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 冊, 讀書

[서평]그레고리 헨드슨 지음 :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 김인영 교수

이강기 2016. 9. 4. 14:45

[서평]그레고리 헨드슨 지음 :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2000.10.27. 21:56


BOOKREVIEW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김인영
그레고리 헨더슨 지음,
박행웅·이종삼 역, 한울, 2000




권위주의 모델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국정치 현상의 포착

그레고리 헨더슨과 한국정치

한 나라의 정치와 정치과정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의 하나로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를 통하여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정치문화적 접근은 정치제도political institution적 접근과 함께 한 나라의 정치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커다란 두 개의 물줄기를 이룬다. 한국정치를 문화를 통하여 이해하고 분석하는 대표적인 학자를 꼽는다면 윤천주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윤천주는 “권위주의” 문화라는 개념을 한국정치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였고,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 정치the politics of vortex라는 개념으로 한국정치를 분석하였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미대사관 직원으로서 “한대선”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질 정도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인물로, 한국에 체류하면서 정계와 학계, 그리고 문화계의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하였다. 헨더슨은 1948년 7월 서울 美대사관에 부임했고, 같은 해 8월 15일의 정부수립 과정을 비롯하여 한국의 현대사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후로 헨더슨은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 정치담당자문(1958∼63) 등을 거치면서 현대 한국정치의 소용돌이를 밀도 있게 경험하게 된다. 그가 직접 경험한 한국정치의 소용돌이 기간은 1948년 7월부터 1950년 10월까지, 그리고 1958년 5월부터 1963년 3월까지로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한국전쟁 발발, 서울탈환, 4월혁명과 제1공화국의 몰락, 제2공화국의 성립과 이를 전복시킨 군사쿠데타, 그리고 군사정부수립 등의 엄청난 격동의 시기의 사건들이었다.

1963년 국무부를 떠난 헨더슨은 자신의 이러한 한국정치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8년 《Korea:The Politics of the Vortex》(Harvard University Press)를 펴내게 된다. 이후에도 한국정치에 대한 관심은 이어져 1969년 9월부터 터프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박정희 군부정권에 대한 비판과 유신에 따른 박정권의 인권탄압을 알리고 비난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학문의 세계에서 헨더슨의 책은 한국 정치문화와 정치발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저술로 널리 알려지고 읽혀 왔다. 하지만 책의 지명도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문장과 녹녹하지 않은 분량, 광범위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 때문에 한글 번역판이 쉽게 나오지 못하였다. 이제 마침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제목으로 헨더슨의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영어 원서의 출판이 1968년이었으니 한국어 번역은 무려 32년이 걸린 셈이고, 일본어 번역판의 출판이 1973년임을 고려할 때 일본어판에 비하여 27년이나 늦은 것이다. 한국어 번역이 늦어진 이유가 순전히 우리의 학계와 번역계의 게으름 때문임을 고려할 때 이번 번역출판은 수십 년 동안 끝내지 못했던 숙제를 마쳤다는 즐거움을 더한다.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가 가지는 의의는 정치문화를 통하여 한국정치를 분석하고 한국의 정치발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였다는 점이다. 헨더슨이 이해하는 한국 정치문화의 특징은 “소용돌이vortex”였다.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한국정치는 중앙권력을 향하여 모든 활동적 요소를 휘몰아 가는 소용돌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중앙권력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던 간에 소용돌이와 같이 중심을 향하여 끌려들어 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한 것이다. 즉 한국사회에서는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종교적 대립, 정책적 차이, 이데올로기의 차이 등으로 인한 분열과 균열은 찾아보기 힘들고 설사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원자화된 단위들이 모두들 중앙의 정치권력을 향하여 돌진하고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소용돌이치게 된다는 것이다(이정복, 1995:186).
헨더슨의 설명을 본문 그대로 읽어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한국에서는 동질적인 사회에 지속적으로 고도의 중앙집권주의를 강요한 결과, 일종의 소용돌이, 즉 문화 전체를 통해 활발히 움직이는 강력한 상승기류의 힘을 발생시켰다. 통상 이 힘은, 고립되지는 않았지만 응집력이 없는 마을 사람들, 소도시 주민들, 농부나 어부들과 같은 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단지 가족이나 때로는 문중 또는 마을 단위의 조직을 통해 여기에 집착하지만, 그것들이 정치적으로 효과적이고 강력하게 통솔되는 단위는 아니었다.
소용돌이의 힘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이런 개인들에게 작용했다. 왜냐하면 가족이나 계급 또는 마을에 대한 충성의 힘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과장된 감은 있지만 우리는 이런 종류의 개인을 ‘원자(原子)’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들이 중심세력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유대관계에서 멀리 물러서 있지 않기 때문에 부르면 상승기류에서 알기 때문이다. (헨더슨, 2000:307∼8)

헨더슨의 “소용돌이” 정치이론은 그의 한국역사를 통한 한국사회 인식에 근거한다. 이러한 그의 한국사회 인식은 인과관계를 형성하는 몇 개의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백운선,1988:219∼25). 대중사회, 고도의 동질성, 중앙집권화의 전통, 중간집단의 취약, 소용돌이가 그 개념들이다.

