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출신 난민들의 대규모 제주 유입이 두 달째를 맞으면서 일각에서 무슬림 혐오를 바탕으로 예멘 난민들을 추방하자는 의견이 거센 호응을 얻고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예멘 난민 신청을 계기로 올라온
난민신청 허가를 폐지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올라온 지 5일만인 18일 오후 4시 현재 22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 17일에는 ‘제주도 난민 수용 거부’를 촉구하는 비슷한 내용의 또 다른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가 ‘허위 사실과 명예 훼손’을 이유로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겨레21>에 “허위 사실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 등을 삭제할 수 있다는 운영 규정에 따라 청원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삭제 사실을 두고도 청와대 등을 향한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4년차 맞은 예멘 내전과 제주도 입국 과정 우선 예멘 난민들은 어쩌다 제주도로 입국하게 됐을까. 2015년, 예멘에서는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 사이의 내전이 발발했다.
유엔난민기구에 의하면, 2017년 11월 기준 예멘을 떠난 난민은 28만여명이다. 지난 4월
유엔은, 4년차를 맞은 예멘 내전을 올해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예멘 현지의 실질적으로 유일한 의료기관이라는 국제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4월 “2년 동안 무수히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지만 환자 수가 줄지 않는다”고 현지 상황을 전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예멘을 떠난 난민 가운데 일부는 먼저 말레이시아로 가서 체류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에 비자없는 ‘무사증 입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체류 기간 연장이 가로막히자, 다시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떠밀려왔다. 지난 6월1일 외교부가 예멘을 무비자 입국 가능국에서 제외하기 전까지 예멘 국적자들은 제주도에 무비자로 30일까지 머물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해 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와 제주 간 저가 직항 노선이 생긴 것도 이들의 제주도 입국을 도왔다. 이 때문에 올들어 예멘인 561명이 제주도에 입국했고, 이 가운데 51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추방 청원에서 드러나는 무슬림에 대한 혐오 하지만 이 사실이 서서히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 공개되면서, 무슬림 혐오를 담은 난민 추방 여론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우선 무슬림에 대한 혐오성 반감에 더해 이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빼앗으러 온 ’가짜 난민’이라는 비난이 대부분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테러하는 사람들을 받아줘선 안 된다”는 글과 난민 유입이 현 정부의 인권주의 정책 탓이라며 “이슬람이 들어와 여러분의 아들을 죽이고 딸과 며느리를 강간할 것”이라는 글이 돌고 있다. 전형적인 무슬림 혐오다.
게다가 기독교 모임을 중심으로 “이슬람이 퍼지지 않도록 절대 육지에 발 못 붙이게 해야 한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예멘 사람들은 난민이 아니라 극우 이슬람일뿐”이라며 난민 자격과 종교를 연결짓는 의견들도 나왔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반대 청원 글을 삭제한 관리자를 해고하라”,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삭제한 청와대 관계자는 무슬림이냐”라는 내용을 담은 글들도 등장했다. “(북미, 유럽 국가들과 달리) 대한민국은 난민 문제에 책임이 없다”는 내용도 올라와 있다. 제주도 누리집 도민소통공간 자유게시판 등에도 “이슬람은 살인을 밥먹듯 하는 집단”이라며 무슬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의견이 등장했다.
