의 발표를 하고, 후에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국채를 발행하여 국가부채를 늘릴 것이 뻔하거든요. 그런데 굉장히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지금 정부도 증세는 안 하면서 국책사업도 해야 하니까, 급속하게 국채를 발행하거든요. 그런데 무엇이 우려스럽냐 하면, 국채발행을 막을 세력이 없다는 거예요. 제가 국가정책에 관여를 해오며 보니까, 한 5-6년 전까지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정치인들의 예산 증액 요구를 당당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국가부채가 그렇게 빨리 늘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3-4년 전부터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요즈음은 예산 담당 관료들이 정치권의 예산 요구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모습이 보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국가부채를 내서라도 어떤 사업을 하자고 할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예산을 심의하는 곳이 국회인데, 소수의 양식 있는 국회의원을 빼고는 모두 돈 쓰는 것을 찬성합니다. 그 돈이 정책적으로 쓰이든 자기 지역구에 쓰이든, 모두 돈 쓰는 데 찬성이죠. 정치인도 그렇고 관료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새로운 복지정책이 나왔을 때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기가 싫다고 하면, 정치인들은 어렵게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손쉽게 국채를 발행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채 발행은 당분간 국민연금기금에서 흡수할 수 있으니까 매우 쉽죠.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모든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대선공약이든 뭐든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게끔 설득하지 않고 정책을 만들면 안 돼요. 김세중: 복지논쟁의 단골 쟁점의 하나가 우리 복지예산이 OECD의 평균에 못 미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연히 예산을 들여다보니 국방예산 항목이 눈에 띄더라고요. 우리와 미국은 국방예산이 GDP의 10%가 넘습니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모두 2~3%에 머물고요. 구조적으로 예산의 경직성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거지요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은 잘 안 보이던데요. 이영훈: 우리 복지 수준이 OECD의 6분의 1이다, 7분의 1이다 하는데 단순하게 통계를 비교해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복지 역사가 불과 40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여러 명목으로 적립된 복지펀드의 규모가 백 년을 넘는 서구의 여러 나라들보다 적어서 고정비용의 지출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하겠습니다. 또 아직 부분적으로 남아 있지만, 기업의 퇴직제도 일종의 사회적 연금제도이죠. 그것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복지 수준이 흔히들 이야기되는 것보다는 그리 낮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통계를 비교하는 데는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장애인 복지의 경우는 지난 10여 년간 커다란 개선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분에 따라서는, 관련 현장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벌써부터 제도의 남용이 생기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합니다. 앞으로 복지문제가 정치화하면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되겠지요. 김세중: 마침 그 말씀을 하시니까 생각납니다만, 경제운영의 측면에서 복지지출은 문제가 있지만 이것을 민주주의 비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하는 걸 지상에서 보았습니다. 원론적으로 옳은 말씀인데, 그 이야기를 되풀이 하더라고요. 민주주의 비용이라는 말이 남용될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좀 들었습니다. 박능후: 제가 몇 가지 수치를 바로 잡아 드리고 싶은데요. 우리나라 국방예산이 일반회계만을 놓고 보면 한 30조 원 정도 듭니다. 2010년 기준으로, 그게 일반회계에서 10.1%입니다. 아까 김세중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일반회계를 기준으로 하면 맞는 말씀이지만 GDP 기준으로 하면 3.5% 정도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이 현재 GDP의 대략 9%로 정도이고, OECD 평균은 23% 정도 됩니다. 이를 두고 우리의 복지지출 수준이 낮다고 비판하면 국민소득 수준, 사회복지제도의 성숙도 등을 감안하면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2008년, 2007년도 1만 5천~6천 달러일 때와 다른 나라 1만 5천~6천 달러였을 때를 비교해보면 지금 선진국들은 그때도 복지지출 수준이 대개 GDP의 한 15% 정도는 됐습니다. 그것을 봐도 우리가 그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 어쨌든 모든 조건을 다 감안해도 우리의 복지비가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OECD 복지통계에는 기업에서 부담하는 법정퇴직금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복지지출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고, 우리 나름의 어떤 특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작년 조세연구원에서 앞으로 40년간 복지지출 수준을 예측했을 때 과거 십 년간의 장기추세가 향후에도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2050년에 GDP의 21% 정도가 복지비용이 될 것이라는 추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놓고도 보는 견해가 너무나 다릅니다. 예컨대 보건복지부 같은 경우는 21%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2000년도에 OECD 평균 정도가 21% 됐거든요. 