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캄캄한 골방
- 박원환
1
주여 저를 보소서
사방 얼어붙은 겨울 복판
뼈 속을 뚫는
추위처럼
죽음이 목을 조읍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고
새 집을 짓고
생명이 새로
태어나고
나를 그리워하고 애무하던 사람들 모두
달콤한 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 입고 잔칫집으로 갑니다.
2
지금 내 생명 끝나면
날마다 앉아서
웃고 떠들던 의자
꽃을
꽂으며
내일을 얘기하던
식탁에도
벽에 걸린
체취 절은 내 옷 속에도
머리카락 만한
그림자 하나 남길 수
없고
사랑하던 사람들
바람처럼 소리내어
불러볼 수도
없으며
구름처럼 내 형체 보일 수 없이
주여
세상 어디에도 내 살아왔던 자국
물걸레로 닦아낸 듯 없어지는
것입니까.
지금껏 살아온
오만하던 저는 어디 있습니까
꽃향기 맡으며
기뻐하던 저는 어디 있습니까
참으로 죽음은 죽는 자의 것으로만 알아왔으며
내 안에서
죽음이
함께
호흡하고 있었음을
주여 저는 미쳐 깨닫지 못했습니다.
3
빈터마다 욕망의 씨앗 뿌리려고
열 손가락 끝마다 피
흘리고
양심을 깎고 깎으며
행복이란 헛것을 건져 올리려
구멍난 그물 던지고 던지며
한탄과 눈물 원망으로
납골처럼
여위고 지쳐
지금까지 걸어오면서도
오- 주여
저는 내 곡식이 익기도 전에 자랑하였으며
없는 자의 눈물 당당하게
지나치면서
나는 어둡고 추운 굶주림이
상관없는 자로 살아왔습니다.
4
내 본래 당신이 지으시기 전에
지나가는 바람
한 줌 흙이었을
뿐
아집을 꽃피우고
주렁주렁 이기를 열매맺어
욕망으로 욕망으로 자라는
나무 아니었으니
날마다 힘차게 뿌리 뻗고
가지
쳐가던
충혈된
집념들이
높고 높은
나의 바벨탑만
쌓았을 뿐이니
이제는 더욱 낮고 낮은
곳에서
천사처럼
아이처럼
살아가게 하소서.
5
아무도 문 열지 않던
캄캄한 나의 골방
말없이 밝혀주신 당신
등불 빛에
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추악한 내 안과
발가벗은 죄들을 보소서
지금까지 수렁처럼 잠겼던
시험의 이불 걷어내시고
티끌만큼의
겸허라도 입혀주시어
여위어 후둘대는 믿음 일으켜 세우셔서
찬송이 눈부신 들판을 지나
어디쯤 들릴지도 모르는
당신 음성
계신
광야로 걸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