난민 신청자들이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사이의 젊은 남성이라는 점을 들어 “같은 문화권도 아닌 한국에 굳이 온 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며 이들이 이른바 ‘가짜 난민’이라고 규정하는 글들도 있다. 특히 난민 신청자들은 체류 시작 뒤 최초 6개월 동안 일할 수 없는 기존 규정과 다르게, 예멘 출신인들에게만 특별취업허가를 내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예멘난민 특별취업허가, 일손 부족한 현장서 채용 문의 정부가 이들에게 특별취업허가를 내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이들의 인원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구호물품 부족은 물론이고 서류 접수에만도 한참 걸리는 탓에 심사 과정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제주 지역 일간지 <
제민일보>에 “현재 일손이 부족한 현장에서 이들을 채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문의가 들어온다”며 “도내 인력부족 업종에 취업을 특별히 허가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당장 연명할 식료품이 모자란 상황에서 일부 기관과 개인의 후원만으로는 이들이 낯선 땅에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취업 허가가 난 일자리들은 제주도 내 일손 부족한 양식장, 어선, 어업, 농업 분야다. 아울러 예멘 난민 대부분이 청년인 것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대거 빠져나간 청년들이 한 번에 입국했기 때문이다. 현재 제주 체류 난민들은 ‘징집을 피해 가족 중 먼저 빠져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
▶관련기사: "제주 온 예멘 난민 560명…‘수용이냐 거부냐’ 물음표를 던지다")
“정부가 침묵하면서 난민에 대한 오해를 부추긴다”예멘 출신 난민들을 돕고 있는 인권 단체들은 법무부가 이들을 두고 ’가짜 난민’이라고 왜곡된 사실을 퍼뜨리거나 ’테러리스트’ 무슬림 혐오 표현을 쏟아내는 여론과 언론 보도 등에 대응하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이런 오해가 확산하고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일 낸 위원장 성명에서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 없이 방치하고 있다”며 “사람답게 살기 위한 희망으로 본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예멘 난민 신청자의 절박한 처지에 대한 공감과 수용은 선택이 아닌 국제 사회와의 약속”이라며 정부에 신속한 심사와 심사기간 동안의 주거 지원 등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제주지역 인권단체 연석회의,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 등은 지난 9일 낸 공동성명에서 “객관적 정황 검토와 근본적 대안 제시 없이 현 시점에서 예멘 국적에 대한 무사증 허가를 제외시킨 법무부의 행보는 세계인권선언과 난민협약의 가치를 명백히 위반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난민인권센터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난민제도 운영” 정부 규탄성명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불법난민, 가짜난민 등 언론의 혐오 발언 규제” 등이 성명의 주된 요구사항이다.
시민들 중에도 예멘 난민들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예멘 난민들이 한국전쟁 후 가난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국적만 다른 광부와 간호사라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청원인은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우리의 황폐한 모습이나 2017년 예멘의 상황을 쓴 기사가 별반 다를 게 없다”며 “난민은 또 다른 우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청와대 청원이 20만명을 넘긴 것을 두고 “타인의 고통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이렇게 많다니 충격적이다”, “너무 슬픈 뉴스”라며 난민 추방을 비판하는 의견들도 보였다.
제주 내 시민단체들과 도민들도 여전히 이들을 돕고 있다. ‘제주의 예멘 난민들(Yemen Refugees in Jeju)’
페이스북 그룹에는 시민들이 이들 위해 제공하는 구호 물품 지급처와 무상 의료서비스 시간 등의 정보가 꾸준히 올라온다. 취업자들에게 한국인 고용주들에게 보여주는 데 활용하라며 “저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쓴 이미지 파일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들에게 구호 물품을 전달하던 제주 지역 활동가들은 문화 차이가 있는 이들이 취업한 곳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도 시작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예멘인들의 메시지도 있다. 이들을 돕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내용과 제주 체류 중인 예멘인들에게 조언을 하는 내용 등이다. 한국 내 부정적인 여론을 알고 있는 한 예멘인은 “다른 문화권에 있는 만큼 취업한 이들은 기회를 소중하게 알고 공중도덕과 법을 지켜달라”는 의견도 올렸다. 현지의 한 예멘인은 <코리아 익스포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잘해준 한국인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엔난민기구는 18일 입장을 내고 “유엔난민기구는 예멘인은 물론, 한국에 도착하는 모든 난민 및 난민신청자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조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울러 지금 현재, 폭력, 질서의 부재, 대규모 실향, 기근 등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예멘으로 그 어떤 예멘인도 강제송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의 단호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