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

이강기 2023. 2. 10. 12:31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

  •  신유아 인천대·조선시대사
  •  대학지성, 2023.01.29 

[아카데미쿠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역사가 현실 정치로부터 자유로웠던 때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행위에 가깝고, 따라서 역사 교육 역시 정치와 무관하기 어렵다. 그러나 비록 이런 현실을 가감 없이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가르쳐질 역사는 그런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연구되고 결정될 필요가 있었고,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결정하는 주체들은 그러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22년 12월, 교육부가 발표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전근대사의 서술 비중(선사시대~1876년 개항기 이전의 역사)은 총 6개 대단원 중 2개 단원, 약 33%에 불과하다. 연구진은 본래 6개 단원 중 1개 단원(약 16%)만을 전근대사에 할애하였었는데, 교육부가 임의로 수정하여 늘린 것이 그 정도이다. 이래서는 ‘한국사’라는 과목명은 학생들에 대한 기만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과목명을 ‘한국근현대사’로 고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전근대사의 비중이 25%인 상태의 현행 교과서에서도,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이나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등 우리 역사의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 총9종 교과서 중 3~4종에만 나온다. 25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발해의 역사는 1페이지 안에서 건국되고 멸망한다. 대학 교양 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삼국의 수도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한 마디로 미래 세대의 기억에서 우리 역사가 ‘지워져’가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역사교사로 15년 이상을 재직한 필자의 생각에는, 이것이 일제가 우리에게 강제했던 민족사 말살정책과 다름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전근대사는 지금도 수능에서 선사에서 조선후기까지 5문제밖에 나오지 않고 있고, 9종에 모두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을 거의 찾을 수 없어 ‘상식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난이도 낮은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전근대사는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2022교육과정 연구진이 고등학교 ‘한국사’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을 이렇게까지 확대한 ‘핑계’는 소위 계열성 이론이다. 계열성 이론은 학교 급이 올라갈수록 더 복잡하고 심화된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론인데, 2022교육과정에 따르면 중학교에서 6단원 중 5단원에 걸쳐 전근대사를 가르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는 6단원 중 5단원을 근현대사에 할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산술적인 설명에는 대단히 큰 함정이 숨어있다. 바로 전근대사가 근현대사에 비해 시간적으로 12배 이상 길다는 사실이다. 12배나 더 긴 시간의 역사를 마치 근현대사와 동일한 시간의 역사처럼 취급하며, 중학교 때 많이 배웠으니 고등학교 때는 6분의 1의 분량에 쓸어 넣어 배우라는 것이 상식적인가? 게다가 내용상의 난이도를 놓고 보았을 때, 학생들에게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근현대사보다는 전근대사 쪽이다. 따라서 계열성의 원칙에 따른다고 해도,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근현대사를 중학교에서, 그리고 전근대사를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타당하다. 굳이 현실정치에 활용도가 높은 근현대사를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려는 이유가 혹시 고3 아이들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거나, 곧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다.

 

우리의 전근대사는 정치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 천대받아도 되는 그런 역사가 아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국민국가의 성립이 19세기로 매우 늦어 근현대 이후의 역사에 집중하여 가르칠 수밖에 없다. 또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는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역사에 대해 소략하게 다루고 폄하하여 가르치려 하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등장하기 이전의 우리 역사 전체를 인민들이 지배계급에 의해 탄압받고 착취당한 역사로 가르치고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도 아니고,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다. 우리 역사를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쳐야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일제 강점기 서술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 친일파 비판에 유리하다. 광복 직후 상황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 이승만 정부의 실정과 독재, 반민특위 해산 문제 등을 비판하기에 편리하다. 그리고 현대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 독재정권, 권위주의 정권 비판, 경제개발 정책의 문제점,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중요성과 가치, 그 과정에서 보수 정권의 비인도적인 탄압 등의 내용을 충분히 많은 ‘사례’와 ‘자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나 산업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한계와 문제점’ 또는 ‘결과 및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민주화운동과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그 ‘전개 과정’ 및 ‘앞으로의 과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모든 의도들을 역사 교과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한다면, 필자로서는 굳이 막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묻고 싶은 것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교과서의 50%로는 그렇게도 부족한가 하는 것이다. 교과서의 84%, 아니 67%를 온통 다 이 이야기만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학생들이 고조선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잘 몰라야만, 민주화의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역사 교육과정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그 양상은 ‘용어’의 문제로 시작해서 결국 전근대-근현대의 ‘비중’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이 전쟁의 승리자는 현재 교과서의 ‘근현대사’의 비중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조직’을 갖추고 있는 쪽이었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역사를 배우고 있는지 관심 없어 하는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앞으로도 승패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근현대사’의 비중이 50% 아래로 떨어질 일은 없다는 뜻이다.

 

역사는 그것을 기억해주는 후손들에 의해서 지켜질 수 있다.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가 어떤 나라였는지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그 나라의 역사가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역사가 과연 제대로 된 ‘한국사’가 맞는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신유아 인천대·조선시대사

인천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조선전기 체아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표 저서로 『프레임에 갇힌 역사, 프레임을 깨는 역사』(혜안, 2021)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