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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디커플링, 중국보다 미국에 더 피해"

이강기 2023. 2. 1. 12:51
 
 

"미중 디커플링, 중국보다 미국에 더 피해"

바이든정부, 첨단기술 봉쇄 강화 … 헨리 폴슨 전 재무 "미국의 대중국 정책 작동하지 않아"

 
김은광 기자
내일신문, 2023-02-01
 

2022년은 2008년과 기묘하게 닮았다. 당시 러시아는 조지아(옛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미국과 이란 북한의 갈등은 고조됐다. 글로벌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현재와 그때의 큰 차이점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다.

당시 미중 양국도 자체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행동했다. 두 나라는 정치와 이념의 차이, 안보 이해관계 충돌, 글로벌경제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중국의 통화가치 절하와 산업보조금 등)에도 불구하고 서로 협력했다. 대표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미중 양국은 위기 전염을 막고 거시경제 환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힘을 합쳤다.

오늘날 그같은 협력은 상상하기 어렵다. 금융위기 때와 달리 코로나19 팬데믹에선 미중 협력을 되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적대감이 심화됐다. 미국은 아시아·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하려 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정부는 지난해부터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가속화해왔다. 1월 30일(현지시각)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전면차단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 상무부가 화웨이와 거래 중인 일부 미국 기업에 더 이상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것.


그에 앞선 27일엔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 주도 대중국 반도체 및 장비 수출제한에 동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의 3국 국가안보 고위급 간부회의에서 일본과 네덜란드가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및 칩 제조장비 수출 제한에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디커플링 레토릭에도 의존성 커져

하지만 이같은 강경책과 달리 미중 양국의 경제적 연동은 더욱 강화되는 현실이다. 지난달 18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지난해 미중 경제교역 규모는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중국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입장은 소속당을 가릴 것 없이 강경하다. 하지만 수사학과 현실은 다르다. 미중 경제는 매우 깊이 얽혀 있다.

유라시아그룹 선임 연구원인 앨리 웨인은 "디커플링을 둘러싼 수사학은 계속 현실을 앞서간다"며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 연관성을 완전히 절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잘못됐다는 전직 장관의 분석도 나왔다. 미국 재무장관(2006~2009년)을 지낸 헨리 폴슨은 지난달 27일 포린어페어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작동하지 않는다' 기고에서 "미국의 대중 정책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을 해치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국에 더 큰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슨은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감에 동의한다. 거의 모든 파트너들이 민감한 기술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투자를 예의주시하다 때로 막고 있으며, 중국의 강압적인 경제정책과 군사적 압박을 비판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 어떤 나라도 중국과의 대결이나 봉쇄를 시도하지 않는다. 미국처럼 광범위하게 중국과 경제적으로 결별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실 많은 나라들은 미국의 강경파가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이 수년 동안 경고했지만 중국은 이미 유럽의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은 2020년 미국을 제치고 유럽연합(EU) 최대 무역국이 됐다. 2022년 EU와 중국의 수출입 규모는 더 늘었다.

2022년 11월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만난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조만간 중국을 방문해 경제협력 강화를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의 중국배제 정책은 남반구의 중저소득 국가들을 의미하는 '글로벌사우스'에서 더 안 먹힌다. 중국과 아프리카 무역은 2021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35% 급증했다. 이동통신 대기업 화웨이 등 중국기술기업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려는 미국의 집요한 노력은 유럽과 인도를 제외하곤 거의 효과를 못 내고 있다.

미국의 중국배제 정책 먹히지 않아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 국가다. 사우디 최대 무역국은 중국이다. 사우디의 국가개혁안인 '비전2030'은 알리바바와 화웨이 등 중국 기술기업에 크게 의존한다. 사우디는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컴퓨팅 등 미국이 집중견제를 하는 민감한 영역에서도 중국 기술을 선호하고 있다.

중국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동남아시아 최대 민주주의국가인 인도네시아 역시 사실상 화웨이를 사이버안보 솔루션 담당 파트너기업으로 삼았다. 인니정부 운영 시스템도 화웨이가 구축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봉쇄와 격리로 맞섰다. 이제는 경제빗장을 풀면서 전세계와 손을 잡으려 한다. 미국의 중국배제 전략에 맞서 중국은 '미국을 뺀 더 많은 나라와 함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팬데믹 발발 후 처음으로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방문해 중국의 투자와 무역, 인프라에 대한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폴슨 전 장관은 "미국은 경제적 중력을 거스르고 있다"며 "중국의 적극적인 경제 재개방 정책에 좌절할 국가는 바로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미국은 첨단 반도체 등 가장 민감한 기술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술 전반에 걸쳐 중국을 배제하려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 주도를 따르지 않고 결국 회피할 방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폴슨은 "2008년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중국은 미국의 기업·은행 주식, 모기지증권 등을 대량 보유하던 국가였다. 중국 지도부와의 전략적 경제대화를 통해 증권을 매도하지 않도록 설득해 또 다른 대공황을 피할 수 있었다"며 "또 중국은 자체적인 부양책을 통해 세계경제 회복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미중 양국의 공동이익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현재 중국은 미국 재무부 국채의 2대 보유국이다. 미 의회가 부채 한도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중국이 미국 경제정책을 이해하고 당국의 정책에 신뢰를 갖는 게 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중국 재무장관과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글로벌 및 국내 거시 경제와 금융 리스크를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중국은 2대 경제국, 최대 제조국, 최대 무역국이다. 향후 수십년 세계 금융계의 주축이 될 것"이라며 "워싱턴 정가에선 미국이 희생하더라도 중국을 처벌해야 한다는 정치적 욕망이 거세다.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한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경제적 철의 장막을 숙명론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 바이든정부는 그같은 도전에 맞서 현명하고 대담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중국 레토릭, 보기와 다를 수도

한편 반중국 레토릭 이면이 보기와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인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3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건 세계화의 역주행이나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아닐 수 있다. 과거의 익숙한 패턴의 일부가 단지 근본적으로 다른 전제 위에서 지속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의 세계경제는 적대적인 여러 그룹들이 분할하는 모습일 수 있다. 풍족한 자원을 가진 미국 등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꺼내들었다. IRA는 녹색 산업정책에 '미국우선주의' 색채를 칠한 뒤, 반중국 레토릭과 동맹국들만의 공급망 구축을 뒤섞은 것"이라며 "IRA가 유럽내 여러 국가와 한국 등에 대소동을 일으킨 건 실수나 오류가 아니라 자체적인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그같은 미래상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는 코로나백신을 둘러싼 혼란이다. 미국은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으로 한참 앞서 달아났고, 유럽은 전세계 나머지 국가들에게 백신을 수출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복잡한 거래를 중재해야 했다. 인도는 백신제조 허브로 기능했고, 중국은 자체적인 백신개발에 매진했지만 결국 뒤늦게 코로나19 대혼란을 맞았다. 그리고 전세계 인구 1/3은 아예 백신접근에서 제외됐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