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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는 독도에서 북동쪽으로 339㎞,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북서쪽으로 300㎞ 떨어진 대화퇴(大和堆·야마토타이)라고 불리는 최대의 어장이 있다. 동해의 평균 수심이 1400m 정도지만 대화퇴는 평균 수심이 300~500m밖에 되지 않는다. 넓이는 106만㎢로 강원도 정도의 크기다. 얕은 바다에 퇴적물이 쌓여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플랑크톤이 많다. 또 한류와 난류가 만나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 우리나라에선 대화퇴에서 잡은 오징어 어획량이 전체의 60%를 넘은 적도 있었다. 대화(大和)는 1924년 이곳을 발견한 일본해군 측량선 ‘야마토(大和)’호의 이름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퇴(堆)는 대륙붕에서 주위보다 얕은 지형을 말한다. 대화퇴 중앙부는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깊이 2000m에 이르는 계곡으로 분할돼 있다. 일본에 가까운 쪽을 '대화퇴', 반대쪽은 '북대화퇴'라고 부른다. 대화퇴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되지만, 북대화퇴는 한·일 양국의 중간수역으로 양국 어선이 모두 조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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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퇴에 대거 출몰하는 북한 어선들
일본 해상보안청(해양경찰) 순시선들이 최근 들어 대화퇴의 자국 EEZ를 경비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북한 어선들이 대거 일본의 EEZ를 침범해 불법조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르면 각국이 연안으로부터 200해리(370㎞)까지 바다를 EEZ로 지정하고 그 수역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한다. 때문에 특정국가 어선이 타국의 EEZ를 항행할 수는 있지만 조업할 수는 없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지난 5월 말부터 최근까지 대화퇴의 일본 EEZ에서 불법적으로 조업하고 있는 북한 어선이 모두 5000여척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수산청은 지난해 자국의 EEZ 내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외국 선박 5191척에 대해 퇴거를 경고했는데 대부분 북한 어선들이었다. 북한 어선들은 대부분 오징어잡이에 나선 배들이다. 북한 어선들의 불법조업 때문에 일본 어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오징어잡이 배들의 올해 어획량이 불법조업을 하는 북한 어선들로 인해 지난해의 30% 수준을 밑돌고 있다. 게다가 북한 어선들이 일본 어선들에 돌을 던지는 등 조업을 방해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일본 어민들은 자국 정부에 북한 어선들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경고와 물대포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나포와 선박 몰수 등 더욱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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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표류 좌초 북한 어선 105척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화퇴등 동해에서 조업하다가 표류하거나 좌초돼 일본 해안에서 발견되는 북한 어선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이런 북한 어선들을 ‘유령선’이라고 부른다. 특히 북한 어선에 탄 어민들이 숨진 채 발견되는 사례도 많다. 실제로 표류하거나 좌초된 북한 어선들이 일본 해안에서 거의 매일 발견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24일 오전 9시30분께 야마가타현 시라키 해안에 북한 어선이 난파된채 파도에 떠밀려 올라와 있는 것을 주민들이 해상보안청에 신고했다. 이 목조 어선은 길이 13m, 폭 3m 크기로, 뱃머리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주변에서 배를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같은 날 오후 1시30분께 야마가타현 쓰루오카 항구에도 목조 어선의 일부로 보이는 나무 조각들이 밀려오기도 했다. 아오모리현 사이무라 앞바다에서도 11월 2일 전복된 상태로 발견된 북한 목조 어선에서 남성 4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들은 이미 백골화가 진행돼 신원을 알 수가 없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금까지 동해안에서 표류하거나 좌초해 해안에서 발견된 북한 어선들의 숫자는 105척에 달한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어선이 발견된 숫자를 보면 2014년 65척, 2015년 15척, 2016년 66척, 2017년 104척이었다. 서너 명에서 열 명이 탈 수 있는 나무로 된 북한 어선들이 발견되는 곳은 아키타, 아오모리, 이시카와, 니가타, 야마가타현 등 동해를 면하고 있는 일본의 서쪽 해안 지역들이다.
일본 언론들은 북한 어선들이 대부분 길이 10m 정도의 작고 낡은 목선인데 다, 연료가 부족하거나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거나 파도에 밀려 좌초된다고 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북한 어선들이 대부분 먼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거나 3m 이상의 파도에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배에 탄 어민들은 식량과 물이 부족해 사망한다고 한다.
