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南北關係

외화로 돌아가는 뇌물공화국 북한

이강기 2018. 12. 10. 09:42


장원재의 북한요지경

외화로 돌아가는 뇌물공화국 북한

장마당에서는 달러로 거래하고 위안화로 거슬러줘

글 : 장원재  배나TV 대표 

월간조선 2018.12월호                              


⊙ 직장 상사에게 뇌물 주고 출근 처리 후 개인 장사…, 미군 유해발굴 시작되면서 (미군)군번표가 인기상품 등장
⊙ 평양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4000원(암시장 환율로 50센트)… 한 끼에 1인당 100달러가 넘는 호텔 만찬 성업
⊙ 북한돈 ‘국돈’은 천덕꾸러기 신세… 당 간부들도 외화로만 뇌물 받
무산의 골목길에 들어선 장마당. 장마당에서는 ‘협정가격’이라고 하는 시장가격을 바탕으로 외화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사진=조선DB
  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
  당원은 당당하게 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먹고
  군대는 군데군데 먹고
  검사는 검소하게 먹는다.
 

  북한 전역에 널리 퍼진 말이다. 거의 국민가요 수준이라고 한다. 정말 모든 사람이 다 아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배나무 배나TV에 출연하는 탈북자분들께 ‘안전원은 안전하게…’라며 말을 건네는 실험을 했다. 돌아오는 반응이 거의 일정했다. 바로 후렴구가 따라나왔다. 그리고 ‘이 말을 도대체 어떻게 아시느냐?’라고 깜짝 놀랐다.
 
  북한은 뇌물공화국이다. 걸린 것을 봐달라거나, 기타 개인의 민원을 뇌물로 무마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뇌물로 작동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뇌물을 뇌물이라 하지 않고 ‘사업비’라고 한다.
 
 
  뇌물의 경제학
 
  예를 들어 보자. A라는 공장이 있다. 중앙에서 원자재를 대주지 않으니 생산은 불가능하다. 아예 공장을 돌릴 수 없는 지경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책임 할당 생산량은 채워야 한다. 그래야 처벌을 받지 않는다. 위에서는 ‘자력갱생’의 정신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무슨 수를 쓰든 너희들끼리 알아서 만들어 내라’는 강요다.
 
  직원 B는 공장장에게 뇌물을 고인다. ‘이 돈을 받고 출근한 것으로 해 달라’는 뜻이다. 조금 더 뇌물을 고이면 공장 명의의 출장서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다른 지방을 오갈 수 있다. 거주이전은 물론이고, 여행의 자유조차 없는 북한에서 합법적 여행증명서는 상당한 이권이다. 마음 편하게 넓은 지역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단속에 걸려 뒷돈을 찔러 주느니 차라리 이 편이 싸게 먹힐지도 모른다.
 
  B가 하는 일은 개인 장사일 수도 있고 되거리(도매)일 수도 있다. 국내 소도매, 유통 등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과의 밀무역에 나서기도 한다. 취급 물품도 약초·버섯·잣 등 덜 위험한 것부터 금·파철·구리·마약·골동품·한국 드라마 CD·USB·스마트칩 등, 걸리면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까지 다양하다. 때로는 해외동포들의 의뢰를 받아 그들의 친인척을 중국까지 안내한다. 북한으로 돌아오는 민간 이산가족 상봉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취급 품목은 시류를 타기도 한다. 미군 유해발굴이 시작된 뒤에는 (미군)군번표가 고가(高價)에 거래되는 상품이 되었다. 이런 개인 활동을 통해 B는 가족의 생활비와 다음달에 공장장에게 고일 뇌물, 그리고 장사하는 도중에 사방에 틈틈이 찔러 주어야 하는 사업비를 마련한다.
 
  공장장 C는 직원들에게 받은 뇌물을 4등분한다. 하나는 개인 수입이다. 두 번째는 상급기관에 올려 보내는 상납금이다.
 
  세 번째는 정치일꾼들에게 바치는 돈이다. 북한의 모든 기관은 2중 명령체계다. 고유한 업무계통 지휘체계와 사상을 담당하는 정치적 지휘체계가 공존한다. 공장이라면 생산을 담당하는 라인과 직원들의 사상을 관리감독하는 라인이 있고, 군(軍)이라면 전투를 담당하는 라인과 군인들의 사상을 담당하는 라인이 공존하는 식이다. 당연히 정치 쪽 파워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특정인에 대한 비판적인 보고서를 위에다 올리면,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숙청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김씨 일가에 얼마나 충성하느냐가 출세의 기준이다. 개인의 충성도를 평가하고 위에다 보고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인이 담당하는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말하자면, 정치라인이 출세와 처벌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모든 기관에는 그래서 실무와 정치 양대 라인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고급인력들인 전문가들의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C가 유능한 공장장으로 평가받으려면,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직원들이 고인 뇌물을 모아 장마당으로 가서 ‘생산품’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렇게 마련한 생산품을 ‘납품’하면, 서류상으로는 모든 직원이 출근해서 책임할당량을 차질 없이 생산한 것이 된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외화로 돌아가는 경제’
 