기획재정부에서는 GDP 21%까지 올라간다면 재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면서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되겠다, 이렇게 반응을 하는 거죠. 같은 숫자를 놓고 보더라도 이렇게 반응이 다릅니다. 어쨌든 과거 10년간의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2050년에 대략 GDP의 21% 정도까지 가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송 복: OECD 국가와 우리나라를 비교할 때, OECD 국가가 2만 달러 정도였을 때, 복지비가 얼마였는가를 비교해야지 OECD 국가 평균하고 비교하면 안 되죠. 박능후: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정도일 때 사회복지비 지출 수준이 대개 GDP의 15~20% 사이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9% 정도인데, 소득 수준을 놓고 보더라도 복지지출 수준이 낮은 셈입니다. 송 복: 단순 비교를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OECD 국가의 부 축적 기간은 길고, 우리는 불과 30, 40년입니다. 그러니까 부자 3대 간다는 것과 1대 간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아닙니까. 그것을 산술적으로 같이 비교하면 안 되는 거죠. 박능후: 우리나라 복지지출 수준이 낮다 보니까 나타나는 결과 중 하나는 노인인구의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제일 높은 점입니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연금제도가 생긴 지 23년밖에 안 되고, 그만큼 연금 관련 비용이 적게 들어가고 있는 것과 연관됩니다. 그래서 노인 빈곤율이 높습니다. 그 다음 보육에 대한 서비스가 상당히 적다보니까 애를 안 낳으려는 저출산문제가 발생하여 정부에서 보육정책을 많이 확대하고 있거든요, 향후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복지비 지출이 GDP의 21%까지 올라간다는데, 주로 무엇에 쓸 것인가를 보면 노인들을 위한 연금지급에 지금보다 약 2배 반 정도 지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다음 현재 건강보험 비용으로 GDP의 3% 정도를 쓰는데, 이게 대략 6%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건강보험료와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연금 이 두 개가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복지지출 증가의 90%를 차지할 것입니다. 나머지 빈곤층을 위한 지출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송 복: 복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까도 이야기 나왔지만 제도 남용과 도덕적 부패, 경제 불황 같은 복지의 역작용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높은 수준에서 어떻게 관리해가면서 사회 안전을 위해 복지를 증진시키느냐 하는 것은 복지를 연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져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박능후: 그건 모두 공유하고 있습니다. 김세중: 복지문제는 단순한 빈곤 해소를 넘어서서 송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경제 또는 사회현상에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막중한 쟁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단기적으로는 역시 재원 조달의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모든 복지 논의는 이 부분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며 전개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건전한 복지논쟁의 전제는 정확한 용어 사용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미 여러 선생님들의 논의 속에서 드러났듯이 정치색에 오염된 언어가 너무도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박능후: 앞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보다 큰 갈등이 유발될 겁니다.
정치와 종교의 갈등
김세중: 마지막으로 정교갈등의 문제를 논할 차례군요. 마지막 주제지만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앞서 다른 주제들은 이미 논의가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갈등은 종교들 사이의 갈등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세속권력과 종교의 갈등, 즉 종교가 국가의 공공정책에 어느 정도까지 발언할 수 있을까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정진홍: 지금 세속권력과 종교라는, 종교와 국가 간의 갈등을 묘사하셨듯이 우리는 흔히 종교를 논의할 때 우리의 일상이 성(聖‧sacred)과 속(俗‧profane)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출발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우리의 관행적인, 또는 전통적인 이원론적 사유 틀 자체를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성과 속의 구분이 사실상 가능한가 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종교는 우리 상식에서는 승인하기 어려운 신성(神聖)이라든지 신비라든지 초월이라는 개념들을 자기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데서 예사롭게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설명하는 데서도 절대성이나 궁극성 등의 개념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스스로 자신이 바로 그러한 개념 범주 안에 있는 다른 실재(實在)라고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종교 밖에서도 종교를 바라볼 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는 일상 안에 들기보다는 그 밖에 놓여있는 비일상적인 실재라고 판단합니다. 결국 비유하자면 종교는 자타 공히 마치 하늘 위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종교 아닌 것은 땅 위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종교가 그렇게 비일상적인 것으로 개념화한 것들도 실은 이 땅 위에서 인간에 의하여 경험된 것입니다. 그것을 다만 그렇게 비일상적인 용어로 개념화했을 뿐이죠. 