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前 雜誌記事 모음

滿洲王 張學良氏 會見記 - 李克魯

이강기 2015. 9. 5. 12:37
   
 
 
잡지명 별건곤 제35호
호수 제35호
발행년월일 1930-12-01
기사제목 滿洲王 張學良氏 會見記
필자 李克魯
기사형태 소식

吉敦線事件의 진상 조사와 그 被害地 朝鮮 同胞의 慰問次로 각 단체의 委任을 바든 新幹會의 대표로 내가 滿洲로 떠나기는 1930년 9월 30일이엿다. 그 날 오후 7시 20분 特急車로 국경을 넘어 安東·奉天·長春·吉林·蛟河·敦化 등지로 단니어 歸路에 다시 奉天에 들넛다. 그는 張作相氏와 張學良氏를 맛나고저 함이엿다. 10월 17일 오전 10시에 天道敎靑年黨 대표 金起田氏와 함께 吉林省 정부 수석이요 東北邊防軍 駐吉副司令인 張作相씨를 맛나고저 奉天에 잇는 그의 公館으로 자동차를 몰앗지만은 때맛츰 잇지 안음으로 接待員은 우리에게 來日 오전 8시에 다시 오라는 약속을 하여줌으로 그냥 도라왓다. 약속대로 그 翌日 오전 8시에 다시 公館을 차젓다. 張氏는 每朝早起하는 관습이 잇서 일즉부터 乘馬이며 여러 가지 일을 본다고 한다. 대면하니 氏는 健壯한 肉體의 소유자이며 言行에 親切하고 威德이 兼全한 人格者로 보인다. 吉敦線事件과 滿洲의 朝鮮 사람 문제에 대하야 다소간 답이 잇은 후에 만주 문제이니 만큼 張學良氏를 만나려 한즉 요지음은 身病으로 면회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作相)가 오후에 學良氏를 맛나서 물어 보고 통지하야 주겟다고 하고 우리와 작별하엿다. 旅館으로 돌아온 후 다른 일로 나갓다 오니 張作相氏 公館으로부터 月曜 卽 10월 20일 오후 5시에 東北邊防軍 總司令長 官府에서 張學良氏 面會 約束 公函이 여관으로 왓다. 그래서 月曜日을 기다려 면회 시간은 오후 5시임으로 시간을 억임업시 자동차로 黃塵을 휘날니며 속력을 다하야 東北邊防軍 總司令長 官府로 향하엿다. 차가 멋는 대는 正門압 넓은 마당이엿다. 먼저 와 잇는 자동차가 10여 대가 잇섯다. 金起田氏와 나는 바로 정문으로 들어설나니 그 문 압페는 3인 식 2列 6人의 守衛軍이 잇섯다. 그들에게 入門許諾을 바든 뒤에 문을 들어서니 정문부터 그 안에 보이는 집은 모다 중국식 가옥이다. 門房(受付)에서 온 뜻을 말한 후 第一 응접실로 들어가니 선 듯 눈에 띄우는 것은<96> 壁上에 모신 一時 中國에 風雲을 일으키든 英傑 張作霖의 초상이 위엄을 나타내고 잇고 다른 벽에는 文武重要官吏의 牌가 부터 잇스며 房 一隅의 卓子에는 손님의 면회 순서를 따러 차례 차례로 名啣이 노혀 잇다. 얼는 살피니 우리의 명함도 한자리를 차지하엿다. 그 방에는 나희 근 60되여 보이는 肥大한 노인이 잇는대 그 노인은 40여 년이나 官所에서 방을 직키고 잇다는 職務者로 충실하야 보이는 好人이다. 中國式으로 連해 따러주는 茶를 마시면서 노인과 심심챤케 이야기하고 한 30분 지내니 나희 40쯤 되여 보이는 다른 접대원이 들어와서 우리 명함를 보더니 일곱시로 약속한 것인데 통지가 잘못되엿다 하며 미안한 인사를 하고 기다려 달나 한다. 그러니 할수업시 우리는 두시간이나 지리하게 기다리게 되엇다. 여섯시 40분쯤 될 때에 中國 손님 두 사람이 들어온다. 그 때에 나희 40쯤 된 그 접대원이 우리 두 사람과 막 들어온 그 中國 손님들과 함께 引導하야 第一 應接室로부터 第二 應接室로 옴기어 가게 되엿다. 뜰로 나려서 이번은 二人相對四人의 軍人이 지키고 잇는 中門을 거처 口字로 지은 中國式의 굉장한 집마루를 돌아 岩石으로 자연을 模倣한 기우듬한 적은 石門을 들어가니 적은 정원이다. 그 정원 뒤에는 3층 양옥이 巍然히 屹立하엿다. 일행은 그 양옥 정문으로 들어가 마루에서 외투를 벗어 걸고 右便으로 돌아 나가 첫 방문을 두다리고 들어가니 그 응접실에는 아조 사치하게 자개 세공을 솜씨잇게 장식한 탁자와 의자가 벌녀 잇다. 거긔에 먼저 들어안즌 손님 중에는 서양인 3명이 잇어 房中에 잇는 자개 탁자를 중심으로 자개 의자에 빗겨 안저 서로 담화하고 잇섯스며 우리 두 사람과 함께 들어온 두 中國人은 벽 엽헤 잇는 의자에 안ㅅ게 되엇다. 茶를 먹으면서 조곰 기다리노라니 아마 7시가 되엿슬 쯤에 李先生, 金先生하고 우리를 부른 사람은 먼저 이 방으로 인도하야 온 사람이다. 우리는 그 방을 떠나 右便으로 돌아 마조잇는 방문의 布帳을 들치고 들어가니 그 방이 곳 목적한 곳이다. 방 한편 모통이에는 박제의 虎皮가 잇서 그 방 공기에 威風을 나타내는 듯하다. 안짜마자 인도하는 사람이 張學良氏와 갓치 들어와서 總司令이라고 엄숙한 태도로 소개한다. 외형으로 보아서는 張學良氏는 體小하고 弱한 선배로 보이고 中華民國 陸海空軍 副司令이나 東北邊防 軍總司令의 威嚴을 가진 武人으로는 보이지 아니한다. 그러나 얌전한 선배처럼 생겻든 그 父親 張作霖氏와 갓치 學良氏도 中原을 震動시키는 지략과 담력과 용기가 잇어 보인다. 악수로 인사를 하고 안즌 뒤에 인사의 말이 끗나고 多少의 政談이 잇슨 후에 호기심이 만은 張氏는 압에 노인 내 명함을 들고 朝鮮 발음으로 내 일홈을 읽거보라 하며 자기가 딸라 익기도 한다. 한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고 (此間問答한 이약이는 사정이 許치 안어 略함) 역시 악수로 작별의 인사를 마친 뒤에 면회실 문을 나서니 그 문 압 몃 間쯤 띄여 잇는 곳에 눈동자빗치 나는 軍人의 立像이 그 門을 향하고 서 잇음을 보앗다. 점점 각가히 오고 보니 立像이 아니라 直立不動의 氣着姿勢를 한참 말 군인이엇다. 오든 길을 다시 밟아 바로 정문을 나서니 灰色에 잠들은 黃婚의 街街엔 電燈만 明滅하고 이섯다. 우리는 다시 자동차의 속력을 催促하엿다. <97>