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 |
개벽 제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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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제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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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년월일 |
1926-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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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文藝?談』을 읽고서, -소위 조선인의 亡國 根性을 우려하는 春園 李光洙 君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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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朴英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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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형태 |
문예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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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東亞日報에 오래 두고 연재되든 『文藝?談』은 끗치 난는지 모르겟스나
여하간 나는 24회까지의 것만을 가지고 말하려 한다. 더 잇다 하드라도 나는 그것을 읽음으로써 시간을 허비하기는 실흔 까닭이다. 또한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君의 견지로 보면 所謂 亡國根性이라고 할는지는 몰으나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君이 걱정하고 잇는 亡國 根性을 表證하려고
하는 것이 안이라 君이 가지고 잇는 도피 저주 탄식 비탄 哀傷主義의 亡國 근성을 論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즉 君의 객관적 亡國 根性을 말하는
것이 안이라. 春園 자신의 亡國 根性을 말하려 한다. 君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는 사랑과 溫情과 熱淚로써 서로 권하고 諫할 것이지 결코
비방하고 악담하고 嘲笑할 것이 안이다.- 이것은 亡國 根性이다』 하엿다. 즉 적게 말하면 上述한 文句의 머을 것이나 이 모든 것을 합해서
말하면 소위 투쟁이다. 그러면 이 투쟁이 君의 말과 가티 과연 亡國 根性 일까? 君은 엇더한 見地로 이 투쟁이 亡國 根性이라고 생각하나? 과거
조선의 정치적 투쟁의 실패를 君은 논증하려고 하는 모양이나 그들의 투쟁은 君의 양심과 가티 비사회적 (그들은〈111〉 비록 정치적 행동 혹
수단이라고 하나 그들의 정치는 다만 그들의 폭력의 연장이며 권리의 확장이며 민가의 복리를 착취하랴든 소극적 투쟁이엿스니 망할 것은
물론이다.) 비공리적 투쟁이엿기 때문에 망한 것이니 결코 투쟁자체가 악한 것은 안이다. 오히려 진실한 의미로 보면 완전한 투쟁이 잇슨
후에야 완전한 사회가 생길 것을 君은 想像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가트나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면 알 것이다. 君의 말과 가티 남이 잘못할
때에는 溫情과 熱淚로써 勸하고 諫하는 것은 友誼之道에는 조흘는지 모르나 사회 전체로 보아서 그의 행동이나 사상이 민중에게 이롭지 못하고 해로울
때에는 그 때에는 사회적으로 勸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勸한다는 말은 투쟁하며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그리해서 그 투쟁이 적극적으로 엇더한
효과를 갓게 될 때까지 밋치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現今 조선인으로써 그들의 진리를 위해서 투쟁하게 되는 것이 필연적 사실인 것을 나는 力說하려
한다. 확장되고 충만한 일부의 권력의 마술 밋헤서 신음하는 우리 민중에게 엇지 투쟁이 업슬 것이랴.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春園의 글을
말하려 한다. 그의 문장이 내 개인에 관한 것이라ⓒ´ 君의 말과 가티 熱淚와 溫情의 情談으로라도 勸하겟스나 그의 글은 社會를 배경으로 하고
民衆을 상대로 한 글이기 때문에 나도 사회적으로 勸하는 투쟁적 의미에서 이에 말하려 한다. 결코 熱淚와 溫情으로 할 友誼 문제는
안이다.
