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공격했던 신유물론, 인류세 위기를 말하다
- 최승우
- 교수신문, 2022.12.19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 26일 김환석 국민대 명예교수(사회학과)가 「생명정치, 자유와 연대」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31강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의 「에너지와 지구의 미래」, 제32강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과)의 「한국에서 자유의 개념과 자유주의」, 제33강은 김경일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인간 너머의 생명정치에서 ‘자유’와 ‘연대’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호 의존적 가치이자 이념들이라 볼 수 있다.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유물론이 제시하는 근본적 대안은 바로 이러한 인간 너머의 생명정치다.“
미셸 푸코(1926~1984)는 권력과 지식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개인과 사회가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권력이 특정한 유형의 지식을 생산하고, 그러한 지식은 권력을 촉진하고 강화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권력과 지식은 분리된 실체들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서구 사회는 18세기 이후 이런 권력-지식 네트워크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이에 따라 개인과 사회(또는 자유와 연대)의 구성도 역사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됐는데, 푸코의 ‘생명정치’와 ‘통치성’ 이론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후기 철학은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개인 자유’와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인간 해방’ 모두를 자신의 ‘생명정치’와 ‘통치성’ 개념을 통해 비판하고 극복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는 자율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진정한 실재에 대한 진리를 통해 해방된다는 계몽주의 관념을 거부한 포스트구조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는 인간이 권력-지식 네트워크에 의해 구성된 주체이지만, 어떻게 열린 자기 변혁 가능성으로서의 자유와 더불어 연대를 통한 저항을 추구할 수 있는가를 모색했던 것이다.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는 근대주의(그 우파 버전인 자유주의와 좌파 버전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에는 기여했지만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의 한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을 21세기에 새로이 대두한 신유물론으로부터 받았다.
신유물론이 기존의 근대주의 사상뿐 아니라 푸코의 이론이 지녔던 인간중심주의를 이렇게 비판한 이유는 지구가 ‘인류세’라는 생태 위기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바로 서구 문명의 이러한 인간중심주의 때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유물론에서는 인류세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비인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인간의 우월성을 당연하게 가정하는 서구 문명의 존재론과 윤리에 도전하고자 한다.
바로 그러한 노력의 일부로서 신유물론 학자들은 ‘생명정치’를 탈인간중심적으로 재해석을 하고 근대주의의 핵심 이념들인 ‘자유’와 ‘연대’ 역시 인류세의 맥락에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가 1970년대 후반에 처음 제기했던 생명정치 이론은 오직 인간 세계에만 적용된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것이 탈인간중심주의로 확대된 것은 21세기에 인문사회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신유물론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신유물론이 이러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2000년부터 출현한 ‘인류세’ 개념이 그 계기가 됐다.
인류세에 대한 신유물론 관점의 특징은 인류세의 생태 위기가 단지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기술적 문제(=생태근대주의의 관점)나 자본주의라는 정치경제적 문제(=생태사회주의의 관점)가 아니라, 근대 문명의 더 깊은 문화적 및 존재론적 문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신유물론의 선구자 중 하나인 제인 베넷은 2010년의 저서 『진동하는 물(物): 사물정치생태학』(Vibrant Matter: A Political Ecology of Thing)을 통해서 인류세에 대한 신유물론 해석의 근저에 깔린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을 제시했다. 이는 근대 문명의 근저에 깔린 이원론과 인간중심주의가 나타내는 위계적 존재론과는 대립되는 것이다.
유물론자들에게 인류세의 상태는 양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인류세는 일부 인간들이 자연환경에 행사하는 세계-형성적 힘의 증대를 나타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태 위기와 그에 대한 인간 반응의 결여는 인간 힘의 한계를 드러내고 지구에는 인간의 힘을 몇 배나 능가하는 많은 존재들이 거주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따라서 신유물론자에게 인류세의 생태 위기란 사회와 자연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현재의 방식에 대해 도전하고, 이러한 이분법들을 가로지르며 뒤엎는 의존성, 얽힘, 공명들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재정립하는 것은 우리가 관여해야 할 정치의 범위를 변화시키고 확대한다. 기존의 정치와 기술적 해법 또는 심지어 자본주의의 철폐는 더 이상 인류세의 생태 위기를 끝내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세계 안의 우리 자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이해, 즉 완전히 새로운 우주론이기 때문이다.
신유물론이 인류세의 맥락에서 주장하는 인간 너머의 생명정치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비인간들도 행위자로 취급하는 탈인간중심적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근대주의에서는 서로 상충되는 가치들이라고 여겨왔던 ‘자유’와 ‘연대’가 결코 상충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의 ‘자유’는 인간 너머의 ‘연대’를 위한 전제 조건이고, 또 후자는 전자가 공동세계의 형성에 기여하도록 보장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 너머의 생명정치에서 ‘자유’와 ‘연대’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호 의존적 가치이자 이념들이라 볼 수 있다. 나는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유물론이 제시하는 근본적 대안은 바로 이러한 인간 너머의 생명정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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