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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女王' 박은주 前 김영사 사장, 잠적 1년 2개월 만에 '김영사 미스터리' 폭로

이강기 2015. 11. 3. 17:24

"20년간 法堂서 숙식… 그때 번 28억 모두 바쳤다"

입력 : 2015.07.27 03:00 | 수정 : 2015.07.27 10:20

'출판 女王' 박은주 前 김영사 사장, 잠적 1년 2개월 만에 '김영사 미스터리' 폭로
朴 前사장, 김강유 김영사 회장을 350억 배임·횡령 고소

"1984년부터 20년간 용돈 20만원으로 생활…
회사일 손뗐다던 '敎主', 형 회사 불법지원 강요
재산포기·횡령 각서 들이대며 나에게 서명하라고 협박"

의문의 사퇴, 신흥 종교 관련설, 횡령 의혹, 내연남 소문 등 출판사 '김영사 미스터리'의 주인공 박은주(58) 전 김영사 사장이 26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2014년 5월 김영사 사장직과 500개 회원사로 구성된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직을 중도 사퇴하고 언론 접촉을 끊은 뒤 1년 2개월 만의 일이다. 박 전 사장이 지난 23일 김강유(68·김정섭에서 개명) 현 김영사 대표이사 회장을 총 350억원 규모의 배임, 횡령,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도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32세부터 25년간 김영사 사장이었던 박 전 사장은 대표적인 스타 출판인. 김 회장은 1989년 그를 사장으로 임명한 김영사 대주주로, 용인에 법당(김 회장 주장은 단순한 금강경 공부 모임)이 있는 수행 단체의 리더이기도 하다. 박 전 사장은 "김영사에 들어간 직후인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 동안 부모님도 버리고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출퇴근했다"면서 "그 20년 동안 월급, 보너스, 주식배당금 전액 등 내가 번 모든 돈 총 28억원을 김강유 교주에게 바쳤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은 '교주'(敎主)라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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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전 사장은 “나는 사이비 종교의 하수인이었다”라는 표현까지 했지만, 다시 “감정적 분노와 불안정 때문에 잘못된 표현을 썼다”고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사퇴 이후 몸무게가 8㎏이나 빠졌다면서 사진 촬영은 사양했다. /이태경 기자

―김 회장과 당신의 관계는.

"사제(師弟)다. 나는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진학을 꿈꿀 만큼 불교 공부에 관심이 많았다. 김 회장은 백성욱 박사(이승만 대통령 시절 내무부장관을 지낸 불교 지도자)의 제자였고, 나는 김 회장에게 '금강경'을 배웠다. 1983년 김 회장 개인 소유인 김영사의 편집장으로 입사했다. 김 회장은 내가 공부 인연이 깊은 사람이니 법당에서 수행정진하라고 했다. 그때 짐 싸들고 법당으로 들어갔고, 부모님께 보내던 월급을 모두 여기 바쳤다. 김 회장과 공동 교주인 여성 A가 나를 기도방에 앉혀놓고 '이곳은 몸과 마음과 재산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라고 해 그대로 따랐다."

―모든 돈을 바치면 생활은.

"용돈 20만원을 법당에서 받았다. 2003년 법당을 나올 때까지. 그곳에서 먹고 잤으니 돈 들 일도 없고."

―당신을 사장으로 임명한 사람도 김 회장 아닌가.

"내가 입사했을 때 김영사는 연매출 1억~2억원 수준의 개인 회사였다. 1989년 대우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됐다. 언론의 주목을 받자 김 회장은 '박은주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나는 수행을 하러 간다'고 공표하라고 했다. 그때는 물론 고마웠다. 하지만 내가 사장을 맡은 후 출판사는 고속 성장을 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박 전 사장이 법당을 나오고 '보시'를 중단한 뒤 그의 연봉은 큰 폭으로 증가한다. 1994년 8000만원, 2002년 2억 수준이었는데, 2003년에는 4억이었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는 연 8억원을 받았다. 금융권에서도 A급 회사 CEO에게나 가능한 연봉이다.

―출판사 사장으로는 이례적인 액수다.

"2009년에는 연매출 526억, 당기순이익 166억을 달성했다. 물론 연봉이 높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벌었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2010년 이후 김영사 매출과 순이익은 출판계 불황, 히트작 감소 등으로 큰 폭 감소한다. 특히 2012년과 2013년은 적자를 냈다.