2 君은 걸핏하면 朝鮮的이라는 말을 만히 쓴다. 안이다. 오히려 朝鮮이라는 말을 思慮 업시 또한 너무도 安價로 맛치
어린 아해들의 작난감 모양으로 닥치면 쓰려고 한다. 무엇 보담도『文藝?談』에서 보면 더욱 만히 우리는 그의 朝鮮的이라는 말을 볼 수 잇는
것이다.〈112〉 爲先 예를 들어서 볼 것이면 君이 朱요한 君의 詩를 평할 때에 『-朝鮮의 國土와 歷史를 대표하는 靈의 자격으로 『아기를
부른 것이다』 라든가 또는 君이 추천한 뽀드레트의 惡魔派的의 詩를 소개한 金億군의 詩를 평할 때에『懊懊』의 舞蹈는 결코 譯詩가 안이요 우리
朝鮮人 自身의 心琴의 響動이엇섯다』 한 말이나 君의 評이나 한가지로 隱遁 逃避의 시인 月?군을 평할때에 『우리 月?도 朝鮮의 虛華를 볼 때에
저주와 號泣을 금치 못한다.-』 등의 말이다. 女子라면 다 조화하는 色情狂 모양으로 誇大妄想病에 걸린 君이야 말로 글만 쓰면 모도가
朝鮮的이라고 하는 것은 君의 말과 가티 참말노 그러케 朝鮮的이 만햇스면 慶賀할 일이겟스나 虛僞 만흔 君의 과장에 불과한 말이니 그 엇지 苦笑를
금할 수 잇스랴? 君도 알는지는 모르나 朝鮮은고민한다. 안이다. 朝鮮은 고민만 하는 것은 안이다. 그와 한가지로 진리를 바라 보고
투쟁한다. 그리나 君의 말과 가티 悲歎하며 哀悲에 띄엿스며 도피하며 낙담하는 것을 노래한 것이 朝鮮이 안이다. 그 朝鮮은 과거의 朝鮮이다.
그러한 것을 조선적이라고 하는 것은 君과 가튼 逃避 病者가 命名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朝鮮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안이면 또한 조선
민중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안이면 朝鮮的이라고는 불으지 못할 것이다. 朝鮮이 요구하는 것은 苦悶에 대한 反動 逃避에 대한 투쟁 戰慄에
대한 大膽 悲歎에 대한 勇進 타협에 대한 반항... 등인 것을 말할 수 잇다. 그럼으로 現今의 환경에 잇는 無氣力한 상태 만을 가지고 그
기분으로만 판단하여서 조선을 云謂할 수 업는 것은 그 상태가 他動的 이여 결코 自動的 혹은 필연적이 안인 까닭이다. 그러나 君이 말한 바와
가티 所謂 哀悲의 詩人 頹廢의 詩人 절망의 詩人들의 글이 朝鮮의 一面 혹은 민중의〈113〉 心琴을 울린다는 것은 무엇 보다도 君의
妄想이다. 君이 朝鮮이라는 말을 잘 쓰니 그러면 또 다시 조선 문학을 한 편 다시 생각하자. 朝鮮의 문학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퍽도
다른 處地에 잇다. 그 까닭은 조선 민중의 생활이 그러한 處地에 잇는 까닭이다. 그 處地는 君도 잘 알 터이지만 그래도 오해를 걱정해서 나는
한마듸로써 말하겟다. 그것은 現今 상태에 잇는 조선 혹은 민중의 소극적 생활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혹은 객관적으로 표시하는 데서 문학적
가치가 잇는 것이 안이다. 어듸까지든지 그 처지가 無産的 朝鮮을 주관에서 강렬케하여 가지고 민중의 부르지지고 십흔 생활의 진리를 부르지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문학은 그 時代 그 民衆의 환경과 처지를 주관적으로 高熱케 해서 그들의 진리를 표현하여 주며 引導하여 주는 것이다. 그런
故로 문학은 민중의 사상을 대표하며 생활의 期待를 표시하는 것이니 어느 때에는 宣傳 포스타로까지 변하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君의 말로
증명하겟다. 『-元來 엇던 사상을 민중의 정신에 搖動하는 것은 文藝다. 홉스 룻소를 근본으로 發한 自由思想은 『革命 文學』이라는 문학의
