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적 비극 속 ‘나다움’ ‘자유’ 외친 명랑소녀 ‘안네’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WOMAN DONGA, 2023.01.16 10:00:01
‘안네의 일기’는 홀로코스트의 폭력을 보여주는 대표 저서다. 일기장에 써 내려간 안네의 고백에는 인류사적 비극뿐 아니라 “나는 나로 존재하고 싶다”고 외쳤던 명랑한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안네 프랑크의 11살 모습.
세라, 하이디, 앤….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느껴진 외국 이름이 있었다. 세라는 소공녀이고, 하이디는 알프스 소녀이고, 앤은 빨강 머리 소녀였다. 부모님이 사다 주신 동화책 또는 소설에서 만난 이 주인공 소녀들은 모두 순수하고 꿈이 많았다.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내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 이 이야기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이 소녀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꿈보다는 대학입시가 먼저였다. 아니 꿈을 이루기 위해선 현실의 입시 공부에 열중해야 했다. 대학에 들어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동화와 소설 속 소녀들에게 부여된 고정된 성 역할과 꾸며진 이미지에 불편함을 느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그러면서 이 소녀들 이름이 기억의 저장고에서 희미해졌고, 결국 사라졌다.
네덜란드 소녀 안네도 그 시절 만났던 꿈 많고 순수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세라, 하이디, 앤이 허구의 인물들이라면 안네는 실존의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각각의 소녀들 앞에 놓인 삶의 역경이 서로 달랐다. 빨강 머리 앤이 마주한 고난이 고아 출신이라는 개인적 사연이었다면 안네가 마주한 역경은 참혹한 전쟁과 광기의 파시즘이라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 책 속에서 만났던 외국 소녀들 가운데 유독 안네를 다시 기억해내야 하는 이유는 지금도 무척 마음 시리게 하는 그 당시를 강렬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안네의 일기는 여기서 끝난다.”
1944년 8월 1일 금요일 일기가 끝난 다음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다. 불쑥 나타난 짧고 담담한 이 말에 정신을 얻어맞았다. 페이지 아래 넓은 빈자리를 봤으면서도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책에 두툼한 작품 해설이 붙은 탓이다. 일기가 끝난 후 일어난 일들을 우리는 물론 알고 있다.
1944년 8월 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건물에 나치 친위대 간부와 네덜란드 경찰이 들이닥쳤다. 안네 프랑크의 아빠 오토 프랑크가 마련해놓은 은신처였다. 프랑크 가족 4명과 판 단 가족 3명, 뒤셀이라는 이름의 독신 남자가 잡혀갔다. 이 8명의 유대인은 박해를 피해 2년 넘게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 조금만 늦게 발각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덜란드를 점령했던 독일은 1년 후 연합군에 항복했다.
나치에게 끌려간 8명의 유대인 중 7명은 사망했다. 안네와 언니 마르고는 수용소 베스테르부르크와 아우슈비츠를 거쳐 베르겐-벨젠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자매는 1945년 3월경, 티푸스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는 1945년 7월 적십자사로부터 딸 마르고와 안네가 베르겐-벨젠에서 사망했다는 최종 연락을 받았다. 은신처 조력자 중 한 사람인 미프 기스는 오토에게 안네가 쓴 일기를 전해줬다. ‘안네의 일기’는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33년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일명 나치당은 다수당이 되었다. 프랑크 가족은 독일에 살던 유대인이었다. 아빠 오토는 제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전해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독일 국적을 가졌지만 나치가 인종주의를 내세우면서 독일을 떠나야 했다. 가족 모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1929년생 안네는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여겼고, ‘안네의 일기’ 역시 네덜란드어로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0년 네덜란드는 독일에 항복했고 이 땅에서도 유대인 탄압이 시작됐다.
널리 알려졌듯,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독일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 박해와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이른바 ‘홀로코스트’다. 나치 정권은 독일과 점령지에서 유대인들의 권리를 박탈했고, 강제로 수용소에 감금했다. ‘최종 해결책’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적인 살해도 자행했다. 그 기간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다. 결코 망각할 수 없는, 망각돼서는 안 될 범죄다.
1942년 7월 6일, 언니 마르고를 수용소로 추방하라는 소환장이 떨어지자 프랑크 가족은 은신처로 향했다. 오토가 자신의 회사 건물 뒤편에 마련한 거처였다. 그 시절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한 후 생긴 유대인 처치법은 그들의 자유를 날마다 축소시키고 있었다. 이제 그 자유는 건물 뒤편의 숨은 공간으로 쪼그라들었다.
