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際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 : 역사적 배경과 현황 평가

이강기 2016. 5. 20. 22:12
시대정신 2016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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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분석]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 : 역사적 배경과 현황 평가


[이지용 | 국립외교원 교수 ]

남중국해 분쟁의 현황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이 직접 당사국들 간의 갈등을 넘어 미중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중국이 2013년부터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Spratly Islands, 중국명 난사군도·南沙群島;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 필리핀명 칼라얀 군도)에서 실효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7개 암초에 인공섬을 조성하기 시작하고, 미국이 이를 중대한 도발로 간주해 대응하면서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남중국해는 전 세계 해상 상업 물동량의 약 1/2, 에너지물동량의 약 1/3, 한국, 일본, 중국의 석유 수송량의 약 80~90%(한국 90%) 등이 통과하는 전략적 수송로이다. 따라서 남중국해 문제는 분쟁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경제 및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는 사안이다. 문제는 남중국해에서의 미중갈등과 해양영유권 분쟁이 향후에 보다 격화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 때문에 남중국해 분쟁의 배경과 국제·정치·경제적 맥락, 그리고 전개양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은 스프래틀리 제도를 중심으로전개되고 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이 각각 주장하는 영해기선이 모두 겹치는 지역이 스프래틀리 제도이기 때문이다.중국은 남중국해 해역 거의 전부를 포괄하는 U자형 구단선(九段線)을 자국의 영해기선으로 주장하고 있고, 베트남 또한 남중국해 상당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가 주장하는 해역에 현재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제도(諸島)와 무인도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분쟁의 대상 지역은 스프래틀리 제도 외에도 파라셀 제도(Paracel Islands, 중국명 시사군도·西沙群島; 베트남명 호앙사 군도)와 메이클즈필드 퇴(堆)(Macclesfield Bank, 중국명 중사군도·中沙群島), 그리고 스카보로 쇼울(Scarborough Shoal, 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명 파나타그)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남중국해 북쪽에 프라타스 군도(Pratas Islands, 중국명 둥사군도·東沙群島)가 있는데 해양영유권 분쟁대상은 아니며 현재 대만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이 중 메이클즈필드 퇴는 중국이 실효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고, 스카보로 쇼울은 필리핀이 실효지배하고 있었으나 2012년 중국이 무력으로 진출해 필리핀과 마찰을 빚은 후 중국이 점령하고 있으며,현재 필리핀이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 제소해 놓은 상태이다. 파라셀 제도는 1974년 남베트남 패망 직전 중국이 무력으로 점유한 이후 실효지배 중이지만 베트남이 자국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잠재적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 현재 분쟁의 중심에 있는 스프래틀리 제도는 남중국해 남부 필리핀 팔라완 섬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약 750여개 이상의 암초, 산호초, 무인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중 위로 나와 있는 면적을 다 합쳐도 4㎢에 불과한 지역이다.


현재 중국이 7개 환초(reef), 베트남이 21개의 섬과 암초 등을, 필리핀이 9개의 섬과 암초, 말레이시아가 3개의 암초, 그리고 대만이 이투 아바(Itu Aba, 중국명 타이핑다오·太平島)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이 직접 당사국이지만, 이들 국가 중 현재 주된 마찰을 빚고 있는 국가는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필리핀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해양 안보 질서유지의 필요성과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 미국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남중국해 분쟁의 역사적 과정


남중국해가 가지고 있는 경제와 안보를 포괄하는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이 해역을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 시점은 시각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30년대에 제국주의 강탈전이 아시아에서 격화되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 대립 당사국은 군국주의 일본과 프랑스였다. 동남아로 팽창하고 있던 일본과 인도차이나를 식민지화하고 있던 프랑스가 파라셀과 스프래틀리 제도를 둘러싸고 경쟁을 벌였던 것이 남중국해를 둘러싼 국가 간 마찰의 시작이었다. 일본은 1939년 동남아로 팽창해가면서 남중국해 제해권을 장악할 필요성에 기반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가장 큰 섬인 이투 아바(Itu Aba)를 잠수함과 해군 기지로 사용했다. 이는 이 지역이 남중국해 제해권 장악에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현재 주된 분쟁 당사국인 중국 또한 남중국해 해역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었다. 특히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가 1935년 중국남해도서도(中國南海島嶼圖)를 편찬하면서 남중국해 도서들이 자국 소유라고 표시한 바 있고, 이 지도에 기반해 1947년 역시 국민당 정부가 남해제도위치도(南海諸島位置圖)에 11단선을 표시하면서 현재 구단선의 중국측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남중국해의 전략적 측면에 주목했다기 보다는 자국 영토를 최대한 확장해 표시하는 정도였다고 볼 수 있으며, 남중국해를 장악할 능력도 없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남중국해 도서지역에서 철수하고, 중국 국민당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게 패해 대만으로 밀려나는 와중에 남중국해 힘의 공백을 메운 것은 남베트남이었다. 남베트남은 과거 프랑스가 확보한 남중국해 파라셀, 스프래틀리 제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베트남 또한 당시 중국(대만 포함)과 같이 남중국해에 대한 주장은 자국의 역사적 인식과 영토 확보라고 하는 인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제해권과 지역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은 아니었다. 남중국해 이해 당사국들이 이 해역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된 계기는 1968년 유엔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UN Economic Commission for Asia and the Far East, ECAFE; 1974년 이후에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ㆍ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ESCAP)에서 동중국해에 대한 자원 탐사 결과 현재 중일 간 분쟁지역인 센카쿠/댜오위다오 인근에 대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이다.