헨더슨이 정의하는 대중사회란 콘 하우저의 개념을 빌린 것으로 “원자화한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주로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통해 연관을 맺고 있으며 그래서 대중과 엘리트는 그들 중간의 매개체 없는 상황에서 직접 접촉하는 고립된 사회체계”를 의미한다(한배호, 1984:85). 고도의 동질성homogeneity과 중앙집권화 되어 있는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군주와 백성간에 형성된 제도나 자발적 중간집단이 결여된 대중사회라는 것이다. 종교적·정책적·이데올로기적 대립이나 이해관계의 대립을 반영하는 중간집단이 발전하지 못하였고, 전통적으로 봉건 영주나 장원(莊園), 준독자적인 상인집단, 전문가 집단 등이 형성·발달하지 못한 채 동질화되어 있고, 중간매개체가 없는 중앙집권화된 사회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대중사회로서의 한국사회는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특징을 가지는데, 원자화된 단위의 개인들이 상승운동updraft을 통하여 정상으로 치솟고 소용돌이를 통하여 중앙과 상부로 빨아올려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참조)

그러나 지역적 차이나 교육의 확대가 이러한 “소용돌이” 현상을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권력분산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중앙의 비대화로 지방권력이나 지방의 특성은 무시되었으며, 교육은 권력을 향한 大路의 기능을 함으로써 “교육이 중앙권력을 지향하는 경쟁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증대시켰다”(헨더슨, 2000:345)는 것이다.

소용돌이 이론의 비판적 한계

헨더슨의 “소용돌이” 이론에 대하여는 대략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할 수 있다.
첫째, “소용돌이” 모델이 가진 모델 자체의 문제점이다. 서구사회를 분석 모델로 한 콘 하우저의 대중사회 개념을 그대로 유교문화의 전통을 가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이다(한배호, 1984:59). 또한 헨더슨이 제시하는 “소용돌이”라는 개념은 비유analogy는 될 수 있어도 모델model은 아니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헨더슨은 “소용돌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한국 정치현상에 적용하여 그 동태적 유사성을 묘사하고 있을 따름이지, 모델을 제시하여 다른 사회나 문화에 “소용돌이”가 이질동형화isomorphism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한배호, 1984:9). 이는 아마도 헨더슨의 개인적 경험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헨더슨이 한국정치를 목격한 것이 학자로서가 아니라 직업외교관으로서 현장에서 한국정치를 직접 경험한 것이고 그렇게 경험한 한국정치의 소용돌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유로서의 “소용돌이”가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중앙으로의 “소용돌이”적 특성을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소용돌이” 모델이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론화가 서툴렀다고 하더라도 한국정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앙권력으로 휘몰아치는 정치의 소용돌이를 적절하게 표현하였다는 의미에서 그 “소용돌이” 모델의 의의는 지대하다. 그리고 한국정치를 설명하는 또 다른 모델인 권위주의 모델로 채울 수 없는, 한국정치에서 나타나는 중앙으로의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헨더슨의 “소용돌이” 모델은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문제제기로 헨더슨의 설명과 달리 “소용돌이” 현상이 지배계층에는 존재하였으나 일반 대중도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비판이다. 또한 지방세력이나 지방분권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서양인의 눈으로 이해한 것이며, 서원 등을 근거로 한 강력한 토착 양반세력을 지방권력으로 이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한배호, 1984:59). 일견 타당하기도 하나 일반 대중에게 “소용돌이” 현상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것인지, 또는 정도의 문제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방세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강력한 지방의 양반세력이 지방의 관심에 머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중앙의 정치였다면 지방세력을 순수하게 지방세력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고 이 역시 “소용돌이”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셋째, 헨더슨이 “소용돌이” 정치에서의 정치발전political development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분권화decentralization, 다양화pluralization가 가능한 해결책이며 그것만이 해결책인가는 의문이다. 한국사회 내부의 동질성, 중앙집권화 경향을 문제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이를 치유하는 처방책으로 다양성의 확보나 분권화를 주장하는 것은 서양의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에 입각하여 한국사회를 서양화westernization 시키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양 주장하는 근대화론자들의 발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확보나 분권화는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culture 속에 자리잡고 역사 속에 스며들어야 하는데 이는 기존의 한국 문화를 전혀 다른 문화로 바꾸라는 것을 의미하여 단기간에는 거의 불가능한 처방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한국정치가 “소용돌이” 속에서 획일화되고 권위주의로 흐르는 것을 견제하는 우리의 전통문화 문화인 “평의회council”의 전통을 회복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평의회”의 전통은 자문기능과 감사기능을 확보함으로써 한국정치가 권위주의화 되어 가는 것을 부분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헨더슨의 재벌에 대한 평가와 이해이다. 헨더슨은 재벌들의 발전이 한국 사회에 풍요를 가져왔고 이러한 풍요를 바탕으로 중산층이 크게 일어나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사회에 다원주의가 제도화되는 가능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다원주의가 발전하게 되는 원인을 재벌에서 찾고 “이런 성취가 제도화를 이루게 된 것은 재벌에서 가능해졌으며, 제도화되는 것이 한국으로선 극히 중요했다”고 하면서 “결국 재벌의 영향력은 정치에서 감지될 것이며, 그리고 정부의 시녀가 아니라 다원주의를 반영하는 다른 방법들에서 감지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다(헨더슨, 2000:302). 이렇게 헨더슨은 재벌을 서구에서의 부르주아나 기업가의 발달쯤으로 인식하면서 정치권력이나 정부에 대치되는 견제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한 것이다.