“세상이 몇 번이나 뒤집힌 듯한 기분이야. 그러나 키티, 너도 알다시피 난 지금 살아 있어. 그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아빠도 말했지. 그래, 이미 말한 대로 나는 살아 있는데, 어디서 어떤 상태로 살아 있는 걸까?”
안네는 그날의 기억을 일기장에 이렇게 옮긴다. 안네는 1942년 6월 12일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평범한 열세 살 소녀의 고민이 담겼다. 유급을 결정하는 회의를 앞둔 날의 불안과 술렁이는 반 분위기, 수업 시간에 너무 떠든다고 계속 작문 숙제를 내주시는 선생님, 세상에 태어나서 그만큼 좋아해본 적이 없다는 남자 친구. 일기 전체에서 아주 짧은 분량일 수밖에 없는 평범한 날들이, 열세 살 짜리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친구와 학교가 사라졌다.
은신처에 갇힌 식구들에게 이제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들키는 날엔 잡혀가 죽는다. 이웃에게 보이면 안 된다. 불빛 하나, 작은 소리도 새어나가면 안 된다. 캄캄한 한밤중 아래층 사무실에서 조그만 소리가 나도 은신처의 식구들은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사무실에 도둑이 들면 도둑을 잡는 게 아니라 도둑에게 들키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은신처의 사람들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각자의 흥미에 따라 독서를 했고 어학을 공부했다. 집안일에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가 참여했다. 외부에 들키지 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8명이나 되는 사람이 먹고 씻고 화장실을 쓰는 것만 해도 큰 문제였다. 은신처의 사람들은 세세한 생활 규칙을 만들어 가능한 한 인간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1944년 1월 15일, 안네가 은신처에 갇혀 산 지 1년 7개월이 됐다. 안네는 뒤셀이 가뜩이나 부족한 소스를 남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덜어가는 걸 보면서 그를 문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뒤셀은 오토가 은신처로 옮긴 지 4개월 후 1명 정도는 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데리고 온 독신의 치과의사였다. 안네는 뒤셀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전쟁 중이었으니 음식이나 물건도 턱없이 부족했다. 배급표가 있어야 물건이나 음식을 살 수 있었고, 누군가 은신처의 유대인들을 대신해 사다 줘야 했다. 갈등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른 가족 몰래 음식을 숨겨놓는 것과 같은 치사한 일로 서로 힘들어했다.
이런 삶의 현장을 지켜보며 안네는 인간이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적어둔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덕분에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한탄스러운 말을 남겨둔다. 어린 소녀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럼에도 안네는 점차 성장한다. 1944년 3월 7일, 안네는 항상 집에서 야단을 맞고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의지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고 지난해를 회상한다. 안네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명랑한 소녀였다. 그런 그가 함께 지내는 어른들에게 “날 좀 내버려 두라”고 호소한다. 한창 활기찬 나이의 소녀가 어른들도 힘든 은신처 생활을 하며 느꼈을 고통은 컸을 것이다. 그래도 안네는 기운을 냈다. 1944년 4월 11일, 안네는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고, 목표도 뚜렷하고, 내 나름의 의견이 있으며, 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 내가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 그것만 있으면 난 만족하니까.”
안네는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 마르고와 훨씬 잘 지냈다. 안네는 대신 아빠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네는 엄마와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객관적 시각으로 엄마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안네는 엄마보다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엄마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이 지구상의 온갖 비참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님에 감사하라”고 충고하는 스타일이다. 안네의 생각은 다르다. “밖으로 나가 들판을 걷고 자연과 태양을 느껴보라” 말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감이 다시 솟아날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네는 “세상의 모든 근심에는 최소한 1가지씩의 좋은 일이 깃들어 있다”고 적는다. 비참한 기분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네의 처방이다. ‘좋은 일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용기와 신뢰를 잃지 않는 사람은 큰 불행이 닥쳐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녀 안네는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일기가 돌연 중단된 다음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는 독자로서 이런 내용을 읽으면 무척 안타깝다. 안네가 괴로움을 털어놓을 때보다 그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낼 때 더 마음이 시리다. 안네가 기쁠수록 슬프고, 행복할수록 고통스럽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에 관한 책과 영화는 숱하게 만들어졌다.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통해 이 인류사적 비극을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 로만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를 통해 나치의 범죄와 그 속에서 살아간 인간 군상을 보여줬다.
그중에서 ‘안네의 일기’와 겹쳐 볼 수 있는 책은 신경학자이자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후 프랭클은 ‘인간은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내는 존재’라는 생각에 기반한 로고테라피(logotheraphy) 치료법을 내놓았다.
