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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루자 리포트' - 미군의 눈을 통해 본 이라크 전쟁

이강기 2015. 9. 1. 23:36

'팔루자 리포트'

미군의 눈을 통해 본 이라크 전쟁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2003년 3월20일 시작된 제2차 이라크 전쟁은 20일 만인 4월9일 미 해병대가 바그다드를 점령한 후 시내 곳곳에서 미군환영인파가 쏟아져 나오고 부시대통령이 항공모함 에이브람 링컨 호에서 사실상 종전을 선언함으로써 끝난 것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니파 이라크인들의 밀집 거주지역인 바그다드 서북쪽 안바르 주의 한 조그마한 공업도시 팔루자에서 미군에 대한 거센 무력저항이 일어나 세칭 수니 삼각지대 전 지역으로 확산됨으로써 모처럼 평화로운 민주국가가 탄생할 것으로 보였던 이라크는 다시 참담한 전화와 종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이 책은 바로 그 전화와 혼란의 구체적인 기록이다. 미군이 베트남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이라크라는 새로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 저간의 사정을 밝혀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기간은 2003년 4월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때부터 2005년 1월 총선으로 새 이라크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이다. 무대는 저항세력의 본거지인 문제의 팔루자를 중심으로 그 이웃 도시 라마디, 그리고 반미성향의 시아파 젊은 지도자 알 사드르가 지휘하는 민병대 마흐디군이 두 차례에 걸쳐 폭동을 일으킨 나자프다. 저자는 약 5개월에 걸친 종군취재와 수많은 병사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참전 장병들로부터 인터넷으로 받은 엄청난 분량의 전투회고담 등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이라크전쟁은 그간 뭇사람들의 판단을 무척 혼란스럽게 해 왔다. 우선 이 전쟁을 보도하는 세계 유수 언론들의 논점 자체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당초의 침공의도가 빈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미국언론들은 잔혹한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하고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부시정부의 의도를 평가하여 비교적 호의적인 논조를 보였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는커녕 상황이 점점 악화돼가고 특히 미군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계속 커져가자 차츰 비판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한 때 60 퍼센트 이상 지지를 보였다가 40 퍼센트 이하로 떨어진 미국의 여론과, 대책 없이 미국에 대한 비난만 퍼부어 대는 일부 저작물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이라크 전쟁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세칭 반전.평화주의자들의 주장 역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언론논조나 조석변하는 여론만을 보고 이라크전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반전.평화주의자들처럼 UN 결의 없이 남의 나라를 침공한 ‘원죄’만을 따지거나 전쟁에서 부수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인 민간인 희생에 대한 비난에만 매달려서는, 또한 저항세력들이 외쳐대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일부 반미주의자들의 주장만으로는 결코 이라크 전쟁을 제대로 설명하는 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라크 주민들의 안녕이나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무차별 폭탄테러를 자행한 알 자르카위의 맥을 잇는 외국인 무장 세력들의 만행과, 수세기 동안 다수파인 시아파를 지배해 온 소수 수니파 일부 강경 지도자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벌이는 폭력에 대해선 이들 후자들은 입을 닫고 있다. 미국이 언론을 선전도구화 하여 여론을 조작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이라크의 저항세력들이 자기들에게 동정적인 알 자지라 방송과 기타 아랍계 언론에만 팔루자 출입을 허용해 부지런히 세계여론을 조작하는 사실은 외면한다. 치안책임을 맡기기 위해 미군이 모집하여 수개월간 교육시키고 봉급을 주고 무기와 장비를 제공한 이라크 경찰과 보안군 대부분이 유사시엔 태반이 도주해버리거나 오히려 저항세력과 내통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바람에 부득이 미군이 치안유지의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엔 눈을 감으면서, 치안 확보과정에서 일부 미군이 저지르는 과오나 과잉대응은 침소봉대하여 비난을 퍼붓는다. 그것이 다 ‘죄 없는’ 남의 나라를 침공한 미국의 업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더 이상 논의가 필요 없는 일이긴 하다.