문제는 헨더슨은 재벌의 성장과 발전이 정경유착이라는 정치인-기업인을 축으로 한 “부패의 공생구조”로 가능했고, 그 구조 내에서 재벌체제가 유지되어 오고 있다는 측면을 간과하였다는 점이다. 즉 헨더슨은 근대화의 주역으로 재벌을 강조하고 “정부의 시녀가 아니라 다원주의를 반영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지만, 이제까지의 한국 경제성장의 추진과정에서 보듯이 정부와 기업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되 그 관계는 일본보다 위계적hierarchical이며, 하향적top-down이었고 아직까지 정부를 견제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재벌은 권위주의 정치문화에 기초한 한국정치의 보스 중심의 과두제적 권력구조와 유착하여 社主 資本主義owner capitalism로 특징지어지는 가산제적 기업권력구조를 유지시켜 왔다.

이렇게 재벌은 정치권력과 별개의 독자적인 사회세력이 아니라 재벌의 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치권력에 기생하던가 정치권력과 공생하는 집단이어 왔다. 따라서 재벌이 한국사회를 다원화시켰다기보다는 정치의 소용돌이를 강화시키고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치엘리트와 경제엘리트의 (정경)유착으로 한국사회 총체적 부패구조의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하겠다. 아울러 소용돌이의 정치문화는 경제에서도 나타나 재벌로 향한 경제력 집중으로, 아울러 총수를 중심으로 한 회사 내 권력의 집중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헨더슨 책의 의의는 “소용돌이” 모델뿐만 아니라 그의 해박한 한국 정치사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다. 한국사회에서 일단 파벌간에 적의가 조성되면 타협이 불가능해진 이유를 파벌간의 다툼이 쟁점issue이 아니라 권력power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나, 이러한 한국사회의 파벌이 일본인이나 만주인들의 침략과 같은 국가적 위기 때마저도 결속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지적(헨더슨, 2000:398)에는 그 날카로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한국사회 중앙집권화와 소용돌이에 대한 폐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정치권력과 경제활동을 분리하고, 지역적으로 분권화해야 하며, 현재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많은 행정권한을 지방정부에 단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양해야 하며, 이양되는 권한에는 예산과 경찰권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아직도 우리의 지방자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점을 일찍부터 주장하였다는 의미에서 그의 선견지명에 그저 놀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번역·출간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는 저자가 1968년에 출간한 출간본과 그 이후 틈틈이 증보판을 위하여 준비해온 1987년에서 1988년 6월경까지의 원고들이 모두 한 권의 책으로 합쳐져 나왔다는 점에서 헨더슨의 마지막 유작에 속하며 완결본에 해당한다는 것을 덧붙인다. 아울러 방대한 합본의 저술을 평이하게 읽기 쉽게 번역하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명들, 관직명들을 영문과 일어번역을 일일이 대조하여 정확한 용어로 번역해낸 번역자들의 노고가 헨더슨의 한국정치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값진 것이었다는 것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 김인영 / 한림대 정치외교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