―적자를 낸 출판사 CEO가 연봉 8억을 받는 건 좀 과해 보이는데.

"내 연봉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정한다. 2008년인가 주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정했고, 이후에도 이의가 없었다."

―2003년 5월 법당을 나온 이유는.

"김 회장이 유부녀 B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2003년 법당이 깨졌다. 공동 교주 A와 김 회장은 법당을 팔아 절반씩 나눴고, 나는 20년 만에 법당을 나와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김영사 사태 일지 표

―갈등이 시작된 계기는.

"2006년에 법당에 돌아온 김 회장은 내게 돈을 요구했다. 비자금을 만들어서 2008년부터 매월 1000만원씩 송금했다. 김 회장의 월급은 또 별도였다. 김 회장의 개인 기사 월급도 김영사에서 나갔다. 물론 김 회장은 회사에 전혀 나오지 않았다. 또 망해가는 형님 회사를 지원하라고 했다. 한마디로 블랙홀이었다. 김영사에서 그 블랙홀을 인수하라고 강요했고, 결국 그 회사에 수십억을 쏟아부었다. 손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충언하자 마찰이 시작됐다."

―사장직은 왜 중도 사퇴했나.

"김 회장이 2013년 12월 나를 부르더니, 회사를 반으로 축소시키고 가회동 김영사 건물(소유 박은주) 팔자고 하더라. 출판사는 파주로 옮기자면서. 어렵겠다고 하자, '주×아리' '대×리 컸다' 등의 고함을 치며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 김영사는 내가 40%, 김 회장과 그의 형제자매, 신도들이 합쳐서 약 60%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다. 2014년 3월 주총에서 김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이 됐고, 김 회장의 형을 감사로, 법당에서 파견한 신도 C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새 경영진의 엄포와 협박으로 심장마비에 걸릴 지경이었다."

―김 회장 측은 당신이 200억대 횡령을 했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에게 준 비자금과 형님 회사에 불법 지원한 게 대략 70억이다. 법인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꾸며서 만들고 부풀린 것이다. 하도 억울해서 10년 만에 용인의 법당을 찾아가니, 미리 만들어 두었던 김영사 주식 포기 각서와 가회동 사옥 재산 포기 각서를 꺼내며,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다. 13가지 배임 횡령 리스트를 들이대며 강제 서명을 시켰다. 협박과 회유와 공갈이 반복됐다. 심지어 내게 모욕을 주기 위해 3명의 내연남까지 거론했다. 모두 터무니없는 얘기다."

―잘못이 없으면서 재산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배임 횡령죄를 시인했다니.

"처음부터 스승과 제자 관계로 그를 만났다. 우리 법당에서는 복종을 미덕으로 한다. 불교는 옛날부터 스승과 제자 사이를 부모 자식보다 더한 관계로 생각했다. 부모는 육신을 낳아준 사람이지만, 스승은 인간 되게 만들어준 사람이라 스승을 진짜 부모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부모를 버리고 김 회장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가 20년을 산 것이다. 법당에서는 그를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떠받들었다. 그에게 삼배를 해야 했고, 그의 말을 들으려면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들어야 했다. 외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사퇴와 합의서 작성 후에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서 고소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잘못은 없나.

"김영사 경영진이 바뀌고 나서 작년 10월 3명의 직원을 208억을 횡령했다며 형사고소한 일이 있었다. 올해 4월 그 사건이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김영사 측에서 내가 그들 편을 들어줘서 그렇게 됐다며 항고하겠다고 협박 문자가 왔다. 주식, 김영사 건물, 퇴직금 등 모든 것을 포기하면 보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해서 합의서를 썼는데,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내가 고소했으니, 그들도 나를 이제 배임 횡령죄로 고소하겠지. 나는 고의적으로 회사 자금을 빼거나, 내 개인적으로 유용한 일이 없다. 내 과실이 나온다면 나도 법의 심판대 위에 서겠다."

 

박은주 사장

32세에 김영사 사장으로 발탁된 뒤 승승장구하며 '출판계의 미다스의 손' '출판 여왕' 등으로 불렸다. 25년간 사장을 했고, '닥터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먼나라 이웃나라' 등 수많은 밀리언셀러를 만들었다.