이후 국제석유기업들이 남중국해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동중국해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제도 인근을 중심으로 보다 많은 대량의 원유 및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1971년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비밀리에 동중국해에 대량의 해저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알려짐에 따라 주변국들의 움직임을 조사 분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CIA의 이 보고서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에 대한 각국의 이해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있는데, 주요한 잠재적 분쟁 당사자는 일본과 대만이었고, 문화혁명의 혼돈기를 지나고 있던 중국은 피동적이고 수동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동·남중국해 분쟁의 핵인 중국의 공세적 태도와 비교할 때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후 1974년 1월에는 남베트남과 중국 간에 파라셀 제도를 둘러싸고 무력충돌이 발생했는데, 그 결과 중국이 파라셀 제도를 점유하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1974년은 남베트남의 패망이 예상되고 있던 시기였고, 미국은 1973년 이미 베트남에서 철수한 상태에서 이 지역에 힘의 공백이 발생한 시점이었다. 중국은 이러한 힘의 공백이 생긴 틈을 이용해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무력을 행사했다. 남베트남은 파라셀 제도에서 중국에 패배하자 바로 스프래틀리 제도를 점유하고 영유권을 주장한다. 여기서 또 다시 흥미를 끄는 점은 남베트남과 대치중이던 북베트남이 1958년 파라셀과 스프래틀리 제도에 대해서 중국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다. 북베트남은 당시 같은 공산국가로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했던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1975년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하고 통일을 쟁취한 후, 통일 베트남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남중국해와 제도들에 대한 자국의 주권을 주장하면서 1977년 배타적경제수역을 선포한다.


여기서 지적해야할 점은 1970년대 베트남과 중국 간의 분쟁은 전쟁 중 해역방어라는 군사적 필요성과 자국 영해권 주장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즉, 국제무역의 전략적 수송로서의 남중국해에 대한 제해권과 해저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와 능력이 결핍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주요 이슈화되지 않았었던 남중국해 문제는 1988년에 스프래틀리 제도에서 중국과 베트남이 무력충돌을 벌이게 되면서 다시 쟁점화 되었다. 스프래틀리 제도는 남베트남이 20여 개 섬과 암초를 점유한 이후 북베트남이 통일과 함께 이를 접수해 영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1987년 유네스코 정부간해양학위원회(UNESCO Intergovernmental Oceanographic Commission,IOC)가 해양조사의 일환으로 스프래틀리 제도에 관측기지를 설치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를 중국에 위임했던 것이다.


중국은 이를 빌미로 무점유지였던 피어리 크로스 암초(Fiery Cross Reef, 중국명 융수자오·永暑礁)를 선택해 시설물을 설치하고, 이에 대응해 베트남은 자국이 점유한 다른 암초와 섬들에 대한 지배력을 확실시하기 위한조치를 취한다. 중국은 베트남의 행동에 대응조치로 해군력을 전개하게 되고, 결국 양국 해군이 1988년 존슨사우스 암초에서 무력충돌을 벌인다. 이 해상전투에서 중국은 베트남을 패퇴시키고 스프래틀리 제도에 추가적으로 6개의 암초를 점령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이 인공섬을 조성해 문제가 되고 있는 암초가 바로 이 6개 암초이다. 중국은 이어서 1992년 ‘영해와 인근지역에 관한법’을 통과시키면서 대만, 센카쿠/댜오위다오 등의 동중국해 도서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전역을 자국의 영해로 포함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1988년 중-베트남 분쟁이 발발할 수 있게 된 국제정치적 배경은 구(舊)소련이 더 이상 해외에서 자국 영향력을 유지할 수 없었던 사정에 기인한다. 1988년 구(舊)소련은 베트남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데, 그 이전까지 중-소관계의 맥락에서 중국은 소련이 지원하는 베트남에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련이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힘의 공백이 발생하자 중국은 이를 자국이주장하는 해양영유권 확보에 이용한 것이다. 1988년 중-베트남 분쟁 시 구(舊)소련과 미국의 반응은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미소 양강이 당면한 국제적으로 중대한 사안들을 감안할 때, 스프래틀리 제도를 둘러싼 중-베트남 분쟁은 부차적 지역분쟁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중국의 국력은 지역적 수준에서도 위협적 존재로 인식되지는 않았고, 중국 또한 국방개념에서 여전히 내륙방어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중국해군은 근해방어 개념에 머물러있었다.


