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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인류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교류와 소통을 해왔다. 3만 년 전부터 백두산 흑요석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팔려 나갔다. 사마르칸트에서 유행했던 문물이 몇 달 뒤에 통일신라의 경주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몽골제국 때는 중국의 화약과 모슬렘의 화염방사기를 결합한 뒤 유럽의 종 주조 기술을 응용하자 혁명적인 발명품인 대포가 탄생했고, 권총에서 미사일에 이르는 방대한 현대무기의 발전이 여기에서 시작됐다. 21세기 우리의 의식주, 사상, 법과 제도, 첨단기술 등 모든 삶의 방식은 수만 년간 인류가 유라시아 전역에서 소통하고 무역하면서 쌓아온 집단지성의 결과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기려는 장사꾼들의 오래된 욕망은 제국 건설, 종교 전파,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경제, 금융의 세계화로 거센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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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왔던 필자는 한국인의 국수주의, 패배주의, 사대주의적 세계관을 수없이 지켜봤고 필자에게도 이런 왜곡된 세계관과 철학이 아직도 남아 있다. 왜곡된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삼성, SK, LG,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과 일부 중소기업들은 농업적 근면성을 자산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일구었지만 서비스 기업 중에는 한류 등의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는 세계 수준의 상품이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장사꾼의 관점에서 당당하고 보편적인 세계관을 가져야 제대로 된 세계경영전략과 인생전략이 나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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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지금 이 세상은 과거 10년 동안 벌어졌던 변화가 1년 동안 이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IoT, 5G, 양자컴퓨팅, 바이오, 자율주행차가 앞으로 세상을 더 숨 가쁘게 바꿀 것이다. 구시대의 갇힌 세계관 프레임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따라잡지 못한다. 21세기는 농업적 세계관보다 유목적 세계관이 더 잘 어울리는 시대다. 우리는 농업정주문명이 만들어 놓은 전통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나 아리아족,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통합을 해냈던 유목민의 열린 사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스키타이는 기원전 7세기에 이미 헝가리에서 몽골초원을 연결했다. 당나라 때 시안에서 로마까지 낙타 타고 말 타고 비단을 실어 나르는 데 2~3년이 걸렸지만 몽골제국 때는 헝가리까지 일주일 만에 말로 주파하더니, 요즘은 몇 시간이면 로마까지 날아가고 몇 초 안에 뉴욕의 뉴스를 바로 읽을 수 있다. 몽골인들은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끝에서 끝까지 연결해 르네상스, 대항해 시대에 앞서 근대 세계 체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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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7세기부터 헝가리에서 몽골초원까지 유라시아 초원을 연결했다. 소그드 상인들은 1000년 동안 이집트에서 한반도까지 유라시아의 구석구석을 연결했다. 아랍상인들은 그 후 1000년간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했다.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의 장사꾼들은 세계를 지배해왔다. 장사꾼과 유목민들은 눈앞의 이익을 좇으면서 수천 년간 유라시아 전역에서 이루어진 문명의 교류를 이루어냈다. 따라서 인류 역사는 영웅들의 역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3만 년 넘게 이어온 인류 무역사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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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에서 성을 쌓고 안주한다면 회사도 개인도 쇠락하고 도태할 것이다.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21세기에는 농경정주민의 역사보다 유목민, 실크로드 상인의 역사가 우리에게 더 큰 교훈을 줄 수 있다.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부단하게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살아갈 수 있었던 유목민처럼, 실크로드 상인들처럼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적으로 메트로폴리탄에 50%가 넘게 몰려 살며 도시인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은 유목민과 실크로드 상인들의 삶과 역사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농업화와 산업화는 인류가 자연을 바꾸고 지배하려던 역사였고, 이제 지구의 자연은 무분별하게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류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치달아왔다. 물론 수렵 채집인들과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기술은 21세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연을 자기에 맞추어 바꾸기보다는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온 그들의 삶의 철학과 지혜는 21세기에 더욱 유효하다. 역사에서 잊힌 유목민, 수렵채집인, 실크로드 상인들의 삶의 방식은 현대의 도시인들보다 훨씬 유연성과 적응력이 뛰어나다. 21세기 급변하는 경제·문화·사회적 환경에서 현대 도시인들이 100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유목민들이 급변하는 환경과 기후에서 적응하며 살아남았던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 20세기까지는 10년마다 강산이 변하고 세대가 바뀐다고 했는데 21세기는 3년 터울도 세대 차이가 나는 시대로 바뀌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군대 갔다 온 복학생들을 ‘암모나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농업적 가치관, 산업화 시대 프레임에 갇혀 어렸을 때 배우고 익힌 가치관과 지식으로 살아가려는 ‘아재’들은 세상에서 빠르게 도태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화, 글로벌화, 문화와 기술의 포용과 합종연횡 등의 특징은 상인의 정신, 유목문화와 궤를 같이한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유목민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경제·문화적 환경에 평생토록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장사꾼과 같이 유연하게 학습하며 자기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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