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작은나라의 거인을 만나다 시대정신 2015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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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92세를 일기로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전 총리는 1990년대 중반, 20세기 후반 아시아의 뛰어난 지도자 세 사람을 꼽아 달라는 요청을 받자, 첫째로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을 꼽았다. 둘째로는 전후 미·일 동맹을 체결해 일본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요시다 시게루 전 수상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은 이름을 거명하지 않았다. “한국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까봐”라며... 아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는 2001년에 발간된 그의두 번째 자서전『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원제: From The Third World To First)』에서 “ 박 대통령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산업화된 국가로 성장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673쪽)라며 박 대통령이 시류와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 발전을 추구한 것을 높이 평가하는 언급을 미루어 볼 때 그렇다. 그러나 리콴유야말로 20세기 후반 아시아를 대표하는 정치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150년에 가까운 영국의 식민 통치가 막바지로 향하던 1959년, 리콴유가 자치정부의 수상이되었을 때 인구 200만의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400달러에 불과했다. 그런 싱가포르가 2014년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6,000달러(PPP기준 8만 2,800달러,『 World Fact Book』)에 달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살면서도 부패가 가장 적은 선진국으로 변모되었다. 이를 선도한 것이 리콴유다. 리콴유는 자신은 일기도 쓰지 않는 사람이라 총리로 재임 할 때는 회고록을 쓸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 일에 신경을 썼다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정직하고 유능한 정부, 공공질서와 안보가 보장되는 사회, 사회·경제적 발전 등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인식시키기 위해” 자서전을 썼다고 밝힌다.『내가 겪어온 일류국가의 길』은 크게 1, 2,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생존을 위한 투쟁’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축출되어 독립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당시 동영상과 사진들에는 리콴유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나온다. 자서전에서 “내륙지역이 없는 작은 섬, 어쩌면 몸통이 없는 심장을 물려받았다”(69쪽)고 표현한 것처럼, 이 작은 나라의 생존 여부가 마음을 짓눌렀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군대의 창설과 국제 승인 확보, 영국군 철군 속에서 생존을 향한 험난한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경제발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오늘날 세계적인 금융 허브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의 금융 기초 만들기와 노사협력의 달성, 오랜 내부 투쟁의 대상이었던 공산세력을 마침내 몰락시킨 과정과 다민족 다언어 국가라는 근본적인 국민통합 저해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영어를 제1언어로 채택하는 과정과 부패 척결 등을 다루고 있다. 부패척결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사람인 태 치앙완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부패행위조사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그는 리콴유를 만나고 싶어 했으나 리콴유는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만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직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246, 247쪽) 이 일로 그의 부인과 딸은 싱가포르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리콴유는 2009년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로 불리는 양란(梁瀾) 양광미디어투자그룹 회장과의 인터뷰‘ 소무대 대인물(小舞臺 大人物)’에서 부패와의 투쟁 중 가장 고통스런 결정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당시 국가개발부 장관이었던 태 치앙완의 사례를 이야기 하며 눈자위가 붉어지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책에서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했으나, 개인적으로는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고통이었던 듯하다. 제2부 ‘안정과 번영의 길을 향한 도약’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과의 갈등과 관계개선을 비롯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창설과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과의 새로운 유대관계 정립, 영연방국가들과의 친선, 그리고 각 장을 할애해 미국, 소련, 일본, 한국,홍콩, 타이완, 중국과의 관계 및 각 나라들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어느 국제정치학자보다도 뛰어난 혜안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3장 ‘기로에 선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과의 교류 내용과 간략한 평가를 담고 있다. 