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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유사시 대만 반도체산업 초토화할까

이강기 2022. 12. 11. 19:26
 

미, 유사시 대만 반도체산업 초토화할까

'중국 대만 침공시 TSMC 파괴' 주장 잇따라 … '대만 방어 어렵다는 암묵적 인정' 분석

내일신문, 2022-12-09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대만 반도체 공장들을 못쓰게 만들거나 파괴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주장이 이어져 주목을 끌고 있다.


미 군사전문지 '아미 테크놀로지'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리처드닉슨재단이 주최한 '그랜드 스트래티지 서밋'(Grand Strategy Summit)에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2019~2021년)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중국의 대만 침공시, 미국이 대만의 반도체 공장들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랜드 스트래티지 서밋은 미 행정부 고위공직자들은 물론 외교 경제 국방 언론 전문가들이 모여 미국의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자리다.

                                 대만 TSMC 본사 1층에 전시된 이 기업 로고.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오브라이언 전 보좌관은 "중국이 대만을 차지하고 반도체 시설을 그대로 흡수한다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시장을 독점하는 것 이상의 영향력을 반도체시장에서 행사할 수 있다. 미국이 이를 허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오브라이언은 "대만은 반도체 제조사 TSMC는 물론 전반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갖고 있다. 대만은 우리가 사용하는 최신형 컴퓨터 반도체의 95%를 생산한다. 미국 군사장비뿐 아니라 자동차와 스마트폰에도 대만산 반도체가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오브라이언의 발언은 2021년 11월 미육군 전쟁대학이 펴낸 보고서에 기반한 것이다. '둥지 파괴: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Broken Nest: Deterring China from Invading Taiwan)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는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대만 TSMC를 파괴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초토화전략(scorched-earth strategy)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의 반도체 지배 허용 못해"

미 군사전문가 저레드 맥킨리와 피터 해리스가 공동 저술한 이 보고서는 지난해 미육군 전쟁대학이 발간한 논문 중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TSMC 생산시설을 파괴한다면 중국의 침공의지는 꺾이게 될 것"이라며 "그같은 경제적 피해는 중국공산당의 합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미국이나 대만은 반도체 시설들에 자동 파괴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다"며 "대만정부는 반도체 시설을 중국 손아귀에 쥐어주는 일만은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표명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대만 반도체산업의 인적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피신처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맥킨리와 해리스는 "만약 TSMC 공장들이 중국 침공시 파괴된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사업활동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중국 하이테크 산업도 가동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결국 이 문제는 중국공산당 관점에서 보면 여러 악재가 뒤섞인 칵테일 위기로 번질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합법성은 국내적 평온, 국가적 회복탄력성,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 보도도 궤를 같이한다. 블룸버그는 10월 7일 바이든정부 고위관계자를 익명으로 인용해 "중국의 대만 침공시 미국은 대만의 반도체 전문인력들을 우선 대피시킬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대만 국방부장 치우궈청은 즉각 부인했다. 대만매체 포커스 타이완에 따르면 치우 부장은 "올해 미-대만 연례 합동군사훈련 워게임에 반도체 전문인력 탈출 시나리오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대만해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자체방어와 억지정책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국가안전국 국장 천민퉁도 10월 12일 외교·국가방위위원회 모임에서 "현재 방어계획에 TSMC 공장의 파괴 또는 공학자들의 탈출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부인한 뒤 "미국이 TSMC 반도체 공장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주요 부품 공급망을 단절하는 것으로도 TSMC 생산을 멈출 수 있다. 중국이 TSMC라는 황금닭을 장악한다고 해도, 그 닭이 황금달걀을 낳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략 변화 이유는?

이에 대해 아시아타임스는 8일 "대만과 미국 국방부는 그동안 '호저전략'(porcupine strategy)을 공유했다"며 미국의 전략 변화를 주목했다.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은 동물로, 미국이 대만에 많은 무기를 판매하고 지원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최대한 큰 피해를 준다는 전략이다.

아시아타임스는 "호저전략은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예상케 하면서 중국 침공을 지연시키는 것인 반면, 초토화전략은 대만의 전략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파괴해 중국이 군사적 무력으로 양안을 통일하려는 것을 단념시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발빠른 국방현대화, 재래전 억지능력에서 미국의 쇠퇴 등의 요소가 미국이 초토화전략을 고려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부가 공개한 '2022중국파워보고서'는 "대만해협 충돌시 미국의 개입에 반격하며 전쟁을 수행하는 중국의 능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미기업연구소(AEI) 소속 안보전문 연구원인 매켄지 이글렌은 지난달 미 군사전문지 '1945'(19fortyfive)에서 "요식적 체계와 시급성의 부족, 방산부문에 대한 미흡한 투자 등으로 미국의 재래전 억지력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래전 전투능력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점차 커지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대만이 자체 방어를 위해 확고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대만의 전략은 비대칭적 호저전략에서 중국과의 정면대결까지 이리저리 흔들린다"며 "대만은 잠수함과 구축함, 전투기 등 고사양 고비용의 군사물자에 여전히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같은 상황은 관성적 사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미국과 대만은 열등한 군사력의 중국을 언제든 격퇴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중국 국방현대화가 성과를 내면서 그같은 생각은 과거지사가 됐다. 미해군 전쟁대학 교수 윌리엄 머레이는 "중국이 축적한 다량의 미사일은 대만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압도한다"며 "대만 해군과 육군을 무력화하고, 침공 수분 만에 공군 대부분을 파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도 대만의 호저전략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미 안보전문가 필립 오처드는 지난해 9월 국제관계 전문매체인 '지오폴리티컬 퓨처스' 기고에서 "중국의 'A2·AD'(반접근·접근거부) 능력이 지속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개입은 점차 많은 비용이 들고 위험하게 됐다.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만의 국방현대화 계획은 방치되다시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이 미국의 안보확약을 믿을 수 있다면 호저전략은 타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대만은 자체 대응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만이 대응능력을 개발하는 데 예산을 지출하려면, 다른 능력에서의 효과를 저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타임스는 "미국의 재래전 억지력 쇠퇴, 중국의 국방현대화, 전략적 모호성의 위험 등이 어우러지면서 초토화전략이 거론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은 군사적 수단으로 대만을 방어할 수 없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초토화전략 실패 가능성 커

설령 미국이 초토화전략을 꺼내들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국민당 전 주석 훙슈주는 2020년 11월 중국 관영지 환구시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대만이 초토화전략의 대상으로 결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초토화전략을 옹호하는 매파들을 향해 "생전에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미국의 지원을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인명손실의 상황에서 자기 이해관계를 취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대만 국민뿐 아니라 지도자들 역시 자국의 반도체산업이 파괴되길 원치 않는다. 대만에게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충족할 수 있는 강력한 협상도구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초토화전략을 쓴다고 해도 중국이 대만과의 무력통일 추진을 멈추겠냐는 것. 중국 국무원 산하 대만사무판공실은 2021년 12월 "중국이 양안을 통일하려는 건 TSMC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중국의 침공을 막기 위해 초토화전략을 쓰는 건 근시안적"이라고 지적했다.

미 웨스턴켄터키대 정치학 교수인 티모시 리치도 2021년 12월 '더 뉴스렌즈' 기고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만의 경제적 자해는 중국의 진전을 단기적으로 지연시킬 것"이라며 "하지만 중국의 침공을 대비하는 대만의 능력은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다. 대만은 드론과 미사일, 레이더 등 정교한 무기들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된다"고 썼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