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싶은 詩 모음

多富院에서 - 조지훈

이강기 2015. 8. 31. 10:52

多富院에서

 

多富院에서

 

           조지훈

 

한 달 籠城 끝에 나와 보는 多富院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彼我 功防의 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多富院은 이렇게도
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自由의 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荒廢한 風景이
무엇 때문의 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姿勢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軍馬의 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곳
길 옆에 쓰러진 傀儡軍 戰士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多富院

진실로 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는 무슨 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多富院은
죽은 者도 산 者도 다 함께
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 19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