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봄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수주 동안 머무른 것으로 알려진 백성농장 내 건물.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나는 지난 7일 28일 용인 법당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마북동 주민들은 ‘법당’의 존재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다. 일부 주민은 “법당은 아니지만 김영사 책을 전시하는 큰 규모의 북카페가 있다”고 말했다. 동백죽전대로 마북 IC 옆 마북로가 세 갈래로 나뉘는 곳에서 맨 왼쪽 길을 따라 약 3분 정도 차로 달리니 회색 간판에 세로로 ‘백성농장’이라고 쓰인 간판이 나타났다. 박은주 대표가 언급한 ‘법당’이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타 언론사 취재 차량이 있었다. 법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농장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자 ‘여시관(如是觀)’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이 보였다. 여시관 웹사이트는 레스토랑 이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관념의 색칠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 여시관이다.
그것이 진정 세상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고, 완전한 행복으로 들어가는 처음 문이자 마지막 문이다.” 2013년에 문을 연 여시관은 H씨(여성)가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1000㎡(300여평) 크기 2층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파스타 한 접시가 2만~3만원이다. 레스토랑 옆에는 대형 서점이 붙어있다. 김영사 발행서를 주로 파는 곳으로, 수천 권의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백성농장은 레스토랑(여시관), 165㎡(50여평)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 농작물이 심겨진 밭 등으로 수백㎡ 규모로 보였다. 여시관과 50m 떨어진 곳에 회색의 1층 현대식 주택이 있다. 한 주민은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지난해 봄만 해도 이곳에 기거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 뒤쪽의 입구에는 1층 주택과의 사이에 검정색 철문이 닫혀 있는데, 우연히 1층 건물의 관리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올해 들어 박은주 대표가 두 번 정도 다녀갔고 이후로는 발길이 뜸하다.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강유 회장은 농장에 거주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레스토랑에 가끔 들러 건물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회장님으로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백성농장 안에는 크게 보아 두 채의 건물이 있다. 레스토랑 쪽에 있는 1층 주택과, 그보다 더 안쪽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다. 안쪽 건물은 산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위성사진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의 앞 주차장에는 차량 10여대가 주차되어 있어 건물 크기가 상당한 걸 알 수 있다. 이 건물이 박은주씨가 20년간 살았다는 법당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현지에서 만난 한 사람으로부터 김강유 회장과 박은주 대표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박 대표가) 지난해에는 자주 찾아와 집(1층 주택) 주변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는 등 허드렛일을 많이 했다”며 “작년에 레스토랑에 온 박은주씨의 모습이 상당히 불안정해 보였다”고 말했다. 박은주씨는 김강유씨와도 몇 번 레스토랑에 들렀는데, 김 회장을 대하는 태도가 위축돼 보였다고도 했다. 그는 “한번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박 대표가 김 회장에게) 울면서 사죄했다. 정확하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박은주씨가 쓴 ‘법당’이라는 용어에 대해 “법당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누구도 법당을 차린 적이 없다. 그곳은 금강경 독서모임을 하는 곳이다. 10명 정도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새벽에 모여 금강경 독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교활동을 하거나 다른 신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엔 김영사 직원들도 가끔 다녀갔으나 최근엔 다녀간 적이 없다.”
김강유씨는 금강경 독송회를 이끌고 있다. 김씨 소유로 알려진 ‘백성농장’이라는 이름 자체도 금강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60년대 ‘금강경독송회’를 최초로 설립한 ‘백성욱’(1897~1981)씨의 이름을 따서 농장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백성욱은 승려이자 정치가, 교육운동가였다. 1920년대 초반 독일 뷔츠부르크대학에 유학했고, 1950년에는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 장관으로 일했으며, 제2대 동국대학교 총장(1953~1961)을 지냈다. 그는 1910년에 출가를 하면서 불교의 길로 들어섰고, 동국대학교 총장 퇴임 이후에는 경기도 부천 소사에 수행공동체인 ‘백성목장’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9월 ‘불교평론’에 김영진 당시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는 백성욱과 백성목장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백성목장은 금강경을 독송하는 수행공동체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그는 금강경 독송이 특별한 영험이 있음을 강조했다. 금강경 독송회를 통해 실력파 제자들이 길러졌고, 이 제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금강경 독송회를 이어오고 있다.” 김강유 회장이 용인에 설립한 백성농장도 그런 곳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금강경 독송회’라는 검색어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하면 많은 단체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