그러니까 그러한 자기주장을 한다고 해서 종교가 성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도 이 땅 위에 있는 속 안의 실재인데, 다만 하늘의 일을 발언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스스로 자신이 일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바르지 않고, 종교를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종교 밖의 인식도 옳은 것일 수 없습니다. 성속의 이원론을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현실 속에서 종교행위와 정치행위가 과연 두 다른 실재의 범주로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심각하게 살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종교도 이 땅의 현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현존(現存)하는지 정직하게 기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종교도 조직과 제도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유지하려면 사람도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며 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있되 더 크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현실적으로 자기의 존재 의미를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직도 강화해야 하고, 자기 성원의 수도 늘려야 하고, 자기 공동체에 적응하도록 철저한 사회화 작업도 해야 하고, 경제적인 힘도 더 든든하게 다져야 하며, 자기가 현존하고 있는 사회 안에서 자기의 힘을 구석구석 확산해 나아가야 합니다. 너희는 종교니까 어디까지 가야지 그 이상 가서는 안 된다는 금을 누구도 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스림이라고 할 수 있을 정치적 힘이 미치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는 정치가 정치로 될 수 없습니다. 정치가 스스로 비정치적 공간을 설정한다든지 정치 불간섭의 성역(聖域)을 설정한다 해도 그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지 정치 밖의 현상이 있어서 정치가 닿지 못하는 곳이 본래적으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치와 종교를 구분해야 한다는 규범의 요청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를, 그래서 얼마나 비현실적인 규범의 요청인지를 정직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교분리 원칙을 전제하고 이 둘 사이의 갈등을 살필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원칙이 요청되었을까 하는 자리에서 그 둘의 관계를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원칙의 역사적 전개를 살피는 일은 너무 장황한 작업입니다. 그러나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근원적으로 하나였을 삶의 현실이 왜 그 두 범주를 설정해야 할 만큼 다른 것으로 인지되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두 다른 실재라고 여긴 것이 얼마나 서로 갈등했기에 아예 분리 원칙이라는 것을 마련하게 되었을까, 그런데 그 원칙은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들고 나서는가 하는 것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든가 정치에서 종교 간섭으로 비칠 어떤 정책적 행위를 하면 무조건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것을 준거로 하여 그것을 어겼다든지 그렇지 않다든지 하는 것으로 그 문제에 접근하는 한 문제가 풀릴 까닭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속은 분리될 수 없는 거라는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오히려 문제에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역설적인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송 복: 사실, 정 교수님 이야기대로 성속을 분리하기 어렵고, 정치와 종교도 분리하기 어려운데 구역을 정해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종교이고, 저기서 저기까지는 정치라고 둘 사이에 어떤 선을 긋는 명확한 분리는 어렵다고 해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상식이 있기 때문에 그 범주를 넘어선 서로의 간섭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진홍: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야 하지요. 그런데 때로 우리는 상식을 되묻는 데서 출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송 복: 최근까지 조계사를 비롯해서 절마다 가보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반대한다”는 플랜카드를 붙여놨어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저렇게 쓸 필요가 있느냐 하면서 모두 눈살을 찌푸립니다. 일반 시민들의 절대다수가 그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때는 성속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종교단체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세중: 정교분리에 대한 기존 관념에서 볼 때 정 교수님의 말씀은 거의 충격적일 정도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리 있는 지적으로도 들립니다. 그럼에도 작금 불교계의 행태는 송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거두절미하고 지나치다고 보시지는 않나요? 정진홍: 지나치다든지 그렇지 않다든지 하는 것을 판단하는 척도를 저는 정교분리 원칙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지나치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불교 자체의 포교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자의식을 왜 불교가 하지 않고 있는가 하는 데서 말미암는 판단입니다. 송 복: 종교 입장에서 불교를 얼마나 사람들이 거부하도록 만들고 불신하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 있고, 시민들 입장에서 어떻게 돼서 종교가 그렇게 타락하게 됐느냐 하는 것이 있는데, 저는 시민의 입장에서 종교의 타락으로 봅니다. 