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연의(三國志演義)
(2003.7.23)
최근 황석영씨가 삼국지를 냈다 하여 신문에 대문짝 만한 광고들이 나오고 있다. 그 좀 전에는
이문열씨가 역시 삼국지를 내어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릴 때 삼국지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했던 터여서
자연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는데, 내가 몇 번이나 읽었던 것은 박종화의 삼국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에도 숱한 사람들이 "번역한" 삼국지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가지 특징은 그들 "번역가"들이 한결같이 그 시절의 꽤 이름 있는 작가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 삼국지
"번역가"들이 한문학을 전공했거나 한문학에 조예가 깊다는 소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광고에서 원서는 무슨 판을 이용했느니, 기존
번역서들의 많은 오류를 수정했느니 어쩌니 하면서 숫제 한문학의 대가라도 되는 양 선전들을 하고 있다.
역설계(逆設計)라는 것이
있다. 예컨대 북한이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 완제품을 들여와 분해하여 기술을 익힌 후 제 나름대로 설계도를 만들어 "대포동"이니 "노동"이니 하는
미사일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꼴이다. 표절이고 도용이다.
좀 전에는 인기 있는 연예인들의 이름으로 된 컴퓨터 입문서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원 세상에, 그들이 컴퓨터에 대해 뭘 안다고 컴퓨터 입문서를 쓴담? 그러나 그들의 이름으로 된 컴퓨터 책들은 계속 나왔고 그리고
꽤 팔리고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 집에도 그들이 쓴 책이 한 권 있을 정도니까.
이름 있는 작가들이 "번역한" 삼국지는 연예인들이
"집필한" 컴퓨터 입문서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쩐지 역설계 쪽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예컨대 우리 나라에 처음 나온 삼국지는
일본어 번역판을 참고하거나 베낀 것이 아닌가싶고 그 후에 나온 삼국지들은 기존의 여러 번역판들과 원서를 함께 대조해 가며 자신의 문체로 새로
설계(집필)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출판사가 이름 있는 작가를 내세워 돈 한번 벌어보자는 속셈에 독자들이 아는 듯 모르는 듯 속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하기야 워낙 책들을 읽지 않는 나라니까 그런 걸로라도 출판사가 유지되고 작가들이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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