 아무튼 지금껏 이라크 전쟁의 전체가 아닌 일면 만을 부각시켜 비난하는 사람들의 소리만 주로 들어온 게 사실이다. 이젠 비난을 받는 당사자인 현지 미군들의 소리도 한번 들어볼 때가 된 것 같다. 그것이 형평성에도 맞는 일이다. 이쪽저쪽 말을 다 들어 보아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게 아닌가? 사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목소리는 그 동안 지휘관들의 정치색 짙은 기자회견 외엔 보통 사람들에게 잘 들리지도 그리고 별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책의 가치는 저항세력이 벌이는 게릴라전 진압작전에 참전한 일선 미군장병들의 눈을 통해 본 최초의 이라크전 기록이라는 점에 있지 않나 싶다. 이 책은 이라크침공의 잘잘못을 따지는 비평서나 해설서가 아닌 전쟁다큐멘터리다. 실명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지금도 이라크에서 저항세력들과 싸우고 있거나 미본토로 귀환하여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또는 제대하여 사회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군데군데 미국정책 입안자들과 현지 미군 지휘관 및 행정관들의 정책과 작전 혼선에 대한 비판이 있긴 하지만, 지면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전투묘사에 할애되고 있다. 그 전투의 기록을 통하여 독자들은 이라크전의 실상을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팔루자에선 진정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저자 빙 웨스트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로 재직한 전직 고위 관리다. 그는 이미『진군: 미 해병대와 함께 바그다드를 점령하다』라는 책으로 논픽션부문 제너럴 그린상과 콜비상을 수상한 바 있는 베테랑 작가이다. 그 격에 걸맞게, 흔히 이런 종류의 전쟁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맹목적 애국주의나 전쟁미화 또는 값싼 동정심에서 나오는 감상주의 같은 것이 이 책에는 전혀 없다. 그저 묵묵히, 때로는 지나치게 냉정하다싶을 정도로 전쟁을 실제상황 그대로 그려나간다. 비록 미군의 눈을 통해 본 전쟁 다큐멘터리이긴 하지만 미군 측의 과오도 빠짐없이 서술한다. 특히 미군들의 공격방법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국제적으로 말썽이 되고 있는 미군의 과잉 무력사용에 대한 실상도 자세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2004년 11월 초에 있었던 팔루자 2차 공격의 경우, 저항군 약 3천명(핵심 1천명, 단시간 참가자 2천명 - 미군추산)을 제압하기 위해 최첨단 무장을 갖춘 미군 9개 대대, 영국군 1개 대대, 이라크 보안군 3개 대대로 이루어 진 약 1만 2천명의 혼성사단을 투입하였다. 그리고 28만 명의 주민이 거의 소개된 약 2마일 폭의 이 조그마한 도시에 1주일 동안 540차례의 공중폭격, 1만4천발의 중포 및 박격포탄 발사, 2천500발의 탱크주포를 발사하여 도시 하나를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것 같은 폐허로 만들어버린다. 아파트 창문 안에서 AK 소총을 난사하고 있는 몇 명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 자동수류탄 발사기(SMAW)로 한꺼번에 100발의 수류탄을 발사해 버리는 장면도 나온다. 적의 아지트를 폭파하기 위해 예사로 토 미사일이나 헬파이어 미사일 또는 500파운드 유도폭탄을 퍼붓는다.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쏟아 붓는 공격군의 화력에 대항하는 저항세력의 무장이란 박격포와 RPG와 AK 소총, 그리고 미군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제폭발물과 자살폭탄이 거의 전부다. 저항세력은 뚜렷한 이데올로기도 일관된 조직도 지휘관도 없다. 일부 수니파 강경 성직자들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민중들을 선동하고 자금지원은 하지만 직접 일선에서 저항군들을 지휘하진 않는다. 저항세력의 가장 큰 무기는 전통적인 외국점령군 혐오증과 수니파 와하비즘에 대한 맹신, 그리고 젊은이들의 충성심과 열정이다. 교활한 강경 성직자들이 수니파 이라크인들의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선동하고 조종하고 때로는 위협하여 민중들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다. 초기 미군 점령군들의 어설픈 대처, 저항군과 민간인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는데다 과잉 무력사용과 무차별 가택수색에 대한 주민들의 원한 등이 쌓여 사태를 더욱 악화 시킨다.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민간인 살상과 시가지 파괴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을 감안해야 하는 도시게릴라전이라는 특수성도 미군을 어렵게 한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종파간의 분쟁도 미국 정책입안자들의 이라크 미래 설계를 난감하게 하긴 마찬가지다. 지금은 미군의 존재보다는 수니 시아파간의 종파 갈등이 이라크의 미래를 더 어둡게 하고 있다. 저항세력들은 미군만 물러가면 평화가 찾아온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이 시점에선 미군 없는 이라크는 분단과 내전의 길로 곧장 치달을 조짐이다.

 이 책은 이런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사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인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적시해 주는 책이 지금껏 한국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비록 이라크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 책을 읽어 본 후에야 비로소 올바른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이라크에선 이 책에서 보여주는 참상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무차별 자살폭탄테러, 미군에 대한 공격, 상대파벌에 대한 보복학살 등으로 하루에도 100여 명씩 아까운 생명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점령군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한 폭력이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사생결단식 대결로 비화하고, 여기에 쿠르드 문제까지 끼어들어 자칫하면 나라가 세 동강이 날판이다.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도 내전을 염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고, 이미 내전이 시작되었다고 단정하는 기사도 보인다. 미국 외교협의회회장인 리처드 N. 하스는 포린 어페어스지 2006년 11-12월호에 쓴 “새로운 중동(The New Middle East)"이란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중동 지배시대는 이미 끝났고 새로운 중동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미군이 이라크에서 가능한 한 덜 초라하게 마무리 짓는 방법으로 손을 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라는 무서운 얼굴의 부적 그림이 붙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겁 없이 열었다가 혼쭐이 나 슬슬 도망가고 있는 미국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면 왜 이라크의 미군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스는, 불가피한 전쟁이었던 1차 이라크전으로 미국의 중동지배시대가 열렸는데 별 필요도 없는 2차 이라크전을 벌이는 바람에 스스로 미국지배시대의 종언을 재촉한 사실을 두고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서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보인 미련한 골리앗 같은 미국의 허약성으로 인해 소련제국 붕괴 후 수립된 미국 일극체제의 세계질서가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 등 다극체제의 질서로 바뀌게 될 것으로 예고한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라크에서 미군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팔루자 전투를 다룬 이 책은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전쟁기록이 될 것이다.

                     2006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