정진홍: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종교를 볼 때 우리는 지나치게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종교를 주제로 한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종교를 예사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거룩하고 초일상적으로 여기는, 그래서 종교를 무척 귀하게 여기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문제가 현실성을 잃고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 이전에 규범적인 어떤 가치판단을 하면 인식 자체를 그르치듯이 종교에 대한 우리의 이른바 상식이 그렇게 잘못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산문(山門)에 들지 못하는 사람을 설정한다고 하는 것은 송 교수님 말씀대로 불교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망발입니다. 그러니 밖에서 불교가 어쩌면 저렇게 타락했을까 하는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판단은 근본적으로 불교는 속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잎에 있는 물방울처럼 별개의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거죠. 그러나 그것은 불교의 자기주장의 수사(修辭)거나 그 경험을 개념화한 것이지 실제(實際)는 아닙니다. 불교의 실제 현존하는 모습은 이 땅 위에 발붙이고 사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세상과 호흡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구성원이 많아야 하고, 돈도 많아야 하고, 제법 효율적인 조직도 갖추어야 하고, 그래서 세(勢)가 크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지요. 그러니 자기 아닌 다른 것과, 그것이 종교든 이른바 세속이든 상관없이, 겨루고 다투고 갈등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종교는 신성한 것이다 하는 전제로 덮어버리면 종교의 현실 자체를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식을 결한 채 종교와 정치의 갈등을 아무리 말하고 그 상호분리를 원칙으로 아무리 주장한다 하더라도 공허한 소음밖에는 남는 것이 없지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정교분리를 금과옥조로 주장하는 정치나 국가도 자기에게 이롭다고 여기면 정교(政敎)의 벽을 예사로 넘나들지 않습니까? 유치한 예일지 몰라도 선거철에 종교기관 찾아다니지 않는 정치인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어색한 논리이지만 정치의 종교 간여, 종교에의 정치 간여 충동이 이보다 더 구체적일 수 없죠. 그러니 특정 정치인에 대한 산문출입의 거절이 반(反)불교적인, 그러면서 현실 참여적인 정치행위라고 지탄된다면 선거를 의식해 사찰이나 교회나 성당행사에 참여하는 종교행위의 정치성도 마찬가지로 지탄을 받아야죠. 송 복: 그것은 다른 겁니다. 정진홍: 다름을 판단하는 준거가 송 교수님의 입장과 제가 다른 것 같습니다. 송 교수님께서는 성속의 분리 원칙을 전제하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 분리 원칙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면서 말씀을 드리고 있으니까요. 송 복: 정치인이 볼 때에는 그 사람들을 한 사람의 유권자로 보는 것이지, 교회나 절의 신도로 보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유세할 수 있죠. 정진홍: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유권자와 신도가 구분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이런저런 중첩된 정체성을 지니고 살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유권자이면서도 사회 안에 거대 세력인, 그래서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는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정치인이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죠. 그러니까 정치인의 종교인에 대한 유세는 단순하게 유권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기에게 동조하도록 하면 굉장한 정치적 득을 볼 수 있는 힘 있는 세력의 구성주체에 대한 유세인 거죠. 그렇다면 이미 그것은 종교에 대한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고 봐야 그것이 정확한 현실인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 점에서부터 정교갈등의 구조를 찾고 또 갈등의 출구를 찾아 가야죠. 이영훈: 최근에 천주교, 기독교, 불교 할 것 없이 모두 갈등의 주체로 등장한 것 같습니다. 천주교의 주교회의는 현 정부의 4대강사업을 반대하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만 현 정부와 불교의 관계는 매우 불편한 것 같고, 기독교는 최근 이슬람채권법(수쿠크법)과 관련해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시킬 예정의 법안을 강한 압력으로 좌절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슬람채권법에 대해서 관련 자료를 읽어 보았습니다만, 기독교계의 반대 논리를 제 상식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슬람사회가 종교사회이고 이자의 수취를 금하기 때문에 투자하는 사람이 부동산을 구입하여 임대료를 받는 식으로 꾸미고 계약기간이 지나면 부동산의 소유권은 자동으로 원소유자에게 이전되는 방식으로 이슬람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의 법률인데요, 그에 대해 기독교가 왜 반대하느냐, 그 핵심 이유를 알고 보니 다른 게 없어요. 이슬람의 돈을 받아들이면, 장차 이 나라가 이슬람화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장차 재앙이 닥쳐오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있느냐라는 논리입니다. 관련해서 영국과 독일 같은 나라들이 이슬람 이민을 받아들였다가 얼마나 그 사회가 황폐해졌느냐 하는 이야기들을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교계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심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세력이 너무 커지니까 오만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진홍: 이 교수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 주장만을 자꾸 되풀이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종교라고 하는 현상에 대한 인식을 우리 모두 좀 더 냉정하게 달리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집단을 마냥 신비스런 실체로 인식하는데, 이 사회, 우리 공동체 안에 현존하는 종교는 그것 자체로 철저하게 이익집단입니다. 