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3주에 한번 ‘바깥에서 보는 한국’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에이단 포스터-카터(68) 리즈대 명예선임연구원은, 영국 최고의 한국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명문 이튼칼리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학·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남북한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를 다국적 기업들을 위해 작성한다. 이코노미스트·파이낸셜타임스·가디언·뉴욕타임스에 한국 관련 기고문을 게재하고 있다. 캐임브리지대·옥스퍼드대에서는 한국 관련 박사논문의 심사위원이다.
그는 젊었을 때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사회과학 이론에 매료됐기 때문에 한때 친북이었다. (사실 적어도 70년때까지는 유럽의 지식인들은 다수가 친북이었다.) 한국의 발전상을 목격한 다음에는 친한파로 전향했다. 그의 꿈은 한국이 통일돼 부산에서 파리까지 기차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를 인터뷰 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 세계에는 200여개에 달하는 나라가 있다. 한국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좀 이상한 경로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아프리카 빈국들의 경제발전 문제에 대해 공부하던 중 북한에 대한 어떤 책을 읽었다. 그 책은 남북한 모두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나는 한국보다는 북한에 관심이 많았다.
젊었을 때의 나를 스스로 비판한다면 첫째 나는 한국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념에는 함정이 있다. 다른 쪽은 고려조차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전체주의는
한국의 권위주의보다 정치적인 비용이 항상 더 컸다.”
- 세계에는 아직도 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미주의와 반제국주의는 세계에서 매우 강력한 힘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영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에는 아직까지도 북한 추종자들이 있다.
슬픈 일이다. 북한체제에는 보편성이 없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포기했고 나르시시즘적인 민족주의에 빠져있다.”
-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자해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지금보다 더 낙관적이 될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보다 더 가난했던
한국은 지난 50여년 동안 엄청난 일들을 성취했다. 세계의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하지만,
민주주의는 세계 어디서나 불완전하다. 정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가 선사하는 기쁨이다. 단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도 썼지만,
대통령을 5년마다 바꾸는 것은 한국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개발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오랫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증오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사용했던 방법들에 대해 개탄한다. 그렇지만 그는 통치 기간에 한국이
세계의 성원이 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은 더 이상 희생만 당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나 권위주의에서는 어떤 좋은 결론을 끌어낼 수 없다. 권위주의는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하는데 나는 반대한다.
나는 정치적으로 중도파다. 영국 노동당을 찍기도 하고 보수당을 찍기도 한다. 내가 한국인이라면 박근혜 후보를 찍었을 것이다. 야권의 몇 가지
흐름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로지 그 자신의 성과로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비교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나는
점차 실망하고 있다. 한국은 허둥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슬로건에서 그 다음 슬로건으로 넘어갈 뿐이다. 임기 종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 걱정거리와 믿음에
부응하는 성과가 빨리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만 잘 되면 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현 정부도 남북관계에서 진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신뢰외교(trustpolitik)
구상을 지지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모르겠다. 북한은 절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은 천안함 말고도 수 많은 도발을 했다. 한국의 미래를 천안함에 저당
잡힐 수 없다. 북한은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짜증나게 한다.
김정은의 마음을 읽는 것도 힘들다. 박대통령이 무엇을 하든 빨리 해야 한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 때문에 미래를 희생시킬 수
없다.”
- 북한이 조기에 붕괴할 가능성은 없는가.
“나도 한때는 북한 붕괴론자(collapsist)였다. 주민에 대한 충분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또 만약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국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최소한 중국-대만 정도의 수준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가며 점진적으로 경제를 통합하는 게 한국에도 유리하다.
북한이 불쾌하거나 사악한 상대라는 생각이 들어도 대화는 해야 한다. 나쁜
놈(bad guy)과는 대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끔찍한 오류다.
나쁜 놈이 위험하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대화가 필요하다. 햇볕 정책이 오류가 많았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양보했을지 모르지만 방향만큼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 한국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한국에 감사한다. 한국은 내
인생을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바꿔놓았다. 역동적이며 급변하는 한국을 연구하는 것은 내게 특권과
같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항상 한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