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友 朴元煥 遺稿詩

故 朴元煥 詩人의 作品을 얘기한다 - 權逸松

이강기 2015. 9. 2. 09:32
故 朴元煥 詩人의 作品을 얘기한다 - 權逸松   
 
 

純粹의 空間, 별빛의 生涯

 

             - 權逸松

 

朴元煥은 마치 여름밤의 流星처럼 사라져 간 시인이다. 그 생애의 짧음도 그러려니와 문단 데뷔 후 고작 1년 반 남짓한 時間帶에서 10편 미만의 시를 선보이고 간 야속하고 다급한 활약상이 또한 그것을 증명해 준다.

한국시단에서 女流詩人들이 차지하는 공간과 비중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81년 겨울 朴元煥 하나를 거기 더 보태는 보람과 기쁨을 스스로 대견해 한 적이 있었다. 내가 朴여사를 안 것은 李鄕莪 시인의 주선 때문이었다. 81년 여름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레스토랑 쎄실-, 지극히 앳되고 천진스런 인상의 여인은 퍽 語訥하고 창백했다. 갓 30대 중반에 들어선 주부의 안정감과 향기가 몸에 밴 듯한 인상이었다. 거의 듣는 편에서 말에 대한 조심성과 흥미를 나타내 보인 매우 인색스럴 정도의 미소만을 흘린 朴여사는 결코 흔한 감상주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언어를 통해 접근이 허용된 그의 내면 세계는 엄격한 내재율과 치열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작품「아이와 나비」「夜行記」 두편을 初薦에 넣었다.

아이 옷은 노오란 물
뚝뚝 떨어지는 장다리 꽃
꽃신 안에서는 이슬 소리가 난다.
늦잠 자는 아침 나비의 이불 속으로
아이는 그물을 펼친다.
한창 꿈의 꽃가루 속에 누운
나비 꿈은 아이의 보석바다

아침이 환한 목소리로
나비들을 깨운다
풋 햇살 파도치던 장다리꽃
그 바다 위로 바다 위로
유리 실 알알이 꿴 나비 꿈을
목에 걸고 水夫가 된 아이.

아무리 잡아도 저 나비 날개에
실려 날을 수 없다는 슬픔.....
아이 눈엔 노을 빛 이슬이 가득 고인다.

나비 날개를 하나씩 뜯어
햇살에 비춰본다.
날개 속에는 얼음 궁전
흰 공작이 옷을 펼치는 뜨락이다.

오- 지금은 成年의 아침
날개 뜯긴 나비들의 목 멘
풀륫 소리를 듣는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것은 추천작「아이와 나비」의 全文이다. 그는 아늑하고 긍정적인 두 생명의 對比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빚고 의식의 出口를 모색하려든다. 지나친 감상 탓으로 무기력한 동심에 빠짐없이 꿈의 환상처리를 의미 있게 극복하고 감히 아무도 섣불리 흉내낼 수 없는 신선한 內在律을 빚는데 성공하고 있다.

나비의 날개를 뜯어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얼음 궁전과 흰 공작이 옷을 펼치는 뜨락이 있다. 시인이 넉넉한 숨결로 마련하는 見性과 인식의 심장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는 여타의 작품 속에서도 매우 섬세하고 예리한 감성과 때로 두툼한 언어의 탄력을 고루 뒤섞을 줄 아는 재주를 엿보이게 한다.

<...생각도 깊고, 말의 질서도 탄탄한 품이 詩로써 立身할 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모나지 않은 착상에다 인식의 새로운 照明을 비출 수 있는 능력은 쉽사리 얻어지는 건 아니다. 동화적인 천진성이 여리 여릿 이랑을 이루는 말솜씨나 그 괴임새의 푼수가 여간 넉넉한 정신의 容量으로 비치는 게 아니다>

이는 그를 최초로 부추긴 추천사의 내용이었다. 유리알 마냥 투명하고 정갈한 생애를 살다 간 朴元煥에게는 모든 被寫體들이 하나의 기도와 신앙적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생시에도 유리의 이미지를 자주 援用했다. 유고시집「유리 마을」도 어쩌면 그 자신이 운명적으로 예감한 짧은 생애를 종합해 놓은 표제였는지도 모른다.

