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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의 특징 … 중국과 한국

이강기 2022. 11. 30. 16:00

예술사의 특징 중국과 한국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대학지성,  2022.11.27 

[조동일 칼럼]
 

중국은 미술의 나라이다. 미술의 나라임을 과장해 보여주면서, 웅대하고 화려한 조형물을 자랑한다. 웅대해야 위엄이 있고, 화려해야 우러러본다고 여긴다. 

 

가장 큰 조형물인 만리장성은, 지나친 희생을 강요해 축조하고 외침을 막겠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어리석음 덩어리다. 차등의 사고가 극대화되면 어떤 폐해를 빚어내는지 알려주기나 하고, 공감을 느낄 만한 미술품은 아니다. 후대에 만든, 만리장성 서쪽 끝의 가욕관(嘉峪關)의 성루는 아름다움이 빼어나 감탄할 만하다. 그 바깥에 사는 이민족들에게 중국은 참으로 큰 나라이니 넘보지 말라고 하는 경고에 예술의 기교를 이용했다.   

 

북송 때 수도의 번영을 그린 그림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5.25m 길이의 대작이다. 사람들이 오가고 물자가 이동하면서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가, 생활이 넉넉하고 많은 구경거리가 넘치는 모습을 우아하고 세련된 필치로 그렸다. 국가의 권력이나 종교의 위력보다 예사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더 큰 의의를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그린 내용 못지않게  수법이 중국의 자랑이라고 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은 미술관을 엄청나게 크게 짓는다. 그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상해의 중화예술궁(中華藝術宮)이다. 상상을 초월한 크기이다. 전시품은 중국 현대미술이다. 너무 많아 무엇을 보았는지 집어내 말할 수 없다. 전시장의 크기에 맞춘 거대한 작품, 먹을 쏟아 부어 마구 휘갈긴 수법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유화도 화폭이 거대하고 색채가 강렬하다. 다 둘러보면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진다.

 

중국이 미술의 나라라면, 한국은 음악의 나라이다. 음악을 비롯한 공연예술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어 남녀노소가 여러 날 동안 노래하고 춤춘다. 길을 가면서 낮이나 밤이나, 늙은이나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노래를 불러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중국의 옛 기록에 올린 이런 놀라움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음악에서 특별한 재능을 보이면서 갖가지 공연예술에서 다채로운 신명풀이를 한다. 

 

공자(孔子)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은 아주 숭고하고 장엄하다.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정상을 장식하는 유산이다. 동아시아문명의 제반 규범을 완성한 중국 북송에서 한국의 고려로 가져왔다. 원형을 보존하면서 계속 재현하고자 했으나, 세월이 많이 흘러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선왕조 세종 때에 재정비해 문헌에 기록하고, 실기를 정확하게 하는 규범을 제정하고 실현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침해를 막고 그대로 전승하면서, 지금도 해마다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것을 중국에서 배워갔다. 한국의 성균관장이 중국에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5.4운동 이후에 폐지한 문묘제례악을 가까스로 되살려 다시 연주하니 제대로 하는지 보아주기 바란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가서 보니 엉망이었다. 곡조도, 동작도, 차림도 말이 아니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이 청나라 군복을 입는 것이 특히 가관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니 낭패를 보였다. 위로를 하면서 해결책을 일러주고 왔다고 한다. “염려하지 말고 한국에서 배워 가면 된다. 대만서도 배워 갔다.” 

 

옛 사람들이 악(樂)이라고 한 것은 음악만이 아니고, 음악이 중심을 이루는 종합적 공연물이었다. 악은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으로 구분되었다. 아(雅)와 속(俗)은 공연문화의 양면성을 말해주는, 서로 대조가 되는 미적 범주이다. 아(雅)는 흥(興), 속(俗)은 신명을 특징으로 한다. 이 둘이 상하층의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면서 생극의 관계를 가졌다.  

 

아악에는 위에서 든 문묘제례악 외에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나 궁중회례악(宮中會禮樂)도 있었는데, 모두 장중하고 우아하다. 아악은 국가 기관에서 엄격하게 관장하고 특별하게 훈련된 전문인이 담당했다. 민간에서 자유롭게 전승하고 창작하는 속악은, 활달하게 생동한다. 전승과 창작의 주체는 민간연예인만이 아니고 무당도 있다. 농어민이 생업을 위해 하는 노래나 춤, 놀이도 포함한다. 그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들을 든다.

 

시나위는 민간연예인들의 발랄한 창조력을 잘 보여주는 기악 합주이다. 참가자 모두 자기 나름대로 하는 연주가 생극의 관계를 가져 큰 울림이 된다. 별신굿은 무당이 주도하지만, 참가자는 모든 사람이다. 누구나 모여들어 거대한 대동놀음을 한다. 풍물은 농민의 기악 연주이다. 사방 돌아다니면서 덕담을 하고 생동하는 신명풀이를 해서 마을이 온통 새로운 기운을 지니게 한다. 꼭두각시놀음은 민간연예인의 인형극이고, 탈춤은 농민의 가면극이다. 

 

중국에는 아악에 해당하는 것은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특성을 잃었다. 다양한 형태의 속악 가운데 민간연예인이 상당한 전문적 기량을 가지고 공연하는 연극 경극(京劇)이 큰 인기를 누린다. 중국의 경극과 한국의 탈춤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경극은 오래 연마한 전문적인 기량을 놀라운 수준으로 자랑한다. 관중을 당황하게 하고 혼을 빼서, 판단력을 잃고 연극 진행에 몰입하게 한다.  

 

탈춤은 마을 사람들 가운데 누가 나서서 진행하는 대동놀이이다. 누구나 연극 진행에 당사자로 참여해 신명풀이를 공유하고 확대한다. 영감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허름한 할미가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허위를 뒤집고 진실을 밝혀, 잘난 사람이 따로 없음을 확인하는 대등의 연극이다. 

 

탈춤은 극장도 없고 대본도 없어 낙후된 연극 같다. 온 세계 연극의 세 가지 기본원리 ‘카타르시스’ㆍ‘라사’ㆍ‘신명풀이’ 가운데 ‘신명풀이’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카타르시스’ 연극은 고대그리스에서, ‘라사’ 연극은 중세인도에서 이룩하고, ‘신명풀이’ 연극의 온전한 모습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한국에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신명풀이’ 연극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인류 공유의 유산이다. 다른 곳들에서는 식자층이나 상인이 개입해 순수성이 훼손되고, ‘카타르시스’ 연극이나 ‘라사’ 연극이 훌륭하다고 여기고 따르다가 잡탕이 되었다. 경극도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카타르시스’나 ‘라사’는 차등의 원리고, ‘신명풀이’는 대등의 원리이다. 차등의 시대를 청산하고 대등의 시대가 오도록 하는 것이 이제부터 힘써 해야 할 일이다. 가장 후진인 것 같은 한국의 탈춤이 선진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중국의 공연물은 차등예술이고자 한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면서 누구나 놀라게 하려고 한다. 한국인은 마음속의 신명을 서로 만나 풀어내는 대등예술을 모두 함께 이룩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