물론 중국은 1980년대 리우화칭(劉華淸) 제독이 현재 중국의 해양방어 전략인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 전략계획을 세우고 대양해군을 지향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에 이는 개념적 수준과 선언적 비전(vision) 수준이었지 실질적인 중국의 전략개념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1980년대에 중국은 대양해군과 전략개념을 실행할 능력뿐만 아니라 전략적 이해도 결핍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90년대에도 남중국해에서 제해권을 장악할 주객관적 능력이 결핍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도 남중국해에 대해 전략적 목적으로 갖고 접근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992년 미국이 필리핀에서 해공군 기지를 철수하고 필리핀 안보문제에서 멀어진 틈을 이용해 중국은 필리핀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도서에 대한 점유를 시도해 스프래틀리 제도의 미스치프 환초(Mischief Reef, 중국명 메이지자오·美濟礁) 등을 점유해오고 있기는 하다.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중국은 남중국해 도서에서 간헐적으로 베트남, 필리핀과 분쟁을 겪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태도는 전향적이었다. 오히려 이 시기 남중국해 도서에 대해 지속적으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 국가는 베트남과 필리핀을 주축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여타 동남아 국가들이었다. 이는 이 시기 중국이 ‘도광양회’ 기조를 바탕으로 국제 다자주의에 적극적으로 편입을 시도하고 동남아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는 대외정책을 추진한 것에 기인한다.


중국의 공세적 태도 전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공세적 행태는 200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해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중일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은 일본이 먼저 도발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러한 일본의 원인제공 요인은 사안의 해석에 따라 이전 시기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 말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확연해지는 반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이른바 미국 쇠퇴론이 거론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중국의 국력발전이 국방력 현대화와 대외정책의 자신감으로 표출된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중국의 고양된 주객관적 국력과 공세적 대외정책은 2000대 후반에 이르러 동·남중국해를 포함한 해양에서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2009년 중국의 잠수함이 미국 전함과 동·남 중국해에서 조우 및 대치한 사건 이래 지금까지 중국은 동·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점차 고양되는 긴장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시진핑 정부가 들어 선 이후 중국은 스프래틀리 제도에 자국이 점유 중인 암초 또는 환초에 인공섬을 조성하고 군사화를 꾀하면서 남중국해 거의 전역을 포괄하는 구단선을 영해기선으로 굳히고자 하는 의도를 강행하고 있다. 동중국해에서 센카쿠/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갈등에 이어 남중국해에서 2014년 이래 중국이 강행해오고 있는 인공섬 조성 및 군사기지화는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남중국해에서 전개되던 해양영유권 분쟁과는 기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바로 남중국해 제해권과 해양안보질서에서의 ‘현상유지’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이전보다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고, 그리고 향후 보다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전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중국해 분쟁의 성격이 변화되어오고 있는 것을 1930년대 이래 분쟁과정을 통해 분석해 보면, 이해 당사국의 역사적 정체성, 해양영토주권 등의 문제에서 점차 해양방어와 같은 군사안보문제가 추가되고, 여기에 현대 산업화 사회에서 전략적 에너지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 등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가 관여되었고, 최근에는 주권, 군사 안보, 경제적 이해에 미중 강대국이 벌이는 해양안보질서와 지전략적 이해까지 가세되면서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은 정당성과 명분을 위해 분쟁 도서에 대한 자국의 역사적 권원을 주장하거나, 또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 2차대전 종전 전후의 국제적 선언 및 조약에 근거를 두거나 아니면 이를 자국의 이익에 맞게 부정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 국제해양법의 조항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해석하면서 맞서고 있다.