북한 어선들이 일본 해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겨울철에 중국 대륙에서 부는 북서풍의 영향 때문이다. 청진이나 함흥, 원산 등에서 출항한 북한 어선들은 물고기를 잡다 사고가 나면 바람과 해류에 떠밀려 일본 해안 지역으로 밀려간다. 청진은 동해 대화퇴 어장을 사이에 두고 일본 중서부 지역과는 직선거리로 900㎞ 정도 떨어져 있다. 북한 주요 항구에서 대화퇴 어장까지의 거리는 480~500㎞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북한의 낡은 어선들이 대화퇴 어장에 진출해 고기를 잡다가 조난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어선에서 발견되는 시신의 경우 적게는 2~3구에서 많게는 8구가 발견된 적도 있다. 시신들은 대부분 남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패하거나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때문에 사망한 지 한두 달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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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잡으러 ‘죽음의 바다’로
북한 어선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동해와 대화퇴 인근 등에서 조업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북한에서 오징어잡이가 큰돈이 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어민들이 아닌 일반 주민들까지 조업에 나서고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끼리 너도 나도 모터 하나를 단 목조 어선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면서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오징어잡이에 나선 이유는 중국과 밀수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민 출신의 한 탈북자는 “북한 주민들이 오징어잡이에 나서고 있는 것은 대부분 외화벌이 때문”이라면서 “오징어잡이를 몇 번 잘하면 1년 먹을 식량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낙지’라고 불리는 오징어가 중국으로 팔리는 값은 t당 1만2500위안이다. 이 오징어들이 중국산으로 원산지가 바뀌면 t당 4만위안이 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산 오징어들 중 일부는 북한에서 밀수로 넘어간 것이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오징어잡이에 나선 북한 주민들은 한 번 항해할 때마다 한국 돈으로 20만~30만원, 미국 달러화로 200달러 안팎의 고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바다에 뛰어든다”고 밝혔다. 북한 어선들은 그동안 연안에 있는 가까운 바다에서 조업해왔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2016년 7월 1500여척이 조업할 수 있는 연안 어업권을 연간 3000만달러를 받고 중국에 넘긴 이후 북한 어선들은 먼바다에서 조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 어선들이 일본의 EEZ를 침범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 정권이 어업을 주요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어획량을 증대하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매년 신년사에서 “수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인민생활 향상에서 더 큰 전진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 12월 1일 ‘조선인민군 5월 27일 수산사업소’ ‘8월 25일 수산사업소’ ‘1월 8일 수산사업소’ 등 동해안의 군부대 산하 수산사업소 세 곳을 시찰했다. 김정은은 “동해지구에서 짧은 기간에 6만여t의 물고기를 잡았다는 보고를 받고 너무 기뻐 어로공(어민)들을 만나 고무해주기 위하여 찾아왔다”면서 “물고기 산을 쌓아놓은 것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서 발견된 북한 어민 주검 최소 60여구
일본에서 발견된 북한 어민으로 보이는 주검은 올해 최소 60여구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북한 어선에서 발견된 시신들을 화장 처리해 사찰의 무연고 묘에 안치하고 있다. 북한 정권도 잇따른 자국 주민들의 사망을 인정하길 원하지 않아 일본 정부에 문의를 해온 적이 없다고 한다. 생존 어민들의 경우, 일본 정부는 본인의 의사를 확인한 후 임시상륙 허가를 내준 뒤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다. 일본 적십자사는 12월 1일 북한 어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29구를 송환하기 위해 북한 적십자사의 대리 격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난파된 북한 어선들은 소각 처리되고 있다. 이 경우 한 척당 처리비용이 60만엔에서 160만엔 정도가 든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처리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최근 들어 숫자까지 급증하면서 예산 지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해양쓰레기 처리비용으로 1억2307만엔의 보조금을 지원해주었다.
일본에선 북한 어선과 어민들에 대해 경계와 불안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들은 북한 공작원 잠입이나 생화학 테러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자민당의 아오야마 시게하루 의원은 “북한이 무기화한 천연두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며 “침입자(생존한 북한 어민)가 천연두 바이러스를 일본에 들여올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하마구치 가즈히사 다쿠쇼쿠대학 특임교수는 “북한 공작원이 어선을 가장해 일본에 불법 상륙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또 예산을 증액해 어업 단속선을 추가로 건조하는 등 북한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어민들은 대부분 ‘죽음의 바다’로 내몰리는 북한 어민들을 동정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도 북한 어선들을 1940년대 쇼와(昭和)시대에나 볼 수 있는 골동품 같은 배라면서 이런 어선들로 겨울철 험한 바다로 조업에 나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무튼 앞으로도 동해에선 북한의 유령선들이 계속 떠돌아다닐 것이 분명하다. 표류하거나 난파된 북한 선박과 어민들이 일본 해안으로 밀려올 것도 확실하다. 정권 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있는 김정은은 호위호식하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허술한 목선을 타고 차가운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