어화응 어화응
오늘 또 흰 국화꽃 상여 타고 내게로 오십니다.
붉은 색 푸른 색 눈부신 만장 휘날리며
여읜 내 가슴에 비로 오십니다.

어화응 어화응
목탁소리, 요령소리
죽음을 못 박던 소리
그날 내 목 쉰 부르짖음 버리고 산으로 가시더니

어화응 어화응
밤길도 산길도 걸어 설흔을 넘은 길목으로

어화응 어화응
진하디 진한 피의 강 건너
고향 푸르디 푸른 들로 팔 벌리고
이제야 오십니다.

    - <유리 마을> 全文 -

이 시로 미루어 보건대 朴 시인은 미리 마음속에 어떤 죽음의 계시를 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최후로 죽음과 만날 약속을 의식하면서 한 땀 한 땀 수틀에 수를 온 정성을 쏟듯이 자신의 체험 위에 던져진 모든 사물과의 만남을 더없이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피할 길 없는 죽음의 신선한 수용자세야말로 시인의 살뜰하고 넉넉한 정신의 푼수로도 가장 높이 쳐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유리 마을」은 이를테면 이승과의 작별을 위한 生者의 예비적 심성이 깃 든 작품이다.

또 連作 계열로 볼 수 있는 다른 同名의 작품을 살펴봐도 마찬가지 풀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間投詞「어화응 어화응」을 끼워 넣고서 환상적인 생의 구름다리를 저승의 문턱에까지 인도하는 것이다.

그는 생시에 분명히 사물인식의 한계를 明暗으로 긋고 있었던 듯 싶다. 생의 찬미에 못지 않게 죽음에 대한 순응과 예찬도 퍽 예사롭게 펼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만 37세의 아쉬운 생애를 막음 하려는 그의 몸짓과 목소리는 어딘지 부산하고 간절했을 법도 하다. 죽음에 대한 예감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상적인 언어 감각 속에 용해된 그「죽음의 이미지」는 어쩌면 그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었던 詩를 통한 마지막 메시지에 해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장마」와「무서운 숲」등은 흡사 자기 자신의 운명을 조준하는 언어의 組曲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치 전체의 분위기가 음산하고 야릇한 鬼氣마저 감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음과의 親和나 그 초월적 의미를 바닥에 깔고자 했을 뿐, 죽음 자체를 주관적으로 미화하거나 깎아 내리자는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장마를 죽음이나 임종에 견준 것이라든지, 밤까마귀의 울음소리나 무너지는 의지의 축대로 표현한 것 등은 퍽이나 뛰어난 솜씨라 할 만하다.

지금 나는 무서운 숲에 서 있다.
죽음끼리 서걱대는 불면의 바다.
황무지를 스쳐온 마른 바람소리만
지나는 숲

지난 겨울 내내 시린 손 부비고 있는
저 고목 꼭대기 나뭇잎 하나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져
피 흘리고 있는 내 그림자
꿈의 마지막 이파리
    -<무서운 숲>에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가보지 못한 마을」과 長詩 경향인「내 캄캄한 골방」등을 들 수가 있다.

前者는 방황하는 영혼의 시러불(小節)이 火印처럼 얼룩져 있는 작품이고, 後者는 세찬 죽음의 전율과 惡寒이 사그라드는 마지막 생명의 촛불 속에 희미한 파문을 일으키며 아프게 서걱이는 시편이다.

시인은 이미 싸늘한 의식의 단절과 죽음의 빗장을 손으로 매만지듯 일체의 값싼 관념의 유희나 위장의 언어들을 스스로 배격하고 있다.