북한의 고급 음식점 옥류관. 돈 이외에 ‘배급표’도 있어야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뇌물은 뇌물을 고이고도 그 이상의 이익 실현이 가능할 때 작동한다. 어느 경제학자는 “국민소득이 1000달러인 나라의 소비 수준이 3000달러라면, 2000달러 규모의 지하경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북한의 공식환율은 2018년 현재 1달러당 북한 돈으로 약 108원이다. 암달러 시장에서는 8000원이다.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에 무려 80배나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비집고 뇌물이 작동한다. 배나무 배나TV 김주성 이사에 의하면 평양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4000원이다. 암시장 환율로 50센트다. 그런데도 한 잔에 몇 달러나 받는 커피숍이 평양에 여러 군데 성업 중이고 한 끼에 1인당 100달러가 넘는 호텔 만찬도 자리가 찬다. 고객 중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북한인 손님도 상당수라고 한다. 이 알다가도 모를 상황의 배경이 바로 ‘외화로 고이는 뇌물’과 ‘외화로 돌아가는 경제’다.
 
  북한 당국이 북한 돈의 가치를 강제해도 주민들은 ‘국돈’을 믿지 못한다. 북한 돈은 엉터리 화폐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외화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이미 자국 화폐 대신 달러를 화폐로 쓰는 달러라이제이션(dollorization)을 시행 중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 보자. 북한의 쌀값은 상황에 따라 1kg에 3700~4500원을 오간다. 배급이 끊긴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니, 월급만 가지고는 먹고살래야 살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론상으로는 먹고살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정가격으로 생필품을 조달하면 된다.
 
  문제는 국정가격 배급표를 타기도 어렵고, 뇌물을 고이고 배급표를 받아도 상점에 물건이 없다는 점이다. 배급표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증서다. 북한에서는 돈이 있다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돈으로 물건을 사더라도, 당국으로부터 ‘구입을 허락받아야’ 즉 배급표를 얻어야 비로소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옥류관 냉면을 사 먹을 수 없다. ‘옥류관 식권’, 다시 말해 ‘옥류관에서 냉면 사 먹는 것을 당국이 허락하는 증서’ 없이는 아예 옥류관 출입을 할 수가 없다. 이 식권을 위조하여 유통했다가 걸린 사람이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예외는 외화다. 달러나 엔화, 중국 위안화는 프리패스다.
 
 
  장마당에서는 외화로 거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건설 노동자들.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북한의 주된 외화수입원이다.
  배급표는 또 다른 이권이다. 시세의 20분의 1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물건이 없다면 배급표는 휴지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가물에 콩 나듯 국정 상점에 물건이 들어와도, 미리 뇌물을 고인 경로를 통해 물건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을 터이다.
 
  북한 당국도 외화의 위력을 안다. 과거에는 ‘외화와 바꾼 돈표’가 있었다. 재일동포 귀국자나 러시아 벌목공, 중동 노무자 가족들이 외화를 만지는 사람들이었다. ‘외화와 바꾼 돈표’는 ‘외화와 바꾼 돈표’ 전문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또 다른 화폐였다. 그곳에는 국정상점에서 볼 수 없는 제품들, 예컨대 가전제품이나 고급 의류가 늘 진열되어 있었다고 한다. 북한 스스로가 자국 화폐를 2부리그 화폐라고 인정했던 셈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의 거의 모든 체계가 무너지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은 더 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장마당에서는 배급표 없이 자유롭게 물건을 직거래한다. 그리고 거래는 믿을 수 있는 화폐로 한다. 지금은 북한 전역의 장마당에서 달러, 엔화, 위안화로 물건을 사고 판다. 달러로 셈을 치르면 장사하는 할머니가 암산으로 환율계산을 마치고 위안화로 잔돈을 거슬러 주는 식이다. 위안화 소액권이 잔돈 거스름돈 용도로 북한에서 인기라는 기사도 있었다. 이런 풍경은 더 이상 신기한 일도 아니다.
 
 
  ‘노동당 최대의 敵’ 장마당
 
  장사하는 사람들이 매기는 물건 값을 북한에서는 ‘협정가격’이라고 부른다. 협정의 주체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다. 당국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지정하는 ‘국정가격’은 이미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격이다. 정치권력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가 매기는 ‘협정가격’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협정의 주체에 당국은 없다. 이 점이 중요하다. 장마당을 통해 권력 밖에서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힘이 생겼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권력자들은 언제나 거의 하나의 예외도 없이, 그것이 어떤 종류의 힘이든, 내부에서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난 힘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다. 노동당 최대의 적(敵)은 그래서 장마당이다.
 
  북한의 ‘국돈’은 장마당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당비(黨費) 납부’ 말고는 국돈을 받는 곳이 없다.
 
  ‘국돈’을 믿지 못하는 건 일반 주민만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들도 다들 뇌물이나 부수입으로 연명하는데, 핵심계층인 그들조차 현물이나 외화로만 뇌물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위아래를 막론하고, 모든 주민이 북한 돈을 엉터리라고 생각한다는 증거다.
 
  북한 주민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노동당이 아니라 장마당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그래서 노동당이 장마당을 물리칠 가능성은 거의 없을 터이다. 장마당이 누구를 더 신뢰하는지는 이미 판가름 났다. 장마당이 어느 방향으로 진화하며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향후 변화의 속도와 크기가 어떨는지 궁금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