중국은 기원전 2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어로활동을 했다는 것부터 시작해 원나라, 명나라 등근현대에 자국의 역사적 자료에 어로활동, 탐사, 그리고 고지도 등을 거론하며 자국의 역사적 권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자료는 중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도 가지고 있고, 남중국해에 지리적으로 근접한 필리핀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1900년도 중반이전까지 대부분 무점유 상태였던 무인도, 암초, 환초 등에 대해 각 당사국들이 내세우는 역사적 권원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동시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접근과 주장은 바로 타협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와 같이 정당성과 명분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 진행되는 남중국해 분쟁의 보다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한다.


미중갈등의 격화 가능성


현재 진행 중인 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분쟁문제의 핵심에는 해양으로 팽창해 나가고자 하는중국이 놓여져 있다. 중국은 현재 전통적인 대륙국가에서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대륙-해양’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변화는 단순히 중화민족의 부흥이라고 하는 ‘중국몽’과 같은 슬로건의 문제가 아니다. 개혁 개방을 통해 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되면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경제와 사회, 그리고 정치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정치경제적 이해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산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에너지 전략자원의 필요성, 글로벌 생산 및 교역 네트워크의 생명줄인 해상수송로에 대한 전략적 이해 증가, 그리고 미중간 가열되는 전략적 경쟁구도와 지역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요구되는 동·남중국해 해양에 대한 제해권 장악 등이 맞물려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국력이 뒷받침되면서 아시아 지역 정치 및 경제 질서에 있어서도 미국 중심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치 및 경제아키텍처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양전략에서도 1980년대 리우화칭(劉華淸) 제독이 제안했으나 개념과 비전수준에 머물러 있던 “제1도련선”과 “제2도련선” 전략계획 실현 및 대양해군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2년에는 당시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가 18차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해양강국’의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고 중공중앙 직속으로 ‘중앙해양권익공작영도소조’를 창설한 바있다. 2015년 ‘중국의 국방전략’이란 제목으로 발간된 국방백서에서는 군사전략을 기존의 방어에서 적극적 방어전략으로 바꾸었고, 해군은 실질적으로 대양해군전략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안보상의 위협으로 상정하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군사안보 및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중국해에 대한 제해권을 장악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전개하는 공세적 행보는 미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해양안보 및 정치경제 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남중국해는 전술한 바와 같이 대규모의 자원이 매장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및 세계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해상교역 수송로이다. 즉, 현재 남중국해 문제의 핵심은 결국은 해양패권의 문제이자 해양안보 ‘질서’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이 남중국해의 해양질서와 패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자국의 영향력을 위협하는 상황전개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제기되는 중요한 사실은 현재 이 지역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해양안보질서라고 하는 국제공공재 하에서 항행의 자유를 포함하는 제반 권리를 침해받은 국가는 중국을 포함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재의 ‘현상유지’가 지속되는 한 향후에도 이 지역에서 제반 권리를 침해받을 국가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역사적 권원을 주장하면서 남중국해 전역을 포괄하는 구단선(九段線)을 영해기선화하고자 한다. 현재 남중국해 도서들을 둘러싸고 현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분쟁의 실질적 배경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해양대국화를 지향하는 중국이 남중국해 제해권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략적 이해가 깔려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적 계산은 제해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반대의 측면으로 해석할 경우, 남중국해에서 구단선이 실질적으로 중국의 영해기선이 된다면 남중국해 수송로에 이해가 있는 모든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물론 중국은 패권이라는 용어를 부정하고 있지만, 지역 패권국(Hegemon)을 꿈꾸고 있다. 패권을 의미하는 헤게모니(hegemony)는 물리적 힘뿐만이 아니라 자발적 동의를 통해 따르게 만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진정한 지역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 국가들에게 공공재를 제공해주면서 성숙한 타협과 포용을 통해 다른 국가들이 스스로 따를 수 있게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외교적 슬로건으로 평화, 공영 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먼저 지역 국가들이 중국적 가치와 슬로건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보이는 행태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이다. 힘의 공백이 발생하거나 힘의 우위가 있을 경우 이를 십분 활용해 자국 이익을 일방적으로 확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이 보다 강한 영향력을 보유한 강대국이 되었을 때 자국의 이해가 걸린 사안들에 대해 어떠한 행태를취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의 주장과 의도대로 전개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 문제를 베트남, 필리핀 등의 분쟁 당사국이자 약소국들과 양자관계로 해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 전개되는 남중국해 문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전략적 의도와 연동되면서 분쟁 당사국들만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중국해의 제해권과 관련된 해양안보질서 문제가 되면서 미국과 일본 및 여타 국가들도 직간접적 이해당사자가 되고 있다. 동시에 분쟁 당사국인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이 외적 균형(external balancing) 차원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대일로’ 등의 전략을 추진하면서 이웃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략적 해상수송로인 남중국해에 중대한 국가이익이 관여되어있는 한국으로서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