 

☞김영사

'정의란 무엇인가'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출판사에서 이런 송사가 벌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1983년 설립되어 지금까지 3000여종의 책을 펴냈다. 문화부 추천도서, 간행본 윤리위원회 권장도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 등 가장 많은 추천 도서를 가진 출판사 중 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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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사장이 자발적으로 수행… 돈 바치라고 강요한 적 없다"

입력 : 2015.07.27 03:00

[김강유 회장 반박]
"횡령은 朴사장이 한 것… 사이비 교주? 터무니없어"

김강유 회장은 박은주 전 사장의 주장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며 적극 반박했다. 김 회장은 "이 모임은 종교가 아니라 공부 모임"이라면서 "금강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면서 깨달음을 얻자는 수행"이라고 했다. CD 음악과 '파동수(水)' 수행에 대해서는 "다른 공부 모임에서 어떤 수행을 하고 있는지 알아본 정도"라면서 "우리를 무슨 사이비 종교 취급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박은주 사장의 20년 법당 합숙 생활에 대해서도 "박 사장이 자발적으로 들어와서 수행했다가 제 발로 나간 것"이라며 "돈 바치라고 강요한 적 전혀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또 이 기간에 있었던 박 전 사장의 미국 유학(1995~1998년 7월)도 학비와 체재비를 모두 자신이 부담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김영사 사옥. 서로 재산권을 다투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김영사 사옥. 서로 재산권을 다투고 있다. /김지호 기자

또 유부녀 B와의 염문설에 대해서는 "우리는 박 사장이 주장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면서 "나는 3년 전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B는 지금 우리 용인 건물에서 카페 주인을 하고 있는데, 박 사장이 말하는 그런 관계라면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박 전 사장의 고소 내용인 횡령과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출판사에 출근하지는 않았지만, 출판사 일은 항상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박 사장이 연봉 8억원 받을 때 나는 8000만원을 받았다"면서 "어떤 출판사가 사장 연봉을 8억씩 주느냐"고 되물었다. 또 매월 비자금 1000만원씩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건 박 사장이 나도 속이고 출판사도 속인 것"이라면서 "나는 박 사장이 받는 연봉에서 나한테 '보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김 회장은 "우리는 박 사장의 200억 횡령 혐의를 입증할 증거자료와 녹취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서 "한때 제자였던 사람에 대해 험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는 우리도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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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박은주 김영사 대표 전격 사임

입력 : 2014.06.03 05:00 | 수정 : 2015.07.27 10:10

한국 출판계의 대표적 여성 CEO(최고경영자)인 박은주(57) 김영사 대표가 갑자기 사임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사 관계자는 2일 “박 대표가 최근 사재기 의혹 논란 등 유통 관련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지난 31일 김영사와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단행본 출판사 연합체인 한국출판인회의 측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은주 前 김영사 대표

표면적 이유는 ‘사재기 책임’…배경엔 경영권 분쟁

김영사측이 밝힌 대로 사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최근 불거진 사재기 의혹 논란이다. 지난 4월 한 서적도매업체가 직원들에게 김영사 계열 브랜드인 ‘김영사온’이 출간한 책을 한 권씩 사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김영사 관계자는 “(박 대표의 사임은)도의적인 책임을 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표 사임 배경에는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있다는 분석이 출판계에서 나오고 있다. 김영사 창업주인 김정섭 회장이 지난 4월 경영에 복귀해 박 대표의 결재권을 회수하고 편집 책임만을 맡을 것을 종용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최근 매출 하락 이유로 창업주가 질책

김 회장은 최근 회사 매출 하락에 대해 박 대표를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77억원으로 전년 349억원에 비해 20%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매출 감소는 전체 출판계에 해당하는 문제이며, 김영사의 영업이익이 특히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경영 부진 역시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지분 60% 이상을 가진 김 회장 측이 경영권 회수를 위해 박 대표를 퇴진시킨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영사 지분 30%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박 대표는 수 년간 지분을 늘리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김 회장과 이 문제로 경영권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1979년 평화출판사에 입사한 박 대표는 1982년 김정섭 당시 김영사 사장의 영입 제의로 회사를 옮겼다. 주간을 거쳐 1989년 32세에 김영사 대표로 발탁되면서 ‘출판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박 대표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빵장수 야곱’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비롯해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까지 25년간 숱한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출판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한 중견 출판사 대표는 “사재기나 경영 부진 문제 때문에 사퇴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김영사를 한국 대표 출판사로 키운 유능한 출판인의 퇴진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 대표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 갖겠다”