과연 한 인간이 슬픔에서 벗어나 희망을 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여자라는 것, 내면의 강인함과 무한한 용기를 지닌 여자라는 걸 나는 잘 알아!”
안네의 이 독백을 통해 “모든 걸 앗아간다고 해도 자유만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는 빼앗을 수 없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진실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어린 소녀가 고난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안네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무척 마음이 시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인간으로서 작지 않은 위로를 느끼고 살아갈 힘을 받는다. 강인함과 용기에 대한 한 소녀의 자각은 쉰을 넘긴 나에게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내게 화가 렘브란트와 소녀 안네가 살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암스테르담에 가면 안네가 숨어 살던 ‘안네 프랑크의 집’에 꼭 찾아가고 싶다. 안네가 일기를 썼던 그 다락방에 올라가 명랑하고 당당한 소녀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다.
#안네프랑크 #안네의일기 #성지연 #다시만난그녀들 #여성동아
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사진 AP뉴시스
사진제공 책세상 AnneFrankHouse
이 소녀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꿈보다는 대학입시가 먼저였다. 아니 꿈을 이루기 위해선 현실의 입시 공부에 열중해야 했다. 대학에 들어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동화와 소설 속 소녀들에게 부여된 고정된 성 역할과 꾸며진 이미지에 불편함을 느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그러면서 이 소녀들 이름이 기억의 저장고에서 희미해졌고, 결국 사라졌다.
네덜란드 소녀 안네도 그 시절 만났던 꿈 많고 순수한 이름들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세라, 하이디, 앤이 허구의 인물들이라면 안네는 실존의 인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각각의 소녀들 앞에 놓인 삶의 역경이 서로 달랐다. 빨강 머리 앤이 마주한 고난이 고아 출신이라는 개인적 사연이었다면 안네가 마주한 역경은 참혹한 전쟁과 광기의 파시즘이라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 책 속에서 만났던 외국 소녀들 가운데 유독 안네를 다시 기억해내야 하는 이유는 지금도 무척 마음 시리게 하는 그 당시를 강렬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찾아온 결말
안네의 일기 원고.
1944년 8월 1일 금요일 일기가 끝난 다음에 이런 문장이 붙어 있다. 불쑥 나타난 짧고 담담한 이 말에 정신을 얻어맞았다. 페이지 아래 넓은 빈자리를 봤으면서도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책에 두툼한 작품 해설이 붙은 탓이다. 일기가 끝난 후 일어난 일들을 우리는 물론 알고 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펴낸 ‘안네의 일기’(왼쪽).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보여준 ‘안네의 일기’는 7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나치에게 끌려간 8명의 유대인 중 7명은 사망했다. 안네와 언니 마르고는 수용소 베스테르부르크와 아우슈비츠를 거쳐 베르겐-벨젠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자매는 1945년 3월경, 티푸스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는 1945년 7월 적십자사로부터 딸 마르고와 안네가 베르겐-벨젠에서 사망했다는 최종 연락을 받았다. 은신처 조력자 중 한 사람인 미프 기스는 오토에게 안네가 쓴 일기를 전해줬다. ‘안네의 일기’는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33년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SDAP), 일명 나치당은 다수당이 되었다. 프랑크 가족은 독일에 살던 유대인이었다. 아빠 오토는 제1차 세계대전에 장교로 참전해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독일 국적을 가졌지만 나치가 인종주의를 내세우면서 독일을 떠나야 했다. 가족 모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1929년생 안네는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여겼고, ‘안네의 일기’ 역시 네덜란드어로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0년 네덜란드는 독일에 항복했고 이 땅에서도 유대인 탄압이 시작됐다.
널리 알려졌듯,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독일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 박해와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이른바 ‘홀로코스트’다. 나치 정권은 독일과 점령지에서 유대인들의 권리를 박탈했고, 강제로 수용소에 감금했다. ‘최종 해결책’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적인 살해도 자행했다. 그 기간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다. 결코 망각할 수 없는, 망각돼서는 안 될 범죄다.
1942년 7월 6일, 언니 마르고를 수용소로 추방하라는 소환장이 떨어지자 프랑크 가족은 은신처로 향했다. 오토가 자신의 회사 건물 뒤편에 마련한 거처였다. 그 시절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한 후 생긴 유대인 처치법은 그들의 자유를 날마다 축소시키고 있었다. 이제 그 자유는 건물 뒤편의 숨은 공간으로 쪼그라들었다.