힘을 빌어 佛 英의 民心에 浸潤 되엿다. (中略) 女子의 해방의 사조가 입센의 劇의 힘으로 넓히 깁히 인류에 浸潤된 것도 누구나 아는 바며 레닌
기타 소비엣트 아라사 爲政者가 혁명 성공부터 문학의 힘을 빌어 한 것도 사실이다』하고 君도 말하엿다. 그러면 말이다. 文藝가 민중과
사회와의 관계를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잇슬 것이 안일까? 佛蘭西 민중이 고민할 때에 룻소는 그 민중 생활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鑑하야서
自由思想의 문학을 부르지젓스며 로서아의 무산계급의 민중이 착취에서 고민할 때에 그들의 문학은 忽然히 『혁명 문학』이 된 것을 證明하지
안이하엿나?〈114〉 그러면 君이 頹廢의 詩人 哀悲의 詩人을 朝鮮的이라 하며 사회가 그를 사랑하지 안는다고 걱정하는 것은 무슨 모순된
생각일까? 朝鮮은 지금 頹廢의 시인은 요구하지 안이하며 哀悲의 시인을 필요하지 안는다. 따라서 도피의 戰敗 詩人도 요구하지 안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現象에 직면해서 이 현실이 필연적으로 가저야 할 진리를 표현해서 민중의 생활과 사상을 高熱케 해야만 할 것이다. 더욱이 君은
말하기를 『-더구나 文藝가 오늘날 朝鮮에서는 數十萬 청년 남녀의 정신을 지배하는 무서운 세력인 것을 생각하면 맘 잇는 이는 깁히 주의할 것이
안인가?』 또한 『오날 이 朝鮮처럼 文藝의 세력이 큰 것은 實로 세력인 것을 생각하면 맘 잇는 이는 깁히 注意할 것이 안인가?』 또한『오날 이
朝鮮처럼 文藝의 세력이 큰 것은 실로 類例를 볼 수가 업다고 할 만하다. 이 意味로 보아 오늘날 朝鮮의 文藝는 朝鮮에게 큰 이익도 줄 수 잇고
큰 害毒도 줄 수 잇스니 文筆에 종사하는 이는 여간 중대한 책임감을 안이 가저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한 말도 君의 말이다. 또한『-이제 새로
形成되랴는 朝鮮의 新民族性도 우리 중에서 발생하는 문학에 지는 바가 만흔 것이 안인가?』 이것도 君의 말이다. 그러면 또 다시 이제 君에게
말하노니 君은 소위 『新文學의 價値』라는 제목을 무책임하게 붓치고서 눈물만을 노래하는 감상 시인, 아편과 毒酒로써 生을 저주하는 惡魔派의
뽀드레트 的 詩人 등을 소개함은 무슨 狂筆的 행동이냐? 新 文藝 價値! 이것들이 무엇으로써 新 문예의 가치를 가젓슬 것이랴! 現實을
무시하고 민중을 무시하고 사회를 떠나서 個人的 享樂的인 쁘르즈와의 코타령이 무슨 新文藝가 될 것이랴! 君도 말한 바와 가티 수십만의 청년
남녀의 前程이 무섭지 안이한가? 만일 그들이 이것이 新文藝라고 (君과〈115〉 가티 그러케 어리석은 생각을 할 사람은 업슬 것이나 ) 다만
그들의 餘生을 悲歎하고 頹廢케하며 隱遁할 것 가트면 그 때야 말로 君의 망국 根性이 대외적으로 感染되는 때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君은
享樂과 頹廢만을 홀노 노래하면서 사회의 동정을 구걸하는 말을 볼 수 잇다.『-하물며 우리 新文藝는 놀라운 발달을하엿슴에랴! (人名略) 諸氏의 詩
가튼 것은 歐美의 문단은 몰라도 日本 文壇에서는 一流는 몰으나 2,3류 이하에 떨어질 것은 아니며 또 그들이 모도 30 미만의 청년 작가인 것을
생각하면 도로혀 驚異와 존경과 민족적 誇衿으로 대할 것이 안인가?』하고 또『-조선의 사회는 맛당이 조선의 新文藝에 대해서 좀 더 친절한 이해와
감사와 기대를 가져야 맛당하다고 밋는다.-』 참으로 이 말이야 말로 쁘르즈와의 根性을 잘 표시한 말이다. 그는 자기의 환영을 보고 스스로 웃고
스스로 奇異하게 녀기는 백치와 가티 민중과는 아모러한 가치도 업는 작품을 길거리에서 웨치는 賣藥商人 모양으로 민중을 속이며 민중을 蠱感케 한다.