박 대표는 지난해 1월부터 단행본 출판사 연합체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을 맡아 지난주까지만 해도 서울 서교동에서 열린 사재기 대책 회의를 주관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이번에 박 대표는 출판인회의 회장 직책에서도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출판인회의 회장은 출판사 대표를 자격 요건으로 해왔다. 출판인회의는 2일 긴급 실행이사회를 열어 후임 회장 인선을 포함한 대책 모색에 들어갔다. 박 대표는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미안하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당분간 쉬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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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김영사와 박은주

  • 논설위원 김광일
  • 1989년 출판사 김영사에서 신년 하례식이 열렸다. 직원은 열 명 남짓이었다. 김정섭 사장이 불쑥 말을 꺼냈다. "오늘부터 박은주 주간이 사장입니다. 잘 따라주기 바랍니다." 김 사장은 누구에게도 그런 뜻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직원들이 술렁였다. 박은주 사장은 뒷날 말했다. "아주 간단히 그 말씀만 하고 나가시더라고요. 당신이 앉던 의자를 그대로 제게 물려주셨지요." 김 전 사장은 곧 잊혔다. 전북 부안에서 수도 생활을 한다는 말만 들렸다.

    ▶박 사장은 7년을 편집자로 일하다 서른둘에 CEO가 됐고, 바로 한국 출판에 새 신화를 써나갔다. 그해 김우중 대우 회장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냈다. 다섯 달 새 100만부가 팔렸고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여러 출판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때 '여성 김우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1989년부터 98년까지 김영사는 베스트셀러 139종을 낸 최고 출판사였다. 박 사장 이름 뒤에 '미다스의 손' '출판 여제(女帝)'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만물상] 김영사와 박은주
▶김영사는 '젊은(young) 김씨가 만든 출판사'라는 뜻이다. 글자만 앞뒤를 바꿨다. 지금도 주식은 박은주 사장 지분 40.26%를 빼면 나머지는 김씨네 소유와 기타 지분으로 돼 있다. 창업주 김정섭 전 사장은 지난 4월 회장으로 돌아와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그는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在家) 불자로 알려져 있다. 박 사장도 그에게서 금강경을 배웠다. 박 사장은 30년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강경을 읽고 108배를 했다고 한다.

▶엊그제 박 사장이 가회동 한옥마을 '언덕 위의 하얀집' 김영사를 떠났다. 사장 된 지 25년 만에 갑작스러운 사표였다. 말들이 구구하다. "최근 매출이 부진했다, 사재기 파문이 있었다…." 가까운 지인들은 고개를 젓는다. 스승으로 모시던 김정섭 회장과 결국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고들 했다. 박 사장은 김영사가 2010년 매출 500억원에 이를 만큼 키워 온 주인공이기에 모두들 무슨 사정인가 궁금해하고 있다.

▶어느 집이나 김영사 책이 한두 권쯤 눈에 띈다. '먼 나라 이웃 나라' '식객' 같은 인기 만화도 김영사에서 나왔다. 올해처럼 지방선거와 월드컵이 겹쳤던 2010년 여름 '정의란 무엇인가'를 펴내 인문서로 그해 최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내로라하는 인사들도 김영사에서 자서전을 냈다. 모두 박 사장 손길을 거쳤다. 박 사장은 '물 흐르듯이'라는 글귀를 좋아했다. 때가 되면 홀연히 떠나겠다고도 했다. 출판계는 그 물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디서 머물지 지켜보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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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머문 용인 법당 가 보니…

입력 : 2015.08.10 07:39 , 조선일보
2014년 봄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수주 동안 머무른 것으로 알려진 백성농장 내 건물.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2014년 봄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수주 동안 머무른 것으로 알려진 백성농장 내 건물.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출판계의 여제’로 불리던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이 회사의 김강유(68) 대표이사 회장을 350억원대 횡령·배임·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은주 전 대표는 조선일보와 만나 김강유씨가 용인에서 법당을 운영하면서 교주 행세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강유 회장에 대해 ‘살아있는 부처(活佛)’라는 표현을 쓰면서 “김영사에 들어간 직후인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 동안 부모님도 버리고 법당에서 숙식을 하면서 출퇴근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법당은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에 있는 김강유 회장의 사유지로 알려진 ‘백성농장’ 내에 있다.