특히 1999년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과 관련해 “세간에서는 아시아적 가치관,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런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공히 70대 후반 나이에 있어 누구도 견해를 바꿀 것 같지 않았다.”(684쪽)고 간단히 언급했다. 이는 1994에 미국의 국제관계 잡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irs)』에서 벌어진 민주주의와 인권, 아시아적 가치를 둘러싼 두 사람의 의견차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번역된『 리콴유가 말하다(원제: The Grand Master’s Insights on China, the United States, and the World)』에서는 비교적 길게 자기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포린 어페어스지의 청탁을 받고 기고한 글에서 ‘민주주의가 우리의 운명’이라고 했다. 내가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와 나눈 대담에 대해 반박하는 기고문이었는데 나에게도 재반박 청탁이 들어왔다. 나는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그의 글은 주장만 가득하다. 그의 말대로 되리라는 구체적 사례가 어디 있는가? 민주주의가 필연이라면 그의 글에 그렇게 흥분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민주주의의 향방에 그렇게 안달복달하며 나를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실은 그들이 예측하는 필연적 결과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역사가 그들의 편이라면, 자유민주주의가 필연이라면 그냥 나를 무시하면 된다. 공연히 나에게 언론의 주목을 끌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론이 그럴듯하게 들리거나 논리적으로 지면에 제시되었다고 그대로 될 거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최종 판결은 현실에서 내려지는 것이다. 사회에서 일하는 실제 삶에서 말이다.”라고... 리콴유의 민주주의관은 서구 언론에서는 압도적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리콴유의 민주주의관에 관한 지지나 비판 여부를 떠나, “전통적으로 끝까지 투쟁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가 이식될 때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그 나라의 집권자가 군사 독재자이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든 관계없이 거리에 나와 싸웠다.”(632쪽)는 비판은 새겨들을 여지가 있다. 제3장 ‘끝이며 시작인 장’(원제는 Winding Up)은 정권인계와 아내와 자식 등 가족에 대한 내용, 종합적 회고로 마무리된다. 『내가 겪어온 일류국가의 길』이 한 국가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국가 간의 문제를 주로 다뤘다면, 1998년 출간된 리콴유의 첫 자서전『 리콴유 자서전(원제: The Singapore Story)』은 리콴유 개인의 탄생과 성장, 정치적 인간으로의 변화를 하나의 축으로 하고 영국의 식민지배와 독립, 말레이시아와의통합과 결별 등을 다른 축으로 하여 서술된다.『리콴유 자서전』은 총 4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초반에는 리콴유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어떻게 교육 받고 성장했는지, 대영제국을 몰아내고 일본이 점령군으로 들어오면서 겪은 경험 속에서 각인된 생각들이 담겨져 있다. 리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행동 양식과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 인간의 욕구와 충동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정부의 절대적 필요성, 그리고 권력이야말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란 점을 3년간의 일본군 점령 시절을 겪지 못했더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87쪽)이라고 회고한다. 한 인터뷰에서“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마오쩌뚱이 아니라 일본 점령 치하에서 배웠다.”고 한 바 있는데, 이때 리콴유의 원초적 정치의식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영국 유학 시절 동안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매료되고, 한편으로는 민족적 각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과정도 그려져 있다. 이어 평생의 반려자가 된 콰걱추(柯玉芝) 여사와의 연애담, 조국에 돌아와서 변호사로서 지명도를 얻게 된 과정, 영국의 식민 지배 종식을 목표로 하되 공산주의와 같은 급진적 방식이 아닌 실용적 개혁을 통한 집권을 내세운 1954년의 인민행동당의 창당, 55년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급진 공산주의자와의 합작을 통해 59년에는 싱가포르 자치정부의 수상에 오르는 과정이 다뤄진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연방의 창설과 민족적, 언어적 차이와 연방국가의 비전을 둘러싼 대립으로 인해 65년 연방으로부터 추방되면서 불가피하게 싱가포르가 독립국가가 되는 과정을 회고한다. 이 책의 상당한 분량이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합과 경쟁 그리고 대결에 할애되고 있다. 리콴유는 훗날 아시아의 부패한 다수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헌신과 이타심 그리고 청렴의 모범처럼 비쳐졌던 중국과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길』(248쪽)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1950~60년대에 심지어 손님이 호텔에 버리고 간 물건까지 돌려주는 행위를 통해 물질적 소유에 대한 무관심을 가장했던 중국의 경우 문화대혁명으로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1970년대 말 개혁개방 이후에는 대다수 공산당 간부들이 생애의 가장 좋은 시절을 속아서 허비했다고 느꼈는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부를 축적했다며 비판한다. 