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괜찮은가[동아광장/김석호]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0-05-25
개인 기본권 위협 법안 연이어 통과
비판은 ‘친일’로 몰고 진영논리 일색
진보 가치 잃어버린 진보정부, 유감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작년 여름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여권의 민주주의 운용 방식에서는 철학의 빈곤을 본다. 반대 목소리를 친일(親日)로 묶어 정당성을 박탈하고 토론과 설득을 망각하고, 정작 자신들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실업과 고용, 재분배와 사회정의, 복지 정책의 후퇴에 앞장서는 모습에 절망한다(2019년 8월 19일자 ‘2019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괜찮은가’).’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코로나19, 총선,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매일 입이 떡 벌어지는 일들이 있었지만 진보 여권에 대한 나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을 복기해 보면 드라마가 따로 없다. 서구 선진국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우리의 케이방역을 배우려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이 성과는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고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해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가 고조되던 시점에 진보 여권이 주도해 통과시킨 ‘코로나 3법’의 기본권 경시는 짚어봐야 한다. 질병관리본부가 수집한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모든 구청에서 공유하고 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공익을 위한 조치였다고는 하나 민주주의 사회의 인권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태원에 다녀온 확진자의 성별, 직업, 성적(性的) 취향이 감염병 확산 저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너무나 쉽게 과도한 정보가 합법적으로 유출되고 있으며 당장은 코로나19 통제에 효과적이나, 결국 자유 축소나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게 될 것이다.
20대 국회가 밀린 숙제로 포장해 통과시킨 ‘데이터 3법’도 유감이다. 핵심은 개인의 동의 없이 가명 처리된 정보를 활용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기업은 가명 정보를 과학적 연구를 위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가명 정보가 다른 정보와의 결합을 통해 식별될 수 있는 위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백화점, 은행, 지하철에서 일상적으로 만들어내는 정보가 동의 없이 기업의 손에 쉽게 도달한다는 점이다. 충분한 논의를 통해 데이터 3법의 효과는 분명한지, 부작용은 무엇이며 최소화 방안은 없는지 논의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리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 천명했다. 스마트뉴딜이다. 그런데 여기엔 개인 정보인권과 프라이버시 희생이 초래할 위험과 이에 대한 대비가 빠져 있다. 기본권 희생으로 산출된 이익을 다시 공동체에 돌려줄 것인가에 대한 공익적 고려도 없다. 이 법으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기업의 이윤만 확실하게 남는다. 이렇게 기본권 보장에 무감한 진보 정권을 들어본 적이 없다.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다르다. 그래서 1987년의 ‘민주화’와 2020년의 ‘민주주의’는 달라야 한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다고 그것만으로 민주주의라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절차와 분배,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감소, 기본 인권 수준의 향상, 시민성의 촉진과 적극적 정치 참여 등 제 조건들의 충족을 요구한다. 우리의 현재는 어떤가? 민주화 성취 역사를 자산으로 가진 세력이 스스로 민주주의로 착각하며 모두를 기만하는 것은 아닌가? 윤미향 당선인의 미심쩍은 행태에 대한 정당한 지적조차 친일 수구세력의 음모로 몬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은 조그만 회계 실수라며 정의연의 구체적 해명이 나오기도 전에 사안을 축소하고,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는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조차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며 비판적이다. 확실히 1987년의 민주화는 2020년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진영 논리만 남은 정당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참 어렵다.
청와대와 여권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바람직한 대비지만 그래도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집권 세력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문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던 것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산재로 계속 사망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노인 빈곤율도 꾸준히 높아진다. 청년들은 여전히 결혼을 꿈도 못 꾸며, 여성은 체계적인 차별에 노출돼 있다. 코로나19로 악화한 문제들이 아니다. 원래 심각했다. 이미 형해화(形骸化)되어 좀비에 다를 바 없게 된 집단을 보수정당이라고 묶어두고 진보의 정체성과 진영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진보의 이름표를 달고 정작 진보의 가치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는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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