나는 지난 7일 28일 용인 법당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마북동 주민들은 ‘법당’의 존재에 대해서 모른다고 했다. 일부 주민은 “법당은 아니지만 김영사 책을 전시하는 큰 규모의 북카페가 있다”고 말했다. 동백죽전대로 마북 IC 옆 마북로가 세 갈래로 나뉘는 곳에서 맨 왼쪽 길을 따라 약 3분 정도 차로 달리니 회색 간판에 세로로 ‘백성농장’이라고 쓰인 간판이 나타났다. 박은주 대표가 언급한 ‘법당’이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타 언론사 취재 차량이 있었다. 법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농장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자 ‘여시관(如是觀)’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이 보였다. 여시관 웹사이트는 레스토랑 이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관념의 색칠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 여시관이다.

그것이 진정 세상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고, 완전한 행복으로 들어가는 처음 문이자 마지막 문이다.” 2013년에 문을 연 여시관은 H씨(여성)가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1000㎡(300여평) 크기 2층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파스타 한 접시가 2만~3만원이다. 레스토랑 옆에는 대형 서점이 붙어있다. 김영사 발행서를 주로 파는 곳으로, 수천 권의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백성농장은 레스토랑(여시관), 165㎡(50여평)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 농작물이 심겨진 밭 등으로 수백㎡ 규모로 보였다. 여시관과 50m 떨어진 곳에 회색의 1층 현대식 주택이 있다. 한 주민은 박은주 전 김영사 대표가 지난해 봄만 해도 이곳에 기거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 뒤쪽의 입구에는 1층 주택과의 사이에 검정색 철문이 닫혀 있는데, 우연히 1층 건물의 관리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올해 들어 박은주 대표가 두 번 정도 다녀갔고 이후로는 발길이 뜸하다.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강유 회장은 농장에 거주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레스토랑에 가끔 들러 건물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회장님으로 불리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백성농장 안에는 크게 보아 두 채의 건물이 있다. 레스토랑 쪽에 있는 1층 주택과, 그보다 더 안쪽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이다. 안쪽 건물은 산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위성사진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의 앞 주차장에는 차량 10여대가 주차되어 있어 건물 크기가 상당한 걸 알 수 있다. 이 건물이 박은주씨가 20년간 살았다는 법당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현지에서 만난 한 사람으로부터 김강유 회장과 박은주 대표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박 대표가) 지난해에는 자주 찾아와 집(1층 주택) 주변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는 등 허드렛일을 많이 했다”며 “작년에 레스토랑에 온 박은주씨의 모습이 상당히 불안정해 보였다”고 말했다. 박은주씨는 김강유씨와도 몇 번 레스토랑에 들렀는데, 김 회장을 대하는 태도가 위축돼 보였다고도 했다. 그는 “한번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박 대표가 김 회장에게) 울면서 사죄했다. 정확하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박은주씨가 쓴 ‘법당’이라는 용어에 대해 “법당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누구도 법당을 차린 적이 없다. 그곳은 금강경 독서모임을 하는 곳이다. 10명 정도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새벽에 모여 금강경 독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교활동을 하거나 다른 신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엔 김영사 직원들도 가끔 다녀갔으나 최근엔 다녀간 적이 없다.”

김강유씨는 금강경 독송회를 이끌고 있다. 김씨 소유로 알려진 ‘백성농장’이라는 이름 자체도 금강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60년대 ‘금강경독송회’를 최초로 설립한 ‘백성욱’(1897~1981)씨의 이름을 따서 농장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백성욱은 승려이자 정치가, 교육운동가였다. 1920년대 초반 독일 뷔츠부르크대학에 유학했고, 1950년에는 이승만 정부의 내무부 장관으로 일했으며, 제2대 동국대학교 총장(1953~1961)을 지냈다. 그는 1910년에 출가를 하면서 불교의 길로 들어섰고, 동국대학교 총장 퇴임 이후에는 경기도 부천 소사에 수행공동체인 ‘백성목장’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9월 ‘불교평론’에 김영진 당시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는 백성욱과 백성목장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백성목장은 금강경을 독송하는 수행공동체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그는 금강경 독송이 특별한 영험이 있음을 강조했다. 금강경 독송회를 통해 실력파 제자들이 길러졌고, 이 제자들은 전국 곳곳에서 금강경 독송회를 이어오고 있다.” 김강유 회장이 용인에 설립한 백성농장도 그런 곳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금강경 독송회’라는 검색어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하면 많은 단체가 나온다.
김정현 주간조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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