그러기 위해 철저하게 정치집단이기도 하고요. 사회 안에 있는 여타 집단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는 종교에 대해 그야말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리 원칙을 제시하면서 금을 그을 것이 아니라 서로 주장을 발언하고 경청하고, 부닥친 이해관계를 실질적으로 타협하고 조정하고, 그래서 보완적이고 서로 승자일 수 있어서 공동체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체로서 책임을 공유하는 그러한 관계를 모색하고 증진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종교도 그러한 의미에서 충분히 정치적이어야 합니다. 사회정의의 문제도 그렇고 인권의 문제도 그렇고 삶의 질이나 생태계의 문제도 그렇고, 그것을 주장의 절대화에 근거해서 일방적인 배타적 선언으로 일관하는 심판자의 자리에서 실천하려 하지 말고 모든 이익집단들의 공존의 원칙을 스스로 익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송 복: 이익집단 맞아요. 세금을 내야 합니다. 정진홍: 성(聖)을 주장하는 것은 가능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성은 지고한 가치로 승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역(聖域)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성역은 면책의 특권을 지닌 구성체가 우리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데, 면책이란 책임의 실효(失效)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주체는 사회구성원의 몫을 이미 상실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송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종교단체의 세금징수 문제는 찬반 간에, 결과가 어떻게 이르든 간에,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세중: 네. 좋습니다. 물론 종교도 생물학적 본성을 지닌 인간에 의해 구성된 사회 속의 조직입니다. 이익단체로 기능해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종교이익집단은 다른 이익집단이 자기이익추구 또는 세력 확장에 전념하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활동도 중시해야 한다는 요청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정진홍: 그렇습니다. 김 교수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마치 예술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정치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것이듯이 종교에 대한 기대가 정치에 대한 기대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그러한 종교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종교가 이른바 세속 안에 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더 뚜렷하게 유념해야 하리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신비의 영역 속에 올려놓으면 종교가 마냥 그윽해 좋지만 종교가 범하는 분명한 이른바 비종교적이고 반종교적인 행태를 어떻게 누가 책임지고 개선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정치행태의 참혹한 왜곡을 견딜 수 없는 것이 현실일 때 종교가 당연한 자기네 책무로 여기고 이른바 세속에 스스로 뛰어들 듯이 우리도 기대를 훼손하는 종교의 현실에 대해 간여해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종교의 울에 처진 금기의 울을 치우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종교사를 훑어보면 종교는 거의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여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살육의 주체로 건재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종교의 자기 가르침을 스스로 배신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종교사가 보여주는 진실입니다. 종교라는 문화 역시 우리가 건전하게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종교에 대한 가장 선한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종교를 성의 영역에 가두지 말고 속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만나는 계기가 이제는 종교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김세중: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단 종교는 인간존재의 의미를 총체적이고 근원적으로 설명한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야기하는 갈등은, 또 다른 사회조직이 야기하는 갈등과는 질적으로 다른 면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적 개념으로는 쉽게 타협될 수 없는 일종의 수직적 갈등을 야기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공공정책에 대한 종교의 발언은 백번 더 신중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와 관련된 해법의 하나는 그들도 차라리 정당 결성을 통해 정치과정 속의 행위자로 등재하는 방법입니다. 일단 카이사르의 세계에 정식입문하면 타협을 본질로 하는 세속논리에도 따르게 될 테니까요. 이영훈: 종교도 기본적으로 김 교수님 말씀대로 하나의 이익집단으로서 권력과 돈을 가지니까 발언권이 커지는 것이죠. 전 인구의 한 50% 정도를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크고 작은 선거철만 되면 발언권이 커지는 것인데, 거기에는 한국의 정치가 그만큼 강건하지 못하다는 문제도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헌법은 분명히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옛날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여 국민의 발언권이 억압되었을 때 종교가 선지자 역할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모든 언로가 민주적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종교인들이 종교의 이름을 걸고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 원리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종교인들의 한 인간으로서의 교양에도 부합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4대강 사업에 대해 천주교가 목을 매고 반대하고 있는데, 반대 의견을 가진 사제들이 환경 관련 단체나 학회에 가입하고 연구하고 활동하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왜 교회의 이름으로 반대합니까. 