미처 활짝 피어나 보지도 못한 채 이승에서 설운 등을 돌려야만 했던 朴元煥에겐 어쩌면 누구보다도 강렬한 생의 집착과 미련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에겐 따뜻한 생의 道伴이요 후견인이었던 남편과 마치 유리마을의 왕자 공주 같은 承圭(아들) 銀河(딸) 등을 남겨둔 채 앞서 떠나는 슬픔과 고통이 있었다.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서 줄곧 학교를 다니거나 성장해 왔으며 동인지「말」을 발간하는 등 바쁘고 설레는 문학 활동을 펴 온 꿈 많은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나와 결혼에 골인할 때까지는 줄곧 중고교에서 교편을 들기도 한 재원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붓을 꺾었다가 30대 중반의 고비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르고 못다 한 시에의 열정을 불태우고자 등용문을 거쳐 한창 詩作생활에 열중하던 시기에 불의의 병마에 쓰러졌다. 그가 누워있던 白病院 병동에서 바라보았을 창 밖의 여름 흰 구름과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내는 원색의 광채들........

萬0가 호젓한 시간, 모처럼 주변이 고요한 때를 틈 타, 깊은 밤 홀로 병원 뜨락을 서성이며 목안에 잦아드는 오열과 통곡을 되삼켰을「유리 마을의 시인」은 지금 포근한 경북 善山의 시댁 先塋下에 누워있다. 그에겐 이미 죽음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으며 늘 가까이 있는 마음의 보금자리였으리라. 짧게 피었다가 영롱하게 져버린 서른 일곱의 생애와 시 -,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언어의 싹이 트고 해사한 小宇宙의 테두리를 닦아가던 유리마을의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참된 삶과 순수한 열정을 기울이다 간 사람이었다.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음악이 가득 찬
커다란 수족관
수증기 낀 차 냄새

진달래꽃 가득한
창 밖은
페르샤 시장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조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자국 소리
식은 찻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4월> 全文-

나의 밤으로 들어와
새벽을 헤치고
아침을 열어놓고
나의 온 나절 생살을 도끼질하더니

납빛 황야에 서서
밤까마귀 되어 운다.
  -(낮달>에서-

그에게 暗順應이 체질화 된 듯이 보인 구석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明順應에 따르는 자유분방한 의식의 전개도 한층 돋보인다.

「4월」은 그 얼마나 앳되고 청순한 감각인가. 그에게도 창을 열면 밝은 햇살과 바람의 계절이 다가섰을 것이다. 얼마든지 밝고 즐거운 쪽에서 인생을 바라보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싶었을 것이다.「가뭄」은 아주 열띠고 완벽한 이미지의 율동과 구성으로 성공하고 있는 시다.

지금 나는 사방 훨훨 타는 벽 속에 갇혀 있다.
거리는 그림자 하나 없고
소금절인 생명
미로를 헤매는 모르모트처럼

헐떡이는 빈 양철동이들 뒤에
오늘이 시들어가고
햇볕에 튀는 흰 자갈밭 걸어간다.

검정 무쇠 솥이
벙어리네 붉은 논밭을 짓밟고
저울 한 눈금 기쁨
한 방울 눈물도
펄펄 끓는 용광로에 다 던져져
나는 단두대에 선 한기로 떤다.

그의 시적 기질과 역량이 잘도 돋보이는 이와 같은 종류의 短型들 외에 문제삼을 만한 한편의 長詩「어제 그리고 달 따러간 오늘」을 거저 지나칠 수 없다. 어디서 이만한 길고 다부진 호흡과 근육이 우러나올 수 있었던가 싶을 만치 그는 진지한 대결정신과 사물인식의 너른 폭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얼핏 작은 소재들의 連作으로 보이지만 실은 서사시적 구성과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아마 이 한편의 장시 속에 그의 짧게 불탄 생애가 요약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은 아닐까. 낳고 자라고 사랑하고 흩어졌던 온갖 기억들이 바늘 간데 실 가는 격으로 순수한 공간에 의식과 체험을 한데 묶어 영롱한 언어의 追憶祭를 베풀고 있다. 그 자신의 一代記가 더없이 섬세한 가락과 追體驗으로 언어의 天國을 그려내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미처 펴지 못한 채 시든 詩魂과 역량이 한량없이 아깝기만 하다. 정녕 광채 나는 한 알의 보석을 어둔 땅에 잃은 심정이 이런 것일까.