30 미만인 그들의 大天才적 才質은 新奇는 하거니와 유감인 것은 지금의 외국 작가는 삼류 以下래도 그러케 君과 가티 무책임한 新文藝의 가치를
云謂하는 자도 업스며 자기를 고귀하게 敬拜하라고 민중과 사회를 속이며 혹은 사랑을 구하는 그러한 정신병자는 업는 것이다. 그의 문예가
민중을 떠날 때 민중이 그의 문예를 배척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그의 文藝가 사회와 아모러한 관계가 업게 될 때에 사회에서 그를 배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무슨 애착이 잇스며 따라서 무슨 감사가 잇스며 또한 더욱이 무슨 기대가 잇스랴! 아편 빠는 放蕩兒에게 기대하는 것은
敗家亡身 이외에는 아모것도 업는 것이나 한가지로 슬푼 눈물만 부르는 詩人에게 기대로서는 痴情兒의 무기력한 것 뿐일 것이며 뽀드레트적 詩人에게는
期待로서 정신착란과 頹廢 이외에는 아모 것도 업슬 것이다. 그러면 君은 이러한 것을 新文藝라하고 민중에게 소개하며 감히 朝鮮的이라고 하니
그러면 君은 君의〈116〉 말과 가티 朝鮮에 잇는 數十萬의 청년 男女를 廢頹케 하고 말려는가? 그러면 君은 亡國根性性을 가진 代表兒가 될 것이니
그 엇지 新興하려는 사회의 愛護를 기다리는가? 朝鮮은 지금 新興하려 한다. 따라서 문예도 新興하여야 한다. 조선 푸로레타리아는 해방되려
한다. 따라서 文藝도 해방 문예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君과 가티 쁘르즈와의 貪慾的 수단을 발휘하려는 작가는 시대와 한가지
소멸되고 말 것이다. 신흥 계급이 일어나는 것도 진리려니와 쁘르즈와의 몰락도 진리일 것이다. 더욱이 君은 上述한 바와 가티 文士와 문예의
책임을 말하여 가지고 그들의 문예를 그 책임 밋헤 無理로 드러맛게 하며 또다시 사회에게 사랑을 구하는 허위 작가 자신이 이런
말을하엿다.『-近代의 우리 朝鮮처럼 虛僞가 생활의 基調가 된 例는 거의 前無할 것이다. 진실로 우리를 亡케 한 자는 「虛僞」다. 現今도 우리를
亡케 한 자는 虛僞다. 장래에도 우리를 亡케 할 자는 虛僞다.-』 그 말이야말로 조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虛僞가 무엇인지를 아나? 그것이 君
자신을 잘 증명한 것이 안이면 무엇이랴! 君의 말을 보면 前 날에도 (近代) 虛僞가 만엇다 하니 그래도 春園 가튼 사람이 만핫든 모양
갓다.
나는 더 쓰기는 실타.-끗-
그러나 不得已 또 스지 안이하면 안이 되게 될 그 때에는 할 수 잇는대로 좀 더
세밀한 인용과 모순된 文章의 例을 「文藝?談」에서 차져 내여 가지고 評論하려 한다. 爲先 이 글은 第1回만으로 보아 주면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간이 업서서 길게 쓰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녀긴다. 筆
者〈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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