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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사라진다 해도…

이강기 2021. 3. 26. 08:03

한국이 사라진다 해도…

 

 

서영아 기자

동아일보

2021-03-26 

 

“저출산은 청년세대의 저항”
인구대책 관심 없는 하루살이 정치

 

지난주 “20년 내 일본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제하에 쓴 인터넷 기사 조회수가 하루 만에 200만 뷰를 넘겼다. 2014년 5월 ‘지방 소멸’을 경고하며 일본 사회에 충격을 던진 ‘마스다 보고서’로 시작해 일본의 늙어가는 아파트 단지 얘기를 다룬 ‘100세 카페’ 기사였는데, 이런 문제에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나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흔히 ‘일본은 한국의 미래’라는 말이 있지만,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고령화나 인구 감소 등의 수치에서 한국은 일본의 20년 뒤를 쫓아가지만 저출산만큼은 일본을 앞질렀다.

마스다 보고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베 신조 총리는 그해 9월 개각에서 ‘지방창생(蒼生)’ 장관직을 신설하고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을 그 자리에 앉혔다. 아베는 인구 문제를 ‘국난(國難)’이라고 표현했다. 본래 ‘군사 오타쿠’라 불리던 이시바도 확 바뀌어 “일본 안보의 최대 위협은 북한 미사일보다 저출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후로도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며 지방의 젊은 세대 유치를 독려했다. 2012년부터 총리 자리를 놓고 경합했던 두 사람은 내내 으르렁대는 정적(政敵)이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인구 대책은 아베 정권 내내 다양한 방식과 구호로 등장하곤 했다. ‘1억 총활약사회’를 내걸고 희망출산율 1.8을 제시했다. 젊은이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하겠다며 정부가 기업에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가 하면 ‘일하는 방식 개혁’을 주창했다. ‘보수의 원류’인 아베의 입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니 ‘장시간 노동규제’ 등 노조위원장 뺨치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종국에는 실질적으로 이민을 허용하는 정책마저 도입했다.

 

사실 인구 구조는 아무리 애써도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는다. 가령 오늘부터 세상이 확 변해 출산율 2.0이 회복된다고 해도 출생아 수는 하향 곡선을 이어간다. 가임 여성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2005년 사상 최저인 1.26을 찍은 일본의 출산율은 2012년부터 1.4 이상을 유지했다. 2019년 출산율이 다시 1.36으로 내려앉고 출생아 수 90만 명 선이 사상 처음 무너지자 일본인들은 ‘86만 쇼크’라 부르며 “국가 존속의 위기”라고 탄식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저출산에 대해 ‘아이 낳을 환경이 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청년 세대의 저항’이라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청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외치는 한국에도 미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7년 30만 명대로 떨어진 출생아 수는 3년 만인 지난해 2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인구 감소 원년(元年)이 됐다는 소식이 연초에 나왔지만 언론에서나 약간 거론됐을 뿐이다. 이어 정부는 지난해 합계출산율 0.84라는 수치를 발표하며 ‘코로나 탓’을 했다. 대통령은 비상 국무회의조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2018년 이래 출산율이 제로대로 떨어져 바닥을 기고 있지만 정권 차원에서 책임감을 갖고 걱정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저출산 예산으로 지난해에만 45조 원을 투입했다는데, 각 부처가 편한 대로 쪼개 쓴 돈이 어디로 갔는지 표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방 소멸’을 피부로 느끼는 지자체들이 온갖 지원금제도를 강화하는 등 각자도생의 노력을 눈물겹게 벌일 따름이다.

‘지방 소멸’ 다음은 ‘국가 소멸’이다. 5년짜리 단임 정권인 탓일까. 권력의 시선은 선거에만 쏠리고 한국이 사라진다는데도 도무지 관심이 없다. 나라의 미래에 관심이 없는 정치는 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기자·국장급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