그들이 펼친 반대 이유를 보면, 제 전공과도 부분적으로 겹치는 환경사와 같은 부분이 있는데, 그 논리와 근거가 허술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예를 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환경과 생명은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전국의 모든 강에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제방이 축조된 것이 지난 20세기의 일이고, 그에 따라 강을 둘러싼 생태계가 얼마나 바뀌어 왔는지, 파괴되었다기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에 대해 거의 무신경하더군요. 역사와 함께 자연도 변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강을 두고 하나님이 태초에 만든 그 강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중세적 근본주의에 불과하지요. 저는 종교인들이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현실 문제를 둘러싼 세속의 갈등에 대해서는 정말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민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진홍: 저는 여러 선생님들께서 지적하신 상식 또는 국민적 상식이라는 말이 자꾸 걸립니다. 상식은 검증된 그리고 축적된 지혜가 일상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옳은 인식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관성의 법칙에 따르듯 상식 자체에 맹목적으로 귀속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식을 되묻는 일이 어떤 문제의 출구 찾기에서 유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정교갈등의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제까지 지속되어온 옳은 인식인 그 둘의 분리 원칙이 되물어지지 않으면 이 갈등의 본질은 물론 어떤 해결의 낌새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종교계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 ‘너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든지 참여하는 것은 안 되게 되어 있어’라고 한다든지 ‘하려면 정당을 만들어 제대로 해라’라고 하는 것은 마치 ‘종교인이 되기 전에는, 그것도 모든 종교를 한데 아우르는 종교인이 되기 전에는, 종교에 대한 어떤 정치적인 발언도 해서는 안 돼’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전혀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소리일 뿐이죠. 저는 종교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정교분리 원칙에 의해서 너는 참여하지 말라 하는 것보다는 그 발언의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정치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활동을 전제된 원칙에 의해서 금지한다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송 복: 그렇게밖에 할 수 없지요. 그런데 국민이 생각하는 종교하고, 정치인이 종교인을 대하는 것 하고는 좀 다르죠. 정진홍: 그렇죠. 국민 개개인은 종교가 목적일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는 종교가 수단이기만 하니까요.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시민의식 안에 깃든 종교에 대한 상식도 이제는 좀 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인식 쪽으로 옮겨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무의미하다든가 소용없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이 귀한 만큼 그 귀함을 잘 아끼고 가꾸기 위해서는 그러한 성숙한 인식이 고양되어야 하겠다는 것이지요. 송 복: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세월이 지나야 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는 국민이 가지고 있는 상식이 바뀌기는 힘들죠.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공통점이 있는데, 본래 정치도 종교영역인데, 갈등을 관리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와 종교의 기능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똑같이 갈등을 조장하고, 갈등의 원인이 되어 버렸어요. 그것은 우리 국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거든요. 헌법에서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종교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종교인의 무지라고 봐요. 자기 신념의 도그마에 빠졌습니다. 남의 진리는 부정하고 내 진리만 진리라고 보는 것 아닙니까. 오늘날 종교인들이 본령으로 돌아가야 우리 사회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정진홍: 거듭 주장하는 것이라 죄송합니다만 저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맹목적인 상식 중에 하나가 종교에 대한 인식이라고 봅니다. 종교는 신성, 초월, 신비 등의 가치와 의미를 전해줍니다. 인간의 삶에 숨통을 터주는 귀한 가치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교가 그것을 가르치는 문화이기는 해도 그 종교 자체의 현존이 신성이고 초월이고 신비인 것은 아닙니다.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시비냐고 할지 몰라도 손가락을 달로 착각하는 과오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의 현실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죠. 