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싶은 詩 모음

故鄕 - 백석

이강기 2015. 8. 31. 10:36

故鄕

   - 백석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워서
어늬 아츰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 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ㄹ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잊었다

 

     (1938년 4월, 三千里文學 2호)

 

 

 

(이 시만 읽으면 예닐곱살 때 내 배꼽 위에 침 놓아 주시던 대산할배 얼굴이 떠오른다. 꼭 이 시에 나오는 의원을 닮으셨다. 내 얼굴에 노란 외꽃이 피고 몸이 꼬챙이처럼 마르는 게 배 속에 지비리<자벌레>가 들어 앉아 영양분을 가로채 먹기 때문이라며 그 벌레의 눈에다 침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몇년간 쑥물이랑 노고치<할미꽃>즙이랑 자라탕이랑.... 지비리병에 좋다는 온갖 것을 다 구해 먹어도 차도가 없던 병이 침 한 방에 깜쪽같이 나아 버렸다. 그것이 십이지장충<채독>이었음을 안 것은 중학교에 들어 간 이후였다. 까마득한 옛날에 돌아가신 대산할배가 갑자기 몹시 뵙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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