비좁고 한정된 지면에서 그의 결 고운 작품을 다 얘기할 수 없는 것만이 못내 서운하고 안타깝다. 이제사 뒤늦게 부질없는 이승의 讚詞 따위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그의 무덤 앞에 한 송이 생화를 꽂는 심정으로 나는 이 글을 쓴다. 한 때나마 그를 보살핀 薦者로서의 슬픔과 아픔이 이토록 지극할 줄이야 미쳐 깨닫지 못했다.

한평생 이승에 기대어 살면서 좋고 그른 만남의 인연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朴元煥이 내뿜었던 정갈한 영혼만큼 내게 따스함과 위로를 안겨주었던 것도 드물었지 않나 싶다.

시와 인간이 서로 맛 물려 완전한 감각을 이루었던 그의 생애와 작품을 이 이상 장황하게 늘어놓을 마련이 내겐 없다. 시와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은 상상이나 관념만으로는 실감하기 어렵다.「戰慄과 惡寒」을 끼쳐 준 것이 아니고선 누가 감히 인생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랴.

무릇 인연을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어쩌면 生者의 祝祭보다도 亡者에게 보내는 갈채인지도 모른다.

朴元煥 遺稿詩集「유리 마을」은 비록 커다란 광채를 내는데 까진 미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조촐한 한국 詩史의 한 모서리에서 소중한 기억의 焚香으로 남게 될 것임을 믿는다. 地上의 아름다운 영혼은 하늘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비록 한창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떴으나 정녕 驚異에 해당하는 이만한 분량의 작품들을 채곡 채곡 쟁여놓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의 짜른 생애가 미덥고 자라스런 것이 아닐 수 없다. 차분하고 실실한 생활인으로서의 긍지와 의식을 바닥에 깔고, 상냥하고 알뜰한 제 분수의 詩構成과 言語經濟를 이룩해 낸 朴元煥을 잃은 슬픔은 다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

유족들에게 이 한 권의 시집이 값진 위로와 선물이 될 뿐만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여름의 가장자리에 핀 새빨간 한 송이 칸나의 의미로서 길이「永遠한 傳言」으로 메아리 칠 것을 믿는다.

밤이 굴리는 수레바퀴 소리에
내 눈과 귀는 멀어버리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어디쯤
뒷 대밭 뻐꾸기 울음 따라
눈물고인 아이 눈동자 같은 아침이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대바구니 가득 풋감을 따는
무명옷 입은
어머니처럼
나의 아침은 오고 있을 것이다.
  -<휘파람새는 어디 있나>에서-

지금은
善山의 양지바른 선영 아래 묻힌 密陽 朴氏, 뜨겁고 조촐했던 女流詩人 元煥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매끄럽지 못한 붓을 움직여 여기까지 써내려 왔다. 찌는 듯한 무더위, 立秋는 넘겼으나 熱帶夜까지 계속되는 末伏의 기승떠는 더위는 정신의 집중과 논리의 전개마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듯 싶다.

휘파람새 울음에 묻혀
그대 영원의 날개 위에 살리니
짧고 뜨거웠던 한 생애
이미 조용한 天上의 음악이여

이승의 기쁨을 뛰어 넘어
한 방울 눈물로 빚는 기도
영생의 불길이 번지는 하늘가에
어느새 천년의 바람에 섞였는가.

   一九八四年 八月 十日
      東小門洞 寓居에서


'故友 朴元煥 遺稿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地上에서의 30個月 - 李鄕莪  (0) 2015.09.02
朴元煥 詩人 - 金圭和  (0) 2015.09.02
思母曲  (0) 2015.09.02
聯想 I  (0) 2015.09.02
聯想 II  (0) 201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