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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불교사찰의 ‘마리아 관음상’

이강기 2021. 4. 3. 10:40

[동아광장/박상준]日 불교사찰의 ‘마리아 관음상’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

2021-04-03 03:

 

도쿠가와 막부의 기독교 탄압 피하려
산으로 도피한 ‘가쿠레 기리시단’ 유적
고된 삶 속에서 신앙 지킨 이들 생각하며
종교의 관용과 자기희생 정신 실천해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일본 니가타현 첩첩산중에는 나트륨 온천이 있는 마을이 있다. 산악 지역에 있는 온천은 대개가 유황 온천이고, 피부에 좋다는 나트륨 온천은 대부분 바닷가에 있다. 그렇다 보니 첩첩산중에 있는 나트륨 온천이라 지역민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루는 그 동네 온천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한 사찰을 지나쳤는데, 사찰에 마리아상이 있었다. 나는 그 기이한 풍경에 놀라 일본인 이웃들과 모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웃으며 ‘가쿠레 기리시단(숨은 크리스천)’의 유적이라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막부는 기독교를 극심하게 탄압했는데, 그때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은 기독교인들이 그 지역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들을 가쿠레 기리시단이라 부른다.

16세기 중반 예수회 선교사에 의해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는 놀라운 속도로 그 세를 불려 나갔다.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염두에 두고 선교사를 후대했던 지방 영주 중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이들이 나오고, 일본인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교가 세워졌다. 전국시대의 패권을 차지한 오다 노부나가나 그의 뒤를 이어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선교사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1587년 도요토미가 금교령을 내리면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도요토미가 태도를 바꾼 이유로는 기독교도의 세력화와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경계심이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도요토미는 선교를 금했을 뿐 신앙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고 도쿠가와 막부 역시 초기에는 이 기조를 유지했지만, 17세기부터 유례가 없을 정도의 모진 박해가 시작되었다.

모든 일본인은 사찰에 신도로 등록해야 했고 사찰등록증은 신분증의 역할을 했다. 일부 기독교도들은 사찰에 아기 예수를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한 관음상을 세우고, 관음상에 절하면서 마리아와 예수를 경배했다. 승려 중에는 그들이 가쿠레 기리시단이란 것을 짐작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불가의 자비심으로 감추어 주었기에 일본 각지에 마리아 관음이 남을 수 있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온천 관광지인 규슈의 유후인에 갔을 때도 우연히 가쿠레 기리시단의 유적을 본 적이 있다. 야산 일부에 네모반듯한 돌들이 수십 개 널려 있었는데, 지방 사학자들이 세운 작은 팻말이 아니었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돌마다 한쪽 귀퉁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가쿠레 기리시단의 공동묘지였다. 죽은 가족을 위해 비석 하나 세울 수 없는 그렇게 고되고 두려운 삶을 살면서까지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이 안쓰럽고 딱했다.

개봉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침묵’은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인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인 동료와 잡담하던 중에 그 영화 얘기가 나왔는데, 종교학 전공 교수로부터 놀라운 말을 들었다. 19세기에 일본이 개항을 하자 가쿠레 기리시단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막부도 크게 놀랐다고 한다. 250년, 일곱 세대에 걸쳐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이들이었다.

 

내일이 부활절이라는 말을 듣고 마리아 관음이 생각났다. 가쿠레 기리시단의 일화는 기독교가 많은 시대, 많은 장소에서 소외된 자들의 종교이자 약자의 종교였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식민지 피지배자의 종교, 약자와 빈자의 종교가 황제와 부자의 종교가 되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약자를 탄압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198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미션’은 스페인·포르투갈 지배자들의 야욕에 맞서 식민지 피지배자인 인디언 부족을 지키려다 희생당한 선교사들의 얘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을 버렸지만, 지금은 그들을 신앙의 영웅으로 기린다. 2000년 역사를 관통해 교회를 지킨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소수자와 약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교회보다는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교회의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가쿠레 기리시단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듯이,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부활한 예수의 관용과 자기희생의 정신을 실천하는 제자들이 있을 것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