송 복: 미국에서도 종교에 대해 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상태로 가려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 세기가 걸릴지 반세기가 걸릴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진홍: 그렇습니다. 송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아무리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의식이 바뀌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당히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헌법은 정교분리를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법에서도 특정한 종교를 국공립학교에서는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중고등학교 선택권이 제약되고, 원하지 않는 종립학교(宗立學校)에 들어가 특정한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종립학교 종교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제6차 교육과정 개편 때부터 개정하여 7차 교육과정 개편에 이르면, 비록 특정한 종교에서 설립한 학교이지만 종교 일반 및 타종교에 대해서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저항이 없지 않았지만 결과는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도록 달라졌습니다. 아까 김세중 교수님께서 종교 간의 갈등은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 여타 갈등과 다른 점이 있다고 지적해주셨는데, 옳습니다. 종교가 야기하는 갈등은 절대와 절대가 부닥치는 굉음을 냅니다. 양보가 없죠. 오직 승패만이 있는데, 이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은 없습니다. 문제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단원적인 의식(意識)이 성찰 없이 건재하다고 하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무적인 것은 이 문제가 이러한 교과과정 개정작업 등에 의해서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수직적인 데 근거한 갈등구조를 어떻게 하면 수평적인 갈등구조로 바꾸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와 아울러 요즘 종교학에서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는 주제 중에 하나가 이른바 신앙(belief)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로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쪽에서 활발하게 다루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신앙이 지닌 후광이 무참하게 깨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신앙이 맹목성을 수반하면서 얼마나 많은 광기가 정당하고 신비한 경험으로 간주되었던가 하는 데 대한 성찰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데서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초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갈등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신앙 자체의 속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이것은 비단 종교적 신앙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정치적 신념, 경제적 신념, 과학적 신념도 이 맹목성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지금 우리 종교나 정치와 관련해서 종교가 또는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정교분리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정교분리를 요청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면서 보다 더 현실적으로 종교에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겠다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종교분리의 원칙에서 살피기보다 냉정하게 이익집단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방법도 하나의 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요. 종교가 보여주는 배타성, 독단성, 절대성이 어떻게 다원사회 속에서 사회통합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덕목으로 바뀌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모색하기 위해 신앙 자체를 되살펴보고 싶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종교가 이제는 사회통합이나 사회혁신이나 사회해체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체 간의 매개기능을 하는 것이 종교의 새로운 역할이지 않을까 하는 것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일단의 흐름도 새삼 주목하고 싶어집니다. 김세중: 오늘 정교갈등을 논하다보니 종교현상의 본질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로까지 논의가 발전 되었습니다 대단이 흥미진진한 의외의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종교를 일반 사회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도 문제해결에 매우 도움이 되는 현실적 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사회집단과 종교집단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요청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오늘 장시간 우리 사회의 갈등문제 논의에 대해 진지하게 임해주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오늘 원로 선생님 두 분까지 오셔서 단순한 갈등문제 차원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심도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을 너무 많이 해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대정신, 2011년 어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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