“세상이 몇 번이나 뒤집힌 듯한 기분이야. 그러나 키티, 너도 알다시피 난 지금 살아 있어. 그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아빠도 말했지. 그래, 이미 말한 대로 나는 살아 있는데, 어디서 어떤 상태로 살아 있는 걸까?”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만든 은신처
안네 프랑크가 은신처 내 자신의 방에서 사용하던 책상
은신처에 갇힌 식구들에게 이제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들키는 날엔 잡혀가 죽는다. 이웃에게 보이면 안 된다. 불빛 하나, 작은 소리도 새어나가면 안 된다. 캄캄한 한밤중 아래층 사무실에서 조그만 소리가 나도 은신처의 식구들은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사무실에 도둑이 들면 도둑을 잡는 게 아니라 도둑에게 들키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은신처의 사람들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각자의 흥미에 따라 독서를 했고 어학을 공부했다. 집안일에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가 참여했다. 외부에 들키지 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8명이나 되는 사람이 먹고 씻고 화장실을 쓰는 것만 해도 큰 문제였다. 은신처의 사람들은 세세한 생활 규칙을 만들어 가능한 한 인간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1944년 1월 15일, 안네가 은신처에 갇혀 산 지 1년 7개월이 됐다. 안네는 뒤셀이 가뜩이나 부족한 소스를 남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덜어가는 걸 보면서 그를 문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뒤셀은 오토가 은신처로 옮긴 지 4개월 후 1명 정도는 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데리고 온 독신의 치과의사였다. 안네는 뒤셀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 전쟁 중이었으니 음식이나 물건도 턱없이 부족했다. 배급표가 있어야 물건이나 음식을 살 수 있었고, 누군가 은신처의 유대인들을 대신해 사다 줘야 했다. 갈등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른 가족 몰래 음식을 숨겨놓는 것과 같은 치사한 일로 서로 힘들어했다.
이런 삶의 현장을 지켜보며 안네는 인간이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적어둔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덕분에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한탄스러운 말을 남겨둔다. 어린 소녀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모든 근심에는 좋은 일이 깃들어 있다”
은신처로 통하는 비밀 통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고, 목표도 뚜렷하고, 내 나름의 의견이 있으며, 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어. 내가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 그것만 있으면 난 만족하니까.”
안네는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 마르고와 훨씬 잘 지냈다. 안네는 대신 아빠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네는 엄마와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객관적 시각으로 엄마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했다.
안네는 엄마보다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엄마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이 지구상의 온갖 비참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님에 감사하라”고 충고하는 스타일이다. 안네의 생각은 다르다. “밖으로 나가 들판을 걷고 자연과 태양을 느껴보라” 말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감이 다시 솟아날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네는 “세상의 모든 근심에는 최소한 1가지씩의 좋은 일이 깃들어 있다”고 적는다. 비참한 기분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네의 처방이다. ‘좋은 일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용기와 신뢰를 잃지 않는 사람은 큰 불행이 닥쳐도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녀 안네는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일기가 돌연 중단된 다음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는 독자로서 이런 내용을 읽으면 무척 안타깝다. 안네가 괴로움을 털어놓을 때보다 그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낼 때 더 마음이 시리다. 안네가 기쁠수록 슬프고, 행복할수록 고통스럽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에 관한 책과 영화는 숱하게 만들어졌다. 사상가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통해 이 인류사적 비극을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 로만 폴란스키는 ‘피아니스트’를 통해 나치의 범죄와 그 속에서 살아간 인간 군상을 보여줬다.
그중에서 ‘안네의 일기’와 겹쳐 볼 수 있는 책은 신경학자이자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후 프랭클은 ‘인간은 의미를 찾음으로써 고통을 이겨내는 존재’라는 생각에 기반한 로고테라피(logotheraphy) 치료법을 내놓았다.
과연 한 인간이 슬픔에서 벗어나 희망을 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내가 여자라는 것, 내면의 강인함과 무한한 용기를 지닌 여자라는 걸 나는 잘 알아!”
안네의 이 독백을 통해 “모든 걸 앗아간다고 해도 자유만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의지는 빼앗을 수 없다”는 빅터 프랭클의 말이 진실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어린 소녀가 고난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안네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무척 마음이 시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인간으로서 작지 않은 위로를 느끼고 살아갈 힘을 받는다. 강인함과 용기에 대한 한 소녀의 자각은 쉰을 넘긴 나에게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내게 화가 렘브란트와 소녀 안네가 살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언젠가 암스테르담에 가면 안네가 숨어 살던 ‘안네 프랑크의 집’에 꼭 찾아가고 싶다. 안네가 일기를 썼던 그 다락방에 올라가 명랑하고 당당한 소녀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다.
#안네프랑크 #안네의일기 #성지연 #다시만난그녀들 #여성동아
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사진 AP뉴시스
사진제공 책세상 AnneFrank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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