베트남에서도 1980년대 후반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이후 외국 투자를 허용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자신들이 비웃던 아시아의 다른 자본주의 나라보다 더 심한 부정과 부패에 빠져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리콴유 자신이 당시 상대했던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타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며, “ 그들 중 대다수는 개인적 자유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들은 신념 때문에 감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435쪽)고 말한다. 오히려 공산세력이 무너진 후 상대한 비공산계 야당 인사들의 대다수는 더욱 기회주의적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싱가포르 인구 200여만 명 중 60%가 넘는 사람들이 중국계였고 주요 공산주의자들이 중국인이었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이 중국인에 대한 탄압, 즉 민족적 탄압으로 느껴져 동조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리콴유는 “우리의 대공정책의 기조는 공산세력의 책략에 휘말리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공산세력을 토벌하려면 중립적인 중국계 민중이 대대적인 구속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고 명분의 정당성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바탕이 먼저 구축 되어야 한다. 반대로 중국인 노동자들이 만약 공산주의 노조 지도자들이 정치적 신념 때문에 억울하게 탄압받는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지지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387쪽)고 말한다.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 명분을 먼저 세우고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중과의 연계를 약화시키는 것을 중점적인 전략으로 삼은 후 힘의 관계가 역전될 때까지 정면 대결을 피하고 기다린 것이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세력이나 사회세력이 상대세력을 다루는 데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다. 리콴유를 성공한 리더십으로 거론하면, 비판자들은 리콴유가 31년 간이나 총리로 재임했다고 이야기 한다. 또 야당의 집권을 제약하는 싱가포르의 정치적 제도와 언론에 대한 통제가 비교적 용이한 점도 비판적 논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리콴유 스스로도 “지도자로서의 공적은 재임기간이 길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했듯이, 전 세계적으로 장기집권을 했다고 반드시 훌륭한 업적을 남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의 김 씨 왕조가 무슨 업적을 남겼는가. 개인적 시련이 꼭 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개 평탄한 삶을 산 사람보다는 신산의 고통을 넘어선 사람이 큰 성취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보아온 바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그러한 경우가 더욱 뚜렷하다. 리콴유는 개인으로만 보면 그리 불행했던 사람은 아니다. 유복했던 집안이 한때 몰락하기는 했었지만, 영국 유학까지 포함해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인과도 63년을 해로했으며, 현재의 싱가포르 총리인 장남 리센룽을 비롯해 자식들도 모두 각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92세에 영면했으니 천수를 다한 셈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났던 때는 식민지 시대였고, 전쟁을 경험했으며, 일본군 치하에서는 목숨을 잃을뻔도 했다. 본인 회고에는 원래 정치 할 생각이 없었고 변호사로서 살아가려고 했다지만,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의 이상주의적 열정이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후는 그때그때 등장하는 험난한 도전 과제와 대결해 승부를 다툴 수밖에 없는 인생 드라마가 펼쳐졌다. 거기서 승리했기 때문에 거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도 싱가포르 못지않게 굴곡진 역사였지만 이제는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나라를 만들었다. 그러나 앞에서 리콴유가 회고록을 집필한 이유에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재와 같은 자유와 번영도 거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리콴유는 자신이 역경을 넘어서서 만들어 온 역사를 스스로 기록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지만 우리 현대사의 거인들은 그들의 공과와는 별개로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리콴유를 다시 읽으며 우리 현대사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김없이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새롭게 정치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지만, 특히 정치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정치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새삼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정치가(statesman)와 정치꾼(politician)을 구별하긴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꾼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치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정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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