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유전자』후기
이 책의 핵심은 왜 세상에는 사악하거나 교활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어째서 그들은 때때로 성공하는가, 그리고 역사 속에서나 지금 이 시대에서 왜 포악한 독재자들은 한때나마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외부의 찬사를 들었으며 왜 그들은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을 박해하거나 죽였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것들이 참으로 중요한 문제다 싶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그렇게 오래 붙들고 있지 않는다. 잠깐 한탄하다 끝나기 일쑤고 좀 더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래 그런 종자로 태어나서 그렇다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그런 거니까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몇 마디 하다가 그만 둔다. 자기 일에 바쁜 탓도 있겠고 골똘히 생각해봐야 그럴듯한 해답도 나오지 않고 또 그런 걸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는 적당한 책도 찾기 어려워서다. 저자 바버라 오클리 박사는 바로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이 책을 썼다. 인간의 사악성과 독재자들의 포악성을 유전적, 환경적, 정신 병리학적으로 설명하되 전문적인 연구논문 방식이 아닌 “고등학생에서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풀어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옮기면서 장편소설과 수필과 연구논문이 혼재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문가 수준의 해부학과 병리학에 관한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그것들을 역사적 인물과 현존 인물의 일생이나 그들이 저지른 사건과 적절하게 배합해 가며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수필처럼 설명함으로써 웬만한 독해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책의 원 제목『나쁜 유전자: 로마가 쇠망하고 히틀러가 출세하고 엔론이 파산하고 딸이 엄마의 남자친구를 가로채는 이유(Evil Genes: Why Rome Fell, Hitler Rose, Enron Failed, and My Sister Stole My Mother's Boyfriend)』가 암시하듯이 인간의 사악성에는 환경보다는 유전자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과 거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예컨대 로마제국의 코모두스 황제부터 미국 억만장자 여성 CEO 마샤 스튜어트까지)의 행동을 해부학, 유전학, 정신병학, 심리학, 신경학적으로 설명해 가며 자기주장을 증명해 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아버지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어머니의 애인을 가로챈 경계선 인격 장애자 언니를 중심으로 슬픈 가족사를 곁들인다. 이 책에 나주 나오는 용어인 ‘마키아벨리주의자’는 ‘사악하게 성공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겉보기엔 매력적이고 권력에 아첨하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으며 지배력 쟁취나 사적 이익을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책략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정통 심리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심리학자들은 옛날부터 학명으로선 문제점이 있는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저자는 불평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주의자들이 활개를 치며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능변과 매력과 조작과 술책에 쉽게 넘어가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토인비, 스노, 페어뱅크, 사르트르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류에 속하며, 나치스가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있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처음 듣고 전혀 믿지 않았던 서방의 정치 지도자와 지식인들도 이 축에 들 것이다. 우리는 종종 되뇌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직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고 “인간이 어쩌면 저토록 악독해질 수 있을까?” 하며 치를 떤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수(精髓)가 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인간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도(다시 말해 인간쓰레기 같은데도) 출세가도를 달리는 주위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은 정신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어서 저럴까?” 하며 시샘과 경멸이 섞인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악의적인 험담을 퍼뜨릴까? 왜 어떤 사람은 회사공금을 자기 집 돼지 저금통에 든 돈처럼 맘대로 이용하려할까? 왜 어떤 사람은 수백만 명의 국민을 고의로 굶주리게 할까? 불행히도 이런 질문에 합리적인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과학 서적을 찾는 것은 “크리스마스에 하와이행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유전학과 정신의학 관련 대중과학서인 동시에 역사적인 인물들과 현재를 사는 우리 주변인들의 성격과 그들이 저지른 사건들을 신랄하게 파헤치는 저자의 책이 이제 우리에게 그 해답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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